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24.03.15 방송인 홍진경 2
  2. 2024.03.13 장보기
  3. 2024.03.12 셰퍼트 5
  4. 2024.03.12 후원자
  5. 2024.03.11 하나님의 각본
  6. 2024.03.06 기도습관
  7. 2024.03.05 생활의달인
  8. 2024.03.04 우리 가족 이야기 1
  9. 2024.03.01 졸작

모든 학교가 개학하는 계절이 오면 봉사자는 급감합니다.
요 며칠사이 극심한 봉사자난에 허덕였습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제시간에 겨우 해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급하면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어르신을 모시고와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면 흔쾌히 도와줍니다.
각자 식판도 각자 알아서 잔반처리 합니다.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감사하면서도 감동받습니다.
--
방송인 홍진경은 가난한 집에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동생을 먹여살려야 된다는 일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우연히 SBS슈퍼모델 선발대회에 출전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남들처럼 화려한 의상디자인을 연출 할 수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동네 미용실에 데려가 한껏 꾸며줬습니다.
누가 봐도 촌티났고 싼티가 물씬 풍겼습니다.  
당연히 1~3위 입상은 물건너 갔습니다.
심사위원이 보기에 독특했는지 “베스트포즈상”을 줬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입상에 오른 언니들은 방송스케줄로 바빴습니다.
홍진경은 언니들의 짐을 들어주며 따라다녔습니다.
틈나는 대로 방송에 출연해보려고 애썼는데 얼마나 열심이었으면 당시 톱스타였던 이영자 눈에 들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한편 어머니의 손맛은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김치맛은 온동네가 알아줬습니다.
김장을 하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습니다.
홍진경이 엄마한테 말합니다.
“엄마, 우리 김치장사 한번 해볼래요?”
“안돼, 동네에서만 칭찬받는 거지. 전국으로 팔았단 욕먹어.”
엄마의 솜씨만 믿고 김치장사를 시작합니다.
판로 개척이 관건이었습니다.
당시 홈쇼핑이 대세라 아는 홈쇼핑방송국을 전부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퇴짜 맞기 일쑤였습니다.
한 방송국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홍진경의 솔선수범한 모습을 보고 한 관계자가 황금시간대를 허락한 것입니다.
결국 전량 매진이라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제서야 타 홈쇼핑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홍진경은 모두 거절합니다.
의리를 지킨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 NGO단체에 홍보대사를 맞고 있고, 남몰래 선행도 많이 하며,
“최진실사단”이라 불릴 정도로 우정과 의리를 지닌 개념있는 연예인으로 손꼽힙니다.
악성고객의 민원에 타협이 아닌 전국 어디나 직접 찾아가 단판을 짓는 성격.
한 번의 타협은 쉽지만 그 대가는 크다는 일념으로 불의에 대해 단호했던 홍진경을 응원합니다.
스승목사님이 누차 하는 말이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마세요. 그러면 더 축복받을 것입니다.”
나도 홍진경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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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기

카테고리 없음 2024. 3. 13. 11:45

장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물가가 치솟았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만 일정시간이 흐르면 다시 물가는 안정화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문제가 큽니다.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전과 똑같이 식재료를 구입합니다.
그런데 양은 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용자가 반찬을 리필해달라면 예전엔 듬뿍듬뿍 수북이 줄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마저 못합니다.
야속하고 야박해도 할 수 없습니다. 다음 이용자를 위해 남겨둬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저소득층이나 빈민들이 느끼는 체감은 더 가혹합니다. 지금 서민층들은 말도 못하게 힘듭니다.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있습니다.
이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세계경제가 어두웠고, 전쟁이 났습니다. 환경오염으로 기후가 바뀌었습니다.
곡물값과 기름값이 치솟았습니다.
누구 하나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OECD회원국 중에 노인빈곤율이 최고라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모두 폐지를 줍고 다닙니다.
수원역 육교를 가보니 구걸하는 사람이 즐비했습니다.
설상가상 신생아출생율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보다 저조한 0.6%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미래가 어둡습니다.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굴레로 내몰렸습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말도 않겠습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주위에 진짜 불쌍한 사람들 많습니다.  
급식소 현장에 있으면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나에게 묻습니다.
“목사님, 만나무료급식소는 후원 많이 받죠?
인터넷을 보니 많이 받는 것 같던데요.”
이 질문을 받고 “많이 받는다”, 아니면 “조금 받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은
이 어려운 시국에 후원의 손길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겁니다.
해도해도 부족한 게 우리 단체 재정입니다.
들어오는대로 모두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이 후원해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후원하는 사람이 전부 일반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결손아동한테만 후원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어르신들에게 후원하고 싶어요.”
“나는 노력도 안 하는 사람한테 퍼주는 건 싫습니다. 진짜 불쌍한 사람을 알려주세요. 그러면 내가 돕겠습니다.”
정말 다양합니다.
그런 후원자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게 내가 하는 일입니다.
후원자의 성격과 특징을 빨리 파악해서 그것에 맞게 선행을 돕는 일을 합니다.
10년을 이렇게 일해왔습니다.
어느 분야나 10년을 일하면 전문가가 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전문가입니다.
후원자 여러분, 아무 염려말고 믿고 후원해주십시오.
만나무료급식소에 후원하면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럴 자신 있습니다.
난 후원자, 당신의 전문가이니까요.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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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트

