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24.04.27 유니버스 1
  2. 2024.04.23 러시아사람
  3. 2024.04.22 감사
  4. 2024.04.11 리더십
  5. 2024.04.05 얼음땡
  6. 2024.04.04 변태
  7. 2024.04.01 난임 1

유니버스

카테고리 없음 2024. 4. 27. 15:53

신뢰(信賴, 굳게 믿고 의지함)는 갑자기,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특히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는 더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는 오랜시간 지켜봐야 알 수 있습니다.
급식소를 운영하려면 제일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료급식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다년간 후원관계를 이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연말이면 후원자 리스트가 순차적으로 정렬됩니다.
이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연말정산에 신경씁니다.
정기후원자에게만큼은 기부금영수증을 우리가 알아서 처리해줍니다. 이들도 그러려니 합니다.
“알아서 올려주겠지” 생각합니다.
깨질 수 없는 신뢰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 단체와 후원자와의 작은 유니버스(Universe, 세계관)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 유니버스를 움직이는 힘은 신뢰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아주 강력한 힘을 지녔습니다.
신뢰해주는 만큼 실망시키지 않도록 부단히 움직이겠습니다.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성실과 겸손과 정직과 긍휼과 온유의 마음을 가지고 달려가겠습니다.

결혼한 지 8년 만에 아기가 생겼습니다.
불가능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임신하기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부부에게 아기를 주세요.
인공수정과 시험관시술 다 실패했습니다.
이제 돈도 없어요. 하나님, 어떡해요?
인간의 의지 다 포기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세요.
우리에게 예쁜 아기를 주세요.”
기도를 하자마자 거짓말 같이 아기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출산까지 했습니다.
산후조리도 안 됐는데 아내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둘째도 낳을까?”
그렇게 안 됐던 임신이 쉽게 됐습니다.
또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셋째도 만듭시다.”
아내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나봅니다.
자녀가 없었을 땐, 한 명만이라도 간절히 원했는데 자꾸 욕심이 생겼습니다.
김성민도 욕심 많은 인간이었습니다. 너무 간사했습니다.
둘째를 낳고 바로 적출수술을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조직검사 결과 더 있었으면 암이 커져 위험했을 겁니다.”
욕심 때문에 아내를 잃을 뻔 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더니 과거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안 됩니다.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늘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절제의 미를 배웠습니다.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면 전부 사회에 내 놓고,
조금 들어오면 허리띠 바싹 매며 정직하게 운영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유니버스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신뢰라는 유니버스에 들어와 주십시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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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아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경기라 일거리가 없습니다.
돈이 없어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웁니다.
내 손을 꼭 잡고 어눌한 말투로 말합니다.
“목사님, 나 일 잘해요. 벽돌도 잘 나르고 힘도 쌔요.
목사님, 나 일거리 좀 줘요.
우리 와이프,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밥 굶어요.”
이런 현실이 너무 슬픕니다.

우리 급식소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한번 식판에 나간 음식은 절대 싸갈 수 없다.”
급식소 안에서 다 먹고 가야합니다.
집에 싸 가서 두고두고 먹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우리 책임이기 때문이죠.
간혹 반찬이 남아 싸가려는 사람이 있는데 원천봉쇄하고 맙니다.
근데 러시아 사람이 남은 반찬을 가져가는 게 아닙니까?
눈치를 보며 살며시 휴지로 감쌉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도시락이 남았을 때마다 저녁식사 하라며 손에 쥐어줍니다.
얼른 일이 생기길 바랍니다.
--
몇 년 동안 안 보였던 어르신이 완전 백발로 급식소를 찾았습니다.
코로나 전이었으니 3년만입니다.
그동안 많이 여위어졌고 쇄약해졌습니다.
거동도 아들의 부축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가 됐습니다.
치매가 걸린 것입니다.
근데 급식소 앞 횡단보도에서부터 나를 보더니 세상 환하게 웃는 게 아닙니까?
반갑다며 손도 흔들어댔습니다.
치매인데도 무료급식소 목사를 알아봐주는 게 신기했습니다.
어느 누구한테 이렇게 방끗 웃는 경우가 없었다며 아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묻고 또 묻고, 인사하고 또 인사하는 어르신이 참 반가웠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좋아해주는지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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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카테고리 없음 2024. 4. 22. 17:14

