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4.03.28 나라사랑

나라사랑

카테고리 없음 2024. 3. 28. 12:39

점심 무료급식 준비시간은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입니다.
11시 정각이 되면 배식이 시작됩니다.
두 시간 사이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 시간 급식소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드디어 11시가 됐습니다.
이용자는 벌써 들어와 앉아있습니다.
이제 배식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안심했을 때 큰일이 터집니다.
오늘 국은 육개장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을 봤습니다.
매웠습니다. 보통 매운 게 아니었습니다. 무진장 매웠습니다. 못 먹을 정도였습니다.
순간 사이렌이 울렸고 비상이 났습니다.
머릿속이 텅 비었습니다.
모든 봉사자가 일제히 얼음이 됐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납니다.
앉아있는 이용자들은 봉사자에게만 시선이 고정됐습니다.
너무나 창피했습니다.
난감했고 자포자기하고 싶었습니다.
재빨리 집으로 줄행랑 치고 싶었습니다.
아내가 빨리 마트로 달려가 콩나물을 사오라 했습니다.
물을 안치고 콩나물국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크리스토퍼 사장님들은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습니다.
재치 있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진땀 났던 하루였습니다.
가끔 이런 스팩타클한 일이 벌어집니다.
--
백의종군(白衣從軍)이란 흰색 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 싸운다는 뜻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인기가 급상승 하자 주위에 시기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직책을 빼앗겼습니다.
그래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계급과 권한을 모두 내려놓고 가장 아래에서 전쟁을 치룬 것입니다.
조선이란 나라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우리 모두가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이라 부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너머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제독(提督, admiral or flag officer)이라 불리울만 합니다.
정치인이 많이 쓰는 말인데 과연 이럴까 의문이 듭니다.
백의종군의 본뜻은 내가 가진 모든 권한을 포기하고 처음으로 돌아가 “밑바닥부터” 다시 하겠다는 의미인데 말입니다.
진짜 처음으로 돌아갈 자신 있습니까? 정말 옛날로 돌아갈 자신 있습니까?
그러나 나는 다른 각도에서 뜻풀이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순신의 뚝심, 결연한 의지를 보았습니다.
임금에게 아첨하는 자들에게 맞서 조금도 변함없이 걸어갔던 그,
한번이 아닌 두 번의 백의종군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인생이 망하고 패배한 것 같은데 다시 일어섰던 그분의 정신.
무료급식을 미친듯이 하다보면 아무 이유없이 밸(창자)이 꼬이게 만드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살살 시비걸고, 괜히 미워하고, 관청에 민원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뚝심있게 치고 나가겠습니다.
중간중간 쓰러지고 망한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확신을 갖고 백의종군 하겠습니다.
나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먼 훗날 어떻게 평가해줄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처음가졌던 마음 그대로 간직한 채 나아가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