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예배로 전환했습니다. 우리의 특성상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했습니다. 성도가 봉사자이고, 봉사자가 성도이기 때문에 늘 조심합니다. 교회와 급식소 동시에 타격이 클 것입니다. 파급력이 눈에 보입니다. 급식이용자나 생필품 수령자에게 치명적 영향이 미칠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하고 있습니다. -- 20대 때, 무료급식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봉사가 끝나고 남은음식을 싸가는 게 아닙니까? 정기봉사자들끼리 나눠가더군요. 속으로 얼마나 욕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이 돼보니 싸가는 게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남아서, 처치 곤란해서 가져가주는 것입니다. 오히려 봉사자에게 고맙습니다. 안 그러면 음식물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 고맙게도 가져가주시니 감사한 것입니다. 지금 와서 입장을 바꿔 생각하니 그렇더라고요. 젊었을 땐 욕했는데,,, 그때가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패기와 객기를 부리며, 나만의 정의감에 불타있던 애송이시절 이야기입니다.
증조할머니 때부터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1900년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왔습니다. 할머니의 믿음과 어머니의 기도가 고스란히 저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1988년, 수원시에서 지금의 화성시로 이사를 왔습니다.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였던 아펜젤러(亞扁說羅, Henry G. Appenzeller, 1858. 2. 6~1902. 6. 11)가 첫 한국 땅을 밟았던 곳이 화성시와 가까웠다는 이유로 이 지역은 감리교회가 타교단 교회보다 많았습니다.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협성대학교도 감리교재단에 속해있을 만큼 막강한 세를 과시했습니다. 자연히 감리교회를 섬기게 됐습니다. 유년시절, 청소년시절, 청년시절을 한 교회에서만 섬겼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까지 했습니다. 개척을 하려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감리교 간판을 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 소속교회가 된 것입니다.
젊은 집사님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목사님, 사실 이 교회 다니는 것 어머니께서 많이 반대했습니다. 왜 감리교회를 택하지 않았느냐? 우리 집안은 대대로 감리교회를 다녔잖느냐? 빨리 옮겨라” 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설교 때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나를 깨우쳐주셔서 계속 더열린교회 성도로 남고 싶었다.”라고 고백하더군요.
우리교회를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도 있을 테고, 오래 섬겼던 교파 분위기와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 절대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만큼은 아주 똑바로 배울 수 있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안심해도 됩니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교인 여러분,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교회와 똑같이 예수님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지금은 그 집사님의 어머니와 식사도 같이하는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집사님, 내가 집사님보다 나이가 어려요. 집사님이 먼저 하늘나라 갈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장례 잘 치러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우리교회에서 뼈를 묻으세요.” “하하하~ 네~”
다른 권사님도 우리교회를 출석하면서 고민이 많았나봅니다. 긴가민가? 다녀도 되나 안 되나? 그러나 모든 고민 훌훌 떨쳐버리고 지금은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뉴스를 봤습니다. 코로나시대에 고독사하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 모임과 행사가 사라져 극심한 우울증을 겪는 분이 많습니다. 누구와 대화할 수도, 말동무할 수도 없습니다. 정신건강이 위태로운 사람, 복지 사각지대, 우울증세의 고위험군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급식소를 찾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나옵니다. 나오면 친구라도 있고, 말을 걸을 수 있으니까 그걸로 작은 위안을 갖습니다. 그래서 매일 급식소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의 루틴이 된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일수록 더욱 이들을 보살피겠습니다. 삼시세끼 무료급식으로, 사랑의상자배달로 잘 관찰하겠습니다. 최소한 “별세한지 열흘 만에 발견됐다”는 슬픈 소식이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되기에 우리가 발 벗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소외계층을 위한 생필품전달사업 “사랑의상자배달”은 집 앞에 물품만 놓고 오는 게 아닙니다. 수령인의 집을 방문하여, 인사하고, 손 잡아주는 “관심의 사업”입니다. 대화해주며, 그들의 심리상태를 살핍니다. 안심과 안도를 전해주며 따뜻한 기도를 해줍니다. 고독사에 적극 대처하는 귀한 사업입니다. -- 확진자가 10만명이 넘었습니다.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자연히 무료급식도 위축됩니다. 아침과 저녁무료급식은 급식소 안에서 식사를 대접했었는데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그래서 김밥을 만들어 밖에서 나눠주려는 계획을 해봤습니다. 전보다 손이 많이 갑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요.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 아침무료급식을 담당하는 봉사자가 따로 있습니다. 점심무료급식을 담당하는 봉사자가 따로 있고요. 저녁무료급식을 담당하는 봉사자가 다 따로 있습니다. 급식을 담당하는 봉사자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한 끼 식사비용을 계산하는 일입니다. 식재료를 비교하는 게 일상입니다. 100원 차이라도 저렴한 걸 구입합니다. 굉장히 궁색해보이죠? “100% 후원받아 운영하는 건데 펑펑 쓰면 안 됩니다. 양심껏 지출하세요. 내 일 같이, 내 돈 같이, 내 가족이 먹는 것처럼 준비해주세요.”라며 매일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 우리나라 정치인이 국가론에 대한 “철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생을 향한 “지도자적 철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나면 해외로 도망가고, 돈 빼돌리고, 돈 때문에 귀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도성과 백성을 버렸던 선조 같은 사람이 다시는 이 땅에 나오지 않길 바랍니다. 최소한 지도자는 안 그래야 합니다.
