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여러분께
2023년 한 해 만나무료급식소를 아껴주셔서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후원자 덕분에 어려운 시국에서도 열심히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이제 연말입니다.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해드리겠습니다
2023년 우리에게 후원한 분은 연락주십시오.
1,000원 한장이라도 후원하셨고, 과자 한 봉지라도 후원하셨던 분께서는 꼭 연락주십시오.
기획재정부 국세청 홈택스에 기부한 내역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작년에 발급받으신 분은 따로 연락할 필요없습니다.
올해 새로 발급받기를 원하는 분만 연락주십시오.
010-4258-6689 문자환영
(3년 전 후원까지 소급적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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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하나의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 ‘될까? 안 될까?’ 고민하는 순간이 왔을 때 ‘안 된다’가 맞다.”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주무관청에서 사단법인을 통과시킬 때 주무관의 재량으로 통과시킬 수도, 반려시킬 수도 있다고 가정하면 거의 90%는 반려시켜버립니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는 한 결국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이런 경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공무원이나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서 융통성이나 유도리는 찾아볼 수 없는 덕목입니다.
안 되는 걸 가지고 희망고문하며 “난 될거야. 난 될거야” 한다면 큰 손해와 낙담만 맛보게 됩니다.
지나온 과거에 입각해서 그냥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찬찬히 내실을 다지며 내공을 키웁니다.
큰 변화를 꿈꾸며 로또 산 사람처럼 “다른 사람은 안 되도 난 당첨될거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확천금을 경멸합니다.
단번에 천금을 움켜쥐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힘들이지 않고 단번에 많은 재물을 얻는 건 나중에 대가가 따릅니다. (ex.전청조)
그래서 될똥말똥하는 순간이 오면 “안된다”라고 빨리 단념합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나에겐 후회할 시간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최고형량이란 게 있습니다.
어떤 죄인도 최고형 이상 받을 수 없게끔 법에서 정해놨습니다.
그러고 보면 법이란 게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판사의 판결에 인간 된 감정이 안 섞일 수 없나 봅니다.
관공서에서 무료급식을 운영하는 단체장이라면서 극진히 대해줍니다.
법령과 법규, 조례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막 우리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팔이 안쪽으로 굽습니다.
작고 하찮은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것뿐인데
뭐라도 된 것인냥 극진히 대우해줍니다.
이런 인생을 살게 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잠깐 잊었습니다.
나에겐 또 하나의 무기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무기.
믿음이란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법칙과 하나님의 법칙을 균형있게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성민'에 해당되는 글 595건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가 소중합니다. 힘껏 살아갑니다.
이번 주는 결손아동 후견인들에게 나눠줄 “감사영상”을 제작했고, 정기당회 준비까지 마쳤습니다.
1년에 한 번, 아이들이 직접 감사영상을 만들어 보냅니다.
그러면 후견인들이 좋아합니다.
내가 후원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잘 성장해가는 모습에 뿌듯하기만 합니다. 후원금이 아깝지 않습니다.
후원자들에게 계속해서 피드백을 줍니다.
감사영상으로, 명절 때 인사함으로, 글쓰기로 계속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래서인지 한 번 맺은 인연은 잘 끊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글 쓰는 것도 후원자와의 교류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역보고이고, 교감이며, 정체성입니다.
새로운 후원자를 찾는 이유도 있지만 기존 후원자들로 하여금 “내가 보내는 돈이 이렇게 쓰이고 있구나.”라는 안도와 안심을 심어주는 작업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적이고 꾸준히 글쓰기와 감사인사를 해왔습니다.
이제는 신뢰의 끈으로 꽉 묶여있습니다.
후원자와 우리가 아주 튼튼한 끈으로 꼭꼭 묶여있습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을 사람들입니다.
더 탄탄하고 더 끈끈한 믿음의 관계가 되버렸습니다.
한 번 맺어진 후원자, 한 번 맺어진 고객은 우리의 영원한 핵심코어(구심력 있는 후원자)가 됩니다.
후원자, 당신을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완전하고 완벽한 믿음을 심어드리겠습니다.
어제 기존 후원자(닉네임 웜뱃)가 전화했습니다.
