인생을 오래 살지 않았지만 지금껏 살면서 배운 것는 “사람은 변함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지혜도, 배경도, 재산도 없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꾸준함으로 승부 봐야 합니다.
김성민이란 인생을 성실로 이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것을 심겨주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습니다.
얼마 전,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실시한 다면적 인성검사 MMPI-2를 받았습니다.
“사회적 규칙과 규범을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성향이며, 무리하면 병이 오듯, 심리적으로 경직돼있어 신체적으로 병이 올 수 있다”라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자주 아픈 이유가 있었습니다.
신경쓰지 않을 일도 골똘히 해치우려 하니 잔병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살면서 희열을 느끼는 건,
누가 보던, 보지 않던 내가 걸어가는 길을 묵묵히 걸어갔을 때 옆에서 누가 인정해줄 때입니다.
“김성민, 너는 인정한다.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너는 딴짓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믿어.
내가 후원하는 건 목사님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세상 다 가진 기분입니다.
명절 전,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가기 전에도, 가서도 노심초사였습니다. 즐기지도 못했습니다.
무료급식소 일이란 조금의 빈틈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후원자와의 통화, 교회사역 등 모든 게 일의 연장선입니다.
하루 24시간이 일이고, 일 자체가 내 삶입니다.
여행기간 중 기업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대표님, 후원물품이 있는데 지금밖에 시간이 없어 오늘 4시쯤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스탠바이 하고 있어야 합니다. 5분대기조로 일합니다. 휴대폰 스케줄을 보면 빽빽합니다. 컴퓨터 모니터는 포스트잇으로 도배가 됐습니다.
그래도 내 삶이 좋습니다. 행복합니다. 적성에 맞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것 아니겠어요?
지지난 주 금요일, 급식소에서 행사가 있었습니다. 나름 큰 행사였습니다.
그날따라 봉사자가 부족했습니다.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구슬땀 비지땀, 땀이란 땀은 다 흘렸습니다.
온 몸이 흠뻑 졌었습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 가장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밀려오는 이용자들을 컨트롤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목소리가 높아졌고 정신이 훅 나갔습니다.
이때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고군분투 하는 내 모습을 계속 바라봤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그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봐, 결혼했어?”
“왜요?”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잖아. 욕심도 나고”
“애가 둘입니다.”
“아이쿠 어떡하나... 사실은 우리 집에 시집 못간 딸이 있어,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애는 좋거든, 결혼 안 했으면 소개시켜주려고 했지”
나를 좋게 봐줘서 고맙고, 젊게 봐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이 날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엄청 웃어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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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집었다 놓았다 합니다.
서로 비교해보고 가성비와 효율과 필요성을 따져봅니다.
오랜시간 고민한다음 구매결정을 합니다.
소외청소년 가정을 돕기위한 생필품을 구입하는 과정입니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신중하지 않았습니다.
고민의 과정 없이 마구 손에 집히는대로 카트에 넣었습니다.
물가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산 것도 없는데 몇 십 만원이 훅 나갑니다.
같은 금액인데 전보다 장바구니가 가벼워졌습니다.
무서울 정도입니다.
후원금은 한정돼 있는데 도와야할 아이들은 점점 많아집니다.
하지만 누군가 꼭 해야할 일이라면 우리가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예로부터 콩 한 쪽도 나눠먹는 민족이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나섭니다.
아내와 나눈 대화입니다.
"당신, 우리단체는 어려운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단체보다 많이 후원받고 있어요."
"아니 그게 어디 당신 돈인가요? 전부 나가는 금액이잖아요. 무료급식소에, 결손아동에 전부 쓰이는 건데 뭘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후원자에게 감사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후원을 이어가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주는 기대와 신뢰에 조금의 금이라도 깨지지 않도록 더욱 매진할 것입니다.
정신줄 똑바로 잡고 살아가겠습니다.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후원하는 사람도 좋지만 매일 기도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더 큰 힘이 솟습니다.
중보의 힘이 느껴집니다.
기도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기도해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루하루 버틸 수 있습니다.
