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뒤돌아보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의 이 자리에 앉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억지로 앉혀주셨습니다.
더열린교회 담임목사도,
만나무료급식소 대표도
저에겐 과분한 자리입니다.
실력 없는 사람이 과분한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시시때때로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좋은 사람,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닙니다.
만약 도움을 준 사람을 한명씩, 한명씩 나열하라면 10년 이상이 걸릴겁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렵게 대학에 붙었습니다. 그러나 등록금이 없었습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母)교회 정기당회 때 재정담당을 맡은 이호태 권사님께서 "김성민에게도 장학금을 줍시다."란 발언을 했습니다.
전혀 예견치 못했던 폭탄발언이었지만 모교회는 만장일치로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무려 9년 6개월 동안 연속해서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호태 권사님과 사강감리교회 모든 성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하나님은 좋은 교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동남보건대학(컴퓨터과)에서 만난 정남철 교수님 덕분에 제가 겸임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많이 아껴주셨고, 키워주셨습니다.
평택대학교(컴퓨터), 대학원(컴퓨터)에서는 이갑래 교수님 덕분에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감리교신학대학교(M.Div.)에서는 고 안석모 교수님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평택대학교(M.Div.와 Ph.D.)에서는 지도교수이신 이광희 교수님을 만나 원없이 공부할 수 있었고, 한동구 교수님도 저를 굉장히 예뻐하셨습니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니 늘 만남의 축복이 따라다녔습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그냥 예뻐했고 이유없이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래서 김성민은 은혜로 살아온 인생입니다.
인생에서 Best of Best의 만남의 축복은 단연 김길수 목사님을 만난 것입니다.
김성민의 머릿속에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리에 김길수 목사님이 계십니다.
지금처럼 남부럽지 않게 무료급식을 할 수 있는 것도(처음에 무료급식을 하라고 적극 권유했고 지원했음),
지금처럼 한 교회의 담임을 맡고 사역을 할 수 있는 것도(사역자로서 롤모델이었음),
누구도 관심갖지 않던 루저(Loser)의 인생을 살았던 뇌성마비 김성민을 건져준 것도,
집안이 쫄딱 망해 잠 잘 곳 하나 없었던 시절 우리 가족 전체를 건져준 분도,
방송실에서 최신형 방송장비와 컴퓨터를 만져보며 신나게 사역할 수 있었던 것도(이때 습득한 기술 때문에 평생 써먹고 있음),
김성민이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우리 아내는 1.배운사람, 2.남을 가르치는 사람-교수가 이상형이었고, 그런 상대와 결혼하게해달라고 기도하던 때 제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음),
자녀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공경과 예의와 배려와 신앙심과 한 영혼의 대한 구령열을 갖게 된 이유까지 전부 다 저의 스승이신 김길수 목사님을 만나고부터입니다.
인생 송두리째 살려주셨고 개조시켜 주셨습니다.
아마 이런 극적인 인생스토리도 없을 겁니다.
입으로 담을 수 없을만큼 고맙고 감사합니다.
베풀어준 은혜가 말도 못하게 큽니다.
목사님을 떠올리고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목사님.
항상 건강하십시오.
'김성민'에 해당되는 글 590건
- 2023.05.29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 2023.05.27 사랑
- 2023.05.22 들어주는 사역
- 2023.05.21 준목회자 처럼
- 2023.05.20 꿈
- 2023.05.19 묵묵히 걷겠습니다
- 2023.05.17 후원자 감사
- 2023.05.16 후원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1
- 2023.05.14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1
- 2023.05.11 후원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복음)의 진리에 대해선 명확해야합니다.
그러나 비(非)진리에 대해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사도시대와 초대교회 시대가 열렸습니다.
뒤이어 기독교의 극심한 박해가 이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단들과 세상 철학사상이 교회를 공격해왔고,
이때 교부들이 나서서 기독교를 변증했습니다. 그래서 교부시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의 기초(조직신학)를 견고히 다졌기 때문입니다.
이때 외부공격으로부터 기독교를 방어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기독교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러나 역사엔 명암(明暗)이 존재하듯 교부들이 치열하게 싸웠던 주제 중 하나가
“과연 뾰쪽한 바늘 위에 천사가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을까?”를 놓고 몇 날 며칠을 피 터지게 싸웠던 기록이 있습니다.
천사가 바늘에 100명이 올라가면 어떡고, 한 명이 올라가면 어떻습니까?
왜 비진리에 대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입니까?