“우리 남편하고 둘째 딸도 소외청소년의 후견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신청해주세요.”
“아니 계속 후원하셨잖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그건 저 이고요. 남편과 우리 아이도 따로따로 한데요. 그러니 어서 신청해주십시오.”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후원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사랑, 관심, 교통, 연락, 기도, 관리의 도구가 됩니다.
나의 성실성을 보여주는 PR(홍보) 개념도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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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없습니다.
진짜로 없습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무료급식소에서 일만 합니다.
인생의 낙이라곤 찾을 수 없습니다.
무료급식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모입니다.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는 폐지나 고철을 주어 고물상에 파는 사람도 있고,
정신연령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뇌졸중 환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수두룩합니다.
이 사람들이 다 무료급식소를 찾습니다.
그리고 나를 찾아와 이야기 보따리를 늘어놓습니다.
“오늘 덥네, 겨울이 왜이래. 목사님은 안 더워?
아들 많이 컸던데, 애 낳았다고 반지 사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 올라간다면서. 우와 세월 빠르다.
목사님, 나랑 담배 하나 피고 옵시다. 괜찮아. 사람 안 볼 땐 한대씩 피고 그러는거야.
어이 김목사, 오늘 밥 맛있게 먹고가. 내일은 바빠서 못나와, 모레 올게...”
농담하는 편한 친구가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다 내 친구입니다.
그래서 난 친구 많습니다.
세상 사람은 이들을 괄시하고 멸시하지만 기꺼이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겠습니다.
더 낮아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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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좁습니다. 시골동네입니다.
누가 누군지 다 압니다.
토요일은 무료급식을 안 합니다. 목회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준비를 하다가 출출하면 가까운 식당을 찾습니다.
그러면 거의 아는 사람들입니다.
“아이구 목사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아,,, 네,,, 안녕하세요.”
식사를 마치고 계산할 때면 직원이 말합니다.
“목사님, 아까 그분이 목사님 것까지 계산하고 갔습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도 버릇이 생겼습니다.
식당에서 지인을 만났으면 최대한 빨리 먹고 벌떡 일어나 상대방 것까지 계산해주고 쏜살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받은만큼 베풀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후원하겠습니다.”라고 연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기후원, CMS, 혹은 결손아동 1대1 후견인으로 작정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런 연락 받을 때가 가장 신납니다. 저절로 힘이 솟구칩니다.
불끈불끈 에너지가 완충됩니다.
반면 후원이 끊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진 것인지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습니다.
후원을 시작하는 사람은 대게 먼저 연락을 하죠.
그러나 끊는 사람은 연락없이 끊어버립니다.
끊어진지도 모른 채 몇 개월이 흐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료급식소는 돌아갑니다.
어떤 경우에도 무료급식을 중단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끌고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해도 무료급식소를 지키고 싶습니다.
1950년, 부산시민이 피란민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러고 싶습니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세계경제로 인해 더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이곳을 지키고 싶습니다.
사명감이 불탑니다.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것이지만 마음속에는
내가 내뱉은 말을 기억하고 간직하며 책임지려는 책임감 같은 게 존재합니다.
최소한 버럭 성질 난다고 해서 한순간 뒤엎는 성격은 아닙니다. 이 끈기를 믿고 가 보는 겁니다.
큰 교회는 팬데믹이 오더라도 끄떡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휘청하죠.
큰 교회도 빠져나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새신자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중직자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격이 적습니다. 얼추 평행을 이룹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새신자보다 빠져나가는 성도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우리 급식소도 빠져나가는 후원자가 있지만 새로 신청하는 후원자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견딜 수 있습니다.
또 핵심코어, 중견후원자, 구심력 있는 후원자들 덕분에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묵묵히 믿어주고, 응원하며, 신뢰를 주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감신 동기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선교합니다.
선진국이니 한국에서 도와주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복음을 전해야 하기에 흔쾌히 순종했습니다.
항상 돈이 부족합니다. 어렵게 선교하고 있습니다. 눈물날 정도입니다.
돈이 너무 없다보니 평일이면 목사님께서 식당 알바를 합니다.
설거지를 합니다.
그렇게 번 돈을 우리에게 후원합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받을 때마다 죄송합니다.
