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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4.23 러시아사람

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아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경기라 일거리가 없습니다.
돈이 없어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웁니다.
내 손을 꼭 잡고 어눌한 말투로 말합니다.
“목사님, 나 일 잘해요. 벽돌도 잘 나르고 힘도 쌔요.
목사님, 나 일거리 좀 줘요.
우리 와이프,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밥 굶어요.”
이런 현실이 너무 슬픕니다.

우리 급식소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한번 식판에 나간 음식은 절대 싸갈 수 없다.”
급식소 안에서 다 먹고 가야합니다.
집에 싸 가서 두고두고 먹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우리 책임이기 때문이죠.
간혹 반찬이 남아 싸가려는 사람이 있는데 원천봉쇄하고 맙니다.
근데 러시아 사람이 남은 반찬을 가져가는 게 아닙니까?
눈치를 보며 살며시 휴지로 감쌉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도시락이 남았을 때마다 저녁식사 하라며 손에 쥐어줍니다.
얼른 일이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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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안 보였던 어르신이 완전 백발로 급식소를 찾았습니다.
코로나 전이었으니 3년만입니다.
그동안 많이 여위어졌고 쇄약해졌습니다.
거동도 아들의 부축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가 됐습니다.
치매가 걸린 것입니다.
근데 급식소 앞 횡단보도에서부터 나를 보더니 세상 환하게 웃는 게 아닙니까?
반갑다며 손도 흔들어댔습니다.
치매인데도 무료급식소 목사를 알아봐주는 게 신기했습니다.
어느 누구한테 이렇게 방끗 웃는 경우가 없었다며 아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묻고 또 묻고, 인사하고 또 인사하는 어르신이 참 반가웠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좋아해주는지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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