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아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경기라 일거리가 없습니다.
돈이 없어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웁니다.
내 손을 꼭 잡고 어눌한 말투로 말합니다.
“목사님, 나 일 잘해요. 벽돌도 잘 나르고 힘도 쌔요.
목사님, 나 일거리 좀 줘요.
우리 와이프,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밥 굶어요.”
이런 현실이 너무 슬픕니다.

우리 급식소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한번 식판에 나간 음식은 절대 싸갈 수 없다.”
급식소 안에서 다 먹고 가야합니다.
집에 싸 가서 두고두고 먹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우리 책임이기 때문이죠.
간혹 반찬이 남아 싸가려는 사람이 있는데 원천봉쇄하고 맙니다.
근데 러시아 사람이 남은 반찬을 가져가는 게 아닙니까?
눈치를 보며 살며시 휴지로 감쌉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도시락이 남았을 때마다 저녁식사 하라며 손에 쥐어줍니다.
얼른 일이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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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안 보였던 어르신이 완전 백발로 급식소를 찾았습니다.
코로나 전이었으니 3년만입니다.
그동안 많이 여위어졌고 쇄약해졌습니다.
거동도 아들의 부축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가 됐습니다.
치매가 걸린 것입니다.
근데 급식소 앞 횡단보도에서부터 나를 보더니 세상 환하게 웃는 게 아닙니까?
반갑다며 손도 흔들어댔습니다.
치매인데도 무료급식소 목사를 알아봐주는 게 신기했습니다.
어느 누구한테 이렇게 방끗 웃는 경우가 없었다며 아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묻고 또 묻고, 인사하고 또 인사하는 어르신이 참 반가웠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좋아해주는지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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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카테고리 없음 2024. 4. 22. 17:14

교회를 개척한지 13년이 됐고, 무료급식을 시작한지 12년이 됐습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모진 세월을 지나왔다는 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불가능했던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끊임없이 고뇌하고 싸우며 견뎌 냈습니다.
기쁨과 슬픔, 통쾌와 고통, 만족과 실패 모두 맛 봤습니다.
여러 상황과 거센 풍파를 맞으며 더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성숙하고 보니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나 혼자는 할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나 혼자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고, 우리교회 성도, 봉사자, 후원자,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상당하며, 기업과 단체와 교회들의 관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역에서도 우리를 면밀히 살폈습니다.
물론 무료급식 이용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테죠.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지만 만나무료급식소를 이용해주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아 항상 고마움을 간직합니다.
또 대한민국 정부와 화성시도 고마운 대상입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정무에도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찾아줬습니다.
이처럼 돕는 사람이 항상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불가능한 일, 기적 같은 일들이 매일 펼쳐졌습니다.
이러한 신비한 체험과 경험 때문에 덩달아 신나게 사역할 수 있었고요.
만약, 가진 게 많아서 내 것을 가지고 사역했다면 이런 간증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매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며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후원자, 당신 덕분입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도, 뽐낼 것도 없습니다.
김성민이 잘한 건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물심양면으로 힘껏 돕는 후원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도록 협력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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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카테고리 없음 2024. 4. 11. 10:25

2008년, 청년부에서 선교를 갔습니다.
C국 신장 우.루.무/치를 갔습니다.
낯선 곳을 비전트립 했습니다.
구역을 나눠 현지인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조별로 전_도했습니다.
한참을 다니다 보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조만 낙오됐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나섰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십이 강했던 청년이 앞장섰습니다.
빠른 판단과 결정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해병대를 전역한 기호진 청년 덕분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8세와 6세인데 정확히는 17개월 차이입니다.
비슷한 연령이라 엄청 싸워댑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서로 양보를 안 합니다.
특히 동생이 형한테 들이댑니다. 꼭 염소 같습니다.
어느 날 첫째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나중에 엄마 아빠 죽으면 철없는 동생 내가 보살펴야 되지요?
아휴, 그래도 잘 보살펴줄게요.”
첫째는 첫째로서 자연스럽게 동생을 챙겨야 함을 알아갑니다.
신기하게 장남의 리더십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동생은 세월이 흘러도 형을 의지하는 것 같고요.
우애가 돈독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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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장남, 장녀입니다.
자연스레 장손이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친동생은 없어도 사촌동생은 여러 명입니다.
“형, 오빠”하며 잘 따랐습니다.
초등학생 때 이모네 집을 갔습니다.
버스를 잘못 타 엉뚱한 곳에 내렸습니다.
혼자 터미널에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결국 날이 저물었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길 잃어버린 건 안중에 없고 동생들에게 줄 과자를 한아름 샀습니다.
크라운 산도, 초코파이, 카라멜, 사탕 등을 샀습니다.
길 잃은 것보다 동생에게 줄 선물에 정신이 팔린 것입니다.
나이가 44세인데 아직도 오빠를 잘 따릅니다.
--
전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짜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만 쫓으며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였습니다.
지금도 똑같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돈보다 무료급식과 교회사역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랬더니 먹여주고 살려주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기 싫어서 더욱 경각심을 갖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할지 분별하며 삽니다.
무료급식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게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가 주었고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의 김성민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한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통솔하고 인솔하고 계획하고 설득하고 설교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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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이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었을 때 SKY 학부와 석사까지 마친 분, 오랜 기간 목회했던 분, 시인으로 등단까지 했던 분, 의대생까지,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했던 사람을 만납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꼬리가 내려갑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내가 뭐라도 된 것인 냥 으스대지 않겠습니다.
어울리지 아니하게 우쭐거리며 뽐내지 않겠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것이지 스스로 한 게 아님을 명심하겠습니다.
머리에 잘 심어놓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알량한 자존심까지 내려놓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리더십과 책임감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지만, 이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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