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는 어르신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왔다가 식사만 하고 갑니다. 어느 날, 말을 걸어봤습니다. 이랬더니 산전수전 겪었던 인생이야기를 청산유수 쏟아내는 게 아닙니까? 말문이 트인 것입니다.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동안 말이 고팠는지 작심하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더군요. 막힘이 없었습니다. 이제껏 말을 걸어줄 사람도, 이야기 할 사람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솔직히 들어줄 시간이 없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앉아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고, 고개도 끄떡였습니다. 집중하고 있다는 제스처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 분에 대한 공경과 존경의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시간을 버린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 네팔사람이 다녔습니다. 같이 예배 드리고, 여행가고, 밥도 먹으며 아주 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하루는 기숙사에 우리 부부를 초대했습니다. 네팔음식을 만들어준다 했습니다. 방문한 기숙사는 지저분했고, 바퀴벌레가 잔뜩 돌아다녔습니다. 드디어 부엌에서 토마토가 곁들인 카레를 만들어왔습니다. 기도하고 먹으려는데 숟가락이 없는 게 아닙니까? 손으로 밥알을 조몰락조몰락 모아서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비위가 약해 굉장히 난감했지만 네팔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똑같이 먹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목회상담사 자격증반 3년 코스웍(Course work)을 시작했습니다. 개강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살아갈수록 공감능력이 뛰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감각, 판단력, 분별력, 센스를 소유하고 싶습니다.
일이 많아졌습니다. 해도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래도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 재미없는데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무료급식과 목회가 천생직업(天生職業) 같습니다. 하늘이 내려준 직업입니다. 그래서 신나게 일하고 있습니다. 즐겁게 일하니 자꾸 돕는 사람이 붙습니다. 현물로, 금전으로, 봉사로, 관심과 기도로 우리를 돕습니다. 때에 따라 필요한 걸 후원해줍니다.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매일이 기적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더욱 신나게 일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후원자가 30만원을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급식소에 김치가 없다면서요. 글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쓰렸는지 모릅니다. 얼른 필요한 것부터 구입하세요. 300만원도 아니고 3,000만원도 아니라 송구합니다. 기쁘게 받아주세요.” 당신의 몸이 아픈데도 김치를 구입하라며 후원한 것입니다. 또 결손아동에게 나눠주라며 콘푸라이트 씨리얼을 보내온 사람도 있습니다. 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는 후원자, 임성진, 최용석, 최은정, 최윤재, 최윤서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편 추진력 있게 일하니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난관을 뚫고 가다 보면, 뚫리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나를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괜히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하고 싸우자며 덤벼드는 존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장애물을 “사탄, 마귀, 귀신”으로 정의내립니다. 요즘 들어 그들의 장난질이 대단합니다. 사실 늘 있어왔는데 심해진 것입니다. 자꾸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며 일 못하게 만드는 어둠의 존재들. 그래도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승리했음을 믿고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갑니다.
2011년, 교회개척을 했습니다. 개척예배 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바쁜 중에도 자리를 빛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사역하겠습니다. 제 모교회보다 더 부흥하겠습니다.” 성도 한 명 없는 개척교회가 1,500명 규모의 교회에게 도발한 것입니다. 허풍과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 됐다고 나는 믿습니다. 후원자로부터 후원만 받는 게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교제하는 관계, 기도와 중보를 하는 관계입니다. 후원자가 병이 걸렸거나 큰일이 닥쳤을 때 간절히 기도해줍니다. 장례가 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위로합니다. 지금도 부산에 사는 후원자가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KTX 타고 가는 중입니다. 항상 후원자들에게 고맙고 감사합니다. 후원자, 당신을 위해 중보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학생들에게 시청각 자료로 동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수업시간에 딴짓하고, 꾸벅꾸벅 졸고, 장난치면 장성해서 일용직노동자가 되고,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면 장성해서 상류층 사회를 이루며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란 내용입니다. “잠 안 자고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성공하여 사람을 부릴 수 있고, 지시할 수 있으며, 높은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란 동영상을 공교육 교실에서 시청각 자료로 틀어주고 있습니다. 공부를 독려하는 건데 보면 볼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수단만을 강조하는 행태가 중국사회에 만연해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슬퍼지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는 판사, 검사, 변호사도 필요하지만 일용직근로자도 필요합니다. 그들이 있어야 아파트도, 공장도 지을 수 있습니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많은 소작농이 죽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할 수 없이 지주들은 돈을 더 들여 노예나 사람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값이 올라간 것입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용직근로자들이 없으면 인플레이션 등의 사회혼란이 찾아올 것입니다.