자꾸 생필품을 택배로 보내옵니다. 아이들 문제집, 마스크, 색연필 등 “목사님, 깨끗하게 쓴 문제집이 있어요. 혹시 이것도 받으세요?” “받다마다요.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구열에 불타있는걸요. 보내주세요. 정성껏 전달하겠습니다.” 송파에서, 수원에서, 안산에서 마구 보내옵니다.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라도 헛되게 취급하지 않겠으니 걱정말고 보내주세요. 택배비는 저희가 물겠습니다. 그리고 “금전”이나 “현물”로 기부한 모든 것은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하고 있으니 꼭 챙겨가세요. 지금이 기부금영수증 발급받기에 가장 좋은 “때”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차원에서 코로나시대에 기부문화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다른 때보다 세제혜택이 많습니다. (기한 있음)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위치한 경기서부_MG새마을금고에서 매년 귀한 쌀을 후원합니다. 이사장님을 비롯한 모든 임직원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시기”를 살핍니다. 적절한 시기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카운트다운에 돌입합니다. 대게 연초부터 스타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분이 좋거든요. 12월부터 준비해서 다음 해 1월 1일부터 새출발하는 일입니다. 2018년 초부터 시작한 “아침무료급식”이 그랬고, 2019년 초부터 시작한 “저녁무료급식”이 그랬습니다. 이렇게 해서 삼시세끼 무료급식소가 된 것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힘과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각종 저항과 반대를 무릎 쓰고 이겨내야 하거든요. 만약 길이 정해졌다면 무섭게 치고 나가는 성격입니다. 무서운 것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결단력과 추진력만큼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은사입니다.
우리 아내가 좋아합니다. 따라오기만 하면 편하기 때문에 남편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도 “목사님, 이제 그만 일벌이세요.”라고 말하지만 한 번 꽂히면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알기에 그냥 수긍합니다. 이제는 포기한 것 같습니다. 고집과 아집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사명, 임무, 명령”이라 생각합니다.
옛날에 교회 방송실에서 일했습니다. 예배 때 자막 넘겨주고, 음향 조정하는 일입니다. 자막프로그램을 좋은 것으로 썼습니다. 비싼 게 값어치를 했습니다. 화면 디자인이 예술이었거든요. 처음 세팅한대로 몇 년을 사용해도 문제없었겠지만 매년 1월마다 새롭게 디자인을 바꿨습니다. 모든 성도로 하여금 새해 새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걸 꿈꿨습니다. 화면이 바꿨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처음보단 사역이 늘었습니다. 하고 있는 게 많거든요. 벅차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의 말씀처럼 “하니까 됩니다.” “하니까 되더라고요.” “시작하니 됐습니다.” 보면 못할 것 같고, 생각하면 못할 것 같고, 고심하면 못할 것 같고, 뭐 때문에 못할 것 같은데... 그래서 다들 포기하지만 막상 눈 한 번 질끈 감고 “그래 해보자, 해보지 뭐 까짓것”라고 결심하는 순간 50%는 먹고 들어갑니다. Game over 끝입니다. 이렇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질 것이고, 능력(재능)도 많아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연일 확진자가 쏟아집니다. 가까운 분들까지 걸렸다는 소식에 깊은 생각에 빠집니다. "점심무료급식"은 도시락을 만들어 밖에서 나눠주고 있고, "아침과 저녁무료급식"은 급식소 안에서 식사로 대접하는데 이것도 "도시락"으로 대체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무료급식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데 많은 에너지와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삼시세끼 무료급식을 중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힘들때일수록 더 힘내겠습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변화 받은 한 사람”, “전도에 미친 한 사람” “구심력 있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교회에 열정 넘치는 한 사람 때문에 시끌벅적합니다. 찬양이 살아나고, 반주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교회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모든 성도에게 전염됐습니다. 부디 그 열정 식지 않길 기도합니다.
