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날마다 그 꿈을 향해 전진합니다.
그것만 보고 전력질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아깝고요.
삼천포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꿉니다.
항상 내 처세에 대해 갱신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합니다.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우리교회 성도, 봉사자와 이용자까지 모두 이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딸릴 식구가 많습니다. 나만 바라봅니다. 내가 잘못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습니다.
자연히 리더 기질을 가지게 됐습니다.
때론 지금 이대로 안착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뿐인 인생을 관성(Inertia)과 습관에 취해 안주하고 싶지만은 않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하나님이 주신 꿈을 펼쳐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결승점에 도달하겠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정직하고 투명하게 가겠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선한 능력을 힘입어 힘차게 도전하겠습니다.
강박증, 편협심, 피해망상, 경직된 사고, 우울증에 빠져있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쓰라며 돈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단 호주머니에 들어오면 재정프로그램에 입력합니다.
그런 다음 목록에 맞게 지출하죠.
때때로 연말정산 때, “내가 후원한 것보다 많이 기부금영수증이 발급됐어요.”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래서 그렇습니다.
지금보다 커져도 이 습관을 꼭 지킬 겁니다.
이게 내가 가졌던 처음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입니다.
난 돈에 대해 자유롭습니다.
숨겨둔 돈, 꼼쳐둔 돈이 없습니다.
우리단체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건전한 단체가 맞습니다.
우리의 꿈과 함께해주십시오.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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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를 출석하는 5학년짜리 여자아이가 무료급식 봉사를 했습니다.
너무나 예쁜 하나님의 보석이자 보배입니다.
'기부금영수증'에 해당되는 글 684건
결손아동을 위한 생필품전달사업 사랑의상자배달을 진행했습니다.
함께해준 모든 봉사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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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삽니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여기서 35년째 살고 있습니다.
동네마다 집성촌이 있습니다.
같은 성끼리 촌락을 이루며 삽니다.
남양홍씨, 남양방씨, 배씨와 기씨 성을 가진 마을도 있습니다.
시골사람들은 유난히 토박이를 따집니다.
다른 곳에서 이사온 외지사람을 끼어주지 않는 성향이 다분합니다.
언젠간 떠날 사람이라며 뜨내기 취급하기 일쑤죠.
40-50년,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외지사람일 뿐입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때부터 살지 않는 한 토박이는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나는 외면받는 게 당연합니다.
사람취급 받지 않는 게 자연스런 현상일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대접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목회를 하고, 무료급식을 운영하면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지역에서 명망있고 영향력있는 유지들이 급식소를 찾습니다.
마을 원주민들, 지역소속 단체들이 자꾸 우리를 도와줍니다.
지역의 사회복지협의체, 로타리클럽, 라이온스클럽, 크리스토퍼, 의용소방대, 카네기, 복지관, 읍사무소 등 여러 단체가 우리와 협업하고 있습니다.
모두 지역에서 한 영향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우리와 함께하자" 말합니다. "손잡자" 합니다.
분명 김성민 개인의 힘이 아닙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는 봉사자, 그들의 인성 때문입니다.
겸손과 사랑의 인품이 철철 넘칩니다.
이런 단체들에게 고맙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들 때문에 우리 급식소의 위상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5년 넘게 아침 무료급식을 담당하는 우리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있습니다.
"난 늙어서 복받았어. 늙어서 추해진 게 아니라, 죽는 날까지 봉사할 수 있고, 베풀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시골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얕잡으며 '어이~ 김씨, 김씨' 이렇게 안 불러. '김장로님, 김사장님, 김기호씨, 성민아빠'라 불러줘."
원주민이 이주민에게 이렇게 부른다는 게 기적입니다.
우리 가족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고 축복해줘서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에 눈 먼 돈이 많아. 그거 다 빼먹어야 돼. 안 그러면 너만 바보야"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빼먹는다"는 말부터가 억양이 안 좋습니다.
비열하고 사기꾼 같습니다.
곰처럼 미련하지 말고, 여우처럼 얄팍하게 움직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순수함이나 정직함이 없습니다.
근데 이렇게 살기 싫습니다. 정도(正道)를 걷고 싶습니다. 늦게 도착한다해도 지름길을 택하지 않겠습니다. 대로(大路)를 걷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말하지만 늘 깨어있고 갱신하며 살겠습니다.