호주에서는 배관공이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작업복을 입은 채 지하철을 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객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엔지니어나, 근로자들을 우대하는 사회가 호주, 캐나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입니다. 그래서 인기 게임 “슈퍼마리오”가 나온 것입니다. 캐릭터의 직업도 하수구 배관공입니다. 실제로 변호사 못지않게 연봉을 받는 직업입니다. 우리 사회도 이들을 우대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회풍토를 꿈꿔봅니다.
나는 과거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교수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많이 배운 박사, 교수들은 점잖고 우아하게 모임을 가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노래방 가고, 술 먹고,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상류층 모임이나 하류층 모임이나 노는 건 똑같았습니다. 도긴개긴,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없습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합니다. 내가 많이 접하게 되는 부류가 일반적으로 하층민들입니다. 돈 없고, 빽 없고,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칩니다. 그들의 과거는 화려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양보와 배려를 배우게 됩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걸 배웁니다. 이런 이유로 급식소를 이용하는 노숙자, 독거노인, 결손아동, 소외계층들이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이들에게 후원하는 후원자가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정기봉사자에게 “봉사하면 힘들지 않냐?”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속에서 기쁜 마음이 샘솟습니다. 보람과 희망 같은 게 깊은 데서부터 올라옵니다.”라고 말해줍니디. 누가 누구를 무시하고 무시 당하고, 지시하고 지시 당하고, 명령하고 명령 당하고, 괄시와 멸시하고 그걸 당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한 인격체로서의 존중과 인정과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우리 교회에 농아(聾啞)인이 출석합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걸 못 듣습니다. 듣지 못하니 말도 못합니다. 이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왔다는 게 기적입니다. 축복입니다. 이 사람이 귀합니다. 모든 교회 식구가 이 사람을 극진하게 대합니다. 이 사람 때문에 교회가 하나가 됐습니다. 8세 첫째 아들에게도 당부했습니다. “유주야, 우리교회 말 못하는 성도 있잖아. 그분에게 인사 잘해야 돼. 일부러 다가가서 말도 걸고, 사탕이나 껌도 나눠주고… 그렇게 할 수 있지?” “아빠가 말 안 해도 그렇게 하고 있었어.”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끊임없이 일합니다. 일주일내내 일합니다. 쉬는 날 없이 일합니다. 마치 소처럼 일합니다. 쉴 새 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습니다. 열심히 땀 흘리며 움직이는 모습에 감동하는 후원자가 많습니다. SNS에 일하는 모습을 올리면 후원이 더 들어옵니다. 불문율(不文律)입니다. 그래서 가끔 내 모습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주하면 역효과가 납니다. 내 의(義)를 드러내는 것 같고, 자랑이나 인본주의 같아서 일부러 자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민은 물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SNS에 노출되지 않았을 뿐,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인생 한 눈 팔지 않고 일해왔습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세계 유수의 회사보다 후발주자였습니다. 기술력이 없어서 불량품이 많았습니다. “저렴한 차는 현대”라 낙인찍혔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구입하는 차였습니다. 다른 기업의 먹잇감으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직원의 헌신과 기술혁신을 이뤄내 현재는 세계적인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급식소도 처음에는 형편없었습니다. 볼품없었습니다. 사람들도 우리에게 관심갖지 않았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생긴 단체가 많았습니다. 전화해서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미친듯이 앞만 보고 일해왔습니다.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 따윈 버린지 오래였습니다. 내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재정면이나 규모면에서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후원자 여러분, 처음 가졌던 마음 변치 않겠습니다. 잘못된 판단 하나 때문에 그동안 일궈낸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 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겠습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하겠습니다. -- “김치가 없습니다”란 글을 읽자마자 김치를 사준 분이 있습니다. 안산에서 김연주 선생님, 인스타그램 친구인 김유나, 김아영 선생님께서 김치를 보내왔습니다. 며칠은 버틸 수 있게 됐습니다. 한시름 났습니다. 항상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주는 당신이 있어 행복하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김치대란입니다. 품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어디서도 김치를 주문할 수가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김치없인 못 삽니다. 매일 배식 돼야 합니다. 김치가 그날 밥맛을 좌우합니다. 항상 신선하고 좋은 김치만 대접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실정입니다. 큰일입니다.