카테고리 없음 2024. 3. 12. 21:12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밥만 짓는 곳이 아닙니다.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절대 가볍게 생각해선 안됩니다.
시청과 도청, 유관시설을 밥 먹 듯 들락거려야 합니다.
행정서류가 한 개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전부 구비해있어야 합니다. 기준이 까다롭습니다.
요즘 같으면 차라리 속 편하게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곳이 낫겠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 사명과 비전 때문에 다시 일어납니다.
어떤 난관들이 도처에 깔려있어도, 막다른 길에 봉착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셰퍼트 같이 물고 절대 놓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까지 갈 겁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아내가 생명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수익자를 남편으로 하고 들었습니다.
또 작은 액수지만 첫째 아이를 위한 청약적금도 하나 들었습니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아동수당이 나왔습니다. 둘째아이가 이 혜택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다른데 쓰지 않고 고스란히 이자율 높은 새마을금고에 적금했더랬습니다.
정기적으로 저금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모아둡니다.
옛날 어른들이 지폐가 생길 때마다 장판 밑에다 정성스레 모아뒀던 것처럼 그렇게 모읍니다.
투자를 할 줄도, 주식이나 코인도 모릅니다.
그냥 검소하고 청빈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권력이나 재력을 뽐내면서 아주 호화롭게 거들먹거리며 살아간다면 후원자들 다 떨어져 나갈 겁니다.
떵떵거리게 살면 무료급식소 금방 망할 걸 알기에 더욱 조심합니다.
무소유을 외치며 살지 못하겠습니다. 처자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풀소유도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에 대해 깨끗하고 정정당당하자는 주의입니다.
돈의 구분만 잘해도 사회면 뉴스에 나올 일은 없습니다.
금융감독원 안에 있는 슈퍼컴퓨터가 내 계좌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고 있겠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우리의 후원자 중에 검사도 있고, 경찰, 공무원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단체로 만들어가겠습니다.

요즘 은행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적금, 저금, 보험 전부 해약했습니다.
아이들 것도, 아내의 생명보험도 다 깼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처가에서도 돈을 조금 보탰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전부 한 곳으로 모았습니다.
더열린교회 건축과 무료급식소 사무실 건축 때문입니다.
모아 봤자 건축비의 1/10도 안 되지만 그래도 힘 닿는 한 움직여봐야 할 것 같아서요.
옛날 건축과 요즘 건축은 다릅니다.
옛날 건축은 돈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통장에 돈이 얼만큼 있어야 시청에서 착공계를 내줍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한풀 꺾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담만 하고 있지 않겠습니다.
끈임없이 방법을 모색하겠습니다.
돈이 없는 관계로 “직영건축”으로 하려 합니다.
아버지께서 교회를 지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교회 증축도 맡아봤습니다.
비록 어깨너머 배운 것이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을 소유했습니다.
전에 아버지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하나 둘 모으는 중입니다.
건축계의 어벤져스를 모으는 중입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 목사님은 건축비만 준비하세요. 내가 죽기 전에 이것만은 꼭 짓고 하늘나라 갈테니.”
건축비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기적을 바라봅니다.

