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무료급식소는 어려웠습니다.
후원자도, 후원물품도 전무했기에 아주 힘들게 꾸려갔습니다.
그야말로 영세하고 볼품없는 급식소였죠.
어떤 사람이 “푸드뱅크에서 지원받아 보세요”라고 하더군요.
앞뒤 잴 것 없이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비영리단체’로 가입돼 있느냐?”고 되묻더라고요.
그때 알았습니다.
지원받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고, 공인된 단체여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경기도 주무관청을 오가며 고군분투했습니다.
행정사에 맡겨도 될 것을 그 돈이 없어서 혼자 씨름한 것입니다.
진짜 핏똥 쌌습니다.
아마 담당 주무관도 나 때문에 고생 많았을 겁니다.
워낙 알아듣질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었겠죠.
앞으로 설립될 단체의 ‘수입·지출 예산서’를 작성할 때 일입니다.
다음 해 예산서를 짤 때, 돈 나올 구멍이 없는 관계로 편법을 썼습니다.
“경기도가 우리 단체를 설립해 준다면,
그 증서를 가지고 후원자를 모집해 열심히 꾸려가겠습니다.”
마치 현대건설의 고 정주영 회장이 떠올랐죠.
“해운회사를 찾아가
500원짜리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를 보이며,
당신이 배를 사준다는 증서를 주면
그 증서를 가지고 영국 은행에서 돈을 빌려
대한민국 울산에 조선소를 지은 다음 네 배를 만들어 주겠다.”와 다르지 않았죠.
결국 우리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내가 그런 머리를 굴렸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스스로 똑똑하기도 했답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외부 강사가 왔습니다.
여자 목사였고, 눈이 꼭 무당 같았습니다.
투시를 한다는 둥, 예지를 한다는 둥 하며 사이비 같은 사람이었죠.
날 보더니 “당신은 목사 될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길로 가세요.”
이러는 게 아닙니까? 나 원 참.
신학교에 와서 배우겠다고 앉아 있는 학생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그 얘기 때문에 지금의 목사가 돼 있는지 모르겠어요.
오기가 생겼거든요. 정말 이를 갈았습니다.
20년 가까이 흘러서 지금 그 사람을 찾아봤는데 자취를 감췄더군요.
나는 무료급식 열심히 하는,
지역에서 칭찬받는,
사리분별 잘하는
훌륭한? 목사가 돼 있는데 말이죠. 하하.
자랑질 해서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