우리교회는 메달을 수여합니다. 전도할 때마다 메달수여식을 합니다. 그리고 열 명 전도했을 때, 세 명이상 자녀를 낳았을 땐 순금을 수여합니다. “전도를 못하면 애라도 많이 낳아라”라는 모(母)교회 스승목사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스승목사님의 목회방침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시대일수록 전도에 목숨 걸어야 합니다. 구령열에 불타야 합니다.
급식소를 후원하는 분 중에도 “후원전도사”가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는 곳마다 급식소 얘길 빼먹지 않고 합니다. 서울, 수원, 화성, 부산, 광주 전국에 분포돼있습니다. 이들 덕분에 삼시세끼 무료급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파레토법칙(Law of Pareto)”이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든 20%의 사람이 나머지 80%의 사람들을 이끌고 간다는 법칙입니다. 20%에 속해있는 분들이 우리단체를 이끌고 갑니다. 앞에서 이끌어주는 귀한 분들. 삶의 목적이 “무료급식소에 후원 많이 하고, 많이 홍보하는 것이라” 말해주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귀합니다.
가끔 방송국에서 연락이 옵니다. “더열린교회 김성민목사님이시죠? 만나무료급식소 이야기를 방송하고 싶습니다. 방송 나가면 후원도 많아질 것입니다.” 이런 전화를 받지만 거절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하고싶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거만해서도 아닙니다. 단체를 조금 더 키운 다음 꼭 필요할 때 나가고 싶거든요.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전국에 분포된 “선한 프락치”들이 있잖아요. -- 어제는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저절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깼습니다. 그리고 잠이 안 왔습니다. 그냥 기도가 나오더군요. 맑은 정신에 기도하니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과 달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끝 무렵 또 하나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교회에 또 하나의 사명이 생긴 것입니다. 순종해야겠어요. “더열린교회 온오프라인 금요기도회”를 실시 할 것입니다. 온라인상에서 긴급기도제목을 받아 집중 중보기도해드립니다. 영적문제, 우울증세, 갈급함, 관계문제, 불화, 억울, 미움 등의 마음의 문제가 있는 분의 기도요청을 실시간으로 받겠습니다. 분명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준비 잘해서 조만간 시작하겠습니다. --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매번 신경을 써줍니다. 쌀쌀해진 추위에 두꺼운 점퍼를 후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분에게 전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고, 어린이집 자체에서 후원하지 않고 부모님들의 협찬으로 후원한 것임을 밝힙니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패가망신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항상 조심합니다. 갑자기 예상치 않는 큰돈이 들어오고 나갈 땐 굉장히 민감해집니다.
어렸을 때부터 돈관리를 못했습니다. 집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단연히 쓸 줄도 몰랐습니다. 수중에 돈이 생겨도 이걸 어떻게 써야할지 몰랐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아버지께서 용돈을 주셨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용돈으로 음료수도 사먹고, 기념품도 사는데, 저는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그리고 고스란히 집에 가져왔습니다. 바보였습니다. 20대 때, 배낭여행을 갔어도 구두쇠영감처럼 다녔습니다. 현지 맛집,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참 바보였습니다.
지금도 그 버릇을 못버렸습니다. 50만원이상부터는 내 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손바닥에 50만원이 있으면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안절부절 합니다. 그리고 감을 잃습니다. 제 머릿속엔 50만원이나 5,000만원이나 5억이나 다 똑같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별개의 세상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이 100만원을 후원했으면 그때부터 가슴이 마구 뜁니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를 겁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혼신을 다해 감사를 표합니다. 진심을 담아 운을 뗍니다. “아이고, 어떡해요? 무료급식 정성껏 대접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라고요.
그런데 이 마음이 귀합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이 마음 변치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조금의 교만도 없애달라고 매일 갱신하고 개혁합니다. 제일 듣기 싫은 얘기가 “김성민 변했네”입니다. 이 말이 세상 듣기 싫습니다. 겁도 나고요.
아내의 좋은 점은 소비패턴이 저와 닮은 점입니다. 좀생이 같습니다. 물건을 사더라도 조금만한 것, 아기자기한 것만 구입합니다. 비싼 것 못삽니다. 헛된 곳에 지출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돈 잘못쓰면 그 시간부터 4시간 40분정도는 잔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귀에서 피가 납니다.
후원자 여러분, 우리 단체에 후원하는 것, 걱정마시고 많이 후원해주십시오. 쓸데없는 곳에 지출하지 않습니다. 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지출되고 있으니 힘껏 후원해주십시오. 더욱 깨끗하게 운영하겠습니다. 공과사를 분명히 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매일 똑같은 무료급식을 하는데 매일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깁니다. 자꾸자꾸 이야깃거리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무료급식이 지겹지 않습니다. 오늘 경험했던 것을 글로 남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일기도 되고, 추억도 되기 때문입니다. 또 댓글로 호응해주는 분이 있어 감사합니다.