우리 삼촌이 있습니다.
모(母)교회에서 차량운행을 하고 월급을 받았습니다.
교회소속으로 차량관리 실무담당자였습니다.
그러나 평일에는 교회부설 어린이집에서 아침저녁으로 차량운행을 했습니다.
교회 차량기사와 어린이집 차량기사, 두 가지 겸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만 월급을 받았고 어린이집에서는 월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걸 아는 사람들만 우리 삼촌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돈에 욕심없이 묵묵히 일해온 사실을 아는 사람만 삼촌을 달리봤습니다.
나는 더열린교회를 섬기면서 무료급식소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회 사례비를 받지 않습니다.
교회가 돈이 없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받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아내가 조리사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따라서 시청에서 조리사에게 주는 것과 경리비를 받습니다.
욕심을 버리니 넉넉하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가 땅을 사고 건축을 한다니 세상 사람들이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성도도 나가버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건축 절대 못해, 그러다 죽지 죽어, 내가 건축하다 죽은 목사들 많이 봤어.” 이렇게 말하고 가버렸습니다.
처음엔 이 말이 야속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니 전부 맞는 말입니다.
그들이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이었습니다.
조금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래요.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우리교회가 무슨 건축을 한단 말입니까?
맨날 돈이 없어 쩔쩔매면서 건축한다고 깝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은 게 있는데,
사람과 환경을 보면 부정적인 말이 맞습니다만,
하나님의 위대한 시선으로 봤을 땐 거뜬히 해낼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간과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 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무진장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겁니다.
잠잠하십시오.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습 1:7)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였더라(왕상 6:38)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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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카테고리 없음 2024. 3. 12. 12:58

더열린교회는 독립교회연합회 소속입니다.
교단에 소속돼있지 않고 연합회에 소속돼있습니다.
교회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제공받기에 터를 이쪽으로 잡았습니다.
타 교단처럼 목회자나 교회끼리 모임활동은 드물지만 나름 만족하며 지냅니다.
무료급식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외로울 때도,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후원자들이 있어 힘을 받습니다. 나에게 힘을 줍니다. 격려해주고 위로해줍니다.
나에겐 후원자들이 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순간을 감사하며 지내겠습니다.

