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간의 대인관계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역할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항상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고민했습니다. 주도적인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괘념치 않고 김성민의 인생을 살려고 부단히 노력 중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할 인생이니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습니다. 서서히 자존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도, 어떠한 일에 강박증처럼 파고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 몇 년을 걸쳐 차근차근 준비합니다. 1~4년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던 목표가 서서히 잡힐 때가 옵니다. 마치 낚시하는 것처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확 낚아챌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내 몸을 갈아넣습니다.
집념과 의지가 보통사람 이상으로 가졌습니다.
하루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합니다. 항상 이동동선을 점검하고 계획해서 알뜰하게 시간을 쪼개 씁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심심하다”란 말입니다. 나에겐 심심하고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사색할 시간이 없습니다.
한동안 내 자신에 대한 봉사시간을 올리지 않다가 몇 년 전부터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삶에 대해 객관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이력서) 8,000시간이 올라간 상태입니다.
헌혈도 89회째인데 앞으로 300회를 목표로 잡고 2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헌혈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300회를 찍겠습니다.
지금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원 2급자격증”과 “기독교상담사 1급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중입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쓸 데가 있을 것을 믿고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꿈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의 꿈의 여정에는 언제나 돕는 사람이 존재했습니다.
늘 돕는 사람이 주위에 있었고, 인복(人福)이 넘쳤습니다.
이게 가장 큰 자산이 됐습니다.
평생 은인인 좋은 스승이 있었고,
무료급식 할 때도 좋은 봉사자와 후원자 그리고 평생친구가 된 이용자가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둘도 없는 절대적 아군이 됐으며, 더열린교회 성도들도 천국으로 가는 인생여정, 같은 길을 가는 단짝동무가 됐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보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고 있는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왔습니다.
아직도 그 장면과 역사로 인한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또 배운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결국 “사람”을 이용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한국 선교사에게 붙는 현지인 사역자가 많고 적음에 따라 성령의 역사도 차이 나더라”
나도 하나님께서 붙여준 사람들을 잘 보살피겠습니다.
더욱 인덕(仁德)을 쌓고, 더욱 인격(人格)을 세우며, 어떨 땐 무던하게, 어떨 땐 카리스마 있게, 인복(人福)을 쌓아가겠습니다.
무료급식소를 이끌고 있습니다.
무료급식만 하지 않고 결손 아이들도 보살피고 있습니다.
소외계층에게 생필품 전달도, 노인 일자리도, 도시락 배달도, 바자회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걸 작은 개척교회가 할 수 없었습니다.
재원이 부족했고, 여러 제약이 많았으며, 성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국가로부터 공인된 단체가 필요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비영리 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나는 목사이자, 단체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청렴하다” 말합니다. 그래서 “믿고 후원한다” 말합니다.
이 말 때문에도 더 깨끗하게 운영하려 부단히 노력중입니다.
기업이나 개인이 후원하는 것에 대한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선 공익단체(지정기부금단체)가 돼야 했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경기도, 화성시에서 요구하는 모든 기준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후원한 모든 것은(금전/현물) 국세청 홈택스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에 기부금액이 자동반영 될 수 있습니다.
이미 5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깨끗하고 투명한 단체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내가 후원한 게 아깝지 않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김성민이 만들겠습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초 “평일 삼시세끼 무료급식 하는 무료급식소”가 여러분이 후원하고 있는 만나무료급식소입니다.
이 타이틀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청렴한 무료급식소로 만들겠습니다.
주식거래를 하면 무조건 금융감독원 안에 있는 슈퍼컴퓨터에 모니터링 됩니다.
이상한 거래가 포착되면 즉시 사이렌이 울리고 금감원 직원들이 출동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와 다른 기부금영수증이 발급되면 그 즉시 기획재정부 안에 있는 대형모니터에 뜹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영수증관리는 아주 철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간혹 기업에서 3억 상당의 후원물품을 줄 테니 기부금 영수증을 떼달라 하지만 우리는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개인적인 판단에 거절할 건 거절합니다. 다년간의 운영에서 나오는 촉이 있습니다.
2025년 1월, 매서운 경제 한파가 찾아왔습니다.
사회복지 분야가 가장 먼저 직감합니다.
사회가 어려우면 제일먼저 기부 지갑부터 닫기 마련입니다.
올해 들어 두 개의 기업에서 후원을 중단 내지는 줄이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합이 100만원, 한 달에 100만원씩 줄어듭니다.
