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하는 게 적성에 맞습니다. 재밌거든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직업이기에 책임감도 남다릅니다.
요즘 한 분, 한 분 찾아가 심방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집에 오니 밤 9시가 됐습니다.
비록 작은 교회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교회입니다.

담임자 속 섞이는 성도,
아웃사이드(외톨이) 성도,
문제 있는 성도,
우울증을 겪는 성도,
가정에 문제가 있는 성도
아주 다양합니다.

이런 성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하며, 기도해줍니다.
그러면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이라며 얼마나 극진한지 모릅니다.

“우리 목사님은 인품도 좋아, 참 순수하고 깨끗해,
항상 말씀에 은혜 받아요.
나중에 주례 서 주세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모습에 저 역시 감동받고, 사명감도 더 명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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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만나는지 모릅니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인사하며, 후원관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진 직업입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보통사람 아니곤 매우 힘든 일 아니겠습니까?

저도 처음부터 이런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걸 극히 꺼렸고, 내성적이었으며, 말도 조리 있게 못했습니다.
피나는 연습을 했고, 의도적으로 말을 꺼냈으며, 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저를 만나는 후원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은 서글서글한 성격이세요. 뭐든지 허허 웃어넘기고, 부드러운 것 같아요.
그래서 무료급식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에게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료급식이 저에게 “딱”이라는 사실을요.
그러나 “서글서글하다, 부드럽다” 이런 건 약간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원래는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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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사업을 하다 망했습니다.
그야말로 거지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골교회 관리직으로 들어갔습니다.
말이 좋아 관리직이지 “교회사찰”이었습니다.
궂은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청소가 주업무였고, 성도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 “사찰”입니다.
근데 이 사찰이,,,,
지금은 안 그렇겠지만
많이 무시당하는 직업입니다.
물론 겉으론 안 그렇겠지만 속으로 깔보고,
나보다 낮게 보는, 세상 말단 직종이었습니다.
마치 머슴같이, 종 부리듯 하는 게 이 세계입니다.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때 너희 가족, 굉장히 무시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랬어.”
그러나 우리 가족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사찰도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집도 없었고, 각종 공과금 낼 돈도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10년을 섬겼습니다.
글로 다 못 옮기는 에피소드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못 쓸걸요.
무시당하는 건 다반사였고,
반말, 에이~ 이건 애교에 속했습니다.

이때가 제 나이 20살이었습니다.
혈기왕성할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 뭐 무서울 게 없었던
객기의 끝판왕 김성민.

근데 30세까지 사찰의 아들로 산 것입니다.
처음엔 저도 못 견디겠더군요.
그러나 현명하신 어머니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아들아, 무엇이든 네가 참아, 우리는 무조건 입 다물어야 돼.”
귀를 파면 귀지가 나와야 될 텐데, “네가 차~암~아~~~” 이 말이 나옵니다.

이렇게 살다가 신학교를 들어갔고, 개척을 했습니다.
그런데요.
개척을 하고 목회를 하는데 왜이리 목회가 쉬운지요.
아니 다른 동기들은
“힘들다.
성도가 속 섞인다.
때려 치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데,
저는 안 그랬거든요.

저는요.
과거 10년 동안 사찰로, 머슴으로, 무시당했었고, 항상 져 줘야만 했으며, 늘 참아야 했던, 쥐죽은 듯 눈치를 살폈어야만 했던 “그때 시절” 덕분에 목회하는 내내 얼마나 쉽게 쉽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릅니다.
성도가 뭐라 하든,
속 섞이든,
삐치든,
다 견딜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으며,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겁니다.
확실한 예방주사를 10년 동안 맞은 게, 지금 목회를 잘하는 스킬이 된거죠.
앞으로도 끄떡 없이, 아주 즐겁게 할 수 있을 겁니다.

20대 때, 악에 받쳤고, 미칠 정도로 억울했었는데,
그게 지금 무료급식 하는데 이점이 됐습니다.
서글서글하고, 부드럽고,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상황을 (내 자신 스스로가)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요.
옛날에 섬겼던 그 교회가 고맙고,
그 성도들이 고맙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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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못 갚을 상황이라도 늘 생각은 하고 있어야 합니다.
2011년, 교회개척을 했습니다.
모(母)교회에서 개척자금을 주셔서 건물보증금과 인테리어, 집기류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참 고마운 교회이고, 은혜 많이 입은 교회입니다.
개척자금 주실 때, 계약서를 썼습니다.
“이 돈은 성도의 귀한 헌금으로써 다른 곳에 쓸 수 없고 갚아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회원 17명인 작은 교회지만, 성도들에게 선포했습니다.
“우리 조금 덜 쓰고, 허리띠 꽉 매서 돈 갚읍시다.”
그리하여 3년 동안, 자린고비가 돼 안 먹고, 안 써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어제(2021.12.29.) 모(母)교회를 찾아가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10년 전, 빌렸던 개척자금을 지금에서야 갚게 됐습니다.
이자도 없이 원금만 갚아 정말 죄송하고 송구합니다.
기쁘게 받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매월 정기적으로 후원해주셨던 것도
저희보다 더 어려운 교회로 옮겨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원래는 담임자가 바뀌면 후원도 끊겨야 마땅한데 계속 해주는 게 아닙니까.
염치도 없고, 고개도 못 들겠더군요. 그래서 그동안 매월 후원받는 것도 올해까지만 하고 내년부턴 끊어달라고 부탁드린 것입니다.
2011년, 계약할 때 3년 동안만 정기후원 하겠다는 게 명시됐는데 계속 도와준 건데요. 정말이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큽니다.
앞으로 은혜 잊지 않고 열심히 열심히 맡은바 소명을 이루겠습니다.
사강감리교회 모든 성도님과 이태영 담임목사님,
장로님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영혼의 스승이신 김길수 사강감리교회 전(前) 담임목사님께 한 말씀 드립니다.
“목사님이 있어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잘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람’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정말 울컥하네요.)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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