2008년, 아버지께서 종교부지에 교회건축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는 모(母)교회 방송실장을 맡고있었기에 방송시스템을 점검하러 건축에 참여했습니다.
업자들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동시다발로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교회 간판을 담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다함께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돌아가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판가게 사장님 차례가 됐습니다.
목사님은 다음과같이 소개했습니다.
“이 사장님은 내가 양평군 작은 시골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을 때 교회학교 어린이로 만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간판집 사장님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옛날 스승님을 다시 만났다는 감격에 교회에 필요한 모든 간판을 해주셨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았던 간판집 사장님을 나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나는 부교역자가 됐습니다.
부임한 교회에서 우연히 낯익은 사람을 보게 됐습니다.
간판집 사장님이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교회에서 날 먼저 알아봐주던 고마운 사장님.
이후로 내 일이라면, 또 무료급식소 일이라면 손발 벗고 적극 나서주는 사장님이 됐습니다.
가장 오래된 정기후원자이자 가장 많이 후원하는 사장님입니다.
더열린교회와 만나무료급식소 간판과 홍보물을 전부 무료로 해주는 사장님,
14년을 한결같이 후원하고있는 안산 기획원이 사장님,
이상규 권사님과 이경애 권사님 이야기였습니다.
--
“목사님은 발로 뛰어다니잖아요. 그래서 신발 보냅니다.”라며 비싼 운동화를 사준 분이 있습니다.
GS25편의점(원곡신천로점) 조경식 장지연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후원자들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뛰어다녔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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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에서 일하는 게 재밌습니다.
적성에 맞습니다.
여기가 내 자리인 듯합니다.
지루하거나 따분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스릴 넘칩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롭습니다.
교실은 선생님이 있어야 하고, 병원은 의사가 있어야 하듯 나는 급식소에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정치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법을 다루는 사람도 존재해야 합니다.
식당 사장님도 있어야 하고, 불쌍한 사람들에서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모두 제자리를 지켜야하듯 나는 이곳을 지킬 것입니다.
여기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항상 만족하며 내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
우리 가족은 한평생 눈치만 보며 살았습니다.
집이 가난했고 가방끈도 짧았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교회성도 중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이분과 부모님이 마찰이 생겼습니다.
사실 마찰도 아닌데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꼬리를 내린 적이 있었고,
또 다른 중직자는 내 차를 박아놓고 그냥 가버렸지만 그것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컴퓨터수리점을 운영했을 때 교회청지기(교회연락망 수첩)에 찜해놓은 좋은 광고자리를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이때마다 부모님은 나를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유식하잖아, 우리보다 많이 배웠잖아, 그러니 우리가 그냥 양보하자, 그게 속편해, 지는 게 이기는 거야. 무조건 우리가 참아야 돼.”
어렸을 때부터 이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때마다 화도 났고 짜증도 났습니다.
“사람낳고 돈낳지 돈낳고 사람낳냐”란 가삿말도 있잖습니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미친 듯이 공부만 했습니다.
자존감 낮은 소리가 듣기 싫어 공부만 파헤쳤습니다.
지금은 학문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Ph.D.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말 안 하겠지” 생각했건만 지금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변화기 시작합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 달라졌습니다.
우리 가족을 하나님이 바꿔주셨습니다.
이제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아갑니다.
내 삶을 내 스스로 윤택하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료급식이 좋은 치료제가 됐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컴퓨터를 전공하게 해서 다가오는 정보화시대, 인터넷시대를 준비시켰습니다.
자격증을 미리 취득하게 해서 돈이 궁했던 시절 방과후학교 교사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회에서 방송실 실장을 맡으면서 방송장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했고, 코로나 시국에 빠른 인터넷방송 전환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예배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귀담아 들어야 했기에 자연히 목사님의 목회철학과 성경지식이 쌓일 수 있었고,
학교에서 인터넷방송국 국장을 맡으면서 리더십도 생길 수 있었습니다.
모교에서 겸임교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결혼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이 미리 준비시켰기 때문입니다.
기죽지 않는 김성민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탄사뿐이 안 나옵니다.
“하나님이 짜놓은 각본이 있었구나. 거기에 내가 있었구나.
내 삶 전체를 준비시켰구나. 그 과정을 지나온 것이구나.”
알게 모르게 인생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양보와 배려와 겸손과 예의와 존중과 이해와 성품과 인성과 품위가 그때 그 당시 몸으로 배웠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해선 끄떡없습니다.
내 인생을 무너뜨릴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더열린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놨기 때문입니다.
포크레인 작업 중 가장 힘든 작업이 나라시(평탄화작업)입니다.
내 인생의 나라시를 끝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기사가 돼주셨습니다.
이제 곧 아름다운 건물이 올라갈 차례입니다.
--
한 곡의 노래나 한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산통의 과정을 겪습니다.
창작물이기 때문입니다.
고뇌 끝에 세상에 선보인 작품은 누구보다 창작자 본인이 가장 사랑할 겁니다.
작품의 평가는 대중에게 있지만 작곡가나 감독이 갖는 애착은 누구도 못 따라갈 겁니다.
글쓰기도 창작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또한, 내 창작물이기 때문에 김성민의 의중이 충분히 내포돼 있습니다.
표절이 아니기 때문에 내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녹아져있습니다.
따라서 글 전체를 읽고나면 내 삶이 보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지, 꼴통인지 아닌지? 다 알 겁니다.
그러니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어휘 한 가지만 가지고 꼬투리 잡지 말아주십시오.
글 전체를 놓고 이해해주십시오.
“어휘가 존경하는 말투가 아니다. 단어가 너무 세속적이다. 글 중에 한 부분이 이상한데 그거만 지우면 좋겠다.”등 여러가지 이유로 지적하는데,
그것은 마치 “내가 1차원적인 사고방식에 빠져있구나, 아직 미흡하고 편협한 사람이구나”라는 반증입니다.
흑백논리에 갇혀 있는 격입니다.
한국의 K문화가 세계를 호령하는 반면 중국의 문화가 선도하지 못하는 까닭은 창작자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냐 아니냐에 갈립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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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습관

