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

카테고리 없음 2026. 9. 17. 10:07

“내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도울 방법이 없느냐”며 문의해옵니다.
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보고 우리에게 연락해옵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다각적으로 도울 방법을 모색해봅니다.
직접 방문하여 객관적으로 살핀 다음, 위원회를 열어 논의합니다.
될 수 있는 한 도와주려 하고 있죠.

16년을 이렇게 해오다 보니,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결손아동, 결식아동, 소외청소년, 저소득 청년, 독거노인, 외국인 근로자, 미혼모, 한부모가정, 조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 정말 수를 셀 수 없이 도왔습니다.
지역의 유관기관이 인정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합니다.

이렇게 많이 도와주는데도 우리의 샘은 마르지 않습니다.
이게 참 희한합니다.
돈을 뿌리는 사업인데 예전보다 더 많은 지출과 예산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전부 후원자 덕분입니다.
후원자 중에는 금전으로, 현물로 동참해주는 사람이 있고,
믿음으로, 기도로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귀합니다.

우리는 나라가 인정해준 기관입니다.
비영리 사단법인, 공익단체(지정기부금단체), 집단급식소라는 타이틀이 있죠.
주먹구구식으로, 시골 구멍가게처럼 운영하지 못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기획재정부, 경기도, 화성시, 국세청으로부터
“여기는 지혜롭게 운영하는 단체, 깨끗한 단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곳입니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관리·감독을 받고 있죠.
조금만 흐트러지면 가차 없이 탈락돼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16년 동안 한 번도 탈락된 적 없이 잘해왔습니다.

단체를 운영할 때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종종 정관을 변경할 때 회원들의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즉, 인감증명서를 받는 것인데요. 이게 말같이 쉽지 않습니다.

회원들이 우리를 절대적으로 믿어줘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니라 “인간 김성민”을 믿어줘야 하는 일입니다.

인감증명서를 떼 달라고 할 때마다 괜히 죄짓는 것 같고, 미안하고, 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단체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고 뚫고 가야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요구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싫어요. 안 돼요. 내가 금전으로는 도울 수 있으나 인감은 안 됩니다.”라는 반응과,

“네, 그러세요. 언제까지 해드리면 돼요? 목사님 걱정 마세요.”라는 반응으로 나뉩니다.
실제로 우리교회 성도 중에도 이것 때문에 많이 나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도둑놈이 아닙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나는 나쁜 놈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등쳐먹고 야반도주하며, 호의호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에게 도리어 손해를 끼치고, 책임을 전가 시키는 건 죽기보다 못하겠습니다.
무서운 책임감을 소유했습니다.
설사 그런 일이 없겠지만 일어난다 해도 내가 혼자 떠 안고 갈 겁니다.
난 이런 사람입니다.

만약 그리 봤다면 김성민을 잘못 본 것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행실과 사역을 보면 알 것입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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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미소와 겸손으로 다가갑니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무료급식 후원자, 봉사자, 이용자를 응대하고 있죠.

나는 무료급식도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합니다.
나는 나를 “슈퍼을”로 자처합니다.
절대 내 꼴리는 대로 운영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벨이 울리면 침을 꿀떡 삼키고,
“아, 아.”
목청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습니다.

평소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로,
약간 높고 경쾌하게,
“솔” 톤으로 받습니다.

어쨌든 나는
후원자들한테, 봉사자들한테, 이용자들한테 잘합니다.
특별히 조금 더 잘합니다.
이것이 내가 가진 강점일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무조건 끌려가지는 않습니다.
줏대를 가지고 분명한 판단과 결단을 해야 할 때는 합니다.

모든 사역에 있어서 밀어붙여야할 때 밀어붙입니다.
아내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뚝심을 갖습니다.

무료급식소 위치를 선정할 때,
조금 넉넉한 동네가 아니라,
소외계층이 많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 선정합니다.

이건 개인적인 고집일지 모르겠으나
자동차를 구입할 때, 무조건 검정색으로 고릅니다.
교회 차든, 무료급식소 차든 꼭 검정색으로 뽑습니다.
분명히 나만의 고집과 아집이 존재합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데 이런 게 없으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립니다.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낮추되,
내가 지켜야 할 원칙 앞에서는 분명해고 또렷해집니다.

이게 김성민의 처세술입니다.
나는 이렇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어요.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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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카테고리 없음 2026. 9. 15. 12:31

무료급식 이용자 중, 생활환경이 정말 열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온전한 정신이 아닌 데다, 혼자 살다 보니, 집안은 늘 엉망이었죠.

이 사람의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준 후원자가 있었습니다.
청소업체를 운영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이런 뜻깊은 봉사를 해주는 후원자입니다.

이번에도 정성껏 준비해온 반찬거리를 냉장고에 가득 채워놓고,
옷장과 신발장, 화장실까지 꼼꼼히 청소해주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이런 후원자들이 내 주위에 존재하네요.

아무런 대가나 이득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해주는 귀한 사람들이 내 곁에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게 만나무료급식소의 경쟁력이자 강점입니다.
따라서 대표를 맞고 있는 나는 분명히 성공한 사람 맞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미국을 동경했습니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20대에 막노동으로 알바하며 150만원을 모았습니다.
그때부터 미국을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죠.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준비했습니다.

여행사에 다 맡겨도 될 텐데 비용도 비쌌고,
이번만큼은 “내가 직접 다 해봤다”는 성취감도 느끼고 싶었습니다.

한 달 내내 잠도 안 잔 채 인터넷을 뒤져 미국에 관한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프린팅해 놓았습니다.

비자를 신청하러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도 갔습니다.

조금이라도 비행기 티켓값을 아끼기 위해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이용해 홍콩을 경유하는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거의 24시간이 걸려 미국에 도착했죠.

내 인생 처음으로 해보는 배낭여행이었습니다.
지하철도 타보고, 유명 관광지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던 중,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할아버지를 봤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 빠른 행동이 나와버렸습니다.
행동이 이성을 이긴 것입니다.

“Um… can I help…”
“할아버지, 짐 들어드릴까요?”

할아버지는 굉장히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멀찌감치 헤어질 무렵,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Hey, Young man, I have a feeling you're going to be very successful.”
“이봐, 젊은이, 당신은 성공할 것 같네.”

먼 타국에서,,, 그것도 내 인생 처음으로 ‘성공’이라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반면교사로 삼아 봉사오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줍니다.

“내가 봤는데 너는 인생 성공할 것 같은데….”

내 인생에서 최고의 칭찬을 들었던 그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누구도 나에게 해주지 않았던 말인데, 지구 반대편에서 그런 말을 듣다니,
그때 들었던 그 감정을 간직한 채, 나는 지금도 무료급식에 임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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