무료급식소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지난 금요일 무료급식소에 행사가 있었습니다.
무사히 행사를 마쳤고 좋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문제의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게 기도의 힘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고진감래(苦盡甘來)”
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100% 순전히 기도의 역사였고 기적이었으며 간증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실타래 풀 듯 풀면 금세 해결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지치지 않고 왔던 길 그대로 앞만보며 전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내가 걷는 길만이 100% 옳다”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산다”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게 싫습니다.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몸이 아파서 누워있어도 자꾸 그 다음 일을 계획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내가 가진 역량을 넘어 120%의 실력을 발휘하며 삽니다.
또 나는 내 삶을 사랑합니다.
인생 자체를 자족하며 삽니다.
창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SNS에 해마다 좋은 곳 여행하고, 비싼 음식 먹고, 좋은 차 탔다 자랑하는 모습보다
겨드랑이에서 쉰내 나고, 얼굴이 시커멓고 땀범벅이 돼있는 나의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대견스럽습니다.
이런 우리를 믿고 흔쾌히 후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공개하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깰 정도로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분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그래서 어떨 땐 감사하가다도 무섭고 떨립니다.
멈칫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물건 살 때, 외식할 때, 가족여행 갈 때입니다.
나에겐 양심이란 게 있습니다.
목사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나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진취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창의적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발전하고 싶습니다.
15세기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달걀을 어떻게 바닥에 세울 수 있느냐? 그건 불가능하다.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에게 증명해보입니다.
달걀 밑을 깬 다음 바닥에 세운 것입니다.
그랬더니 또 사람들이 외쳐댑니다.
“누가 그걸 못해? 그걸 몰라서 안 했냐고?”
콜럼버스는 응수합니다.
“그럼 당신은 왜 처음부터 그 방법을 쓰지 않았느냐?”
나 김성민도 2023년을 살아갑니다.
다시 한 번, 내 인생이 옳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과 더불어 열심히 개척, 개간하며 멋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이잖아요.
교회도, 무료급식도, 가정에서도, 내 삶에서도
내가 걷는 길이 더욱 아름답고 찬란하도록 내가 먼저 나를 응원하겠습니다.
나 스스로 성취감을 극대화 시킵니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려 노력합니다.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끝에 직면하는 순간까지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먼저 포기하지 않습니다.
역전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삶에 많은 부분이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먼저 목표를 잡고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스타일입니다.
모든 일을 연역적(演繹的)으로 선포한 다음 그에 따른 방법을 하나씩 모색합니다.
때론 무모해보이지만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도출하는데 절대적인 방법입니다.
끝이 오는 순간까지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해냅니다.
그러다가 딱 끝나버리면 그걸로 수긍합니다.
그걸 가지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밤새 끙끙 앓지 않습니다.
개척론과 (하나님의)운명론을 함께 지녔습니다.
13년을 이끌어온 무료급식소에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 문제도 잘 해결될 것입니다.
내가 먼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습니다.
또 나를 믿어주는 사람(후원자)들이 있고 가족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를 믿습니다.
나는 나에게 닥친 일들을 훌륭하게 해결할 것입니다.
정금같이 나와서 멋진 모습이 돼있을 겁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남편만 믿어요.”
의심하고 떨리는 목소리가 아닌 당차고 힘있게 말했습니다.
2011년, 모두가 말렸던 개척을 밀어붙였습니다.
다수가 불가능하다했던 단체를 만들었고, 사단법인과 공익단체까지 이뤘습니다.
공부에서도 끝장을 봤습니다.
한 번 물면 끝장을 보는 성격입니다.
지레짐작으로 겁먹지 않고 도중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교회와 무료급식소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사명(使命)이기 때문입니다.
목숨 걸고 덤벼드는 사람은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내가 그렇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연세가 있습니다.
요즘 들어 “손이 저리다” 말씀합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움직여야 합니다.
손 운동 하려는 목적으로 무료급식소 앞을 예쁘게 꾸몄습니다. 조경 전문가세요.
한 치도 가만있지 못하는 분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연신 움직였습니다.