한 국가 안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타인에 대한 인정과 나눔은 꼭 필요한 법입니다.
인간으로서 사람이 사람에게 행해야할 사회규범이자 도리입니다.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라도 배려와 존중은 꼭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저는 싸우기가 싫습니다. 평화를 추구합니다.
20대 때, 철들지 않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전야제 때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일부러 적을 만들었고, 싸우자며 시비를 걸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는 눈곱만도 없었습니다. 내가 잘하는 줄 착각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내 고집과 아집 그리고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날카로운 칼을 휘둘렀습니다. 아무짝도 쓸모없는 정의감으로 날마다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예수의 가르침 중에 으뜸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사랑 없이 크리스찬일 수 없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인(聖人)처럼 만인(萬人)을 사랑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 적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간절함(소망)으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지역에 큰 사찰이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우리 무료급식소를 도와주는 고마운 곳입니다.
오늘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간식과 떡을 후원했습니다.
급식소 이용자들에게 정성껏 대접하겠습니다.
주지스님과 보살님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많은 이용자가 무료급식소를 찾습니다. 정말 다양합니다.
한사람, 한사람 각자 살아온 인생이 매우 궁금합니다.
어떤 세월을 살았을까? 최소한 그들의 인생에서는 그들이 주인공이었겠죠.
무료급식소를 이용한다고 못살고 가난한 사람만 오는 건 아닙니다.
인생의 낙오자만 오는 건 아닙니다.
개중 당당하게 후원하면서 이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목과 어깨부터가 꼿꼿합니다. 떳떳하게 이용합니다.
뭐라 할 사람도, 면박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고맙습니다.
어차피 후원받아 운영하는 급식소에 후원금을 전달한다는데 고마울 뿐입니다.
4년 전, 어떤 어르신이 급식소를 찾았습니다.
첫인상이 급식소를 이용할 분이 아닌 듯 고급스럽고 품격있어보였습니다.
아무 말 없이 급식을 먹고 나가더군요.
그렇게 한 달에 한두 번만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안 보였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그분이 500만원을 손에 쥐어주고 또 아무 말 없이 갔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가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기 전, 가지고 있던 현금을 급식소에 기부한 것입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젊었을 때 사업도 크게 했고, 잘 나갔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찬란했을까.
그의 과거를 들어볼 여유도 없이 세상과 영원히 등져버린 게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이 일로 인해 급식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들의 다이나믹했던 인생스토리를 듣는 게 사역의 일부분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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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해주신 덕분에 중간심사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통과됐습니다.
근데 수정사항이 너무 많아 약 1주간 글을 못 올릴 것 같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저의 직장은 무료급식소입니다.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일주일 내내 급식소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교회와 급식소가 맞닿아 있어서 이곳으로 매일 출근합니다.
시계추 같은 일상입니다.
아내도 같이 출근합니다.
저희 부모님도 같이 출근하고요.
저희 장모님도 같이 출근합니다.
교회 성도들까지 매일 만나서 봉사합니다.
정기봉사자와 일일봉사자들이 함께 어울려 그날의 봉사를 시작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무료급식에 매달립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12년을 한결같이 함께 해왔습니다.
저의 가족은 무료급식에 모든 걸 바쳤고 헌신했습니다.
가족이 있었기에 이만큼 올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공로와 헌신이 없었다면 급식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욱 '조심하라' 신신당부합니다.
내 수고와 노력, 공덕, 업적, 금자탑을 내세우지 말라 부탁합니다.
'내 몫 챙기지 말라' 강조합니다.
저는 무료급식소의 대표이고, 사람을 살리는 목회자입니다.
사람들이 저에 대한 기대감이 큽니다.
정직과 깨끗, 투명과 청빈의 삶을 기대합니다.
거룩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양심껏 살려고 애씁니다.
우리 아내는 목회자가 아닙니다.
우리 가족도 목회자가 아니고요. 저만 목회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뿐만 아니라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는 우리 가족에게도 정직과 겸손을 강조합니다.
무소유를 강조합니다.
욕심을 버리라고 누누이, 입이 닳도록 말하고 또 말합니다.
우린 한 배를 탔습니다.
우리 가족의 잘못은 저의 잘못이 됩니다.
무료급식을 마치고 남는 음식이 남았을 때, 봉사자끼리 싸 갈 때가 있습니다.
이때 가족 것은 챙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 아내에게 강력히 말해놨습니다.
오늘도 또 강조했습니다.