언제나 배려와 존중과 두려움으로 살겠습니다.
휴가기간입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왔습니다.
매년 휴가비를 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넉넉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못사먹겠습니다.
김밥천국에서 멸치국수, 치킨,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 왔는데도 꼭 누가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삽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아내와 8세, 6세 아들까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미래에 부자가 된다해도 이런 생활은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이런 마음 변하면 망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일념으로 살겠습니다.
자연스레 몸에 익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날 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사기치지 않겠지"
장애와 사기가 무슨관계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어서 내 장애가 오히려 축복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사기치지 않겠습니다.
보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무료급식소를 이끌어가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당부합니다.
"얘들아, 아빠는 장애인이잖아. 아빠를 생각해서 힘들고 약한 친구 있으면 너희가 적극 도와줄 수 있겠니?"
알았다고 대답합니다.
배려심 많고 정직한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뒤돌아보니 무료급식소 이전은 원래부터가 불가능했습니다.
큰 교회야 인력과 자금력과 행정력이 뒷받침 돼 일사천리로 할 수 있으나 우리한테는 만리장성보다도 더 큰 장벽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뒤엔 고마운 후원자가 존재했습니다.
인생의 고비고비 때마다 우리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감사를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급식소 장소이전에 대한 정관변경이 마무리 돼가고 있습니다. 믿고 인감증명서를 건네준 회원들 덕분입니다.
나 혼자였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외지사람, 뜨내기, 이주민에게 뭘 믿고 신용을 빌려줍니까?
그저 가슴으로 품고 아껴주는 당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사단법인 단체를 만들었고, 공익단체와 집단급식소까지 통과됐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힘들고 버거운 과정을 이겨낸 것입니다.
지금은 더 큰 곳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합니다.
이번 정관변경이 완전히 끝나야, 전기세와 수도세 변경을 포함한 모든 일이 순차적으로 해결됩니다.
관공서마다 고유번호증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어쨌든 사실상 거의 통과 된 상태입니다.
또 이 과정을 통해 우리 단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말하겠습니다.
무료급식이 끝나갈 때 쯤,
읍사무소 복지팀 주무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노숙자가 있는데 지금 데려가도 식사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모시고 오세요.”
고장 난 차에서 노숙하던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며칠을 쫄쫄 굶었다 했습니다.
갑자기 만나무료급식소가 생각나 데려온 것입니다.
“주무관님, 급식소가 이전했는데 어떻게 금방 찾을 수 있었어요?”
“그냥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같은 지역에 대형교회를 담임하는 분이 있습니다.
모범적으로 목회하고 있으며, 모든 이로부터 존경받는 목사님입니다.
전국을 다니며 개척에 대한 특강을 많이 하는데, 꼭 우리교회와 만나무료급식소 이야기를 합니다.
지역과 더불어 틈새목회를 잘하고 있고, 개척해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교회라 설명합니다.
들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전하고 한동안 이용자가 줄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점점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이전하기 전과 엇비슷해졌습니다.
점점 소문이 나기 시작합니다.
급식소 간판을 보고 차를 세운 다음 구경하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궁금한 걸 물어보고, 후원도 하고 갑니다.
전화문의가 급증했습니다.
화성시 송산면에서 살았습니다.
송산국민학교, 송산중학교, 송산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전국에서 배구를 잘하는 학교로 송산초와 송산중을 꼽습니다.
전국청소년배구대회에서 우승도 많이 했습니다.
우승하는 날이면 온 동네가 시끄러워집니다.
현대 포니2 픽업트럭 뒤에 우승한 아이들을 태웁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꽃목걸이를 하나씩 겁니다.
양 길가에는 사람들이 나와 색종이와 꽃가루를 뿌려대며 열렬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우승 카퍼레이드가 대단했습니다.
1990년대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현재 무료급식소가 잘나가고 있습니다.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느낌입니다.
지금 내 마음에선 신이 났습니다. 속에서 댄스를 춥니다.
그러나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함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팍 뜨는 걸 경계합니다.
천천히 뜨고 싶습니다.
더욱 내실을 다지고 싶습니다.
겸손과 감사를 마음속에 꽉꽉 채운 뒤 하늘 높이 날아가고 싶습니다.
