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기부금단체'에 해당되는 글 648건

  1. 2024.03.04 우리 가족 이야기 1
  2. 2024.03.01 졸작
  3. 2024.02.28 타이레놀
  4. 2024.02.27 후원 감사합니다
  5. 2024.02.26 스톨
  6. 2024.02.22 하남 위기가정
  7. 2024.02.21 가오
  8. 2024.02.21 우리 동네
  9. 2024.02.20 경계
  10. 2024.02.18 사람 1

없이 살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밥이 없어 굶기도, 돈이 없어 궁핍해본 적도 많습니다.
공과금을 제날짜에 낸 적이 드뭅니다.
교회 궂은일을 하며 교회녹을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하지는 않지만 끼니걱정은 안 할 정도가 됐습니다.
인생을 뒤돌아보면 전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는 내가 스스로 만든 게 아닙니다.
전부 하나님이 세워준 위치이며, 하나님이 입혀준 옷입니다.
나에게 있어 궁핍해본 경험도, 부한 경험도 소중합니다.
없이 살아봐서 없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뿐만 아니라 돈 있는 사람의 심정도 알 것 같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베푸는 사람의 심정 모두를 알 것 같습니다.
특히 도움을 받는 묘책을 간파한 사람을 누구보다 잘 짚어냅니다.
일부러 슬픈 척, 없는 척 연기하고, 감사도 모르고, 거지근성으로 사는 사람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그들을 도와줍니다.
이들도 언젠간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본인 스스로 속보이게 행동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날이 오길 바라지만 어쨌든 도와줍니다.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이 쌓였습니다.
옛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삶의 경륜과 노련함이 생겼습니다. 조금은 의젓해졌습니다.
내가 살아왔던 고향에서는 김성민을 보는 눈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옛날 그대로의 김성민으로 보는 사람과 달라진 김성민으로 보는 사람.
아무렴 괜찮습니다. 모두 수용합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선 높임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여기서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달라진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개인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변했습니다.
특히 우리 아버지는 매일 술만 드셨던 분입니다.
부부싸움을 안 한 날보다 한 날이 더 많았을 정도로 불행한 가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무시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장로가 됐습니다.
5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침무료급식을 담당합니다.
모(母)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큰 교회는 주일마다 성도뿐만 아니라 지역에 노숙자나 부랑배, 건달들이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비 내놔라, 휴지 팔아달라, 점심값 줘라” 등 허무맹랑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덕이 안 돼 순순히 응해주는데 이때 우리 아버지가 출동하면 모든 일이 종결됩니다.
그만큼 지역에서 알아주던 망나니?로 소문 났었기 때문에 이들도 아버지만 보면 무서워했습니다.
지금도 무료급식소를 찾는 불량한 사람이 있으면 아버지가 나서서 어르고달래서 돌려보냅니다.
이랬던 아버지가 장로 직분을 받고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나는 이런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우리가족 모두 무료급식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온 식구가 무료급식에 매진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합니다.
가능성이 하나도 없었던 우리 가족을 신뢰해준 모(母)교회 담임목사님께 이 시간을 빌어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무식하고 못난 사람, 종작없이 덤벙이고 천방지축이었던 우리 가족을 한쪽 눈을 지그시 감아주고 끝까지 믿어준 김길수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족을 사람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교역자를 세우더라도 내 지역, 내 교회 성도 중에서 세웠던 목사님의 탁월성을 본받겠습니다.
가능성 없는 사람, 어느 누구도 봐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돼 주겠습니다.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겠습니다.
먼 훗날 김성민과 같은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먼 훗날 우리와 같은 가정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만나무료급식소를 통해 자양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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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