내 몫 챙기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라고,
작은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지금의 것에 만족하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람들 눈치, 교회 성도 눈치, 후원자 눈치, 봉사자 눈치, 하나님 눈치 보며 살 것을 주문했습니다.
내 멋대로 살지 말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럴듯한 대의명분이나 구실로 나를 포장하지 말 것을 부탁했습니다.
가족이 목회자는 아니지만 '준목회자' 처럼 행동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며 살 것을 주문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이미지메이킹 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 생각없이 살 수 없기에 돌다리 두들기며 조심조심 세상을 삽니다.
저와 우리 가족으로 인해 시험드는 일이 없길 기도합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말씀이 잠언 29:18에 나옵니다.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꿈 자체는 위대한 것이며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꿈이 없는 인생이 가장 불행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하나님이 준 큰 포부를 간직한 채 살아야 합니다.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더열린교회 성전건축과 무료급식소 사무실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요즘 이 일에 미쳐있습니다.
여러 가지 구상과 계획 중에 있습니다.
저를 막을 자가 없습니다. 불도저처럼 밀고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건축한다니까 알게 모르게 거리가 멀어진 사람이 많습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관계가 끊어져버렸습니다.
예상은 되지만 굳이 “왜 그러세요?”라고 건넬 자신도 없습니다.
건축 자체가 그들에게 상실감을 줬던지,
우리가 잘못될까봐 미리 쉴드(방어막)를 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 수용합니다.
어쨌든 우리로 인해 상처가 됐고 미리 절연(絕緣)했다면 그 자체로 수용하겠습니다.
그러나 꿈을 향한 항해(航海)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항해에 돛을 달아준 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차상위계층 부부가 건축헌금을,
일생 한번 내는 특별한 헌금이라며 건축헌금을,
차를 팔아 건축헌금을,
폐지를 줍고 받은 돈으로 건축헌금을,
기도하던 중 응답받았다며 건축헌금을,
시드니에서 건축헌금을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의 건축은 잘못될래야 될 수 없습니다.
제 꿈은 저의 개인적인 욕심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사회를 훤히 밝히고자 하는 거룩한 욕심입니다. 이것을 알기에 후원자가 적극 돕는 것입니다.
저는요.
제 앞길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지금보다 더 잘 될 것이라는 믿음만은 확실합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부로, 건축으로, 무료급식으로, 목회로 차근차근 준비합니다.
저의 두 번째 출판도 계획하고 있고요.
우리의 꿈을 응원하며 함께 걸어주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무료급식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지나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많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오래하지도 않았습니다.
적어도 30년은 한 우물을 파야 되지 않을까요?
지금처럼 천천히 걷다보면 언젠간 가있겠죠.
신부는 신학교에서 10년을 훈련받아야 신부님이 될 수 있습니다.
성직자로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스님도 똑같습니다. 속세의 길에서 벗어나 스스로 걷는 길이니 만족하다는 겁니다.
이성생각, 고기생각보다 더 고결한 걸 선택해서 행복하다 고백합니다.
저는 무료급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무료급식은 저에게 많은 걸 선물했습니다.
자신감도, 교회성장도, 사회적 위치까지 바꿔주었습니다.
무료급식으로 Ph.D.까지 밟고 있습니다.
『무료급식을 통한 교회성장 사례 연구 (더열린교회를 중심으로)』입니다.
교회성장이 수적, 재정적 성장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 논문은 틀린 게 됩니다.
그보다 지역사회의 영향력 증대의 의미가 더 큽니다. 내적, 외적성정 모두를 포함합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이라는 이름이 사라졌을 정도로 둔화되었습니다. 전도를 해도 되지 않는 상태가 고착화됐습니다.
개교회의 확장과 지나친 헌금강요, 목회자의 성적 타락과 교회의 지나친 사회정치화로 인한 집단이기주의가 교회의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사회가 교회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신뢰성을 잃었습니다.
저의 연구는 교회성장이 되지 않는 이유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료급식을 제안했습니다.
영향력이라 함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을 말하며 전도가 되지 않는 시대에 비기독교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여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 전체의 선한 영향력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교회의 성장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이미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더열린교회 성도는 무료급식 봉사를 통해 소외계층에 대한 자비와 사랑을 배워 보다 성숙한 성도로 자랐습니다.
성도의 영적성숙과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무료급식을 통한 교회성장으로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인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영적 성숙도가 남다른 성도로 탈바꿈되었습니다.
