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후원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매일 깨닫습니다.
힘내라며 영양제를 챙겨주고, 발마사지기를 구입해줍니다.
또 소외청소년과 무료급식 이용자들에게 나눠주라며 간식도 꼬박꼬박 챙겨줍니다.
이런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처음엔 맞지 않는 신발처럼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더 열심히 달리라는 채찍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떳떳하고 멋있게 살려고 합니다.
자신 있게 살겠습니다.
더 베풀고 더 섬기며 살겠습니다.
각자 주어진 삶의 영역이 있습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선생님이나 교수는 교육계에서,
나는 내 위치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나는 내 영역에서 기뻐하며 만족하겠습니다.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자족하겠습니다.
내 삶 자체를 만족하겠습니다.
무료급식으로 한창 바쁠 시간에
처음 보는 사람이 급식소를 찾았습니다.
중요한 용건이 있어보였습니다.
내 앞을 그냥 지나치더니 건장한 남자봉사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중요한 용무인 것을 직감한 그 봉사자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켜며
“이 분이 무료급식소를 담당하는 목사님이세요. 목사님께 물어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멈칫했다가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방향을 틀고는 할 말을 이어갔습니다.
대화의 말미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혹시 장애를 가지고 계신가요?”
“아, 네, 선천적으로 뇌성마비 장애가 있습니다. 실례의 질문도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장애를 가졌다는 것 때문에 한 수 아래로 내리깝니다.
단체의 장이 될 리 없겠다는 겁니다.
뭐 하루이틀 겪은 게 아닙니다.
옛날에는 굉장히 자존심 상했는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보든가 말든가 상관 않기로 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무료급식소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나”라는 건 변치 않습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실력을 발휘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후원자들이 우리를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어디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며, 자격지심 속에 빠져있지 않는 모습을 보며 더욱 후원과 사랑을 아끼지 않습니다.
뭐 여기서 백날 떠든다고 무시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는 상황이 올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안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후원자, 당신과 함께 말입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vs 나를 무시하는 사람
모두 한 공간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오늘도 메아리처럼 귀에 들려오지 않지만 외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