명절 전후로 이용자가 줄어듭니다. 집에 남아있는 음식 때문인지 급식소를 찾는 분이 적어집니다. 한동안 그렇다가 회복됩니다만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멤버 이용자가 존재합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함없이 우리 급식소를 찾아줍니다. 아침, 점심, 저녁 무료급식에 개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끈끈하고 애틋한 관계가 됐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관계입니다. 이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우리가 무료급식을 준비하는 흥이 나고, 맛있게 먹어주는 것 때문에 또 다시 흥이 납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먹어주는 사람이 없거나, 맛 없다며 불평한다면 다음부턴 하기 싫어집니다. 무료급식소를 애용해주는 모든 이용자에게 항상 고마움 마음입니다.
구청장이 되려면 공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행정고시도 합격하고 똑똑해야 합니다. 인격도 완벽해야 부하직원이나 상사에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구청장님이 우리 급식소에 정기적으로 봉사하러 옵니다. 아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봉사하고 갑니다. 나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척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본받고 싶은 분입니다. -- 예상외로 떡꼬치와 피자와 빵을 굉장히 좋아하는 어르신들입니다. 어제는 반올림피자 남양점 사장님께서 남양읍 어르신들을 위해 피자를 대접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정관변경이 거의 마무리 됐습니다. 세무서에서 새 고유번호증을 받으면 끝입니다. 과정의 99%까지 온 셈입니다. 길고 긴 과정이었습니다. 명의로 도움을 준 회원에게 모든 결과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외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말씀해주십시오.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정관변경 과정에서 경기도청 주무관의 현장실사가 있었습니다. 방문하여 인터뷰를 했습니다. 질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왜 이 단체는 1년 수입과 지출이 딱 맞아떨어집니까?” “십시일반 후원으로 꾸려가는 단체입니다. 후원자의 후원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금액이 있는데 그때마다 교회 헌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운영하다보면 항상 돈에 쪼들립니다. 그 부족분을 교회에서 메웁니다. 그래서 수지결산서가 딱 떨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쌓아두지 않고, 남겨두지 않습니다. 뒷호주머니 차지 않습니다.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전했습니다. 주변이 LH임대아파트로 둘러싸였습니다. 이용자가 접근하기 편리한 곳입니다. 버스와 택시 정류장이 코앞입니다. 교통편이 좋습니다. 냉난방도 좋고 수돗물도 콸콸 나옵니다. 봉사자 동선도 편해졌습니다. 이용자와 봉사자 모두 만족합니다. 전에 있던 곳은 장마 때마다 지붕이 내려앉아 중간에 지지대를 설치했습니다. 볼품 없었죠. 물도 쫄쫄 나왔고,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건물이 낡아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그래도 불편한 것도 모르고 9년을 있었네요. 정들었던 장소입니다. 하지만 대표인 나만의 고민이 있습니다. 환경은 좋아졌는데 후원이 줄었습니다. 전에는 연민과 동정으로 후원했다면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습니다. 사실 이용자와 봉사자는 똑같은데 말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는데 후원만 줄었습니다. 오히려 새 건물이기 때문에 월세, 관리비가 예전보다 비싸졌습니다. 나가는 고정지출이 상당합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근데 후원만 줄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똑같이 연민의 눈으로 바라봐주십시오. 불쌍하게 봐주면 좋겠습니다. 소액이라도 괜찮습니다. 정기적으로 후원해주면 큰 힘이 됩니다.
