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감리교신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졸업했어도 계속 연관돼있습니다.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큽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배움의 끝은 없습니다.
숟가락을 들지 못 할 때까지 배우고 싶습니다.
이번에 “감신 선교훈련과정(1년 코스)”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수료하기 위해선 꼭 “현지적응훈련”을 가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급식소를 봉사자에게 맡기고 캄보디아로 떠났습니다.
정말 많은 은혜와 비전을 한아름 품고 돌아왔습니다.
내가 없는 사이 무료급식 이용자들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중병(重病)에 걸렸어요?
왜 전화 안 받아요?
보고 싶은데 언제 와요?
아니 전원일기 김회장님 댁 최불암도 국회의원이 됐어도 TV에 나오던데 왜 집주인이 안보입니까?”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글쓰기도 사역의 일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글을 못 올려 송구합니다.
앞으로 잘 올리겠습니다. 사역보고 잘 하겠습니다.
이로써 김성민의 생존보고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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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무료급식 사역을 하게 됐어요? 계기가 뭐에요?”
설명하려면 장황합니다.
처음부터 무료급식과 연관된 삶도 아니었고,
무료급식에 관심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모(母)교회인 사강감리교회 김길수 목사님의 권유로 시작한 것 외엔 딱히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무료급식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무료급식을 시작한 이유도,
급식소를 운영해가는 이유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모릅니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다보니 2025년, 대한민국 경기도 화성에서 무료급식 하는 사람이 돼있네요.
그렇다고 허무주의(虛無主義)나 운명론자는 아닙니다.
내가 깨달은 분명한 사실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 전체를 선한 길로 항해해 갈 거라는 믿음만은 변치 않기 때문이죠.
노아의 방주처럼, 모세를 태운 갈대상자처럼,
어떤 동력, 방향키, 나침반이 없어도 김성민을 아라랏 산에 안착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바로의 공주 곁으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이런 이유로 앞날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 미래를 하나님의 선한 손에 맡기기로 작정했습니다.
한동안 일에 미쳐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일을 찾아 허겁지겁 해댔습니다. 없으면 만들어서 했습니다.
뭔가 내 뜻대로 안 될 땐, 낙심하고 가라앉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몸을 혹사시키더라도 부정적인 일들을 빨리 잊게 만드는 스타일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한결 나아졌습니다.
감신선교훈련과정 2025년 현지적응훈련 동영상
https://youtu.be/cjVrgVGR5Tg?si=wtJeqNyxRcSYAS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