교회를 개척한지 13년이 됐고, 무료급식을 시작한지 12년이 됐습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모진 세월을 지나왔다는 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불가능했던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끊임없이 고뇌하고 싸우며 견뎌 냈습니다.
기쁨과 슬픔, 통쾌와 고통, 만족과 실패 모두 맛 봤습니다.
여러 상황과 거센 풍파를 맞으며 더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성숙하고 보니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나 혼자는 할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나 혼자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고, 우리교회 성도, 봉사자, 후원자,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상당하며, 기업과 단체와 교회들의 관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역에서도 우리를 면밀히 살폈습니다.
물론 무료급식 이용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테죠.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지만 만나무료급식소를 이용해주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아 항상 고마움을 간직합니다.
또 대한민국 정부와 화성시도 고마운 대상입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정무에도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찾아줬습니다.
이처럼 돕는 사람이 항상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불가능한 일, 기적 같은 일들이 매일 펼쳐졌습니다.
이러한 신비한 체험과 경험 때문에 덩달아 신나게 사역할 수 있었고요.
만약, 가진 게 많아서 내 것을 가지고 사역했다면 이런 간증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매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며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후원자, 당신 덕분입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도, 뽐낼 것도 없습니다.
김성민이 잘한 건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물심양면으로 힘껏 돕는 후원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도록 협력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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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카테고리 없음 2024. 4. 11. 10:25

2008년, 청년부에서 선교를 갔습니다.
C국 신장 우.루.무/치를 갔습니다.
낯선 곳을 비전트립 했습니다.
구역을 나눠 현지인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조별로 전_도했습니다.
한참을 다니다 보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조만 낙오됐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나섰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십이 강했던 청년이 앞장섰습니다.
빠른 판단과 결정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해병대를 전역한 기호진 청년 덕분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8세와 6세인데 정확히는 17개월 차이입니다.
비슷한 연령이라 엄청 싸워댑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서로 양보를 안 합니다.
특히 동생이 형한테 들이댑니다. 꼭 염소 같습니다.
어느 날 첫째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나중에 엄마 아빠 죽으면 철없는 동생 내가 보살펴야 되지요?
아휴, 그래도 잘 보살펴줄게요.”
첫째는 첫째로서 자연스럽게 동생을 챙겨야 함을 알아갑니다.
신기하게 장남의 리더십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동생은 세월이 흘러도 형을 의지하는 것 같고요.
우애가 돈독하길 바랍니다.
--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장남, 장녀입니다.
자연스레 장손이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친동생은 없어도 사촌동생은 여러 명입니다.
“형, 오빠”하며 잘 따랐습니다.
초등학생 때 이모네 집을 갔습니다.
버스를 잘못 타 엉뚱한 곳에 내렸습니다.
혼자 터미널에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결국 날이 저물었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길 잃어버린 건 안중에 없고 동생들에게 줄 과자를 한아름 샀습니다.
크라운 산도, 초코파이, 카라멜, 사탕 등을 샀습니다.
길 잃은 것보다 동생에게 줄 선물에 정신이 팔린 것입니다.
나이가 44세인데 아직도 오빠를 잘 따릅니다.
--
전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짜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만 쫓으며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였습니다.
지금도 똑같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돈보다 무료급식과 교회사역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랬더니 먹여주고 살려주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기 싫어서 더욱 경각심을 갖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할지 분별하며 삽니다.
무료급식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게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가 주었고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의 김성민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한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통솔하고 인솔하고 계획하고 설득하고 설교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됩니다.
--
무료급식소 이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었을 때 SKY 학부와 석사까지 마친 분, 오랜 기간 목회했던 분, 시인으로 등단까지 했던 분, 의대생까지,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했던 사람을 만납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꼬리가 내려갑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내가 뭐라도 된 것인 냥 으스대지 않겠습니다.
어울리지 아니하게 우쭐거리며 뽐내지 않겠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것이지 스스로 한 게 아님을 명심하겠습니다.
머리에 잘 심어놓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알량한 자존심까지 내려놓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리더십과 책임감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지만, 이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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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땡