카테고리 없음 2024. 3. 1. 10:13

소외계층을 위한 생필품을 구입하고 왔습니다.
엄마는 출타 중이고 아이들은 방학 중입니다.
할 수 없이 아이들과 셋이 다녀왔습니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함께 물건을 골랐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자연스럽게 보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힘없는 사람에게 손 내밀 수 있고, 돌아볼 수 있는 성인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
말을 조리 있게 못합니다.
말주변이 없습니다. 심각할 정도로 없습니다.
어떻게 목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황하면 더 못합니다.
그래서 강대상에 올라서면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다음과 같이 붙여놨습니다.
“오늘도 침착하고 차분하게, 천천히 또박또박, 흥분하지 말고 여유롭게 시작하기”
말 못하는 게 목사로서 치명적이지만 나름대로 극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거울 앞에서 연습하고, 설교영상도 되돌려봅니다.
또 생소한 단어나 사자성어가 번뜻 떠오르면 메모해둡니다.
말만 못하는 게 아니라 글도 못씁니다.
글 참 못씁니다.
다양한 은유법이나 형용사를 사용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단지 실생활에서 경험했던 것을 그대로 적는 수준입니다.
억지로 쓰려니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이런 글을 최대한 희석시킬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접속부사를 쓰지 않고 짧게짧게 문장을 끝냅니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그런데, 하지만, 이런 게 들어가면 글의 요점이 흐려지고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쭉 나열하거나 아주 자세하게 늘어놓지 않습니다.
간단명료하게 씁니다.  
그래서 내 글은 한 문장이 짧습니다.
또 문장과 문장사이에 띄어쓰기 보다는 줄바꿈을 하는 게 이해도나 휴대폰으로 읽을 때 편합니다.
그래도 한계는 있습니다. 당최 못쓰는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이런 졸작 같은 글을 읽어주는 후원자가 있어 대단히 고마울 뿐입니다.
형편없는 말에 귀기울여 주는 성도가 있어 대단히 고마울 뿐입니다.
알고 보니 김성민을 발전시켜주는 장본인이 후원자와 성도였습니디.
항상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습니다.
--
추신,
사랑의상자배달을 포장할 시기에 맞춰 후원물품을 직접 가져온 사장님이 있습니다.
결손아동을 위해 과자를 산더미처럼 사온 반올림피자(화성남양점)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은 한 번만 주문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단히 고마운 사장님입니다.
후원한 사실을 생색내지 않은 겸손한 분입니다.
이런 글도 굉장히 싫어하실 줄 알지만 염치가 없어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를 힘겹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거리두기 때문에 배달주문과 정부긴급지원금으로 간신히 이겨냈지만 지금은 더한 불경기 바람 때문에 장사하기 더 어렵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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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카테고리 없음 2024. 2. 28. 15:54

머리가 아프거나 몸살기운이 있을 때마다 타이레놀을 찾습니다.
게보린, 펜잘, 판피린도 있는데 꼭 타이레놀만 찾게 됩니다.
코로나 시기 땐 품귀현상까지 났습니다. 모든 약국에 동이 났습니다.
1982년 당시, 미국 해열진통제 시장의 35% 점유율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제약회사 존슨앤존슨은 타이레놀로 전체 영업이익의 15%를 차지했을 정도로 효자상품이었습니다.
그러나 1982년 9월 29일 아침, TV에서 속보가 들려왔습니다.
감기약으로 타이레놀을 먹었던 12세 어린이 7명이 한꺼번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단숨에 공포분위기로 바뀐 미국사회는 더이상 타이레놀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순간에 1억달러가 증발해버렸습니다. 손해가 막심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암울한 전망만 내놓았습니다.
“회생이 불가능할 것이다. 곧 파산할 것이다.”
회사의 생존이 걸린 위기 앞에서 존슨앤존슨은 생각의 대전환을 시도합니다.
진실을 은폐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치부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발빠르게 TV광고를 내 자사제품을 섭취하지 말 것을 홍보했고,
전량회수와 전량폐기의 고단수를 내놓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누가 약에 독약을 탔던 것입니다.
제조과정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후 타이레놀은 더 안전하게 3중 개별포장을 했고,
이런 정직한 위기관리로 인해 1년도 되지 않아 판매율은 반등하게 됩니다.
이전보다 신뢰를 더 얻게 됐고, 충성고객을 형성하게 됐습니다.
고객의 안전을 우선시 했으며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은 많은 기업의 모범사례로 손꼽힙니다.

나는 두 개(만나무료급식소, 더열린교회)의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료급식 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립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고퀄리티는 아니지만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튜버 빠니보틀, 곽튜브, 용호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나도 할 수 있어”란 자신감과 도전이 생겼습니다.
구독자는 많지 않지만 연연하지 않고 계속 관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빠니보틀, 곽튜브, 용호수가 차례로 여론의 몰매를 맞게 됐습니다.
날이 갈수록 비난의 수위는 올라갔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터라 사태를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끝내 공식사과했고,
다행히 얼마 가지않아 여론은 잠잠해졌습니다. 원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때 배운 사실이 있습니다.
“대중이나 여론은 언젠간 잠잠해진다. 일정시간이 흐르면 다 잊는다.
부정적이었든, 긍정적이었든 간에 자세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세월이 약이고 시간이 약이다.
그러나 모든 난관에서 시간끌기로만 일관해서도 안 된다.
'세월이 해결해주겠지'라며 관망적으로 문제를 바라봐서도 안 된다.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야한다.
위기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공의 성패가 결정된다.
이것이 충성고객과 충성후원자를 만드는 비결이다.”  