우리 아내와 나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내 과거와는 달리 아내는 풍족하게 자랐습니다. 부요하지는 않지만 중산층답게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생활양식이 다릅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는 편인데 아내는 그런 면이 나보다는 덜 합니다. 개척하고 많이 빈궁했을 때, 아내와 매일 싸웠습니다. 돈 때문에 많이 다퉜습니다. 느릇한 남편을 보면서 속이 뒤집어졌을 겁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해주실 겁니다.”라고 말하던 남편이 무능해보였을 겁니다. 나는 작은 것에 대단한 만족감을 느끼고 자족할 줄 아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없어봤기 때문에, 더이상 그 어떤 힘든 일이 내 앞을 가로막더라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아내도 남편에게 세뇌되어 갑니다. 가스라이팅 됐습니다. 나는 작은 것에 대한 감사와 은혜와 만족과 자족을 할 줄 압니다. -- 꼬마 후원자가 서울에서 급식소를 방문했습니다. 정말 귀한 후원자입니다. 이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길 기도합니다.
20,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삽니다. 자본주의라고도 부릅니다. 모든 문제를 헤겔의 정반합(正反合) 3단 논법으로 처리합니다. 대의정치 대한민국, 유권자가 주인 된 나라, 누구나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것을 경청해주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때보다는 좋은 시대입니다. 자신의 신념과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지 가능성이 주어지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또 제20조 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대한민국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입니다. 북한과 같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참으로 좋은 나라,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한 순국선열들과 민주주의 열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시대에 태어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것도 시대를 잘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공부했고, 지역을 파악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연구했습니다. 국가의 팔이 닿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적극 나섰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책상에만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발로 뛰었습니다. 시대의 필요를 캐치했고, 요구에 응답했습니다. 타인보다 먼저 움직였고, 먼저 생각했습니다. 화성시 서부지역은 발전이 더디고 낙후됐습니다. 사회 기반시설이 전무했고, 독거노인이 많았으며 젊은이가 빠져나갔던 곳입니다. 무료급식이 우리에게 맞는 사역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한 우물만 팠습니다. 더 좋은 곳, 더 편한 곳이 어디 없나 기웃거리지 않았습니다. 죽자 사자 무료급식만 매달렸습니다. 목숨을 걸었습니다. 내실을 다졌습니다.
어떤 공동체든 파레토법칙(2:8법칙)이 존재합니다. 구성원의 20%가 나머지 80%를 이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법칙에서 빗나갑니다. 내 말 한마디에 모든 공동체가 하나로 단결합니다. 무섭게 똘똘 뭉칩니다. 꼭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같습니다. 북조선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어떤 난관과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어도 하나가 되어 미션클리어를 이뤄냅니다. 반드시 힘을 모아 끝내고야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무료급식소 이용자, 봉사자, 후원자, 교회성도, 가족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모든 구성원에게 감사드립니다. -- 추석 때 소외청소년을 위한 후견인이 결손아동에게 선물하라며 10만원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맛있는 고기를 사들고 갔습니다. 후원해준 후견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무나 못하는 선행을 하셨어요.
“급식소 차량구입을 위한 바자회”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성대하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함께해준 모든 분에게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베풀어준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차량을 구입하면 제일 먼저, 후원자명단을 랩핑할 생각입니다. 2024년 9월 6일, 현재까지 후원자 명단은 아래와 같고, 후원금 총액은 10,250,000원입니다. 그래서 엊그제 가계약을 하고 왔습니다. 선수금으로 1500만원을 넣고, 나머진 할부로 구입하고 싶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차량구입을 위한 후원금을 계속 받습니다. 1만원도 괜찮습니다. 티끌모아 태산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계좌번호는 기업은행 : 927-023991-04-010 더불어사는우리 후원한 모든 것은(금전/현물) 국세청 홈택스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에 기부금액이 자동반영 됩니다.