또 날씨가 춥다며 두꺼운 점퍼를 사준 상암동 후원자,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리라며 핫팩을 가져온 후원자,
모두모두 나의 귀한 보배들입니다.
당신이 믿어주는 그 신뢰에 금이 가지 않도록 더욱 전진하겠습니다.
끝까지 믿어줘서 고맙습니다.
연말이 됐습니다.
여러 단체에서 송년회를 합니다.
여러 곳에서 초청을 받습니다.
내가 낄 곳이 아닌데 오라합니다.
나와 맞지 않는 자린데 갈 수 있는 게 신기하고 믿겨지지 않습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니 자꾸 좋은 일이 생깁니다.
뇌성마비는 선천적 장애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든다고 나아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약 먹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체념하고 살아가는 게 일반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하면 괜히 긴장됩니다.
얼굴도, 몸도 더 많이 삐뚤어집니다.
그런데 이를 어째요? 무료급식을 하면 필연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요.
봉사자, 후원자, 이용자, 지역주민, 사장님, 공무원, 각종 문의사항들,
하루에도 여러 명의 사람을 새롭게 만나서 미팅하고 조언하고 계획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설득하고, 컨설팅하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분명 몸이 꼬여야 정상인데 안 꼬입니다.
안 꼬여지는 느낌이 듭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의 눈에서 그렇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처음 대면하는 사람은 어렵습니다. 긴장됩니다.
그러나 안 그런 척, 편안하게 보이도록 내가 나를 다그칩니다.
다그친다고 변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상대방은 벌써 첫눈에 알아챘겠죠. 못 알아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장애가 있어도 당당하게 아이컨택하며
내가 하고 싶은 요점을 충분히 설명합니다.
이런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무료급식하면서 변했습니다.
당당한 김성민으로 변했습니다.
내 선천적 장애가 나아지는 게 아닌데도 마음이 변하니 행동까지 변했고,
상대방의 눈꺼풀을 씌우게 만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권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목사님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봐 와서 아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어요.
목사님이 목회하는 것을 보면 상상이 안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솜씨는 대단합니다.”
개천에서 용 났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료급식 때문입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 모든 게 변했습니다.
무료급식은 내 인생에서 전부와도 같습니다.
나에게 무료급식은 그 누구도 못 빼앗아갑니다.
아무한테도 안 빼앗길 겁니다.
무료급식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치료했습니다.
무료급식이 좋습니다.
가문으로 물려주고 싶습니다.
만약 무료급식을 안 했으면 연말에 불러줄 곳이 있었을까요?
내년에는 더 확장할 생각입니다.
아직 계획 중인데 곧 발표하겠습니다.
아내한테 아직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하기 전입니다.
“일 벌인다”는 말만 하면 그날 저녁은 꼭 부부싸움이 납니다.
종잡을 수 없는 남편, 일만 벌인 채 아내한테 모든 걸 떠맡기는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우리 아내입니다.
건투를 빌어주십시오.
꼭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I will be back
연말엔 일이 많습니다.
일이 많을 땐 오히려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멍하게 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차려보면 몇시간이 훌쩍 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한 채 시간만 흘렀다는 게 너무 속상합니다.
이럴 땐 글을 씁니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을 땐 글쓰기로 그것을 무마시킵니다.
그러면 조금은 보람찹니다.
글을 한 번 올릴 때마다 후원금이 들어옵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건 상관없이 관심을 가져줍니다.
내 인생을 적나라케 드러내면 더 사랑해줍니다.
그래서 과감없이,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써 내려갑니다.
커피를 좋아합니다.
밥먹고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은 그야말로 맛이 기가 막힙니다.
첫 한모금이 혀끝을 닿는 순간,
또 식도를 타고 위로 흘러가는 그 순간,
온몸의 말초신경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듭니다.
이 정도면 중독입니다.
전국에서 커피쿠폰을 보내옵니다.
상암동에서 정*경,
송파구에서 김*연, 임*진,
안산시에서 김*은, 김*주,
화성시에서 홍*란, 윤*연 후원자가 쿠폰을 보냅니다.
“목사님,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쉬면서 하세요. 쿠폰 보냅니다. 힘내세요.”