글을 쓰면 동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글 하나에 열혈팬이 생기기도, 실망해서 떨어져나가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목사님, 참 열심히 삽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고,
“목사님, 너무 세속적이세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그곳에 사는 사람도 다양하다는 걸 체감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날 비난하는 사람을 똑같이 비난 할 생각은 없습니다.
난 내 편, 내 사람에게서 힘과 용기를 얻는 걸로 만족하겠습니다.
내 편이 아닌 사람들까지 내가 가는 길에 응원해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건 너무 이기적이고 욕심 아니겠습니까?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허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누가 뭐래도 내 길을 묵묵히 걷다보면 언젠간 상황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믿음”
여론은 언젠간 바뀌기 때문이죠.
나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안 갈 수 없습니다.
난 무료급식과 목회에 내 인생 전체를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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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헌혈의집에서 메달을 받았습니다.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은 못따도 이것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한지 5년째입니다.
하나님이 건강 주시는 한 계속 하겠습니다.

무료급식 하는 그대로 보존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식중독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식약청 역학조사팀이 나와 조사하도록 준비해 놔야합니다.

급식소에 연탄 보일러를 잘 설치했습니다.
여러 후원자가 도와주셨습니다.
김연주 자매님과 홍옥녀, 홍정희 권사님,
애석하게 기회를 놓쳤다며 안타까워하던 정미경 집사님도, 블로그에서 댓글로 문의해준 후원자도 구입해준 것과 다름없습니다.
후원금이 남아 보일러 말고 필요했던 것을 더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기름보일러에 들어갈 등유, 업소용 풍년압력밥솥, 일회용 도시락용기, 사랑의상자배달에 나갈 식품도 후원금으로 구입했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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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

카테고리 없음 2024. 2. 26. 03:10

기독교는 절기에 따른 색깔이 있습니다.
설교할 때 목에 두르는 스톨(Stall)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교회력(敎會曆)에 따라 색깔을 바꿔줍니다.  
부활절은 흰색, 성령강림절은 녹색, 성탄절이나 세례식 할 땐 빨강색, 대림절과 사순절은 보라색을 착용합니다.
강대상 제단도 같은 색깔로 바꿔줍니다.
목사는 이것에 민감합니다.
기독교에서 보라색은 거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은 조용하고 거룩하게 지낸다는 의미에서 보라색톤으로 교회를 장식합니다.
또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서 우리도 거룩해야 하므로 보라색 스톨을 씁니다.
이때가 되면 모든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맛있는 것, 즐거운 것, 여행 같은 건 될 수 있는 한 자제합니다.
SNS할 때도 일부러 웃는 사진, 기뻐하는 사진, 음식사진, 여행사진은 올리지 않습니다.
나는 한가지 넥타이만 맵니다.
40일 동안 매일 똑같은 보라색 넥타이만 매고 출근합니다.
몇 년을 이러니 넥타이가 다 해져버렸습니다.
아침마다 넥타이를 맬 때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또 무료급식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도 문득 거울에 비친 넥타이를 볼 때마다 예수님의 보혈을 묵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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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무료급식을 대접합니다.
무료급식을 마치고 뒤돌아서면 또 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24시간 돌아갑니다.
아직도 새벽에는 쌀쌀합니다.
정기봉사자가 출근하면 근육이 굳어있습니다.
몸부터 녹여야 합니다.
또 이용자 대부분은 추위에 약한 어르신들입니다.
겨울마다 난방비가 걱정이었습니다.
대안으로 연탄 보일러가 적격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잘 써먹었습니다.
그런데 보일러가 삭아버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고 조금만 더 버텨 주길 바랬는데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습니다.
수명이 다 됐습니다.
갈아야 되는데 돈이 만만치 않게 듭니다.
사실 지금 긴축경영을 하고 있는 터라 더 궁색해졌습니다.
인터넷으로 사면 보일러값만 48만원이고 부품값은 5~10만원 정도가 듭니다.
설치는 우리교회 장로님이 할 수 있습니다.
감동되는 분이 있다면 보일러를 구입해주지 않겠습니까?
무료급식소 봉사자와 이용자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후원해 준 모든 것은 국세청 홈택스에 기부내역이 자동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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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급한 일이 생길 때, 그 일을 해치우기 위해선 기존에 진행되던 일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이 꼬이고 뒤죽박죽 돼 버리기 십상입니다.
하남시에 사는 위기가정을 위해 도움의 손길이 쏟아졌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관심을 주셨습니다.
장기판에 말 놓듯 모든 계획을 재조정한 다음 드디어 오늘 직접 찾아갔습니다.
무료급식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떠났습니다.
차에 쌀과 라면, 휴지 등을 싣고 출발했습니다.
밤새 내린 눈때문에 망설였지만 당사자와 약속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을 사람을 생각해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남 스타필드 안에 위치한 이트레이더스를 들려 필요한 물건을 더 구입했습니다.
직접 방문한 집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통풍도 안 되는 반지하에서 6세 아이와 힘겹게 살고 있었습니다.
습도가 높았던 오늘, 방안 구석구석이 곰팡이와 눅눅함으로 코끝을 찔러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넌지시 말을 건냅니다.
“살고 있는 환경을 직접 보니 참 안타까웠어요. 오늘 여기 잘 온 것 같아요.”
돌아오는 길에 결손아동 후견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들렸습니다.
하남시 미사리에 위치한 만지스커피에서 음료 두 잔의 소소한 행복을 담아왔습니다.
눈길 운전과 장거리운전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보람된 하루였습니다.
후원해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서울 상암동에서 정광교, 태정순, 임광준, 정미경, 임시완, 임정완 가족 일동이 50만원을,
2. GS편의점(안산 원곡신천로점) 조경식, 장지연 부부가 라면을,
3. 동탄 시립 슬기로운어린이집 김연주 원장님과 백설아 어린이가 휴지를,
4. 건강기능성 신발 베네슈(안산상록점) 김선복, 이정화 장로님 부부가 휴지를,
5. 송파맘 김선연 선생님께서 생리대를,
6. 송파맘 박진현 선생님께서 생리대와 치약을 후원했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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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