우리도 포니2 픽업트럭을 타고 성대한 카퍼레이드를 하고 싶지만,
또 한편에 드는 생각이 “그냥 조용히 살자”라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자연히 알려지고, 천천히 알려지고, 순리대로 알려지고, 하나님의 때에 알려지길 소망합니다.
미국을 한자로 표현하면, 아름다울 미(美), 나라 국(國)을 씁니다.
얼마나 예쁘면 “아름다운 나라”일까? 매일 상상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을 동경했습니다.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내 나이 26세 때입니다.
미 서부지역을 혼자 정처 없이 다녔습니다.
현지 관광업체를 찾아가 패키지여행도 병행했습니다.
그랜드캐니언, 라스베이거스, LA할리우드사인,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씨월드 샌디에이고까지 가는 곳마다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왜 아름다운 나라인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요세비티 국립공원도 갔습니다.
제주도 면적의 1.7배가 넘는 울창한 산림지대,
수천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곳,
최소 몇 백 년 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대자연의 경관에 압도 당했습니다.
가이드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만약에 번개가 쳐서 대형산불로 번져도 소방차가 출동하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화재진압을 하지 않고 그냥 자연히 꺼지도록 놔둡니다. 수천 년 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 보존하는 게 환경보호입니다. 자연의 방법대로, 자연이 진화 하도록 인간은 그냥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진짜로 곳곳에 화재의 흔적이 있었고, 금세 복구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의 힘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그때그때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옮깁니다.
글 쓸 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도록 나만의 장소로 이동합니다.
골방에서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냅니다. 집중모드로 들어가죠.
가식이나 인위적으로 쓰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도 아니고,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근데 내 글을 읽고 주위에서 말을 많이 합니다.
“이번 글 이상했어요.
요거, 저거, 적절한 단어가 아닌 듯 해요.
목사님이잖아요. 그러면 목사님들이 쓰는 은혜스런 단어가 있을 텐데 이게 뭡니까?
너무 가볍지 않고, 장난끼 섞이지 않게, 진중하게 좀 쓰세요.
다시 수정하세요.”
이럴 때마다 기가 팍 죽습니다. 그때부터 글쓰기가 싫어집니다. 재미없어집니다.
전체 글에 대한 나의 의도는 배제한 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가지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 안 됩니다.
절대 창의적인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축돼서 점점 글이 이상해집니다.
우리에겐 후원자가 많습니다.
남자, 여자, 노인, 어린이, 대학생, 일반인, 주부, 회사원, 목회자, 성도, 사장님, 직원, 불신자, 불교신자, 카톨릭신자, 원불교신자, 전직 무당 등등 아주 많죠.
이들이 내 글에 호기심을 갖고, 때론 감동받으며, 후원까지 이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연스러움, Natural”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는, 내 모습 그대로의 글, 눈치보지 않는 글을 좋아해주기 때문입니다.
요세비티에서 화재가 나도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개입은 자연보존이나 글쓰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글쓰기도 사역(하나님의 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재능을 주셔서 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라 생각합니다.
단어 하나 때문에 시시콜콜 꼬투리 잡고, 훼방하고, 시비 걸면 성령의 방해자가 됩니다.
만약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할 때면 하나님이 직접 나서지 않을까요? 김성민을 치시든 몰아넣든 말입니다.
글쓰기를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내 글이 보기 싫으면 김성민을 차단하면 됩니다.
--
모든 서류를 마쳤습니다.
이제 내 손을 떠난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도와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관변경이 완전히 통과될 때까지 기도해주십시오.
그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120% 발휘했습니다.
다 끝나니 그동안 붙잡고있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몸살이 찾아왔습니다. 이번엔 심했습니다.
오한과 고열, 편도염, 기관지염, 두통까지 4일간 일어나지 못한 채 침대에서 꼼짝 못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달려갑니다. 너무 과한 게 문제죠. 완벽주의 성향이 다분합니다.
빈틈이나 실수가 없이 하려고 애씁니다.
그때마다 허약한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지금도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억지로 사무실에 나와 밀린 일을 해치우고 있습니다.
다시 툴툴 털고 빨리 일어나겠습니다.
단체의 이사는 인감도장을 대표이사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정관변경이 끝날 때까지 내가 가지고 다닙니다.
도장을 수령하러 다녔습니다.
