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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04 우리 가족 이야기 1

없이 살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밥이 없어 굶기도, 돈이 없어 궁핍해본 적도 많습니다.
공과금을 제날짜에 낸 적이 드뭅니다.
교회 궂은일을 하며 교회녹을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하지는 않지만 끼니걱정은 안 할 정도가 됐습니다.
인생을 뒤돌아보면 전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는 내가 스스로 만든 게 아닙니다.
전부 하나님이 세워준 위치이며, 하나님이 입혀준 옷입니다.
나에게 있어 궁핍해본 경험도, 부한 경험도 소중합니다.
없이 살아봐서 없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뿐만 아니라 돈 있는 사람의 심정도 알 것 같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베푸는 사람의 심정 모두를 알 것 같습니다.
특히 도움을 받는 묘책을 간파한 사람을 누구보다 잘 짚어냅니다.
일부러 슬픈 척, 없는 척 연기하고, 감사도 모르고, 거지근성으로 사는 사람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그들을 도와줍니다.
이들도 언젠간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본인 스스로 속보이게 행동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날이 오길 바라지만 어쨌든 도와줍니다.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이 쌓였습니다.
옛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삶의 경륜과 노련함이 생겼습니다. 조금은 의젓해졌습니다.
내가 살아왔던 고향에서는 김성민을 보는 눈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옛날 그대로의 김성민으로 보는 사람과 달라진 김성민으로 보는 사람.
아무렴 괜찮습니다. 모두 수용합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선 높임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여기서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달라진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개인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변했습니다.
특히 우리 아버지는 매일 술만 드셨던 분입니다.
부부싸움을 안 한 날보다 한 날이 더 많았을 정도로 불행한 가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무시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장로가 됐습니다.
5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침무료급식을 담당합니다.
모(母)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큰 교회는 주일마다 성도뿐만 아니라 지역에 노숙자나 부랑배, 건달들이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비 내놔라, 휴지 팔아달라, 점심값 줘라” 등 허무맹랑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덕이 안 돼 순순히 응해주는데 이때 우리 아버지가 출동하면 모든 일이 종결됩니다.
그만큼 지역에서 알아주던 망나니?로 소문 났었기 때문에 이들도 아버지만 보면 무서워했습니다.
지금도 무료급식소를 찾는 불량한 사람이 있으면 아버지가 나서서 어르고달래서 돌려보냅니다.
이랬던 아버지가 장로 직분을 받고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나는 이런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우리가족 모두 무료급식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온 식구가 무료급식에 매진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합니다.
가능성이 하나도 없었던 우리 가족을 신뢰해준 모(母)교회 담임목사님께 이 시간을 빌어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무식하고 못난 사람, 종작없이 덤벙이고 천방지축이었던 우리 가족을 한쪽 눈을 지그시 감아주고 끝까지 믿어준 김길수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족을 사람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교역자를 세우더라도 내 지역, 내 교회 성도 중에서 세웠던 목사님의 탁월성을 본받겠습니다.
가능성 없는 사람, 어느 누구도 봐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돼 주겠습니다.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겠습니다.
먼 훗날 김성민과 같은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먼 훗날 우리와 같은 가정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만나무료급식소를 통해 자양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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