카테고리 없음 2024. 4. 5. 15:06

유권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권리행사를 하고 왔습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한 표가 이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하루에도 10번씩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식사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반찬 더 달라고 하세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끊임없이, 계속, 말하고 또 말합니다.
나뿐 아니라 모든 봉사자가 돌아가며 묻고 또 묻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이용자는 똑같은 말을 30번 이상 듣는 셈입니다.
일반식당에서 이러면 “굉장히 친절한 식당이네”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료급식을 대접하는 게 봉사자에겐 당연한 의무이고,
이용자에겐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나무료급식소에서는 그냥 자연스런 일상입니다.  
서로 부담주는 일도, 받는 일도 없습니다.

퇴근하면 아이들과 놀아줍니다.
거실에서 간지럼을 피며 뒹굽니다.
그러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웃어댑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립니다.
모르는 전화번호 혹은 후원자의 전화번호가 뜹니다.
그러면 일순간 집안이 조용해집니다. 정적이 흐릅니다.
아빠가 통화를 마칠 때까지 쥐 죽은 듯이 있습니다.
마치 전통놀이 “술래잡기, 얼음땡”처럼 몸이 굳어버립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 않았습니다.
많은 훈련과 경험(폭력)을 통해 터득한 것입니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벨이 울리면
주방에서 대파를 썰던 엄마가 아이들이 있는 거실쪽으로 몸을 던집니다.
야구선수 전준호 선수처럼 아슬아슬하게 슬라이딩 세이프를 시도합니다.
아이들 등짝에 스매싱을 후려갈깁니다.
볼기짝에 나이스캐치를 합니다.
드디어 도루에 성공한 것입니다.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봤던 조인성의 주먹울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집니다.
아이들은 웃음과 고통이 공존하는 감정 속에서 입을 틀어막느라 고생합니다.
아직 6세와 8세가 감당하기엔 벅찬 줄 알지만 뭐 어떡하겠어요?
아빠가 후원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내재화된 상태입니다.
아이들 머릿속에 칩셋이 심겨졌습니다.
“후원자, 이용자, 봉사자, 교회성도, 이웃 어른”
이런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규격화를 마친 가족입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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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카테고리 없음 2024. 4. 4. 14:57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되고 야외활동이 제한됐을 때
이 사람 덕분에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구독자가 60만명일 때 구독했지만 지금은 더 유명해져서 213만명이나 됩니다.
요즘은 TV를 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초창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보다 덜 유명했고 소수의 팬들과 상호작용했습니다. 따라서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생소한 곳, 위험한 곳, 색다른 경험을 통해 구독자로 하여금 희열을 느끼게 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비박(biwak)하는 모습도,
사기꾼과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담력도 있었습니다. 그의 대범함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1년 전쯤, 남미를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남극을 거쳐 돌아오는 계획을 짰습니다.
한참을 여행하다 남극 땅을 밟기 직전에 심경의 변화가 왔습니다.
실시간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전에는 비행기를 타도 설렘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구독자가 점점 늘어나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화가 되니,
여행이 여행이 아닌 중압감이 됐고 고통으로 변해버렸다.
여기서 여행을 중단하고 재충전을 가져야겠다.”
실제로 이후로 많이 변했습니다. 더 의젓해졌고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생각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내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합니다.
내가 겪었던 이야기들, 현재 느끼고 있는 상념들을 써내려갑니다.
그런데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지켜보던 고향 사람들은 더 그렇게 느낄 겁니다.
김성민의 상반된 모습,
그땐 망나니 같았고,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거침없었고 굉장히 교만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나인 줄 착각했습니다.
못 봐줄 만큼 인간말종이었습니다.
덜 되먹은 사람이었습니다.  
굉장히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과거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인격, 다른 사람이 돼 있습니다.
특히 글을 접할 따마다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내가 알던 김성민 맞아?”
비도덕적이고 비인격적이었던 사람이 마치 인품 있는 것처럼 글쓰고 행동하고 무료급식을 하니 그럴 만도 할 테죠.
“그러면 지금은 나아졌냐?” 물으면 똑같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불쑥불쑥 나오는 옛 성격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못된 성격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나는 별 수 없는 인간인가 봅니다.
못된 성격을 바꾸기 위해 묘책을 고안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성격을 바꿔가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를 바꿔버렸습니다.
글쓰기가 내 행동을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면 정말 은혜 잊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고,
“겸손하겠습니다.”라고 쓰면 조금은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언행일치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습니다.
옛날 내 모습을 봐왔던 사람들에게 부탁합니다.
김성민, 더욱 갱신하고 더욱 변태하겠습니다.
앞으로 지켜봐주십시오.
더 의젓하고 더 겸손한 김성민으로 탈바꿈해나가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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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카테고리 없음 2024. 4. 1. 20:47

