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학생들에게 시청각 자료로 동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수업시간에 딴짓하고, 꾸벅꾸벅 졸고, 장난치면 장성해서 일용직노동자가 되고,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면 장성해서 상류층 사회를 이루며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란 내용입니다.
“잠 안 자고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성공하여 사람을 부릴 수 있고, 지시할 수 있으며, 높은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란 동영상을 공교육 교실에서 시청각 자료로 틀어주고 있습니다.
공부를 독려하는 건데 보면 볼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수단만을 강조하는 행태가 중국사회에 만연해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슬퍼지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는 판사, 검사, 변호사도 필요하지만 일용직근로자도 필요합니다.
그들이 있어야 아파트도, 공장도 지을 수 있습니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많은 소작농이 죽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할 수 없이 지주들은 돈을 더 들여 노예나 사람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값이 올라간 것입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용직근로자들이 없으면 인플레이션 등의 사회혼란이 찾아올 것입니다.
호주에서는 배관공이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작업복을 입은 채 지하철을 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객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엔지니어나, 근로자들을 우대하는 사회가 호주, 캐나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입니다.
그래서 인기 게임 “슈퍼마리오”가 나온 것입니다.
캐릭터의 직업도 하수구 배관공입니다.
실제로 변호사 못지않게 연봉을 받는 직업입니다.
우리 사회도 이들을 우대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회풍토를 꿈꿔봅니다.
나는 과거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교수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많이 배운 박사, 교수들은 점잖고 우아하게 모임을 가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노래방 가고, 술 먹고,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상류층 모임이나 하류층 모임이나 노는 건 똑같았습니다.
도긴개긴,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없습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합니다.
내가 많이 접하게 되는 부류가 일반적으로 하층민들입니다.
돈 없고, 빽 없고,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칩니다.
그들의 과거는 화려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양보와 배려를 배우게 됩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걸 배웁니다.
이런 이유로 급식소를 이용하는 노숙자, 독거노인, 결손아동, 소외계층들이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이들에게 후원하는 후원자가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정기봉사자에게 “봉사하면 힘들지 않냐?”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속에서 기쁜 마음이 샘솟습니다. 보람과 희망 같은 게 깊은 데서부터 올라옵니다.”라고 말해줍니디.
누가 누구를 무시하고 무시 당하고,
지시하고 지시 당하고,
명령하고 명령 당하고,
괄시와 멸시하고 그걸 당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한 인격체로서의 존중과 인정과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우리 교회에 농아(聾啞)인이 출석합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걸 못 듣습니다. 듣지 못하니 말도 못합니다.
이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왔다는 게 기적입니다. 축복입니다.
이 사람이 귀합니다.
모든 교회 식구가 이 사람을 극진하게 대합니다.
이 사람 때문에 교회가 하나가 됐습니다.
8세 첫째 아들에게도 당부했습니다.
“유주야, 우리교회 말 못하는 성도 있잖아. 그분에게 인사 잘해야 돼. 일부러 다가가서 말도 걸고, 사탕이나 껌도 나눠주고… 그렇게 할 수 있지?”
“아빠가 말 안 해도 그렇게 하고 있었어.”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