석유왕 록펠러와 그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록펠러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세계 1위 부자가 됐습니다. 그의 후손들을 조사해보니 부통령이 한 명, 교수, 의사, 법조인 등 다수가 사회의 저명인사가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그의 자손도 통계를 내보니 자살자, 범법자, 정신이상자 등 사회의 해악자가 다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가문,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한다. 집안 형편이 안 좋은 곳에 결혼도 가면 안 된다.”라 말합니다. 이게 현대판 우생학(優生學)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환경에서 나쁜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싹수부터 구별해서 버릴 건 빨리 버리자. 우성(優性)과 열성(劣性) 유전자 중에 우성만 취하자라는 게 우생학의 기본사상입니다. 20세기 초부터 발달한 이 사상은 생물학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유전자를 변형하여 이종교배로써 한 식물 안에 뿌리는 감자, 열매는 토마토를 재배하는 기술을 개발하였고, 점차 영국왕실에서 애완견의 품종개량으로 전이된 것입니다. 종국에는 인간에게까지 눈을 돌리게 됐는데, 우생학에 심취해있던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그는 독일의 게르만족만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믿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죽어도 된다고 신봉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600만명이 학살당한 것입니다. 히틀러 입장에선 유대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장애인, 가난한 사람, 병든 노인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무관한 존재라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머릿속에는 김성민은 없어도 될 존재입니다. 나는 아시아인이고 장애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무서운 사상이 우생학입니다. 현재도 이 사상은 잔존해있습니다. 금수저, 흙수저, 신분계급, 개근거지, 서열주의 등이 한국사회를 좀먹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습니다. 집에 쌀이 없을 때가 많았고, 교회에서 주는 성미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외식 한번을 못했고, 평생 여름휴가를 가본 일이 없습니다. 집에 돈이 없었으며, 재테크도 몰라 돈이 모아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소, 돼지를 잡아주는 일을 해서 조금 모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직업을 조선시대 땐 백정이라 불렀죠. 어쨌든 자그마한 정육점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지혜가 없어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모든 재산이 한번에 날아가버렸습니다. 1997년 겨울, 아직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추웠던 겨울, 남의 땅에 비닐하우스를 처서 살았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추운 게 너무너무 싫습니다. 이때 기억이 나서 싫습니다. 눈물 나게 가난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나까지 대대로 경계성지능장애를 가진 게 틀림없습니다.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셉니다. 아이큐가 100 이하입니다.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 힘겨운 지능을 가졌습니다. 한 가문이 몽땅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의문이 듭니다. 우리 아버지는 일주일 중에 7일을 술을 먹고 퇴근했습니다. 고주망태인 상태에서 교회서 성가대 연습 중이던 어머니 머리채를 끌고 집에 오던 분입니다. 시골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우리집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족은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며, 이 사회에 꼭 있어야 할 존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무료급식 하는데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1등 공신입니다. 교회 일이라면 손발 벗고 적극 나서주는 부모님입니다. 비록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루저(Loser)였던 우리 가족, 구제불능이었던 우리 가족, 아이큐 낮은 김성민,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김성민의 가족을 써주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변곡점이 있습니다. 사강감리교회 김길수 목사님을 만나서부터 우리 가정이 살아났습니다. 우리 식구를 거둬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찰(교회 관리일)로 있게 했습니다. 우린 점점 형편이 좋아졌고, 좋은 반찬과 외식도 가능했습니다. 휴가도 갈 수 있었습니다. 대학 학비를 내주었고, 방송실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최신 장비와 컴퓨터를 만져 불 수 있는 기회가 주워졌고, 그때부터 컴퓨터와 친해졌습니다. 예부터 이런 말이 있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모를 것이다.” 지독히 가난했던 사람을 살려준 사람이 김길수 목사님이기에 그 은혜를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족은 늘 목사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여 멀리 떨어져있지만 그래도 1년에 두 번씩 인사하러 갑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이럴 겁니다. 스승 목사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죠. 그러나 우리 가족만큼은 절대 싫어할 수 없습니다. 배은망덕한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를 보고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김길수 목사님 편입니다. 한 길만 우직하게 가는 성격을 목사님께 배웠기 때문입니다. 배신하지 않는 김성민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묻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길수 목사님은 잘 계시죠?” 이제 세상 사람들도 나와 김길수 목사님이 가깝다는 걸 알고 있나 봅니다.