이제 진짜 긴축 재정으로 돌아설 때가 온 것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이 또한 인생이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앞만 보며 더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을 테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무료급식을 하면할수록 앞날에 대한 계획이나 예산을 알 수 없습니다.
후원에 대한 계획을 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절실함이 후원자의 마음에 와닿으면 후원이 오는 것이고 아니면 안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해서도 아닙니다.
어떤 현상이나 시대와 잘 맞아떨어져서 후원금이 많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꼭 하루살이 벌레 같습니다.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은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이것만은 변치 않습니다.
내일을 모른다 해도 오늘 주어진 나의 임무를 성심성의껏 끝마치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 더욱 갖게 된 원칙입니다.
이젠 불안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삶이 이골이 났습니다.
오늘을 슬기롭게 이겨내면 50대 50으로 내일이 찾아올 것입니다.
50%는 오늘과 똑같은, 아니면 더 어려운 날이 올 것이지만, 나머지 50%는 오늘보다 밝은 날이 올 것입니다.
나는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지만 마음만은 꿈 많은 청년같이 살고 싶습니다.
매순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가는 중입니다.
몇몇 후원자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후원자 덕분에 무료급식 잘 할 수 있었다며 인사 드리고 있습니다.
후원을 더 해달라는 게 아닌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이 또한 김성민이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나는 내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밝은 내일이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2025년 1월 31일이 금요일입니다. 명절 끝에 평일이 하나 끼어 있습니다.
그날만 아니면 10일 이상 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문을 열 것입니다.
이용자와의 약속이며, 후원자와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또 내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하늘이 두 쪽 나도 문을 열 겁니다.
2011년 2월, 감리교신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졸업했어도 계속 연관돼있습니다.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큽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배움의 끝은 없습니다.
숟가락을 들지 못 할 때까지 배우고 싶습니다.
이번에 “감신 선교훈련과정(1년 코스)”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수료하기 위해선 꼭 “현지적응훈련”을 가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급식소를 봉사자에게 맡기고 캄보디아로 떠났습니다.
정말 많은 은혜와 비전을 한아름 품고 돌아왔습니다.
내가 없는 사이 무료급식 이용자들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중병(重病)에 걸렸어요?
왜 전화 안 받아요?
보고 싶은데 언제 와요?
아니 전원일기 김회장님 댁 최불암도 국회의원이 됐어도 TV에 나오던데 왜 집주인이 안보입니까?”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글쓰기도 사역의 일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글을 못 올려 송구합니다.
앞으로 잘 올리겠습니다. 사역보고 잘 하겠습니다.
이로써 김성민의 생존보고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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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무료급식 사역을 하게 됐어요? 계기가 뭐에요?”
설명하려면 장황합니다.
처음부터 무료급식과 연관된 삶도 아니었고,
무료급식에 관심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모(母)교회인 사강감리교회 김길수 목사님의 권유로 시작한 것 외엔 딱히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무료급식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무료급식을 시작한 이유도,
급식소를 운영해가는 이유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모릅니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다보니 2025년, 대한민국 경기도 화성에서 무료급식 하는 사람이 돼있네요.
그렇다고 허무주의(虛無主義)나 운명론자는 아닙니다.
내가 깨달은 분명한 사실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 전체를 선한 길로 항해해 갈 거라는 믿음만은 변치 않기 때문이죠.
노아의 방주처럼, 모세를 태운 갈대상자처럼,
어떤 동력, 방향키, 나침반이 없어도 김성민을 아라랏 산에 안착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바로의 공주 곁으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이런 이유로 앞날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 미래를 하나님의 선한 손에 맡기기로 작정했습니다.
한동안 일에 미쳐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일을 찾아 허겁지겁 해댔습니다. 없으면 만들어서 했습니다.
뭔가 내 뜻대로 안 될 땐, 낙심하고 가라앉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몸을 혹사시키더라도 부정적인 일들을 빨리 잊게 만드는 스타일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한결 나아졌습니다.
감신선교훈련과정 2025년 현지적응훈련 동영상
https://youtu.be/cjVrgVGR5Tg?si=wtJeqNyxRcSYASUr
(비영리사단법인)더불어사는우리_만나무료급식소 정기총회가 있습니다.
지금 회원들에게 나눠줄 책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사랑해준 후원자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2025년도 열심히 섬길 것을 약속드립니다.
모든 회원에게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주위에 결손아동이나 소외청소년이 있으면 소개해주십시오.
그들을 잘 보살피겠습니다.
031-355-2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