후원금은 100% 무료급식에 쓰입니다. 그러나 커피쿠폰만은 아무한테도 안 줍니다. 완전 나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김성민이 뭐라고 이런 사랑을 베푸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를 다닙니다. 공부를 합니다. 배우는 게 재밌습니다.
앎에 대한 희열이 각성됐습니다. 이것도 중독입니다.
운전하고 가는데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걸립니다.
집에 도착하면 밤 11시입니다. 갔다 오면 파김치가 돼 있습니다.
출퇴근시간 피하려고 점심무료급식을 끝내자마다 떠나는데도 이렇게 막힙니다.
시골 논두렁 운전만 하다가 도시운전을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학교 갈 땐, 나만의 루틴이 있습니다.
1.운전자석 착석,
2.안전벨트 착용,
3.기도,
4.볼펜준비,
5.시동 켜고,
6.오디오를 켜서 블루투스와 휴대폰 연결,
7.(나만의) 노래 플레이,
8.볼륨MAX,
9.티맵 켜고,
10.출발.
이제부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됩니다.
온몸 구석구석에 고독을 바르고 문지르는 시간입니다.
누구의 터치도 없이 혼자만의 사색에 빠지는 시간.
학교 갔다 오는 3~4시간이 진짜진짜 "행복"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선사합니다.
이때 글쓰기의 소재가 나옵니다.
일주일치가 한꺼번에 나옵니다.
또 새 프로젝트 구상이 이때 나옵니다.
생각나는 대로 볼펜을 이용해 적어둡니다.
바쁜 일상에서 나만의 명상시간이며,
번뜩이는 아이디어 발굴시간이 되고,
내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시간이 됩니다.
글쓰기의 소재꺼리가 팍팍 떠오르는 아주 소중한 시간.
학교 가는데 기름값, 도로값, 주차비, 밥값, 수업료, 시간, 에너지 등 이 모든 비용을 흔쾌히 지출하고도 남는 수지맞는 장사입니다.
내적치료와 힐링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죠.
아차,,, 집에 있을 아이들로부터 육아해방의 시간이기에 더 기쁩니다. 실은 이게 90%를 차지합니다. 헤헤^^
근데 곧 방학이 다가옵니다.
계속 학교 다니고 싶은데 큰일입니다.
어떡하죠? 급 우울해집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성경 잠언에 쓰였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제일 먼저 망한다는 뜻입니다.
“김성민은 똑똑합니다.”
뚝뚝, 여기저기서 후원자 떨어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우리교회와 우리단체를 크게 키우고 싶습니다.
확장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선한 영향력의 확장을 꿈꿉니다.
개인이 아닌 교회와 단체가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성민보다는 더열린교회가,
김성민보다는 만나무료급식소가,
김성민보다는 예수님이 더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더 쾌적하고 넓은 곳에서 예배와 무료급식을 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결손아동을 돕고 싶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 역량을 발휘하는 중입니다.
조금도 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립니다. 경주마처럼 양쪽 눈을 가린 채 정면만 보고 달려갑니다.
여행, 도박, 마약을 하지 않습니다.
정신없이 도전에 도전을 하는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비록 신체적으로 뇌성마비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것은 내 꿈에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삼고 악착같이 견디고 이겨내어 최종승리를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내 장애가 축복덩어리가 됐습니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몸이 불편해보이세요. 혹시 뇌성마비세요?”
아들하고 대화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유주야, 아빠는 어떤 사람이야?”
“응, 우리아빠 똑똑해, 내가 친구들한테 자랑했다. 우리아빠 장애인인데 되게 똑똑하다 박사님이야.”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당당하게도, 정직하게도 살고 싶습니다.
이 모든 걸 부합하기 위해서 조금은 교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만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담용어로 내재화라 말합니다.
내 마음에서 “교만”과 “겸손”이 줄다리기 중입니다.
“당당함”과 “배려”가 서로 힘겨루기를 합니다.
어떤 땐 아리송합니다. 아치 싶을 때가 있죠.
그러면 인정할 건 빨리 인정하고 또다시 일어나서 꿈을 향해 달려갑니다.