움직이면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낍니다.
매일 도전하고 또 도전하겠습니다.
감히 부탁드립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좀 부탁드립니다.
지금껏 기도의 힘으로 버텨왔기에 이번에도 그 힘이 절실할 때라는 걸 압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은 고유한 뜻을 지녔습니다.
아브라함(אַבְרָהָם)은 열국의 아버지,
야곱(יַעֲקֹב)은 발 뒷꿈치를 잡는 자,
모세(מֹשֶׁה)는 물에서 건져내다.
예수(יֵשׁוּע)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렇듯 전부 뜻이 있고, 실제로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80-90년 평생을 이름의 뜻대로 살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이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짓는 게 아닙니까?
아기의 이름을 짓는 부모는 그 인생을 알았을까?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였을까?
모든 게 확실치 않지만 분명한 건 "이름"이 중요하는 점입니다.
이름대로 평생을 살아가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내 이름은 김성민(金聖民)입니다.
거룩할 성에, 백성 민을 씁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란 뜻으로 어머니께서 지어주었습니다.
인생을 뒤돌아보니 하나님의 백성대로 살아온 것은 맞습니다.
한번도 하나님 품을 떠나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 이름대로 살려고 애써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겠습니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정의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성민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았어”
목회 할 때도, 무료급식 할 때도,
사석에서도, 공석에서도 뒤가 구리지 않고
깨끗하고 청빈한 삶을 살다 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않고, 기본 공중도덕 잘 지키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말 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정도(正道)를 걷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얼마 전 스타벅스 매장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자동차보험 갱신으로 준 쿠폰으로 아내와 함께 마셨습니다.
한참을 마시고 있는데 후원자 한 분이 매장에 들어온 것입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정말 난처했습니다.
보편적인 생각에 “스타벅스=비싼커피” 이렇게 인식돼 있잖습니까?
더구나 후원자는 이 불경기에 허리띠 졸라매서 후원하는 것일 텐데,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 같아 대단히 밍구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다정하게 인사해준 후원자였습니다.
후원자 여러분, 열심히 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떳떳하고 깨끗하게 살겠습니다.
아내에게도, 가족에게도, 교회성도에게도, 무료급식 봉사자에게도 이렇게 살 것을 주문하겠습니다.
추신, 이제 바자회를 준비할 시기가 됐습니다.
집에 안 쓰는 물건 있으면 잘 모아두었다가 우리에게 보내주십시오.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이고, 선한 일에 쓰겠습니다.
보내실 땐 꼭 착불로 보내주십시오.
매순간 감사를 떠올립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애씁니다.
감사를 알아야 됩니다.
감사해야 할 때 감사를 표현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한순간도 감사를 잃어버리면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내 인생은 더 그렇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습니다.
격식을 차려 부부동반 모임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몇 년 전, CTS기독교TV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사모님이 굉장히 미인이시네요.”
부끄럽지만 자주 듣는 말입니다.
한두 번 듣는 소리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감탄합니다.
솔직히 감탄까지 할 정도는 아닌데 말입니다.^^*
곧이어 대화를 이어갑니다.
“사모님이 더 훌륭하세요.”
우리 부부를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사모님이 대단하세요. 사모님 존경합니다.”
아니 뭘 그렇게 대단하고, 뭘 그렇게 존경한다는 건지,
도대체 누구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으면 듣기 거북합니다.
그러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첫눈에 척 봐도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남자를 만나고,
그런 남자와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결심했습니다.
또 어렵다는 목회의 길, 사모의 길을 자진했습니다.
개척교회도 어려운데 무료급식 사역까지 합니다.
남편이 “하자”라면 군말 없이 따라줍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인정에서 “사모님이 더 훌륭하세요.”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말이 새롭지도 않습니다.
아내는 나보다 훌륭한 게 맞습니다. 더 똑똑하고 사리분별 잘 합니다.
가끔 아내에게 질문합니다.
“당신, 나 만나서 행복해요?” 물으면
“네, 행복합니다. 당신 만나 예쁜 유주와 루하도 생겼잖아요.”
