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는 어르신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왔다가 식사만 하고 갑니다.
어느 날, 말을 걸어봤습니다.
이랬더니 산전수전 겪었던 인생이야기를 청산유수 쏟아내는 게 아닙니까?
말문이 트인 것입니다.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동안 말이 고팠는지 작심하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더군요. 막힘이 없었습니다.
이제껏 말을 걸어줄 사람도, 이야기 할 사람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솔직히 들어줄 시간이 없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앉아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고, 고개도 끄떡였습니다.
집중하고 있다는 제스처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 분에 대한 공경과 존경의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시간을 버린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 네팔사람이 다녔습니다.
같이 예배 드리고, 여행가고, 밥도 먹으며 아주 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하루는 기숙사에 우리 부부를 초대했습니다.
네팔음식을 만들어준다 했습니다.
방문한 기숙사는 지저분했고, 바퀴벌레가 잔뜩 돌아다녔습니다.
드디어 부엌에서 토마토가 곁들인 카레를 만들어왔습니다.
기도하고 먹으려는데 숟가락이 없는 게 아닙니까?
손으로 밥알을 조몰락조몰락 모아서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비위가 약해 굉장히 난감했지만 네팔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똑같이 먹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목회상담사 자격증반 3년 코스웍(Course work)을 시작했습니다.
개강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살아갈수록 공감능력이 뛰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감각, 판단력, 분별력, 센스를 소유하고 싶습니다.
일이 많아졌습니다.
해도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래도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
재미없는데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무료급식과 목회가 천생직업(天生職業) 같습니다.
하늘이 내려준 직업입니다.
그래서 신나게 일하고 있습니다.
즐겁게 일하니 자꾸 돕는 사람이 붙습니다.
현물로, 금전으로, 봉사로, 관심과 기도로 우리를 돕습니다.
때에 따라 필요한 걸 후원해줍니다.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매일이 기적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더욱 신나게 일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후원자가 30만원을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급식소에 김치가 없다면서요. 글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쓰렸는지 모릅니다. 얼른 필요한 것부터 구입하세요. 300만원도 아니고 3,000만원도 아니라 송구합니다. 기쁘게 받아주세요.” 당신의 몸이 아픈데도 김치를 구입하라며 후원한 것입니다.
또 결손아동에게 나눠주라며 콘푸라이트 씨리얼을 보내온 사람도 있습니다.
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는 후원자,
임성진, 최용석, 최은정, 최윤재, 최윤서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편 추진력 있게 일하니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난관을 뚫고 가다 보면, 뚫리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나를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괜히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하고 싸우자며 덤벼드는 존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장애물을 “사탄, 마귀, 귀신”으로 정의내립니다.
요즘 들어 그들의 장난질이 대단합니다. 사실 늘 있어왔는데 심해진 것입니다.
자꾸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며 일 못하게 만드는 어둠의 존재들.
그래도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승리했음을 믿고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갑니다.
2011년, 교회개척을 했습니다.
개척예배 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바쁜 중에도 자리를 빛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사역하겠습니다. 제 모교회보다 더 부흥하겠습니다.”
성도 한 명 없는 개척교회가 1,500명 규모의 교회에게 도발한 것입니다.
허풍과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 됐다고 나는 믿습니다.
후원자로부터 후원만 받는 게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교제하는 관계, 기도와 중보를 하는 관계입니다.
후원자가 병이 걸렸거나 큰일이 닥쳤을 때 간절히 기도해줍니다.
장례가 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위로합니다.
지금도 부산에 사는 후원자가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KTX 타고 가는 중입니다.
항상 후원자들에게 고맙고 감사합니다.
후원자, 당신을 위해 중보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학생들에게 시청각 자료로 동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수업시간에 딴짓하고, 꾸벅꾸벅 졸고, 장난치면 장성해서 일용직노동자가 되고,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면 장성해서 상류층 사회를 이루며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란 내용입니다.
“잠 안 자고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성공하여 사람을 부릴 수 있고, 지시할 수 있으며, 높은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란 동영상을 공교육 교실에서 시청각 자료로 틀어주고 있습니다.
공부를 독려하는 건데 보면 볼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수단만을 강조하는 행태가 중국사회에 만연해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슬퍼지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는 판사, 검사, 변호사도 필요하지만 일용직근로자도 필요합니다.
그들이 있어야 아파트도, 공장도 지을 수 있습니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많은 소작농이 죽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할 수 없이 지주들은 돈을 더 들여 노예나 사람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값이 올라간 것입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용직근로자들이 없으면 인플레이션 등의 사회혼란이 찾아올 것입니다.
호주에서는 배관공이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작업복을 입은 채 지하철을 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객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엔지니어나, 근로자들을 우대하는 사회가 호주, 캐나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입니다.
그래서 인기 게임 “슈퍼마리오”가 나온 것입니다.
캐릭터의 직업도 하수구 배관공입니다.
실제로 변호사 못지않게 연봉을 받는 직업입니다.
우리 사회도 이들을 우대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회풍토를 꿈꿔봅니다.
나는 과거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교수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많이 배운 박사, 교수들은 점잖고 우아하게 모임을 가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노래방 가고, 술 먹고,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상류층 모임이나 하류층 모임이나 노는 건 똑같았습니다.
도긴개긴,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없습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합니다.
내가 많이 접하게 되는 부류가 일반적으로 하층민들입니다.
돈 없고, 빽 없고,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칩니다.
그들의 과거는 화려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양보와 배려를 배우게 됩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걸 배웁니다.
이런 이유로 급식소를 이용하는 노숙자, 독거노인, 결손아동, 소외계층들이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이들에게 후원하는 후원자가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정기봉사자에게 “봉사하면 힘들지 않냐?”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속에서 기쁜 마음이 샘솟습니다. 보람과 희망 같은 게 깊은 데서부터 올라옵니다.”라고 말해줍니디.
누가 누구를 무시하고 무시 당하고,
지시하고 지시 당하고,
명령하고 명령 당하고,
괄시와 멸시하고 그걸 당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한 인격체로서의 존중과 인정과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우리 교회에 농아(聾啞)인이 출석합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걸 못 듣습니다. 듣지 못하니 말도 못합니다.
이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왔다는 게 기적입니다. 축복입니다.
이 사람이 귀합니다.
모든 교회 식구가 이 사람을 극진하게 대합니다.
이 사람 때문에 교회가 하나가 됐습니다.
8세 첫째 아들에게도 당부했습니다.
“유주야, 우리교회 말 못하는 성도 있잖아. 그분에게 인사 잘해야 돼. 일부러 다가가서 말도 걸고, 사탕이나 껌도 나눠주고… 그렇게 할 수 있지?”
“아빠가 말 안 해도 그렇게 하고 있었어.”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