글 쓸 때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쓸까” 고민합니다. “또 사진은 어떤 걸로 넣지?”라며 고뇌에 빠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어줄까?”라는 생각보다는 “누구누구는 이 글 읽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더 큽니다. 그래서 “좋아요” 개수나 댓글에 너무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럼 안 쓰면 되잖아?”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글쓰기는 저의 취미이자, 사역이고, 후원자에게 드리는 보고이기에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제 사명입니다. 우리를 아껴주는 분에게는 우리의 소식이 전달돼야 하거든요. 그래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일부러 첫문장이나 사진을 굉장히 상투적인 것으로 대체합니다.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써내려가죠. 우리 아내도 제 글을 중간쯤 읽다가 재미없으면 안 읽습니다. 마지막에 중요한 말이 나오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를 정말정말 사랑해주는 분만 꼬박꼬박 정독해줍니다. 이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무료급식을 운영하면 여러 곳에서 후원물품이 들어옵니다. 지나다니다 후원하고, 구경하다 후원합니다. 시골집에서 가져왔다며 김치를 가져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어떤 분은 집에서 몇 년을 묵혔던 쌀을 가져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씀이 “이거 먹어도 아무치도 않습니다. 버리기 아까워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니 무료급식에 쓰세요.” 누렇게 변해버린 묵은 쌀을 가져오는 분이 꽤 있습니다. 선심 쓰는 것처럼 후원하는데 솔직히 안 받고 싶습니다. 안 받으면 소문이 이상하게 날까봐 받긴 받습니다. “저 무료급식소 배불렀네, 배불렀어. 미친게야. 틀림없어” 이럴까봐요. 그래서 좋게좋게 처신합니다.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며 90도로 인사하며 배웅합니다.
우리 어르신들은요. 완전 비싼 햅쌀만 드십니다. 냄새나는 쌀 안 드십니다. 2022년 2월에 도정한 철원오대쌀, 경기미추정아키바레, 화성수향미, 임금님표이천쌀, 이런 것만 드세요. 일반마트에서 20Kg에 7~8만원하는 쌀이요. “무료급식소이니 약간 질 떨어진 것 줘도 괜찮겠지”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가슴에 상처받습니다. 그렇게 괜찮으면 집에서 드시면 되잖아요.
아들이 우유대리점을 운영하는 어르신이 유통기한이 지난 유제품을 가져와서는 “이거 봉사자들 먹어. 그리고 나 오늘 간식 두 개 더 줘”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며느리 것도 달라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계속 이럽니다. “내가 너희에게 줬으니 너희도 내게 보답해라”라는 식입니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여러 어르신이 급식소 앞에 줄서있는데, 급식소 뒤로 와서 밥 달라는 분도 있고요.
여러분, 후원할 땐 좀 좋은 것으로 해주세요. 가장 좋은 것. 특상품인 것으로 후원해주세요. 내가 받아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자존심 상하지 않을 것으로 후원해주세요. 썩은 것, 못 먹는 것, 버리는 것은 삼가십시오. 쓰레기 주실거면 아에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면서 크게 배운 것 하나는 남에게 선물할 땐, 내 형편에 조금은 과할 정도의 선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싸구려, 허접한 것은 안 준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성심성의껏, 정성을 다해 후원했던 고2 학생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후견인께서 후원한 돈으로 학생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서 배달해준 것입니다. 12월 연말이 돼서 “지난 1년 동안 후견인에게 감사영상을 만들어보자”라고 건의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는 말에 충격 받았습니다. “난 도움 받은 것 하나도 없는데요. 짜증나고 피곤해요. 고마운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이걸 해야 해요? 우리 엄마가 다 시킨 거에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기가 찼습니다. 아니,,, 아이도 그렇지만 자녀교육,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이 모양까지 은혜를 모르는 것일까? 혀를 내두를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에게 고맙다고 하라는 게 아니라 후견인에게 하라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싫었던 건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가슴이 아팠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그곳은 후원을 중단했습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참 허망했고 자괴감까지 들었습니다. 매우 가슴이 아팠던 기억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짐승입니다.
오늘은 작심하고 글을 남깁니다. 더 기막힌 사연이 아주 많습니다. 말하면 혈압 오르는 일들,,, 그래도 무료급식, 사랑의상자배달, 1대1수호천사는 해야죠. 이걸로 낙심할 김성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