카테고리 없음 2024. 2. 21. 21:59

2010년, 안산 명성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있었습니다.
청년부 담당전도사로 사역했습니다.
청년들과 뒹굴며 아주 재밌게 사역했습니다.
교회차를 몰고 청년들과 안 간 곳이 없었습니다.
에어컨을 최대로 켜 놓고 다녔습니다.
볼일이 끝나면 마당 한복판에 삐뚤어진 채 주차했습니다.
제멋대로 주차하고선 그대로 교역자실로 쌩 가버렸습니다.
참다못한 관리집사님이 외딴 곳으로 날 불렀습니다.
“전도사님, 교회차 전도사님처럼 타면 금방 고장나요.
이것도 하나님의 성물(聖物)이잖아요.
그리고 시동 끄기 전에 에어컨은 꼭 꺼야 해요.”
교역자에게 말하기 어려웠을 텐데 얼마나 망나니 같았으면 이런 충고까지 했겠나 싶더군요.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에어컨을 켠 채 시동을 끄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차든 교회차든, 그 어떤 차를 운전하더라도 엑셀페달로 후까시 주는 법이 없습니다.
가오 잡지 않습니다.
RPM도 2,000을 넘지 않고 얌전하게 운전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당시 관리집사님께 혼이 났던 게 복이 됐습니다.
무엇이든 절약하고 소중히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정신 가진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생 배움을 그때 배웠습니다.
가장 오래된 후원자 중 한 분인 양봉진, 백영란 집사님의 이야기였습니다.
10년을 넘게 이어온 소중한 인연입니다.
서로 아끼는 사이가 됐습니다.
저를 사람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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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카테고리 없음 2024. 2. 21. 20:04

우리동네는 3.1운동 때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등불처럼 번졌던 곳입니다.
사강, 조암, 발안 장날에 만세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송산3.1공원과 제암리교회, 수촌교회도 가깝습니다.
기독교 순교지로 유명합니다. 기독교와 연관이 많은 지역입니다.
또 불교의 세도 강한 곳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힘을 모아 막아낸 호국사찰 대한불교조계종 봉림사와 신흥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대대적인 행사가 펼쳐집니다.
또 원불교 화성교당도 남양읍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성8경 중 하나인 남양성모성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도로명도 “남양성지로”입니다.
우리 급식소와 남양성당이 10미터도 채 안 떨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천주교인이 이용자 중에 가장 많이 분포합니다.
식사 전 십자성호(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를 표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천주교인이 50%정도이고, 개신교인과 불교인이 그 다음을 차지합니다.
모두 웃으며 서로의 벽을 헐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참 독특한 지역에서 무료급식소를 섬기고 있습니다.
--
삼시세끼 모두를 이곳에서 이용하는 어르신이 있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입니다.
이제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근데 혼자 길을 걷다 넘어졌습니다.
얼굴이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피범벅이 됐고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그래도 연신 괜찮다 괜찮다만 외쳤습니다.
병원가는 것도 완강히 거부한 채 무료급식만 이용하려 했습니다.
참다못한 우리교회 장로님께서 병원을 모시고 갔습니다.
억지로 데려가 치료해줬습니다.
남의 아픔을 그냥 모르는 채 하는 것도 죄입니다.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정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말하는 김기호장로님께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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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카테고리 없음 2024. 2. 20. 19:45

