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무료급식 전후로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눈치만 보며 자존감이 낮았던 내가 무료급식을 하면서 달라졌습니다.
비영리민간단체와 비영리사단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해가며 자신감과 성취감이 생겼습니다. 당당해졌습니다.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사소한 시비거리가 귀에 들려오지 않습니다.
내 일 신경쓰기에도 바쁩니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수근거림, 흉보는 것을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대신 무료급식 이용자, 봉사자, 후원자를 만나며 자기표현을 할 줄 알게 됐습니다.
그럴수록 자신감이 올라갔고, 공감능력과 표현력도 풍부해졌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도 무료급식 때문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생긴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끄적였습니다.
처음엔 세 줄 쓰는데 세 시간이 걸릴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이랬던 글쓰기가 이제는 더열린교회와 만나무료급식소 사역의 아카이브(Archive)가 됐습니다.
이 방대한 자료를 이용해 철학박사(Ph.D.) 학위까지 받게 됐습니다.
(논문제목_무료급식을 통한 더열린교회의 교회성장 사례연구)
이제는 무료급식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습니다.
앞으로 더 전진하는 더열린교회, 만나무료급식소, 김성민을 보여주겠습니다.
12년 전, 이 사역을 시작하라며 조언해준 나의 영원한 스승 김길수 목사님께(사강감리교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누가 뭐래도 목사님의 은혜를 잊지 못합니다.
이 한 몸,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사명 끝까지 붙잡겠습니다.
흔들림 없이 앞만 보며 달려가겠습니다.
12월 중순, CTS기독교TV 방송에 우리가 나옵니다.
이미 JTBC, 경기방송, 경인일보 등 여러 매체에 출연했었는데 이번에 또 촬영 섭외가 온 것입니다.
몇 년 전만해도 거절했을 텐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부터 내 입에선 “NO”란 단어는 없다. 오직 “YES”만 하기로 굳게 다짐한터라 승낙했습니다.
더구나 우리에겐 물불 가릴 형편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 방송을 통해 후원자가 더 생기고, 여러 곳에서 관심과 사랑이 많아지게 하옵소서"
만나무료급식소를 사랑하는 모든 분에게 이 시간을 빌어 감사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후원자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김성민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모든 영광, 오직 주님만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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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Teacher)을 한자로 표현하면 먼저선(先), 날생(生)을 사용합니다.
세상에 먼저 태어난 사람이 선생입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 많은 경험과 연륜을 가진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만나무료급식소를 찾는 모든 어르신이 나의 스승님입니다.
그분들을 업신여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지 않겠습니다. 결코 경시하지 않겠습니다.
공손한 마음으로 선생 대접을 깍듯이 하겠습니다.
예의범절을 갖춰서 행동하겠습니다.
나도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선생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집이 가난해서 제때, 가고싶었던 대학을 가지 못했습니다.
집에선 어떻게 해서든 등록금을 대주었겠지만 마음 한편이 쓰렸습니다.
억지로 대주고, 빚으로 대줄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진해서 대학을 포기했습니다.
이게 한이 됐는지 평생 공부하고 싶다는 이념에 사로잡혔습니다.
끝까지 펜을 놓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공부하고 싶습니다.
꾸준히 공부하는 게 나의 희망이자 꿈이 됐습니다.
뭐 하나라도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그렇게 희열이 느껴지더군요.
현재 하고 있는 공부가 장차 어떻게 쓰일지 모릅니다. 계획이 없습니다.
단지 배움이 좋아 시작했고, 이왕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는 게 내가 걷는 길입니다.
글을 맺으려 하다가 불현듯이 생각나는 게 있어서 이어갑니다.
아마 나의 배움이 내게 있는 콤플렉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해소시키는데 학식만큼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오는 건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움을 좋아합니다.
공부가 가장 쉽고, 가장 빠르게 김성민의 주가를 올리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단면만 있는 게 아니라 성취감과 만족도 존재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네요.
2018년, CTS기독교TV “7000미라클”이란 프로그램에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전국으로 송출됐고, 그 후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만나무료급식소도, 더열린교회도 부흥했습니다.
성도들이 몰려오고 밀려왔습니다.
덩달아 목회하는 것도 신이 났습니다.