후원자에게 모든 혜택이 돌아가겠끔 연구합니다.
세제혜택은 기본이고, 후원에 대한 만족감과 보람을 심어주기 위해 부단히 애씁니다.
글 하나 쓸 때도 오만가지 생각과 고심 끝에 씁니다.
조금이라도 정신줄 놓는 순간 그 피해는 후원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고 있어도 적어두고, 확인했어도 또다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게 다 후원자 때문입니다.
우리를 도와준 후원자에게 보답하는 길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머리회전이 팍팍 됩니다.
내 나이면 퇴보돼야 정상인데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나를 똑똑하게 만든 장본인이 후원자, 당신입니다.
몇 년 전, 인생의 쓴맛을 맛보았습니다.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우리 동네는 큰 병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종합병원이 들어오게 됐습니다.
병원도 PR시대라 홍보에 열을 올리더군요.
어르신이 많은 우리 급식소도 찾아와 물티슈와 홍보책자를 돌리고 갔습니다.
홍보 직원에게 극진히 대했습니다.
나를 좋게 봤는지 “내일 병원장과 함께 찾아오겠습니다.”라며 떠났습니다.
속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병원의 병원장이 온다고, 후원 엄청 하겠네. 신난다. 말 잘해야지”라며 다짐했습니다.
다음날 깨끗한 옷을 입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먼저 우리 마을에 큰 병원이 들어와 참 좋습니다.
우리에게 후원하시면 홍보는 저희가 해드리겠습니다.”
이게 실수였습니다.
병원장은 그런 뜻에서 온 게 아닌데 내가 설레발 친 것입니다.
당연히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너무 아는 척했고 교만했습니다. 상대방의 의중을 몰랐습니다.
이때 배운 게 있습니다.
“조금은 순진하게 살자. 치장하지 말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자.
머리는 후원자들 연말정산할 때나 쓰고 평상시에는 어딘가 조금 모자라게 살자.”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묻는 말에 대답만 할 겁니다.
추수감사예배 후 농산물을 후원해준 교회와 개인후원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기뻐하는교회, 빛을담은교회, 사강교회, 염광교회, 하저교회 담임목사님과 성도들에게 감사합니다.
무료급식 이용자들에게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행복나눔봉사단에서 김치를 후원했습니다.
가격으로 계산하면 몇 백 만원상당일 텐데 이런 사랑을 주네요.
고맙습니다. 항상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소외계층을 위한 생필품전달사업 “사랑의상자배달” 물품을 구입하고 왔습니다.
후원해준 한전MCS 모든 임직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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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전, 붕어빵 장사를 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원재료 값을 빼면 남는 게 없습니다.
밀가루반죽, 팥, LPG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합니다.
그중 밀가루반죽이 가장 비쌌습니다.
업체에서 받아와 붕어빵을 만들어서 팔았는데 이게 너무 비쌌습니다.
할 수 없이 아버지께서 반죽비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백열전구 하나 켜놓고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반죽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독학으로 터득했습니다.
꼭 에디슨 같았습니다.
하루는 밀가루와 달걀, 베이킹파우더만 넣고 시도해봤는데 맛이 영... 안 났습니다.
차례로 계피, 바닐라향, 소다, 옥수수가루를 넣고 시도해봤습니다.
그리고 끝내 성공했습니다. 집념의 한국인이었습니다.
이제 원천기술을 확보한 것입니다. 자연히 마진율도 높아졌습니다.
사실은 이것을 개발하면서 철학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비용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붕어빵을 만들어보자”로 바뀌게 됐습니다.
“이 집 붕어빵 맛있다”란 소문이 났습니다. 포항에서도 먹으러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 집에 가면 나전칠기 서랍 안쪽 깊숙이에 “최상의 붕어빵 맛을 낼 수 있는 반죽비법 수첩”이 존재합니다.
각 재료의 혼합비율을 g(그램) 단위로 일목요연하게 적어놨습니다.
나도 존재한다는 것만 알고 실체를 못 봤습니다.
글쓰기 전에 아버지께 “반죽비법에 대해 글쓰기 하려고 한다”니까 화들짝 놀라셨습니다. 버럭 화를 냈습니다.
