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아내가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을 준비합니다.
파 송송 계란 탁,
식사 준비가 끝나고 아이들을 부릅니다.
“얘들아 밥 먹어라”
그런데 군것질을 많이 했는지 쭈뼛쭈뼛 오더니 인상을 찌푸린 채 말합니다.
“밥 안 먹을래요.”
말이 끝나자마자 한순간 정적이 흐릅니다.
일제히 공포가 감도는 초긴장의 상태가 찾아옵니다.
그 누구도 엄마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난 것입니다.
아내가 저음으로 말합니다.
“먹어”
그제야 세 남자는 군말 없이 식탁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먹기 시작합니다.
아내의 짧고 굵은 목소리는 흔치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세 남자들은 쥐 죽은 듯 가만히 먹습니다.
--
날이 갈수록 무료급식소를 찾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날씨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봄이 오니 외출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것도 아닌 게 날씨와 상관없이 인원이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아침일찍 출근해 식사를 준비합니다.
내 가족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쏟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어도 먹으러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 꾸며놓은 무료급식소라도 이용자가 없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
우리가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다 이용자 때문입니다.
이용자가 찾아와 맛있게 먹어주면 굉장히 기쁩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이용자들에게 틱틱거리며 퉁명스럽게 대하지 않으려 합니다.
겸손하고 따뜻하게 대하려 노력합니다.
우리의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군것질했다고, 아니면 반찬이 맛이 없다고 밥투정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
기도해주신 덕분에 좋은 장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현재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빈 상가가 있습니다.
월세가 만만치 않지만 맘에 쏙 듭니다.
다른 곳도 찾아봤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더 기도해보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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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카테고리 없음 2024. 3. 18. 17:46

(중보)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덩달아 무료급식소도 많이 성장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비웃겠지만,
내 역량과 능력에 비례해 성장했다는 겁니다.
김성민 개인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형편없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갖춰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재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특히 관공서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애쓰고 있습니다.
관공서의 명령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습니다. 슈퍼갑 대(vs) 슈퍼을의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영리민간단체, 비영리사단법인, 공익법인(지정기부금단체), 집단급식소 지정 등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그때그때마다 요구하는 것들을 순차적으로 완수해왔습니다.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한번 붙어보자”란 일념으로 끝까지 싸워 이겼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신기한 사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었다는 것과 2.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모두 성취됐다는 사실입니다.
기적을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 인생이 곧 기적입니다. 나는 기적덩어리입니다.
성장률 그래프를 보면 대각선으로 무난히 성장한 게 아닙니다.
중간중간에 갑자기 몇 단계씩 점프했던 때가 있습니다.
지역에 연고를 둔 사회단체들이 관심을 주었을 때입니다.
지역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급성장했습니다.
남양로타리클럽,
송산로타리클럽,
난파라이온스클럽,
한국크리스토퍼 남양반도,
한국카네기 천사봉사단,
남양의용소방대,
남양읍사무소,
남양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송파맘(송파로그),
지역 교회들과 불교단체들,
지역에 연고를 둔 여러 봉사단체들,
지역에 연고를 둔 공기업 및 중소기업들,
이들 단체가 우리에게 관심을 주면서부터 날개를 펼 수 있었습니다.
회장들을 하나하나 나열할 수도 없습니다. 너무 많아서입니다.
고맙다는 말도 못하겠습니다. 부끄럽고 밍구스럽습니다. 염치가 없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이런 사랑을 받는 게 어색하기만 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봉사하러 온 분이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봉사로 유명한 분인데 오랜만에 온 것입니다.
연신 고맙다고 말씀드렸죠.
난파라이온스클럽 회장이었을 때 많이 도와줬던 정인용 회장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관공서에서 제시한 기준에 입각해 급식소가 이사를 가야할 상황입니다.
여기 이 장소에서 몇 년을 지냈습니다.