사역에 올인했고 미쳐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이단인 신천지가 교회로 침입했고, 교회는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말도 못하게 밀려오는 허탈감에 기운이 쪽 빠졌습니다.
후유증이 몇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고삐를 죄서 힘차게 달려가고자 합니다.
가끔 하나님이 나에게 질문합니다.
“성민아, 실패가 눈앞에 보여도 2018년으로 다시 돌아갈래?”
이렇게 물어보면 망설임없이 “yes”라 대답할 것입니다.
이단 때문에 쪼그라들지라도, 패배의 쓴 잔이 나를 가로막을지라도 흔쾌히 수락할 것입니다.
지레 겁먹지 않겠습니다.
그때가 좋았고 신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실패한다 해도 도전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도전과 끈기가 제일 큰 자랑입니다.
국가가 진행하는 공모전이 가끔 열립니다.
무턱대고 신청했는데 낙방했습니다.
처음 실패를 맛봤는데 낙심되는 게 아니라 오기가 생기더군요.
또 공모해볼 생각입니다. 떨어지면 또 하고, 또 할 겁니다.
떨어지니까 어디서 떨어졌는지 알겠더군요.
준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깨달았습니다.
큰 수확을 걷었습니다. 다음번엔 꼭 합격하겠습니다.
우리 무료급식소가 큰일났습니다.
새로운 후원자가 유입되지 않습니다.
후원을 끊는 사람은 생기는데 유입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상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강점을 살리려 합니다.
지속의 힘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 자리에서, 계속, 끊임없이 무료급식을 하고 있으면 언젠간 큰 후원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이것을 믿습니다. 굳게 믿고 있습니다.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가장 싫습니다.
새 후원자들에게 알립니다.
당신에게 진국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김성민이란 진국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후원을 애타게 기다리겠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고양이를 기르던 할머니가 산책을 갔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홀딱 젖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비를 맞은 고양이를 빨리 말리고 싶은 마음에 전자레인지 안에 고양이를 넣었습니다.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할머니는 전자레인지를 만든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소송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전자레인지에 ‘고양이를 넣지 말라’는 경고를 써놓지 않았냐?”
할머니가 승소했습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우리 급식소를 이용하는 이용자, 봉사자, 후원자에게 공지사항을 지속적으로 알립니다.
수시로 알립니다.
알림 푯말로, LED전광판으로도 여러 경로를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1999년에 첫 헌혈을 하고 지금까지 모아둔 헌혈증을 기증하고 왔습니다.
83장 모두를 안산시 한대역앞 헌혈의집에 기증했습니다.
또 열심히 모아서 기증하도록 하겠습니다.
2024.11.11
차도 왔습니다.
후원해주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앞만보며 죽도록 뛰겠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봉사자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팔 걷어붙이고 투입됐었죠.
한바탕 일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사무실에서 사무 보는 일도, 필드에서 음식 만드는 일도, 전천후 만능이 되어 갑니다.
어떤 일도 가리지 않은 채 신나게 일합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있을 때와 필드에서 일 할 때가 다릅니다.
곱상하게 의자에 앉아 일할 땐 마음이 관대해집니다. 너그러워집니다. 그러려니 하고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몸 부대끼며 일할 땐 괜히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무질서와 무절략 등, 안 봐도 될 걸 보게 됩니다.
그것을 묵인할 수 없어 뭐라 한마디 하게 되고, 이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언짢습니다.
일할 때만큼은 빈틈없이 하려는 경향을 소유했습니다.
주도면밀하고 까다롭게 일처리를 하고자합니다.
만약 이렇지 않을 땐 공든 탑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가 나를 옥죄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고, 욕도 많이 먹습니다.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시행착오나 실수를 줄이고 싶습니다.
우리를 응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후원과 기도를 베푸는 사람이 많습니다.
설거지하다가 잠시 밖을 나와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차들을 멍하게 바라보며 사색에 빠졌습니다.
"사지 멀쩡한 사람인데 경제활동은 안 한 채, 인생 전체를 무료급식에 매달린다는 게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산성이 없이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건 아닌가"라고까지 했던 사색이었습니다.