카테고리 없음 2024. 3. 6. 23:45

초등학교 때부터 생긴 습관이 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기도 받고 등교하는 것입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어머니께서 기도해주셨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귀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귀지 소리였습니다.
자꾸 성가셔 고개를 기울여 콩콩 뛰었습니다.
안간힘을 다해 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엄마, 엄청 큰 귀지가 있었어, 이것 봐봐”
그랬더니 어머니한테 칭찬은 커녕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습니다.
어디 신성한 기도시간에 딴짓 할 수 있냐며 엄청 두들겨 맞았습니다.
얼마나 얻어터졌는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기억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아주 또렷하고 생생합니다.
이때부터 기도의 힘을 배웠습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기도의 습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학교 갈 때 꼭 기도해줍니다.
이제는 알아서 머리를 드밀며 기도해달라 합니다.
학교 가기 전에 안수기도를 안 받으면 안 되는 줄 압니다.
평생 기도로 다져졌으면 좋겠습니다.
--
친구를 사적으로 만나면 반말로 편하게 대합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끼리 김성민은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공개된 장소에선 달라집니다. 격식을 차려 나를 대합니다.
참 좋은 친구들입니다.

무료급식 이용자들은 나보다 연배가 높습니다.
대게 어르신들입니다.
그러나 급식소 안에서 만큼은 “목사님, 목사님”하며 극진히 대해줍니다.
내가 하는 말에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따라줍니다.
무료급식소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대표로만 보지 않습니다.
대표 이전에 성직자로 봐주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목사의 말이라면 혼신을 다해 따라줍니다.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하며 높여줍니다.

나는 이것을 기도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늘의 권세가 있습니다.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기도응답을 믿습니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저절로 높여줬습니다.
권능과 능력이 생겼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했습니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기적을 만드는 열쇠도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기도는 목사로서 꼭 갖춰야 할 기본소양입니다.
--
주위에 환우가 많습니다.
기도부탁이 많이 들어옵니다.
이들을 위해 항상 기도합니다.
당사자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기도는 계속 합니다.
이게 목사의 의무이자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남편이 암 말기에요. 혹시 위독한 상황이 생기면 목사님께 부탁드려도 될까요?”라며 눈시울에 눈물이 가득 맺힌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 남편이 설암이에요. 곧 수술 들어갑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기도부탁드려요.”

“목사님, 항암치료 중이에요.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얼마 후 답장이 왔습니다.
“의사선생님도 좋아졌데요. 기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자꾸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기도해주세요.”

“걷지 못했었는데 목사님이 기도해주셔서 지팡이를 안 짚고 다섯발자국이나 뗐어요. 감사합니다. 목사님과의 인연을 평생 이어가고 싶습니다.”

“목사님, 우리 딸이 약사가 되고 싶어해요.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안에 금전문제가 얽히고설켜 매우 어렵습니다. 저도 제대로된 신앙을 되찾고 싶어요. 기도해주세요.”

“우리 아이 사춘기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목사님, 우리가 하는 일은 세무회계 업무라서 협력업체가 잘 돼야 우리도 잘 되는 구조입니다. 협렵업체가 더 잘 되길, 그래서 미수금이 없도록 기도부탁 드립니다.”

“초등학생 아들이 있어요. 근데 학교 적응하는데 어려워해요. 친구 사귀는데도 힘들어하고요. 지금보다 더 단단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저도 갑상선에 문제가 있어요. 기도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 염려 말고 오직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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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얼마 전, 반올림피자 사장님 이야기를 올렸는데요.
서울 사는 송파맘께서 반올림피자 남양점에 직접 전화해서 대량주문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함도 밝히지 않은 채 30만원어치 피자를 주문했다지요.
그리고 무료급식소에 배달해달라 부탁하셨다면서요.
그러면서 우리한테는 연락 한번을 안 준 분,
누군지 다 압니다. 후원하는 수법?이 전과 동일해서입니다.
만나무료급식소 정기후원 기업인 GS25편의점(원곡신천로점)을 통해 후원도 하고 매상을 올려주셨던 분이잖아요.
이분께 고맙습니다.
자녀를 위해 항상 중보하고 있어요.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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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킹을 잘합니다. 남들보다 습득력이 강합니다.
따라할 수 있는 건 열심히 따라 제칩니다.
눈썰미가 있습니다.
10년을 이렇게 무료급식만 파헤쳤습니다.
이랬더니 달인이 돼 가는 듯 합니다.
식판 위에 식판을 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균형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조심하면서도 신속히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봉사자들은 이걸 합니다.
경주에 있는 13층 석탑보다 더 높게도 가능합니다.
또 도시락용기를 셀 때도 한 번에 잡는 게 정확한 숫자가 됩니다.
마치 은행직원이 지폐를 쥐면 정확히 100만원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습니다.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오늘은 어떤 메뉴인지 금방 알아챕니다.
100m거리에서도 다 압니다.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온 동네를 가득 채웁니다.
더 나은 곳, 더 좋은 자리를 기웃거리지 않고 한 우물만 팠더니 생활의달인이 됐습니다.
매일 묘기가 난무하는 신기한 무료급식소가 됐습니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고, 내가 도와줘야 할 사람도 존재합니다.
후원자도 있고 소외계층도 있습니다.
나에겐 모든 사람이 새롭습니다.
간혹 해코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철저히 내 것으로 만듭니다.
또 아닌 것이 있다면 아닌 것 대로 경험이나 노하우로 바꿔서 저장해둡니다.