더열린교회는 상가건물 3층에 위치했습니다.
1층에는 다방, 노래방, 중고전자, 인력사무소가 있고, 윗층엔 살림집이 세 들어 삽니다.
예배 때마다 주변이 시끄러울 것입니다.
그래도 서로 이해하며 사이좋게 지냅니다.
다방 사장님은 비기독교인입니다.
우리가 이사오고 한 동안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날마다 꼬박꼬박 인사했습니다.
3년쯤 되니 부활절과 성탄절 때마다 화환을 보내오는 게 아닙니까?
한 해도 빼먹지 않고 예쁜 난을 선물합니다.
리본에 글씨까지 써서 보냅니다.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불신자인데 이런 문구를 쓰는 게 신기합니다.
참 고마운 사장님입니다.

교회 앞건물에서 건물청소 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성실하고 꾸준하게 청소만 해왔습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침무료급식을 이용하는 부부입니다.
이런 관계를 6년쯤 이어왔습니다.
물론 불신자입니다.
근데 교회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헌금이 아닌)부조를 하는 게 아닙니까?
교회 창립주일과 성탄절 때마다 봉투를 합니다.
이들도 참 고마운 부부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남양의용소방대가 봉사해줍니다.
고마운 단체입니다.
예쁜 반장님이 한 분 있습니다.
독실한 불자입니다.
우리 동네에 신라시대 때 창건한 천년사찰 봉림사가 있습니다.
이 사찰의 보살이기도 합니다.
이분이 우리를 적극 돕습니다.
마을에서 척사대회가 열리면 성금함을 가지고 다니며 후원금을 모금합니다.
의용소방대 송년회 자리에서도 성금함을 돌리며 반강제로 모금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적극 도와주는 고마운 분입니다.

지역에 크고 작은 산업단지가 존재합니다.
규모가 큰 공장도 있고 작은 공장도 있습니다.
3년 전,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테슬라를 몰고 급식소 앞에 주차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중소기업 창업주였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명예회장으로 있는 분이었습니다.
“지역을 먹여살린 기업가”란 기사가 쓰였을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이분이 3년 전부터 우리를 돕습니다.
이분도 기독교인은 아닌 듯 합니다.

나는 종교를 넘나듭니다.
어떤 경계나 기준 혹은 특정 지역색과 영역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고집과 아집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보다 폭넓은 생각과 다양성을 존중하며 균형있는 삶을 추구합니다.
나는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더불어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복음 외에 모든 걸 양보할 의향이 있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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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카테고리 없음 2024. 2. 18. 16:06

나는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보다 효과적으로 꾸려가기 위해 공신력 있는 단체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비영리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단체를 만들려면 회원 섭외가 먼저입니다.
한두 명으론 안 되고 많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적극 나서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결국 모두 채워졌고 경기도청에 성공적으로 등록했습니다.
단체를 이끄는데 여러 기술(스킬)이 필요합니다.
그 중 가장 가치를 두는 게 있습니다.
“회원에게 잘하자. 정기후원자에게 잘하자”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이 귀합니다.
세상 어떤 것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돈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습니다.
돈을 우선에 둔 채 무료급식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욕심 부리지 않겠습니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후원자를 차등대우하지도 않겠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단체를 바라보는 믿음, 신용, 신뢰, 사랑, 기도, 응원 이런 것을 최우선에 두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를 봤을 때 신임(信任)과 납득이 가는 단체로 만들겠습니다.
꼭 약속합니다.
명절 때마다 웃어른에게 인사드립니다.
고마운 분들에게 찾아갑니다.
그런데 몇몇이 난색을 표합니다.
“목사님, 왜 이러세요? 민망합니다. 다음부터 오지마세요.”
그렇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찾아갑니다.
사실 내가 잘하는 게 있는데요. “이것저것 기웃거리지 않고 한 우물만 끝까지 파는 우직함”
나올 때까지 미련스럽게 파는 끈기가 있습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내 사람을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내 편, 내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래봤자 1년에 두 번인걸요.
미안합니다. 내 생각만 해서요. 그래도 꼭 찾아뵐 겁니다.
후원자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좋습니다. 행복합니다.
후원자와의 끈을 놓지 않을 겁니다.
내 아내처럼 평생 동반자로 여기겠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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