아무튼 매우 복잡한 심경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고, 공장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서 가정을 먹여 살려야 되는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 나를 봤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게 신기하고 죄송할 따름이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매우 어렵게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한편 우리를 믿고 후원해준 후원자 덕분에 내가 살아간다는 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끈임없이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료급식소 같이 퍼주기만 하는 곳은 빨리 없어져야 돼.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자꾸 퍼주기만 하니...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야, 사회주의야. 너희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놀고먹으려고만 하는거 아니겠어? 빨리 문 닫게 만들어야 해.”
일리가 있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얼마 전, 인감증명서로 도와준 회원들에게 이전에 대한 진행경과와 결과를 보내드렸습니다.
그곳엔 단체 연혁도 있었는데요.
우리가 걸어온 길을 쭉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료급식만 했던 게 아니라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도우며 국위선양에 앞장섰고, 위기가정을 찾아가 생명을 살렸으며,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공조해왔습니다.
태풍으로 위기에 처한 지방을 도왔고, 결손아동 및 소외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정관도 바꾼 상태입니다.
결코 퍼주기만 했던 곳이 아니라 지역과 나라와 민족과 세계평화에 앞장서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유일의 무료급식소가 돼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급식소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이 일을 계속 하다보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사람들을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필연적으로 만납니다.
그 사람을 돕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 사회 전체가 지불해야 하는 직면에 처하게 됩니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게 훨씬 이득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회공적비용을 낮춰주는 일을 해왔고,
사회기회비용에는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단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앞만보며 달려왔습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는 수많은 봉사자, 후원자, 이용자를 생각할 때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는 걸 간과하지 말아주십시오.
세상적인 안목에서 볼 때 나는 실업자가 맞을 수 있겠지만, 보다 의미있고 진취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네요.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사회정원사 같은 사람입니다.
우연히 GoodTV를 보게 됐습니다.
노년의 권사님 한 분이 평생 모은 재산을 GoodTV 방송장비를 구입하는데 쓰라며 후원했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우리도 이런 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평생 모은 재산을 우리 단체에 후원하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비영리사단법인)더불어사는우리/만나무료급식소"는 지역과 나라와 민족과 세계평화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전한 곳입니다.
요즘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습니다.
그래서 글 소재도 떨어졌습니다. 아이디어가 고갈 됐습니다.
매일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고, 행정처리 하는 게 하루일과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상이 좋습니다.
화려하고 스팩타클하고 다이나믹한 인생도 좋지만,
그냥 소박하고 평범하게 내 자리를 지키는 게 더 좋습니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는 게 나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삶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행복합니다.
어제도 그렇게,
오늘도 그렇게,
내일도 그렇게 살아가겠죠?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울 때면 이곳으로 오십시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겠습니다.
이모부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가끔 공사장을 따라다니며 데모도를 했습니다.
숙련공 옆에서 거드는 일(시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반적으로 일머리가 있어야 하고, 눈치도 빨라야 합니다.
이모부는 사다리(아시바)에 올라가 천장에서 일하고
나는 밑에서 연장을 집어줬습니다.
길이에 맞게 각고목을 재단하는 일도 했습니다.
규격에 맞게 자르려면 기준이 되는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정확히 잰 나무를 대고 계속 재단해 나갑니다.
그래서 처음 잰 나무를 잃어버리면 큰일납니다.
처음 일을 배울 때 일입니다.
그날도 전기톱으로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기준 되는 나무를 계속 썼어야 됐지만,
귀찮은 나머지 잘라낸 나무를 다시 기준점으로 잡은 다음 재단하고,
또 잘라낸 나무를 기준점으로 잡고 재단해버렸습니다.
난 이렇게 해도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결국 모두 길이가 안 맞아 쓸모없게 됐습니다.
나 때문에 손해가 막심했습니다.
점심 무료급식 시작시간은 오전 11시입니다.
1분, 1초도 어기지 않습니다.
나는 시간에 대한 각박증이 있습니다.
병리학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내 안에서 시간과 끊임없는 사투를 벌입니다
내 자신도, 상대방도 시간을 어기면 괜히 화가 납니다.
계획된 일을 시간 안에 마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강박증세입니다. 꼭 정신병자 같습니다.
시간, 약속, 숙제, 스케줄, 후원자와의 미팅 같은 걸 굉장히 소중히 다룹니다.