요즘 바자회에 미쳐있습니다. 일편단심 바자회 생각뿐입니다. 퇴근해서 옷을 벗으면 걸레가 돼 있습니다. 완전 땀에 젖어 형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무료급식소 차량구입을 위한 바자회”를 열겠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뭔가 보여줘야 했습니다. 후원자에게 우리의 노력과 열정을 보여줘야 했고, 감동을 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쳐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차가 생긴다는 마음에 눈이 번쩍 떠집니다.
나는 운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신호에 의해 정차할 땐, 앞차와 멀찌감치 떨어져 정차합니다. 절대 바싹 대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차는 내 차보다 비싸다”란 일념으로 운전대를 잡습니다. 뒷차가 박으면 앞차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정차합니다. 나는 돈이 없기 때문에 외제차 잘못 걸리면 인생 망하겠다는 철칙으로 살아갑니다. 비싼 차를 타본 역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것을 소중히 다루며 아낄 줄 압니다. 그리고 조심하며 운전합니다.
관계란, 맺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어렵습니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습니다. 바자회를 하면 새로운 후원자가 생깁니다.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게 나의 숙제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일을 합니다. 근데 나는 이걸 잘합니다. 절대 잘난 척이 아닙니다. 큰소리 칠 수 있습니다. 우리 단체와 관계를 맺으면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내가 만듭니다. 당신의 후원금이 깨끗하고 정직한 곳에, 투명하고 바른 곳에 쓰이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줍니다. 자꾸 인식시킵니다.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정평이 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기획재정부, 국세청, 경기도청, 화성시청, 공익단체, 지정기부금단체, 집단급식소, 이 모든 게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구린 데가 있으면 이렇게 말 못하죠. 그러니 안심하고 후원해주십시오.
미국사회는 독특합니다. 어떤 미국사람이 일요일에 교회를 가려고 채비했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늦은 것입니다. 급한 마음에 신호를 어겼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경찰에게 걸린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방금 신호위반을 했습니다. 왜 한거죠?” “저,,,, 사실 교회를 가려다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다음부턴 조심하십시오.” 범칙금을 안 끊고 그냥 보내줬습니다. 미국사회는 청교도신앙과 정직을 기반으로 세운 나라입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정직하게 말했던 게 범칙금을 끊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우리 단체도 정직을 기반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인도 정직 때문입니다.
한 달 전, 급식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개씨가 인터넷에 급식소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시청에 민원도 넣었습니다. 파장이 컸습니다. 왕년에(물론 현재도) 굉장히 잘 나갔던 사람이더군요.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입니다. 공무원들이 꾸뻑할 정도의 위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비방글을 올렸으니 파장이 클 수밖에요. 게시물에 댓글 단 사람도, “좋아요” 단 사람도 많았습니다. 비방에 동조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우리를 방어해줬던 몇몇 분들이 있었습니다. 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그렇게 댓글을 달아준 게 고맙더군요. 이분들 한 분, 한 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너무 고마워서 휴대폰에 캡처해놨습니다. 물론 이 편, 저 편 들지 않고 가만히 주시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 우리 편이 되어준 사람들에게 정말 고맙더군요. 그래서 평생 잊지 않으려고요. 나는 컴퓨터를 잘 고칩니다. 이분들에게 “평생 무료 PC 수리권”을 주고 싶네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김성민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변함없이 끝까지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