안산에서 간판가게를 운영중인 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무료급식소를 이끌어갈 줄 몰랐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3년쯤 하다가 때려칠 줄 알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묘했습니다.
칭찬 같으면서, 욕 같은 게 참 이상했습니다.
첫 사역지 안산명성교회 때인 2010년부터 현재까지 15년을 쭉 지켜봐왔습니다.
교회 개척할 때도, 급식소 시작할 때도 모든 간판을 여기서 무료로 해줬습니다.
이런 사장님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간판을 설치해주면서 속으로 생각했겠죠.
“이 목사님 조금 하다가 그만두겠지”
근데 이 분 말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김성민, 재 힘들면 때려칠거야.”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 어,,, 하네… 계속 하네. 뭐 자꾸 북적북적 움직이네,,, 성장하고, 발전하고, 크게 되잖아”
지금은 김성민을 달리 보고 있습니다.
인정하는 만큼 앞만보며 끝까지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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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 휴가기간이 있습니다.
사업계획서에도 명시된 것입니다.
그래서 떳떳하게 갈 수 있습니다. 일주일간 무료급식소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용자들을 생각하니 문을 못 닫겠더군요.
그래서 모든 봉사자가 휴가를 재조정했습니다.
우리만 바라보는 이용자가 존재합니다.
독거노인, 홀아비 어르신들이 존재합니다.
이를 생각했을 때 차마 문을 닫을 수 없었습니다.
휴가기간이라도 문을 닫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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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무료급식소 대표님인가요?
후원을 하고 싶은데 물품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현금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아,,, 네,,, 그건 선생님 마음대로 선택해주면 됩니다. 상관없으세요.”
상추, 노각, 고구마줄기, 쌀, 생리대 등을 후원하는 현물후원자,
금전으로 후원하는 정기후원자,
CMS자동이체 하는 CMS후원자,
결손아동이나 소외청소년에게 후원하고 싶어하는 지정후원자,
“특정 위기가정에 꼭 써주세요.”라고 말하는 특별후원자,
“무료급식소에 필요한 물품을 사세요.”라고 말하는 품목후원자와 일시후원자,
“목사님 가정에만 써주세요.”라는 개인후원자,
“교회에 헌금하는 겁니다.”라는 십일조, 감사헌금자,
정말 다양합니다.
이걸 내 임의로 해달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후원자가 내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나는 짠돌이입니다. 굉장한 짠돌이 맞습니다.
돈이 너무 아깝습니다.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 월세, 다 아깝습니다.
이사 와서 첫 관리비 고지서가 나왔는데 65만원이 나왔습니다.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럴수록 1만원의 정기후원자가 귀합니다.
금전으로 정기후원 하는 사람들 때문에 연체없이 공과금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무료급식 사역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소액의 정기후원자들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겐 현물후원자도, 특별후원자도, 정기후원자도, CMS후원자도 모두 다 필요합니다.
해충방지를 위해 세스코가 잘 관리해주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입시지망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실력이 안 됐던 것입니다.
당시엔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생에서 첫 실패를 맛본 것입니다.
13년 전, 상가건물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1층은 다방과 꽃집이 있었습니다.
지날 때마다 사장님들께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본체만체 안 받아주고, 곁눈으로 보는 게 아닙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꾸벅꾸벅 인사했습니다.
상대방이 미안해할 정도로 밝은 얼굴로 인사했습니다.
1년쯤 지나니 조금씩 변화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엔 부활절과 성탄절 때마다 화환을 보내는 사이가 됐습니다.
정말 각별한 사이가 됐습니다.
이전을 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사 온 건물 사장님들께 인사하고 다닙니다.
근처에 택시정류장이 있는데 기사님들께도 인사합니다.
그런데 잘 안 받아줍니다. 날 벌레 보듯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웃으며 인사합니다.
앞으로 11개월이 지나면 달라질 것을 믿습니다.
지난 날, 다 겪어본 일입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전부 경험해봤습니다.
세상풍파 겪어봐서 조금은 단단해진 김성민입니다.
--
무료급식소가 이전을 했습니다.
이전을 완벽하게 마치려면 회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정관변경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찍어줘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 과정이 굉장히 힘듭니다.
이것 때문에 이사는 두 번 다시 안 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70% 너머 80% 가까이 됐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사실 남에게 내 인감을 건넨다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도 안 해주는걸요.
