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퍼트

카테고리 없음 2024. 3. 12. 21:12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밥만 짓는 곳이 아닙니다.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절대 가볍게 생각해선 안됩니다.
시청과 도청, 유관시설을 밥 먹 듯 들락거려야 합니다.
행정서류가 한 개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전부 구비해있어야 합니다. 기준이 까다롭습니다.
요즘 같으면 차라리 속 편하게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곳이 낫겠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 사명과 비전 때문에 다시 일어납니다.
어떤 난관들이 도처에 깔려있어도, 막다른 길에 봉착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셰퍼트 같이 물고 절대 놓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까지 갈 겁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아내가 생명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수익자를 남편으로 하고 들었습니다.
또 작은 액수지만 첫째 아이를 위한 청약적금도 하나 들었습니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아동수당이 나왔습니다. 둘째아이가 이 혜택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다른데 쓰지 않고 고스란히 이자율 높은 새마을금고에 적금했더랬습니다.
정기적으로 저금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모아둡니다.
옛날 어른들이 지폐가 생길 때마다 장판 밑에다 정성스레 모아뒀던 것처럼 그렇게 모읍니다.
투자를 할 줄도, 주식이나 코인도 모릅니다.
그냥 검소하고 청빈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권력이나 재력을 뽐내면서 아주 호화롭게 거들먹거리며 살아간다면 후원자들 다 떨어져 나갈 겁니다.
떵떵거리게 살면 무료급식소 금방 망할 걸 알기에 더욱 조심합니다.
무소유을 외치며 살지 못하겠습니다. 처자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풀소유도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에 대해 깨끗하고 정정당당하자는 주의입니다.
돈의 구분만 잘해도 사회면 뉴스에 나올 일은 없습니다.
금융감독원 안에 있는 슈퍼컴퓨터가 내 계좌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고 있겠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우리의 후원자 중에 검사도 있고, 경찰, 공무원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단체로 만들어가겠습니다.

요즘 은행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적금, 저금, 보험 전부 해약했습니다.
아이들 것도, 아내의 생명보험도 다 깼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처가에서도 돈을 조금 보탰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전부 한 곳으로 모았습니다.
더열린교회 건축과 무료급식소 사무실 건축 때문입니다.
모아 봤자 건축비의 1/10도 안 되지만 그래도 힘 닿는 한 움직여봐야 할 것 같아서요.
옛날 건축과 요즘 건축은 다릅니다.
옛날 건축은 돈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통장에 돈이 얼만큼 있어야 시청에서 착공계를 내줍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한풀 꺾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담만 하고 있지 않겠습니다.
끈임없이 방법을 모색하겠습니다.
돈이 없는 관계로 “직영건축”으로 하려 합니다.
아버지께서 교회를 지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교회 증축도 맡아봤습니다.
비록 어깨너머 배운 것이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을 소유했습니다.
전에 아버지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하나 둘 모으는 중입니다.
건축계의 어벤져스를 모으는 중입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 목사님은 건축비만 준비하세요. 내가 죽기 전에 이것만은 꼭 짓고 하늘나라 갈테니.”
건축비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기적을 바라봅니다.

우리 삼촌이 있습니다.
모(母)교회에서 차량운행을 하고 월급을 받았습니다.
교회소속으로 차량관리 실무담당자였습니다.
그러나 평일에는 교회부설 어린이집에서 아침저녁으로 차량운행을 했습니다.
교회 차량기사와 어린이집 차량기사, 두 가지 겸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만 월급을 받았고 어린이집에서는 월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걸 아는 사람들만 우리 삼촌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돈에 욕심없이 묵묵히 일해온 사실을 아는 사람만 삼촌을 달리봤습니다.
나는 더열린교회를 섬기면서 무료급식소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회 사례비를 받지 않습니다.
교회가 돈이 없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받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아내가 조리사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따라서 시청에서 조리사에게 주는 것과 경리비를 받습니다.
욕심을 버리니 넉넉하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가 땅을 사고 건축을 한다니 세상 사람들이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성도도 나가버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건축 절대 못해, 그러다 죽지 죽어, 내가 건축하다 죽은 목사들 많이 봤어.” 이렇게 말하고 가버렸습니다.
처음엔 이 말이 야속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니 전부 맞는 말입니다.
그들이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이었습니다.
조금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래요.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우리교회가 무슨 건축을 한단 말입니까?
맨날 돈이 없어 쩔쩔매면서 건축한다고 깝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은 게 있는데,
사람과 환경을 보면 부정적인 말이 맞습니다만,
하나님의 위대한 시선으로 봤을 땐 거뜬히 해낼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간과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 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무진장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겁니다.
잠잠하십시오.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습 1:7)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였더라(왕상 6:38)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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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카테고리 없음 2024. 3. 12. 12:58

더열린교회는 독립교회연합회 소속입니다.
교단에 소속돼있지 않고 연합회에 소속돼있습니다.
교회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제공받기에 터를 이쪽으로 잡았습니다.
타 교단처럼 목회자나 교회끼리 모임활동은 드물지만 나름 만족하며 지냅니다.
무료급식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외로울 때도,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후원자들이 있어 힘을 받습니다. 나에게 힘을 줍니다. 격려해주고 위로해줍니다.
나에겐 후원자들이 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순간을 감사하며 지내겠습니다.

