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소에서 일하는 게 재밌습니다.
적성에 맞습니다.
여기가 내 자리인 듯합니다.
지루하거나 따분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스릴 넘칩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롭습니다.
교실은 선생님이 있어야 하고, 병원은 의사가 있어야 하듯 나는 급식소에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정치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법을 다루는 사람도 존재해야 합니다.
식당 사장님도 있어야 하고, 불쌍한 사람들에서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모두 제자리를 지켜야하듯 나는 이곳을 지킬 것입니다.
여기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항상 만족하며 내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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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한평생 눈치만 보며 살았습니다.
집이 가난했고 가방끈도 짧았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교회성도 중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이분과 부모님이 마찰이 생겼습니다.
사실 마찰도 아닌데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꼬리를 내린 적이 있었고,
또 다른 중직자는 내 차를 박아놓고 그냥 가버렸지만 그것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컴퓨터수리점을 운영했을 때 교회청지기(교회연락망 수첩)에 찜해놓은 좋은 광고자리를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이때마다 부모님은 나를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유식하잖아, 우리보다 많이 배웠잖아, 그러니 우리가 그냥 양보하자, 그게 속편해, 지는 게 이기는 거야. 무조건 우리가 참아야 돼.”
어렸을 때부터 이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때마다 화도 났고 짜증도 났습니다.
“사람낳고 돈낳지 돈낳고 사람낳냐”란 가삿말도 있잖습니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미친 듯이 공부만 했습니다.
자존감 낮은 소리가 듣기 싫어 공부만 파헤쳤습니다.
지금은 학문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Ph.D.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말 안 하겠지” 생각했건만 지금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변화기 시작합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 달라졌습니다.
우리 가족을 하나님이 바꿔주셨습니다.
이제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아갑니다.
내 삶을 내 스스로 윤택하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료급식이 좋은 치료제가 됐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컴퓨터를 전공하게 해서 다가오는 정보화시대, 인터넷시대를 준비시켰습니다.
자격증을 미리 취득하게 해서 돈이 궁했던 시절 방과후학교 교사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회에서 방송실 실장을 맡으면서 방송장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했고, 코로나 시국에 빠른 인터넷방송 전환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예배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귀담아 들어야 했기에 자연히 목사님의 목회철학과 성경지식이 쌓일 수 있었고,
학교에서 인터넷방송국 국장을 맡으면서 리더십도 생길 수 있었습니다.
모교에서 겸임교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결혼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이 미리 준비시켰기 때문입니다.
기죽지 않는 김성민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탄사뿐이 안 나옵니다.
“하나님이 짜놓은 각본이 있었구나. 거기에 내가 있었구나.
내 삶 전체를 준비시켰구나. 그 과정을 지나온 것이구나.”
알게 모르게 인생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양보와 배려와 겸손과 예의와 존중과 이해와 성품과 인성과 품위가 그때 그 당시 몸으로 배웠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해선 끄떡없습니다.
내 인생을 무너뜨릴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더열린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놨기 때문입니다.
포크레인 작업 중 가장 힘든 작업이 나라시(평탄화작업)입니다.
내 인생의 나라시를 끝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기사가 돼주셨습니다.
이제 곧 아름다운 건물이 올라갈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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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곡의 노래나 한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산통의 과정을 겪습니다.
창작물이기 때문입니다.
고뇌 끝에 세상에 선보인 작품은 누구보다 창작자 본인이 가장 사랑할 겁니다.
작품의 평가는 대중에게 있지만 작곡가나 감독이 갖는 애착은 누구도 못 따라갈 겁니다.
글쓰기도 창작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또한, 내 창작물이기 때문에 김성민의 의중이 충분히 내포돼 있습니다.
표절이 아니기 때문에 내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녹아져있습니다.
따라서 글 전체를 읽고나면 내 삶이 보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지, 꼴통인지 아닌지? 다 알 겁니다.
그러니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어휘 한 가지만 가지고 꼬투리 잡지 말아주십시오.
글 전체를 놓고 이해해주십시오.
“어휘가 존경하는 말투가 아니다. 단어가 너무 세속적이다. 글 중에 한 부분이 이상한데 그거만 지우면 좋겠다.”등 여러가지 이유로 지적하는데,
그것은 마치 “내가 1차원적인 사고방식에 빠져있구나, 아직 미흡하고 편협한 사람이구나”라는 반증입니다.
흑백논리에 갇혀 있는 격입니다.
한국의 K문화가 세계를 호령하는 반면 중국의 문화가 선도하지 못하는 까닭은 창작자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냐 아니냐에 갈립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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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습관

카테고리 없음 2024. 3. 6. 23:45

초등학교 때부터 생긴 습관이 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기도 받고 등교하는 것입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어머니께서 기도해주셨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귀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귀지 소리였습니다.
자꾸 성가셔 고개를 기울여 콩콩 뛰었습니다.
안간힘을 다해 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엄마, 엄청 큰 귀지가 있었어, 이것 봐봐”
그랬더니 어머니한테 칭찬은 커녕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습니다.
어디 신성한 기도시간에 딴짓 할 수 있냐며 엄청 두들겨 맞았습니다.
얼마나 얻어터졌는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기억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아주 또렷하고 생생합니다.
이때부터 기도의 힘을 배웠습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기도의 습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학교 갈 때 꼭 기도해줍니다.
이제는 알아서 머리를 드밀며 기도해달라 합니다.
학교 가기 전에 안수기도를 안 받으면 안 되는 줄 압니다.
평생 기도로 다져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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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사적으로 만나면 반말로 편하게 대합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끼리 김성민은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공개된 장소에선 달라집니다. 격식을 차려 나를 대합니다.
참 좋은 친구들입니다.