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자신 있게 살아가는 남편을 존경하고 내조하는 아내입니다.
나는 아내를 만나 복 받았고, 아내도 나를 만나 복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를 지켜보는 모든 후원자에게 감사합니다.
더 예쁘게 사역하겠습니다.
많은 후원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매일 깨닫습니다.
힘내라며 영양제를 챙겨주고, 발마사지기를 구입해줍니다.
또 소외청소년과 무료급식 이용자들에게 나눠주라며 간식도 꼬박꼬박 챙겨줍니다.
이런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처음엔 맞지 않는 신발처럼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더 열심히 달리라는 채찍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떳떳하고 멋있게 살려고 합니다.
자신 있게 살겠습니다.
더 베풀고 더 섬기며 살겠습니다.
각자 주어진 삶의 영역이 있습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선생님이나 교수는 교육계에서,
나는 내 위치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나는 내 영역에서 기뻐하며 만족하겠습니다.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자족하겠습니다.
내 삶 자체를 만족하겠습니다.
무료급식으로 한창 바쁠 시간에
처음 보는 사람이 급식소를 찾았습니다.
중요한 용건이 있어보였습니다.
내 앞을 그냥 지나치더니 건장한 남자봉사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중요한 용무인 것을 직감한 그 봉사자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켜며
“이 분이 무료급식소를 담당하는 목사님이세요. 목사님께 물어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멈칫했다가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방향을 틀고는 할 말을 이어갔습니다.
대화의 말미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혹시 장애를 가지고 계신가요?”
“아, 네, 선천적으로 뇌성마비 장애가 있습니다. 실례의 질문도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장애를 가졌다는 것 때문에 한 수 아래로 내리깝니다.
단체의 장이 될 리 없겠다는 겁니다.
뭐 하루이틀 겪은 게 아닙니다.
옛날에는 굉장히 자존심 상했는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보든가 말든가 상관 않기로 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무료급식소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나”라는 건 변치 않습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실력을 발휘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후원자들이 우리를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어디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며, 자격지심 속에 빠져있지 않는 모습을 보며 더욱 후원과 사랑을 아끼지 않습니다.
뭐 여기서 백날 떠든다고 무시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는 상황이 올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안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후원자, 당신과 함께 말입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vs 나를 무시하는 사람
모두 한 공간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오늘도 메아리처럼 귀에 들려오지 않지만 외쳐봅니다.
솔직히 하루를 살아가는데 힘들고 버겁습니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죽었다면 이 하루가 더 소중했을 겁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죽으면 끝이니 후회 같은 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음보다 값진 선물인 하루를 귀중히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하루를 다 살고 이불 속에 들어갈 때면 감사가 나옵니다.
또 아침에 일어나면 감사가 나옵니다.
세상을 헤쳐 나가는데 있어 내 생명을 연장시켜준 하나님에 대한 감사입니다.
나에게 내려준 명령, 사명, 투지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삶의 목적대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낯부끄러운 얘기지만
오늘도 무료급식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교회도 열심히 섬겼고요.
또 할 말이 남았습니다.
“무료급식소와 교회를 섬기는 것 말고는 딴 짓하지 않았습니다.”
마약, 음주, 담배, 도박, 사기, 거짓말, 향락, 과소비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과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목사가 당연한 것 아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저는 자신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후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후원자들에게 나에 대해서 자꾸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후원하고 있는 곳, 당신이 후원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야”라고요.
벌써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재정마감을 했습니다.
이번 달도 전국, 전 세계에서 많은 후원금이 들어왔습니다.
절.대.적.으.로 과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온 맘을 다해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후원자의 정성을 알기에 힘들고 버거운 인생이지만 오늘도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허튼짓 않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다녔습니다.
당신이 후원한 것이 값진 것임을 날마다 각인하고 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더열린교회를 위해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선교의 혜택을 받아온 더열린교회는
개척 때부터 선교헌금을 지출해왔습니다.
힘들 때도, 건축할 때도 이어왔는데
다음 달부터 못나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더열린교회를 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지금껏 도와온 교회와 선교사님들에게 죄송합니다.