시간이란 게 한번 어기는 건 쉽지만 나중에 그것을 회복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아니면 때에 따라 식사시간을 달리하면 혼선이 올 게 분명합니다. 규칙과 질서가 무너질 겁니다.
신뢰와 신용과 믿음과 안심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후원자, 당신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나를 채찍질해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후원자와의 약속은 하늘이 두 쪽 난다 해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난 당신이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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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도시락도 만듭니다. 매일 만듭니다.
따라서 일회용 도시락용기도 무시 못하게 소비되는 실정입니다.
정기적으로 구입해야 합니다.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아내가 살듯 안 살듯, 만지작 만지작거리며 고민합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말이 없는 어르신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왔다가 식사만 하고 갑니다.
어느 날, 말을 걸어봤습니다.
이랬더니 산전수전 겪었던 인생이야기를 청산유수 쏟아내는 게 아닙니까?
말문이 트인 것입니다.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동안 말이 고팠는지 작심하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더군요. 막힘이 없었습니다.
이제껏 말을 걸어줄 사람도, 이야기 할 사람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솔직히 들어줄 시간이 없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앉아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고, 고개도 끄떡였습니다.
집중하고 있다는 제스처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 분에 대한 공경과 존경의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시간을 버린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 네팔사람이 다녔습니다.
같이 예배 드리고, 여행가고, 밥도 먹으며 아주 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하루는 기숙사에 우리 부부를 초대했습니다.
네팔음식을 만들어준다 했습니다.
방문한 기숙사는 지저분했고, 바퀴벌레가 잔뜩 돌아다녔습니다.
드디어 부엌에서 토마토가 곁들인 카레를 만들어왔습니다.
기도하고 먹으려는데 숟가락이 없는 게 아닙니까?
손으로 밥알을 조몰락조몰락 모아서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비위가 약해 굉장히 난감했지만 네팔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똑같이 먹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목회상담사 자격증반 3년 코스웍(Course work)을 시작했습니다.
개강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살아갈수록 공감능력이 뛰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감각, 판단력, 분별력, 센스를 소유하고 싶습니다.
일이 많아졌습니다.
해도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래도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
재미없는데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무료급식과 목회가 천생직업(天生職業) 같습니다.
하늘이 내려준 직업입니다.
그래서 신나게 일하고 있습니다.
즐겁게 일하니 자꾸 돕는 사람이 붙습니다.
현물로, 금전으로, 봉사로, 관심과 기도로 우리를 돕습니다.
때에 따라 필요한 걸 후원해줍니다.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매일이 기적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더욱 신나게 일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후원자가 30만원을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급식소에 김치가 없다면서요. 글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쓰렸는지 모릅니다. 얼른 필요한 것부터 구입하세요. 300만원도 아니고 3,000만원도 아니라 송구합니다. 기쁘게 받아주세요.” 당신의 몸이 아픈데도 김치를 구입하라며 후원한 것입니다.
또 결손아동에게 나눠주라며 콘푸라이트 씨리얼을 보내온 사람도 있습니다.
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는 후원자,
임성진, 최용석, 최은정, 최윤재, 최윤서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편 추진력 있게 일하니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난관을 뚫고 가다 보면, 뚫리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나를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괜히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하고 싸우자며 덤벼드는 존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장애물을 “사탄, 마귀, 귀신”으로 정의내립니다.
요즘 들어 그들의 장난질이 대단합니다. 사실 늘 있어왔는데 심해진 것입니다.
자꾸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며 일 못하게 만드는 어둠의 존재들.
그래도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승리했음을 믿고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갑니다.
2011년, 교회개척을 했습니다.
개척예배 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바쁜 중에도 자리를 빛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사역하겠습니다. 제 모교회보다 더 부흥하겠습니다.”
성도 한 명 없는 개척교회가 1,500명 규모의 교회에게 도발한 것입니다.
허풍과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 됐다고 나는 믿습니다.
후원자로부터 후원만 받는 게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교제하는 관계, 기도와 중보를 하는 관계입니다.
후원자가 병이 걸렸거나 큰일이 닥쳤을 때 간절히 기도해줍니다.
장례가 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위로합니다.
지금도 부산에 사는 후원자가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KTX 타고 가는 중입니다.
항상 후원자들에게 고맙고 감사합니다.
후원자, 당신을 위해 중보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