무료급식 이용자들은 나보다 연배가 높습니다.
대게 어르신들입니다.
그러나 급식소 안에서 만큼은 “목사님, 목사님”하며 극진히 대해줍니다.
내가 하는 말에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따라줍니다.
무료급식소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대표로만 보지 않습니다.
대표 이전에 성직자로 봐주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목사의 말이라면 혼신을 다해 따라줍니다.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하며 높여줍니다.

나는 이것을 기도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늘의 권세가 있습니다.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기도응답을 믿습니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저절로 높여줬습니다.
권능과 능력이 생겼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했습니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기적을 만드는 열쇠도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기도는 목사로서 꼭 갖춰야 할 기본소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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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환우가 많습니다.
기도부탁이 많이 들어옵니다.
이들을 위해 항상 기도합니다.
당사자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기도는 계속 합니다.
이게 목사의 의무이자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남편이 암 말기에요. 혹시 위독한 상황이 생기면 목사님께 부탁드려도 될까요?”라며 눈시울에 눈물이 가득 맺힌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 남편이 설암이에요. 곧 수술 들어갑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기도부탁드려요.”

“목사님, 항암치료 중이에요.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얼마 후 답장이 왔습니다.
“의사선생님도 좋아졌데요. 기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자꾸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기도해주세요.”

“걷지 못했었는데 목사님이 기도해주셔서 지팡이를 안 짚고 다섯발자국이나 뗐어요. 감사합니다. 목사님과의 인연을 평생 이어가고 싶습니다.”

“목사님, 우리 딸이 약사가 되고 싶어해요.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안에 금전문제가 얽히고설켜 매우 어렵습니다. 저도 제대로된 신앙을 되찾고 싶어요. 기도해주세요.”

“우리 아이 사춘기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목사님, 우리가 하는 일은 세무회계 업무라서 협력업체가 잘 돼야 우리도 잘 되는 구조입니다. 협렵업체가 더 잘 되길, 그래서 미수금이 없도록 기도부탁 드립니다.”

“초등학생 아들이 있어요. 근데 학교 적응하는데 어려워해요. 친구 사귀는데도 힘들어하고요. 지금보다 더 단단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저도 갑상선에 문제가 있어요. 기도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 염려 말고 오직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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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얼마 전, 반올림피자 사장님 이야기를 올렸는데요.
서울 사는 송파맘께서 반올림피자 남양점에 직접 전화해서 대량주문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함도 밝히지 않은 채 30만원어치 피자를 주문했다지요.
그리고 무료급식소에 배달해달라 부탁하셨다면서요.
그러면서 우리한테는 연락 한번을 안 준 분,
누군지 다 압니다. 후원하는 수법?이 전과 동일해서입니다.
만나무료급식소 정기후원 기업인 GS25편의점(원곡신천로점)을 통해 후원도 하고 매상을 올려주셨던 분이잖아요.
이분께 고맙습니다.
자녀를 위해 항상 중보하고 있어요.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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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킹을 잘합니다. 남들보다 습득력이 강합니다.
따라할 수 있는 건 열심히 따라 제칩니다.
눈썰미가 있습니다.
10년을 이렇게 무료급식만 파헤쳤습니다.
이랬더니 달인이 돼 가는 듯 합니다.
식판 위에 식판을 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균형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조심하면서도 신속히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봉사자들은 이걸 합니다.
경주에 있는 13층 석탑보다 더 높게도 가능합니다.
또 도시락용기를 셀 때도 한 번에 잡는 게 정확한 숫자가 됩니다.
마치 은행직원이 지폐를 쥐면 정확히 100만원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습니다.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오늘은 어떤 메뉴인지 금방 알아챕니다.
100m거리에서도 다 압니다.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온 동네를 가득 채웁니다.
더 나은 곳, 더 좋은 자리를 기웃거리지 않고 한 우물만 팠더니 생활의달인이 됐습니다.
매일 묘기가 난무하는 신기한 무료급식소가 됐습니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고, 내가 도와줘야 할 사람도 존재합니다.
후원자도 있고 소외계층도 있습니다.
나에겐 모든 사람이 새롭습니다.
간혹 해코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철저히 내 것으로 만듭니다.
또 아닌 것이 있다면 아닌 것 대로 경험이나 노하우로 바꿔서 저장해둡니다.

나는 급식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글로 옮깁니다.
그날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적습니다.
모든 글이 미담으로 각색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료급식소 안에서 뛰어다니는 실무팀들은 미담이 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용자들끼리 싸움도 일어나고, 봉사자들끼리 미묘한 긴장의 순간도 찾아옵니다.
여러 경우의 수가 산재한 곳이 이곳입니다.
그것을 빨리 알아채서 중재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중재의 달인 맞습니다.

우리 급식소가 미흡하고 볼품없어도 나는 만나무료급식소를 사랑합니다.
우리 급식소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 안다는 말은 그만큼 애정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비만 오면 천정에서 물이 샙니다. 양동이를 받쳐야합니다.
지붕이 점점 가라앉아서 중간에 건설자재인 쇠파이프로 받쳐 놔야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급식소가 전국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너무너무 좋아서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면 세종대왕을 말합니다.
미국사람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면 1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뽑습니다.
그래서 1달러 지폐에 조지 워싱턴을 새겨놓은 것입니다.
1달러가 하찮아서가 아니라,
1달러는 가장 낮은 단위의 지폐이니 남녀노소 누구나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겠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우리도 1달러가 되고 싶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올 수 있는 곳, 벽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
경주최씨 가문은 대대로 부자였습니다.
돈만 많았던 가문이 아닌 인덕이 겸비된 가문,
독립운동 자금도 후원했던 훌륭한 가문이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100리 안으로 밥 굶는 거지가 없도록 하라”던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우리 무료급식소도 사방 40km 안으로 소외계층이 없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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