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있는

카테고리 없음 2022. 2. 19. 16:06

증조할머니 때부터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1900년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왔습니다.
할머니의 믿음과 어머니의 기도가 고스란히 저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1988년, 수원시에서 지금의 화성시로 이사를 왔습니다.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였던 아펜젤러(亞扁說羅, Henry G. Appenzeller, 1858. 2. 6~1902. 6. 11)가 첫 한국 땅을 밟았던 곳이 화성시와 가까웠다는 이유로 이 지역은 감리교회가 타교단 교회보다 많았습니다.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협성대학교도 감리교재단에 속해있을 만큼 막강한 세를 과시했습니다. 자연히 감리교회를 섬기게 됐습니다.
유년시절, 청소년시절, 청년시절을 한 교회에서만 섬겼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까지 했습니다.
개척을 하려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감리교 간판을 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 소속교회가 된 것입니다.

젊은 집사님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목사님,
사실 이 교회 다니는 것 어머니께서 많이 반대했습니다.
왜 감리교회를 택하지 않았느냐?
우리 집안은 대대로 감리교회를 다녔잖느냐?
빨리 옮겨라” 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설교 때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나를 깨우쳐주셔서 계속 더열린교회 성도로 남고 싶었다.”라고 고백하더군요.

우리교회를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도 있을 테고,
오래 섬겼던 교파 분위기와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 절대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만큼은 아주 똑바로 배울 수 있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안심해도 됩니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교인 여러분,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교회와 똑같이 예수님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지금은 그 집사님의 어머니와 식사도 같이하는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집사님, 내가 집사님보다 나이가 어려요.
집사님이 먼저 하늘나라 갈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장례 잘 치러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우리교회에서 뼈를 묻으세요.”
“하하하~ 네~”

다른 권사님도 우리교회를 출석하면서 고민이 많았나봅니다.
긴가민가?
다녀도 되나 안 되나?
그러나 모든 고민 훌훌 떨쳐버리고 지금은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이다음에 천국에서 만날 사람들이잖아요.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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