오늘 교회종탑을 철거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부흥의 기쁨도, 쓰린 추억도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입니다.
그래도 좋은 기억이 더 많은 곳입니다.
여기와서 복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 이사 갈 채비를 하나씩 하나씩 하고 있습니다.
주위에서 많이 묻습니다.
“목사님, 이사가면 주소 꼭 알려주셔야 해요. 정기적으로 생리대 보내고 있는데 주소변경 해놓게요.
목사님, 우리 카페에 공지해야하거든요. 꼭 알려주세요.“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주소가 확정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
결혼하면 저절로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쉽지 않았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숙젯날도 받아오고, 약도 먹고, 인공수정, 시험관시술 등 온갖 방법을 써봤지만 임신은 되지 않았습니다.
좋다는 한의원과 한약, 난임전문병원 등 전부 돌아다녀봤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달은 되겠지, 이번에는 꼭 될거야. 예감이 좋아."
매번 희망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어미 개와 강아지만 봐도 눈물이 났습니다.
“동물들도 새끼가 있는데 우리는 왜 이리 힘든 걸까?”
난임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
임신에 성공했다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의사선생님께 연신 고개를 숙이는 사람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눈가에 눈물이 가득 맺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7년을 넘게 임신시도를 하니 심신이 지쳐갔습니다.
자궁에도 자극을 됐나봅니다.
검사를 하던 중 갑자기 큰 병원에 가보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수원 성빈센트병원을 갔습니다.
난소에 암이 발견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었습니다.
너무 큰 층격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 부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병원을 나와 정처없이 운전하다 장안공원을 가게 됐습니다.
벤치에 앉아 서로 아무 말없이 다른 시선을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어느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이 서러웠고, 곧 죽는 걸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간절했던 아이는 안 생기고 암이라니 모든 게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그날따라 날씨는 굉장히 쾌청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마음은 우울한데 날씨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습니다.
더욱 낙심 됐고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병원을 국립암센터로 옮겼고,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나 임신과 암치료를 동시에 시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첫번째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섰습니다.
여러 약국 중에 “희망약국”이란 곳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둘은 서로 마주보며 “여기로 갑시다”란 묵언의 대화를 하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소년소녀처럼 달려갔습니다.
지금은 완치판정을 받았으며, 자녀도 둘이나 생기는 기적을 맛보게 됐습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그래도 날마다 새로운 삶을 허락한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소중합니다.
우리에겐 날마다 날마다 새 날의 연속입니다.
덤으로 살아가는 삶이고,
기적을 직접 체험하며 살아가는 현재진행형인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 부부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으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항상 주위를 돌아보며 더 겸손하게 살것을 약속합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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