따라서 무료급식이야말로 올바른 교회성장을 할 수 있는 확실한 도구가 됐습니다.
제 얘길 썼습니다. 무료급식을 통해 내적, 외적성장 모두 커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논문이 마무리 돼가고 있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제 성전건축으로 돌아와 다시 달려보겠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이 봐주지 않지만 내가 좋아서 씁니다.
간혹 우리를 아껴주는 몇몇 분들이 읽어줍니다.
무료급식하면서 느꼈던 생각, 목회하면서 느꼈던 관념을 글속에 담습니다.
전부 인기 없는 글입니다.
그러나 이런 글을 읽고 후원자가 후원합니다.
이제 많은 사람이 우리의 사역에 동조하고 협조합니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후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글 쓸 때 가급적 개인적인 자랑을 하지 않으려합니다.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써내려갑니다.
솔직한 건 힘(Power)이 있습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우리가 우리됨은 후원자 당신 덕분인걸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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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고령화사회로 진입했습니다.
노동인력보다 은퇴하는 연령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1인당 부양할 인구도 늘었습니다.
젊은이에게 가혹한 시대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노인복지에 돈을 쓰는 게 맞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류사에 있어왔던 고민입니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인에게 극진히 대접해야 합니다.
효도에는 분량이 따로 없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이런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해도해도 모자란 게 효도이고 공경입니다.
우리단체는 어르신에게 극진히 대합니다.
격동의 시대를 이끌어온 산업역군의 주인공들에게 후세들은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새싹들도 돕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일용직근로자, 취약계층을 잘 보살피겠습니다.
우리 단체와 함께 해준 후원자 여러분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잘난 것도 대단한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학창시절 자존감도 없었으며 공부도 못했습니다.
태생부터가 틀렸다며 자신을 자학했습니다. 삶이 비참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화장실을 갔습니다.
혼자 소변을 보는데 옆에서 선배가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쯔쯔쯔 왜 사냐?”
상처가 됐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소변보는 자세가 어정쩡했던 모양인데 그것을 보고 평생 상처 되는 말을 남긴 것입니다.
그러나 40중반이 돼보니 그때 그 선배도 고작해야 철없는 17세였겠다 싶습니다.
환경이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을 탓하며 또 다시 구렁텅이로 빠져들었습니다.
방황하며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내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상처 입은 나를 조금씩 치료했고 발전시켜주셨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닙니다.
무의미하게 보냈던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심심하다”입니다.
나에겐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준 하루를 소중히 씁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긴 사명을 위해 오늘도 정신없이 움직였습니다.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 나를 사용해주는 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잘난 사람이 많은데 써주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런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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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믿고 사랑해주는 후원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뒤돌아보면 모든 게 하나님 없이 해낸 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갈 나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지금은 그 과정을 밟아가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떠한 난관이 내 말목을 붙잡아도 승리로 바꿀 수 있습니다.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을 만나 가능해졌습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이렇게 나를 만들었습니다.
많이 아팠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회복중입니다.
일들이 한꺼번에 겹쳐서 정신없던 중에 병이 찾아와 심적으로 더 힘들었습니다.
분명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있을 것입니다.
한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스케줄링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지 않지만 빨리 회복해서 더 많은 사역 감당하겠습니다.
내일은 그동안 준비했던 걸 제출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1주일 후 중간심사가 예정돼있습니다.
모든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은혜로 통과시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격이나 수정부분에서 무난히 넘어갈 수 있게 기도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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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을 위한 생필품전달사업 사랑의상자배달을 다녀왔습니다.
후원해준 모든 후원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침, 점심, 저녁 무료급식 담당자가 1명 이상씩 따로따로 있습니다.
메뉴도 다르고 운영방식도 약간씩 다릅니다.
각자 맡은 무료급식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각양각색 속 조화를 이루는 만나무료급식소입니다.
이용자 중 매일 삼시세끼 식사하러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식이 질리지 않다 칭찬합니다.
모두 정기봉사자 덕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침과 점심과 저녁식사를 서로 겹치지 않고 특별하게 준비하지 고민합니다.
정기봉사자 덕분에 대표가 자리를 비워도 급식소는 돌아갑니다.
몇 일간 입원했다가 퇴원했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이 밀려있어 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대한적십자사에서 헌혈유공패가 와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가족사진을 찍어봤습니다.
그동안 건강 주셔서 헌혈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울러 항상 우리를 응원해주는 후원자 여러분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급식소와 우리 가족은 늘 은혜 잊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