나는 급식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글로 옮깁니다.
그날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적습니다.
모든 글이 미담으로 각색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료급식소 안에서 뛰어다니는 실무팀들은 미담이 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용자들끼리 싸움도 일어나고, 봉사자들끼리 미묘한 긴장의 순간도 찾아옵니다.
여러 경우의 수가 산재한 곳이 이곳입니다.
그것을 빨리 알아채서 중재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중재의 달인 맞습니다.

우리 급식소가 미흡하고 볼품없어도 나는 만나무료급식소를 사랑합니다.
우리 급식소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 안다는 말은 그만큼 애정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비만 오면 천정에서 물이 샙니다. 양동이를 받쳐야합니다.
지붕이 점점 가라앉아서 중간에 건설자재인 쇠파이프로 받쳐 놔야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급식소가 전국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너무너무 좋아서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면 세종대왕을 말합니다.
미국사람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면 1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뽑습니다.
그래서 1달러 지폐에 조지 워싱턴을 새겨놓은 것입니다.
1달러가 하찮아서가 아니라,
1달러는 가장 낮은 단위의 지폐이니 남녀노소 누구나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겠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우리도 1달러가 되고 싶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올 수 있는 곳, 벽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
경주최씨 가문은 대대로 부자였습니다.
돈만 많았던 가문이 아닌 인덕이 겸비된 가문,
독립운동 자금도 후원했던 훌륭한 가문이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100리 안으로 밥 굶는 거지가 없도록 하라”던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우리 무료급식소도 사방 40km 안으로 소외계층이 없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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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살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밥이 없어 굶기도, 돈이 없어 궁핍해본 적도 많습니다.
공과금을 제날짜에 낸 적이 드뭅니다.
교회 궂은일을 하며 교회녹을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하지는 않지만 끼니걱정은 안 할 정도가 됐습니다.
인생을 뒤돌아보면 전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는 내가 스스로 만든 게 아닙니다.
전부 하나님이 세워준 위치이며, 하나님이 입혀준 옷입니다.
나에게 있어 궁핍해본 경험도, 부한 경험도 소중합니다.
없이 살아봐서 없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뿐만 아니라 돈 있는 사람의 심정도 알 것 같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베푸는 사람의 심정 모두를 알 것 같습니다.
특히 도움을 받는 묘책을 간파한 사람을 누구보다 잘 짚어냅니다.
일부러 슬픈 척, 없는 척 연기하고, 감사도 모르고, 거지근성으로 사는 사람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그들을 도와줍니다.
이들도 언젠간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본인 스스로 속보이게 행동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날이 오길 바라지만 어쨌든 도와줍니다.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이 쌓였습니다.
옛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삶의 경륜과 노련함이 생겼습니다. 조금은 의젓해졌습니다.
내가 살아왔던 고향에서는 김성민을 보는 눈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옛날 그대로의 김성민으로 보는 사람과 달라진 김성민으로 보는 사람.
아무렴 괜찮습니다. 모두 수용합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선 높임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여기서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달라진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개인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변했습니다.
특히 우리 아버지는 매일 술만 드셨던 분입니다.
부부싸움을 안 한 날보다 한 날이 더 많았을 정도로 불행한 가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무시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장로가 됐습니다.
5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침무료급식을 담당합니다.
모(母)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큰 교회는 주일마다 성도뿐만 아니라 지역에 노숙자나 부랑배, 건달들이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비 내놔라, 휴지 팔아달라, 점심값 줘라” 등 허무맹랑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덕이 안 돼 순순히 응해주는데 이때 우리 아버지가 출동하면 모든 일이 종결됩니다.
그만큼 지역에서 알아주던 망나니?로 소문 났었기 때문에 이들도 아버지만 보면 무서워했습니다.
지금도 무료급식소를 찾는 불량한 사람이 있으면 아버지가 나서서 어르고달래서 돌려보냅니다.
이랬던 아버지가 장로 직분을 받고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나는 이런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우리가족 모두 무료급식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온 식구가 무료급식에 매진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합니다.
가능성이 하나도 없었던 우리 가족을 신뢰해준 모(母)교회 담임목사님께 이 시간을 빌어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무식하고 못난 사람, 종작없이 덤벙이고 천방지축이었던 우리 가족을 한쪽 눈을 지그시 감아주고 끝까지 믿어준 김길수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족을 사람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교역자를 세우더라도 내 지역, 내 교회 성도 중에서 세웠던 목사님의 탁월성을 본받겠습니다.
가능성 없는 사람, 어느 누구도 봐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돼 주겠습니다.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겠습니다.
먼 훗날 김성민과 같은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먼 훗날 우리와 같은 가정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만나무료급식소를 통해 자양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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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