“며느리도 안 알려주는 특급비밀이다. 글쓰기 전에 300만원 가져와라” 말하더군요.
아무튼 특별히 맛있던 붕어빵 집이었습니다.
붕어빵이 식으면 납작해지는 게 정상 아닙니까?
우리 붕어빵은 집에 가져가도 납작해지지 않고 통통하게 그대로 있습니다.
대부도 앞바다에서 지금 막 건져 올린 싱싱한 생선 같았습니다.
우리 무료급식소도 다른 곳보다 특별히 맛있습니다.
우리만의 레시피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밥을 안칠 때도 그냥 쌀로 안 합니다.
찹쌀을 일정한 비율로 섞습니다. 그 비율은 대표인 나도 모릅니다.
담당자인 김수철권사님만 아는 노하우입니다.
무료급식소를 개설하고 싶다며 문의해오는 교회와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개설할 수 있겠죠.
웬만한 규모의 단체에서는 물적, 인적자원이 받쳐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년간 쌓아올린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우리만의 비법, 노하우, 레시피가 존재합니다.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닙니다.
하루하루 써 올린 내 글들이 될 수 있겠고,
혈육보다 끈끈한 후원자들이 될 수도 있겠네요.
우리를 믿고 여기까지 와준 후원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후원자, 당신 덕분에 더 맛있는 무료급식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착한가게 명패를 달고 있습니다.
후원기업 사장님들에게 고맙습니다.
계속 신청 받고 있습니다. 신청해주세요.
식탁에 두 번 올라온 반찬은 안 먹습니다.
귀하게 자라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습관을 가졌습니다.
비위가 약해 조금이라도 이상한 냄새가 나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아내가 힘들어합니다. 조금 까탈스럽습니다.
그런데요. 무료급식을 운영하다보니 변해갑니다.
이용자를 지나칠 때마다 악취가 납니다.
앉아서 식사한 자리 근처엔 오줌냄새가 진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다가갑니다.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더 갖다드릴게요.”라고 말을 겁니다.
등 뒤에서 손을 얹은 채 귀에 대고 다정다감한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옷을 만지고, 손도 잡아주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들이 먹고 간 자리에 앉아 나도 똑같이 밥을 먹습니다.
전에는 역겨운 냄새 때문에 밥맛이 떨어졌지만 이제는 안 그렇습니다.
그런가보다 하고 무덤덤하게 먹습니다.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갑니다. 완전 맛있습니다.
삶의 치열함 속에 내가 존재합니다.
삶의 한 가운데에 내가 존재합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고 손양원목사님 처럼 살고 싶습니다.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급식을 준비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는 이용자가 걱정됩니다.
정면으로 맞바람을 맞으며 한껏 웅크린 채 앉아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알고 손난로를 보내온 목사님이 있습니다.
넉넉한 분이 아닙니다. 폐지를 줍고 다니는 분입니다.
세례요한처럼 청빈한 삶, 거룩한 노동의 대가를 실천하는 분,
꼭 수도사 같이 먹고 쓰고 잠자는 분입니다.
폐지를 주어 번 돈을 무료급식소에 후원합니다.
매달 5만원씩 날짜도 어기지 않고 보내옵니다.
경기도 여주에 사는 권*진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천안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성도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건축을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감 조차 오지 않습니다.
개인 집을 팔아 건축비에 쏟아 부었습니다.
지금까지 빚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런 목사님이 우리에게 매달 5만원씩 보내옵니다.
벌써 8년째입니다.
충남 천안에 사는 김*현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쿠바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독립된 국가이지만 제대로 갖춰진 게 하나도 없는 후진국 중에 후진국인 나라.
그 나라의 영혼들이 안타까워 평생을 헌신하는 분,
이분도 매달 5만원씩 보내옵니다.
윤*안 선교사님을 존경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돈을 가지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합니다.
가치부터가 다른 돈을 가지고 급식소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돈 1만원도 함부로 못쓰겠습니다.
지출할 때마다 벌벌 떱니다.
생각하고 생각해서, 또 고민하고 고민해서 지출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보내오는 돈,
그 의미를 알기에 5만원에서 그들의 피와 수고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5만원에서 그들의 땀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베풀어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