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서울 금호동 달동네에 살았습니다.
깎아지른 돌 절벽이 옆으로 보이는 곳,
해방촌처럼 급경사와 좁은 계단이 많았고,
산비탈과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 맨 꼭대기에 우리 집이 있었습니다.
외조부모를 포함해 대식구가 좁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알콩달콩 잘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또한 굉장히 못살았습니다.
빚보증을 잘못 서고,
삶의 지혜도 부족했던 터라 어렵게 살았습니다.
빚쟁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이닥쳤습니다.
2011년, 무모하게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아내가 처녀 때 모아둔 돈도 홀랑 까먹었습니다.
돈이 궁해졌고, 모든 것을 아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나는 짠돌이입니다.
지난날의 경험들이 나를 보통의 사람들처럼 만들지 못하더군요.
나의 나 됨,
김성민의 과거는 돈 앞에 벌벌 떠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돈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깨닫게도 했습니다.
그리고 원래부터 돈이 없었던 사람이라
웬만한 궁핍함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최소한 물질의 시험은 나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물건 못 사고, 쓸데없이 허비되는 것을 못 봅니다.
그래서 내 지인들은 나를 외계인 취급합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특히 아무 생각 없이 수돗물을 콸콸 틀어놓고 있을 때,
아무도 없는데 에어컨을 켜놓고 있거나,
문을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돌리고 있으면
괜히 내 안에서 부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우리 부부의 대화 주제는 항상 똑같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옛날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옛날 기억나?"
"돈 없었을 때 말이야."
"배고팠을 때."
"저렴한 음식점에서 먹었는데도 참 맛있었잖아."
"여행 가서 먹었던 BBQ 치킨도 기억나?"
"그땐 그랬는데…… 그치."
돈이 없어서 괴로웠고, 힘들었던 지난날이 이제는 추억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착화된 내 성품은 무료급식을 하면서 더 도드라집니다.
후원자가 보내오는 돈을 소중히 다룹니다.
그 돈의 가치를 잘 압니다.
그래서 흥청망청 쓰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돈을 아예 못 쓰는 것도 아닙니다.
꼭 써야 할 곳에는 과감하게 플렉스해버리죠.
돈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쓰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