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카테고리 없음 2024. 9. 5. 17:01

석유왕 록펠러와 그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록펠러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세계 1위 부자가 됐습니다.
그의 후손들을 조사해보니 부통령이 한 명, 교수, 의사, 법조인 등 다수가 사회의 저명인사가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그의 자손도 통계를 내보니 자살자, 범법자, 정신이상자 등 사회의 해악자가 다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가문,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한다. 집안 형편이 안 좋은 곳에 결혼도 가면 안 된다.”라 말합니다.
이게 현대판 우생학(優生學)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환경에서 나쁜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싹수부터 구별해서 버릴 건 빨리 버리자.
우성(優性)과 열성(劣性) 유전자 중에 우성만 취하자라는 게 우생학의 기본사상입니다.
20세기 초부터 발달한 이 사상은 생물학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유전자를 변형하여 이종교배로써 한 식물 안에 뿌리는 감자, 열매는 토마토를 재배하는 기술을 개발하였고, 점차 영국왕실에서 애완견의 품종개량으로 전이된 것입니다.
종국에는 인간에게까지 눈을 돌리게 됐는데, 우생학에 심취해있던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그는 독일의 게르만족만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믿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죽어도 된다고 신봉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600만명이 학살당한 것입니다.
히틀러 입장에선 유대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장애인, 가난한 사람, 병든 노인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무관한 존재라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머릿속에는 김성민은 없어도 될 존재입니다.
나는 아시아인이고 장애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무서운 사상이 우생학입니다.
현재도 이 사상은 잔존해있습니다.
금수저, 흙수저, 신분계급, 개근거지, 서열주의 등이 한국사회를 좀먹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습니다.
집에 쌀이 없을 때가 많았고, 교회에서 주는 성미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외식 한번을 못했고, 평생 여름휴가를 가본 일이 없습니다.
집에 돈이 없었으며, 재테크도 몰라 돈이 모아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소, 돼지를 잡아주는 일을 해서 조금 모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직업을 조선시대 땐 백정이라 불렀죠.
어쨌든 자그마한 정육점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지혜가 없어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모든 재산이 한번에 날아가버렸습니다.
1997년 겨울, 아직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추웠던 겨울, 남의 땅에 비닐하우스를 처서 살았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추운 게 너무너무 싫습니다. 이때 기억이 나서 싫습니다. 눈물 나게 가난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나까지 대대로 경계성지능장애를 가진 게 틀림없습니다.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셉니다. 아이큐가 100 이하입니다.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 힘겨운 지능을 가졌습니다.
한 가문이 몽땅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의문이 듭니다.
우리 아버지는 일주일 중에 7일을 술을 먹고 퇴근했습니다.
고주망태인 상태에서 교회서 성가대 연습 중이던 어머니 머리채를 끌고 집에 오던 분입니다.
시골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우리집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족은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며, 이 사회에 꼭 있어야 할 존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무료급식 하는데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1등 공신입니다. 교회 일이라면 손발 벗고 적극 나서주는 부모님입니다.
비록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루저(Loser)였던 우리 가족, 구제불능이었던 우리 가족, 아이큐 낮은 김성민,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김성민의 가족을 써주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변곡점이 있습니다.
사강감리교회 김길수 목사님을 만나서부터 우리 가정이 살아났습니다.
우리 식구를 거둬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찰(교회 관리일)로 있게 했습니다.
우린 점점 형편이 좋아졌고, 좋은 반찬과 외식도 가능했습니다. 휴가도 갈 수 있었습니다.
대학 학비를 내주었고, 방송실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최신 장비와 컴퓨터를 만져 불 수 있는 기회가 주워졌고, 그때부터 컴퓨터와 친해졌습니다.
예부터 이런 말이 있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모를 것이다.”
지독히 가난했던 사람을 살려준 사람이 김길수 목사님이기에 그 은혜를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족은 늘 목사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여 멀리 떨어져있지만 그래도 1년에 두 번씩 인사하러 갑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이럴 겁니다.
스승 목사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죠.
그러나 우리 가족만큼은 절대 싫어할 수 없습니다. 배은망덕한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를 보고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김길수 목사님 편입니다. 한 길만 우직하게 가는 성격을 목사님께 배웠기 때문입니다. 배신하지 않는 김성민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묻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길수 목사님은 잘 계시죠?”
이제 세상 사람들도 나와 김길수 목사님이 가깝다는 걸 알고 있나 봅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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