불안한 세상에 나 같아도 안 해줄 것 같습니다.
잘 아는 목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모잘라? 우리 내외 것도 떼줄까?”
이 분은 남에게 절대 신용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한평생 목회철칙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김성민을 믿어준다는 것이기에 상당히 기뻤습니다.
이런 믿음, 아무나 못 갖습니다.
더욱 책임감으로 신뢰를 쌓아가겠습니다.
--
하남시에 사는 소외계층 가정에 에어컨을 달았습니다.
비용은 후원자가 지불했고요.
기사가 방문하고 가정형편을 보더니 저렴하게 깎아주셨습니다.
깎아달라고도 않는데 깎아준 것입니다.
“기사님, 이거 후원자를 통해 설치하는 겁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러면 저도 싸게 해드릴게요..”
구제를 하면 이런 일을 많이 겪습니다.
손해 볼 정도로 싸게 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
우리 단체 새로운 이사님이 세워졌습니다.
MG새마을금고(경기서부) 서승원 상무님께서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13년을 한결같이 정기후원 하는 분, 자녀들까지 정기후원자입니다.
서승원 집사님, 홍승란 전도사님, 늘 감사드립니다.
--
요즘 무리했는지 몸에서 이상한 신호가 감지됩니다.
안 아팠던 어금니가 아프네요.
바쁜 일 끝내고 푹 쉬면 좋아질 겁니다.
나에게 닥친 힘겨운 일들을 즐겁게 바꿉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합니다.
그 어떤 일도 재밌게 시작합니다.
절대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다 잘 될거야”란 희망과 의지를 갖고 헤쳐갑니다.
항상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이랬더니 삶 전체가 해피엔딩으로 바뀌었습니다.
--
하남시를 다녀왔습니다.
취약계층 가정을 다녀왔습니다.
에어컨도 잘 설치됐고, 장롱과 수납장도 만족스럽게 설치됐습니다.
아이 속옷도 잘 도착했고, 간식도 사주셨습니다.
후원한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속적으로 보살피겠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많은 영웅호걸이 나타났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여포 등 천하를 호령했던 인물입니다.
이들은 모두 책사(策士)가 있었습니다.
의견을 내고, 도와주며, 연구하고, 집약해주던,
지략과 충의의 전략가 제갈량과 같은 복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죠.
목회를 하고, 무료급식을 하는데 혼자서는 못합니다.
옆에서 도와주고 따라주며 힘을 보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나에겐 이런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언제나 내 편이 돼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아내, 가족, 부모님, 교회성도, 급식소 봉사자, 정기후원자, 기도중보자 모두 나의 책사들입니다.
후원자, 당신이 있어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
글의 힘이 대단합니다.
글을 읽고 후원을 결심하는 사람이 상당합니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인데, 짧은 글 때문에 후원을 결심한 사람이 존재합니다.
“하남시 여자 이야기”를 읽고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셨습니다.
이들 모두가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성을 쏟다니요.
평범한 직장인인 김위로 선생님께서 에어컨 설치비를,
갑자기 마음에 감동이 왔다며 연락한 구소연 선생님께서 장롱과 수납장을,
충북 공주시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있고, 7년 동안 꾸준히 정기후원을 하는 이유미 자매님이 아이 속옷을 후원했습니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내일 아내와 함께 하남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에어컨 설치도, 장롱과 서랍장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요.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 진정성이 느껴져요. 그래서 후원하는 겁니다.”
이 때문에 글쓰기 할 때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절대 하지 않죠. 이게 철칙입니다.
거짓말은 언젠간 발각되게 돼 있습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 되지 않도록 부단히 애씁니다.
만약 거짓말을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내가 먼저 알 겁니다.
아내가 보증인입니다.
따라서 내 글에는 힘이 있습니다. 거침이 없고요. 언제나 당당합니다.
있는 것을 있다.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능력이 글속에 녹아져있습니다.
글쓰기를 잘하고 못하는 개념이 아니라,
얼마나 진솔하게, 진정성 있게 썼느냐가 후원을 받는 비결임을 깨달았습니다.
10년 동안 무료급식을 해오면서 후원자가 1000명은 족히 넘을 것입니다.
전국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절대 임기응변으로, 적절히 둘러 될 수 없습니다.
무료급식소를 평생 직업으로 생각합니다.