카테고리 없음 2024. 3. 1. 10:13

소외계층을 위한 생필품을 구입하고 왔습니다.
엄마는 출타 중이고 아이들은 방학 중입니다.
할 수 없이 아이들과 셋이 다녀왔습니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함께 물건을 골랐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자연스럽게 보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힘없는 사람에게 손 내밀 수 있고, 돌아볼 수 있는 성인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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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조리 있게 못합니다.
말주변이 없습니다. 심각할 정도로 없습니다.
어떻게 목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황하면 더 못합니다.
그래서 강대상에 올라서면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다음과 같이 붙여놨습니다.
“오늘도 침착하고 차분하게, 천천히 또박또박, 흥분하지 말고 여유롭게 시작하기”
말 못하는 게 목사로서 치명적이지만 나름대로 극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거울 앞에서 연습하고, 설교영상도 되돌려봅니다.
또 생소한 단어나 사자성어가 번뜻 떠오르면 메모해둡니다.
말만 못하는 게 아니라 글도 못씁니다.
글 참 못씁니다.
다양한 은유법이나 형용사를 사용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단지 실생활에서 경험했던 것을 그대로 적는 수준입니다.
억지로 쓰려니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이런 글을 최대한 희석시킬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접속부사를 쓰지 않고 짧게짧게 문장을 끝냅니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그런데, 하지만, 이런 게 들어가면 글의 요점이 흐려지고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쭉 나열하거나 아주 자세하게 늘어놓지 않습니다.
간단명료하게 씁니다.  
그래서 내 글은 한 문장이 짧습니다.
또 문장과 문장사이에 띄어쓰기 보다는 줄바꿈을 하는 게 이해도나 휴대폰으로 읽을 때 편합니다.
그래도 한계는 있습니다. 당최 못쓰는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이런 졸작 같은 글을 읽어주는 후원자가 있어 대단히 고마울 뿐입니다.
형편없는 말에 귀기울여 주는 성도가 있어 대단히 고마울 뿐입니다.
알고 보니 김성민을 발전시켜주는 장본인이 후원자와 성도였습니디.
항상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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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사랑의상자배달을 포장할 시기에 맞춰 후원물품을 직접 가져온 사장님이 있습니다.
결손아동을 위해 과자를 산더미처럼 사온 반올림피자(화성남양점)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은 한 번만 주문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단히 고마운 사장님입니다.
후원한 사실을 생색내지 않은 겸손한 분입니다.
이런 글도 굉장히 싫어하실 줄 알지만 염치가 없어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를 힘겹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거리두기 때문에 배달주문과 정부긴급지원금으로 간신히 이겨냈지만 지금은 더한 불경기 바람 때문에 장사하기 더 어렵다고 하네요.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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