“만나무료급식소는 영원히 존재하는 거야”라고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후원자, 봉사자, 이용자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나 또한 이사를 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슬프기만 합니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자리에 있으면서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건물주도 우리의 형편을 알고 저렴하게 배려해줬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앞이 깜깜합니다.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좋은 장소를 물색 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지 않겠습니까?
식사하기 전, 잠들기 전,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이 예비해둔 장소로 급식소가 이사 갈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간판도, 환기구도, 인테리어도 다시 해야 하고,
주변 상가들과도 인맥과 친분과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하기에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돌파 할수밖에요.
김성민이 낙담하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이 위기에서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중보해주십시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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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연히 블로그를 봤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쭉 읽었습니다. 펑펑 울었습니다. 목사님의 글이 감동돼서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초심을 잃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왔던 것입니다. 나도 하남시 가정을 돕고 싶습니다. 방법 알려주세요.”
또 카네기 천사봉사단 회장님이 말합니다.
“목사님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오늘 거래처와 술자리가 있거든요. 전부터 물밑작업을 해놨으니 곧 결실을 맺을 겁니다.”
고마운 사람이 참 많습니다.
무료급식을 하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을 자꾸 만납니다.
만약 이 일을 안 했으면 만날 수나 있었을까요?
평생 대화의 기회조차 없었을 겁니다.
무료급식은 나에게 복이자, 삶의 원동력이며, SNS(사회관계망)가 됩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풍월”이란 단어를 검색해봤습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놂”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이런 천자문을 외우는 것도 모자라 시까지 자작(自作)할 수 있는 개가 있다는 말에 저절로 코웃음이 났습니다.
이 나이 먹도록 개가 한자(漢字)을 외우고, 시까지 읊을 수 있다는 소릴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옛날에는 부잣집 자제를 서당에 보내 성리학(性理學)을 가르쳤습니다.
귀한 양반집 도령을 혼자 보내지 않고 수하를 두어 따라다니게 했습니다.
종이나 노비를 딸려보내 수발을 들게 했습니다.
유생들이 서당에서 훈장님께 배우는 동안 종들은 마당에 풀썩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도련님이 끝날 때까지 하는 것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3년쯤 되니 유생을 따라다녔던 종의 입에서 흥얼흥얼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산은 산이오. 바람은 바람이로다.”
이런 식으로 시를 읊고 노는 게 아닙니까?
양반들은 노비를 개만도 못하게 여겼습니다.
소를 비롯한 가축은 재산으로 취급했지만 노비는 내가 죽여도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아주 하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개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자격도, 미래에 대한 가능성도 없었던 존재가 바로 김성민이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사람다워진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삶의 희망이 생겼고, 무료급식을 하게 됐으며,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시를 읊습니다.^^

교회 안에서 오랜 시간 사찰로 지냈습니다.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목사, 전도사는 아니었지만 사역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역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남몰래 설움도 많이 겪었고, 눈물도 많이 쏟았습니다.
자연히 눈치 백단이 됐고 아부도 떨 수 있습니다.
개과천선했습니다. 거침없어졌습니다.
과거의 경험들이 나에게 약이 됐습니다.
진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011년, 교회개척을 미련스럽게 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아는 부동산도 없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바보 같았습니다.
같은 시기 다른 목사님도 개척을 했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좋은 자리에 개척을 했습니다.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인생의 관록과 경륜과 연륜과 식견과 혜안이 느껴졌고,
나는 인생의 혈기나 객기, 무식함과 무모함으로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이가 되니 배운 게 있습니다.
무식했고 무모했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기 우직함 집념 투지 강한의지 열정 노력 승부수 성취욕 끝장 최선 꿈 희망 열망 근성 인내 역경 용기 정신력 배짱 자신감 자제력 투혼 투쟁심 전위 불굴 깡다구 강단 뚝심 오뚜기정신 칠전팔기정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의욕"을 가지니 못할 게 없더군요.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김성민이었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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