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평생직장을 걷어찰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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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초복이었습니다.
삼계탕을 대접했습니다.
고생한 모든 봉사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송산로타리클럽에서 버섯을 주셨습니다.
정성껏 대접하겠습니다.
“무료급식소를 시작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요?
급식소 운영하는데 어려운 게 뭔가요?”
어떤 사람이 내게 물어보더라도 대답은 하나입니다.
“신뢰와 신용과 신임을 얻는 게 가장 먼저입니다. 이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감증명서와 도장을 받으러 다니는데 영혼을 갈아 넣었습니다.
일주일간 미친 듯이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몇 명이 모자랍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으로 포기한다면 사람도 아닙니다.
낙담하지도 않겠습니다.
오히려 오기가 생깁니다.
“기필코 내가 채우리라”
생긴 것 같지 않게 자주 씻는 편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머리를 감습니다.
꼭 목욕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무료급식소에 나가 맡은 일에 열중하죠.
이용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후원자를 만나러 다니기도 합니다.
때론 후원물품을 수령하러 전국을 누빕니다.
또 봉사자가 많지 않을 땐 얼른 투입돼서 서빙도 보고 설거지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치고 아내와 데이트 할 때가 있습니다.
근사한 카페를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시답지 않게 말을 꺼냅니다.
“당신 몸에서 냄새나요.”
분명히 아침에 목욕도 했고, 겨드랑이에 데오드란트도 뿌렸는데...
휠라 향수도 왕창 뿌리고 나왔는데 냄새가 난다고?
급식소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특유의 냄새가 몸에 뱁니다.
내 몸에서 음식냄새가 난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냄새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땀 흘려 나는 냄새, 어려운 사람들 먹여살리기 위해 나는 냄새입니다.
악취가 아니라 향수로 받아주면 좋겠습니다.
나 김성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요행이나 횡재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땀을 흘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전하고 급식소 위치를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위치가 애매하고 어렵습니다.
“남양 지하차도를 나와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입니다.
이바돔감자탕 1층입니다.
택시 정거장 앞입니다.
LH 4단지 뒤편입니다.”
이렇다 저렇다 부연설명하기 바쁩니다.
그래서 다짐한 게 있습니다.
“부연설명 하지 않아도 되게 빨리 성장하자.”
“만나무료급식소”라고 말하기만 해도 모든 사람이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지역의 자랑,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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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청에서 나와 지도점검을 받았습니다.
매번 받는 것이지만 받을 때마다 심장이 쪼여옵니다.
일주일 동안 아내가 고생했습니다.
준비한 게 두꺼운 책 한 권 정도가 됩니다.
마치고 돌아가는 주무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료급식소 잘 운영하고 계시네요.
이곳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경기도에서 운영 중인 많은 무료급식소 중에 여기를 우수사례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말보다 더 큰 기쁨이 없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깨끗하고 투명하게,
올바르고 으뜸되게,
겸손하고 성실하게,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한결같이 운영했습니다.
모든 후원자와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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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체는 이사가 5명 있습니다.
임기는 2년이고 연임도 가능합니다.
이번에 임기를 마치고 사임하는 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단체의 이사를 모집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연락주십시오.
참고로 대표이사(김성민)의 직계가족은 할 수 없네요.
평소 봉사와 헌신이 투철한 분을 추천, 혹은 자진해주십시오.
후원자가 보내오는 물품이 상당합니다.
끊임없이 보내옵니다. 한데 모으면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이것을 잘 분배해 독거노인, 장애인, 결식아동, 위기가정에 골고루 나눠주는 일을 합니다.
이게 내 직업입니다.
그중 결손아동에게 후원하는 게 가장 보람됩니다.
그들이 꿈꾸는 내일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희망과 미래를 함께 꽃피우고 싶습니다.
4년 넘게 도와주고 있는 여중생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이 아이, 이렇게 셋이 삽니다.
갓난 아이 때부터 엄마의 온정을 느끼지 못한 다문화 아이입니다.
아빠는 맨날 아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게 자라고 있는 꿈 많은 중학생입니다.
이 아이의 꿈이 가수입니다.
실제로 각종 대회에서 대상을 휩쓴 실력자입니다.
벌써 지역에서는 유명인이 됐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미팅도 가졌습니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닉네임 “중딩가수”를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