우리 무료급식소는 여러 후원자가 함께하는 곳입니다.
오늘도 무료급식을 잘 마쳤습니다.
무사히 끝냈습니다.
내가 끝낸 것 같지만 사실은 여러 후원자 덕분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후원자가 없었다면 시작도 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원자가 귀합니다.
그 고마움을 깨달아 후원자 마음에 작은 상처라도 입히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옛말에 “누울 자릴 봐가며 발 뻗어라”했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신경 씁니다.
“그렇게 살면 고달프지 않니?” 묻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편합니다.
그냥 내 인생 그대로를 보여드립니다. 그래서 고달프지 않습니다.
우리의 진심을 여과없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또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한번 맺은 인연을 귀하게 여깁니다. 끝까지 가려합니다.
시골에 가면 집집마다 마당 한가운데 모닥불 피는 아궁이가 있습니다.
그곳에 갓 잡은 한우 우족을 넣고 12시간 푹 우려낸 진한 사골국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질리지 않는 사람, 변덕부리지 않는 사람이 좋습니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변덕부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씁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1988년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왔습니다.
작은 용달을 빌려 이삿짐을 쌓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요?
때마침 비가 쏟아졌습니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엄청 퍼부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새 집주인과 계약문제가 생겼습니다.
용달 기사는 길 한복판에 짐을 내려놓고 가버렸고
우리식구는 얼른 대형비닐을 빌려와 가구를 덮었습니다.
비를 홀랑 맞았습니다.
온 식구가 슬프고 서러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빗물과 눈물이 섞여 더 슬펐습니다.
이때가 국민학교 3학년 때입니다.
내 집, 내 땅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곳에 정착할 수도 없었습니다.
인생 참 비참했습니다.
이런 세월을 겪고 지금의 자리에 있습니다.
지난 과거를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견뎠고 이겨냈으며 다 극복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지금을 더 열심히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2023년 현재도 내 과거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며
그들에게 힘이 돼주려 내 남은 인생을 바치기로 결정했습니다.
옛날엔 “성미”가 있었습니다.
삼시세끼 밥을 짓기 위해 쌀통에서 쌀을 풉니다.
식구 수대로 푼 다음 다시 숟가락으로 그 쌀을 덜어냅니다.
4식구면 네 번을 숟가락으로 떠서 성미주머니에 담습니다.
담을 때도 두 손 모아 정성껏 담습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담습니다.
그것을 금요일 저녁에 있는 속회에 가져가서 교회에 바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우리도 어렵지만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 어려운 목회자들, 어려운 선교사들에게 무조건 무조건 잘 해야 한다.”며 몸소 배우며 자랐습니다.
어렸을 땐 돈이 없어 간식을 못 사먹었습니다.
어머니는 교회 성가대를 섰습니다.
주일 저녁예배가 끝나면 성가대원은 남아서 그 다음 주에 부를 곡을 연습했습니다.
그러면 대원들에게 제과점 팥빵을 하나씩 나눠줍니다.
우리 엄마는 집에 있을 아들 주려는 마음에
먹고 싶어도 꾹 참고 슬며시 가방에 넣습니다.
나는 엄마가 올 때를 목 빠지게 기다립니다. 사실은 팥빵 때문입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성인이 된 지금도 팥빵을 가장 좋아합니다.
지금은 그때같지 않습니다.
맛있는 것도 맘껏 먹을 수 있고, 좋은 곳도 맘껏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무언가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누구한테란 대상도 없이 그냥 미안합니다.
아마 계속 없이 살다보니 그것이 몸에 젖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를 믿어주는 후원자들에게 내가 걸어온 인생을 공개하고 싶었습니다.
더 돈독한 관계가 되고 싶었고, 나를 믿어주는 당신에게 실망시키기 싫어서였습니다.
한번에 확 뜨고, 한번에 확 사라지는 스타가 되기 싫습니다.
언제나 묵묵히 여기서 무료급식과 목회를 하고 있겠습니다.
우리를 믿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후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