2008년, 아버지께서 종교부지에 교회건축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는 모(母)교회 방송실장을 맡고있었기에 방송시스템을 점검하러 건축에 참여했습니다.
업자들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동시다발로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교회 간판을 담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다함께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돌아가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판가게 사장님 차례가 됐습니다.
목사님은 다음과같이 소개했습니다.
“이 사장님은 내가 양평군 작은 시골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을 때 교회학교 어린이로 만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간판집 사장님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옛날 스승님을 다시 만났다는 감격에 교회에 필요한 모든 간판을 해주셨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았던 간판집 사장님을 나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나는 부교역자가 됐습니다.
부임한 교회에서 우연히 낯익은 사람을 보게 됐습니다.
간판집 사장님이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교회에서 날 먼저 알아봐주던 고마운 사장님.
이후로 내 일이라면, 또 무료급식소 일이라면 손발 벗고 적극 나서주는 사장님이 됐습니다.
가장 오래된 정기후원자이자 가장 많이 후원하는 사장님입니다.
더열린교회와 만나무료급식소 간판과 홍보물을 전부 무료로 해주는 사장님,
14년을 한결같이 후원하고있는 안산 기획원이 사장님,
이상규 권사님과 이경애 권사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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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발로 뛰어다니잖아요. 그래서 신발 보냅니다.”라며 비싼 운동화를 사준 분이 있습니다.
GS25편의점(원곡신천로점) 조경식 장지연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후원자들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뛰어다녔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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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에서 일하는 게 재밌습니다.
적성에 맞습니다.
여기가 내 자리인 듯합니다.
지루하거나 따분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스릴 넘칩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롭습니다.
교실은 선생님이 있어야 하고, 병원은 의사가 있어야 하듯 나는 급식소에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정치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법을 다루는 사람도 존재해야 합니다.
식당 사장님도 있어야 하고, 불쌍한 사람들에서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모두 제자리를 지켜야하듯 나는 이곳을 지킬 것입니다.
여기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항상 만족하며 내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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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한평생 눈치만 보며 살았습니다.
집이 가난했고 가방끈도 짧았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교회성도 중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이분과 부모님이 마찰이 생겼습니다.
사실 마찰도 아닌데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꼬리를 내린 적이 있었고,
또 다른 중직자는 내 차를 박아놓고 그냥 가버렸지만 그것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컴퓨터수리점을 운영했을 때 교회청지기(교회연락망 수첩)에 찜해놓은 좋은 광고자리를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이때마다 부모님은 나를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유식하잖아, 우리보다 많이 배웠잖아, 그러니 우리가 그냥 양보하자, 그게 속편해, 지는 게 이기는 거야. 무조건 우리가 참아야 돼.”
어렸을 때부터 이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때마다 화도 났고 짜증도 났습니다.
“사람낳고 돈낳지 돈낳고 사람낳냐”란 가삿말도 있잖습니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미친 듯이 공부만 했습니다.
자존감 낮은 소리가 듣기 싫어 공부만 파헤쳤습니다.
지금은 학문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Ph.D.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말 안 하겠지” 생각했건만 지금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변화기 시작합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 달라졌습니다.
우리 가족을 하나님이 바꿔주셨습니다.
이제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아갑니다.
내 삶을 내 스스로 윤택하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료급식이 좋은 치료제가 됐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컴퓨터를 전공하게 해서 다가오는 정보화시대, 인터넷시대를 준비시켰습니다.
자격증을 미리 취득하게 해서 돈이 궁했던 시절 방과후학교 교사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회에서 방송실 실장을 맡으면서 방송장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했고, 코로나 시국에 빠른 인터넷방송 전환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예배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귀담아 들어야 했기에 자연히 목사님의 목회철학과 성경지식이 쌓일 수 있었고,
학교에서 인터넷방송국 국장을 맡으면서 리더십도 생길 수 있었습니다.
모교에서 겸임교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결혼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이 미리 준비시켰기 때문입니다.
기죽지 않는 김성민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탄사뿐이 안 나옵니다.
“하나님이 짜놓은 각본이 있었구나. 거기에 내가 있었구나.
내 삶 전체를 준비시켰구나. 그 과정을 지나온 것이구나.”
알게 모르게 인생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양보와 배려와 겸손과 예의와 존중과 이해와 성품과 인성과 품위가 그때 그 당시 몸으로 배웠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해선 끄떡없습니다.
내 인생을 무너뜨릴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더열린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놨기 때문입니다.
포크레인 작업 중 가장 힘든 작업이 나라시(평탄화작업)입니다.
내 인생의 나라시를 끝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기사가 돼주셨습니다.
이제 곧 아름다운 건물이 올라갈 차례입니다.
--
한 곡의 노래나 한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산통의 과정을 겪습니다.
창작물이기 때문입니다.
고뇌 끝에 세상에 선보인 작품은 누구보다 창작자 본인이 가장 사랑할 겁니다.
작품의 평가는 대중에게 있지만 작곡가나 감독이 갖는 애착은 누구도 못 따라갈 겁니다.
글쓰기도 창작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또한, 내 창작물이기 때문에 김성민의 의중이 충분히 내포돼 있습니다.
표절이 아니기 때문에 내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녹아져있습니다.
따라서 글 전체를 읽고나면 내 삶이 보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지, 꼴통인지 아닌지? 다 알 겁니다.
그러니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어휘 한 가지만 가지고 꼬투리 잡지 말아주십시오.
글 전체를 놓고 이해해주십시오.
“어휘가 존경하는 말투가 아니다. 단어가 너무 세속적이다. 글 중에 한 부분이 이상한데 그거만 지우면 좋겠다.”등 여러가지 이유로 지적하는데,
그것은 마치 “내가 1차원적인 사고방식에 빠져있구나, 아직 미흡하고 편협한 사람이구나”라는 반증입니다.
흑백논리에 갇혀 있는 격입니다.
한국의 K문화가 세계를 호령하는 반면 중국의 문화가 선도하지 못하는 까닭은 창작자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냐 아니냐에 갈립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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