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도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지역에서 작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의 경력이 많지 않아서인지
매주 매일 처음 하는 사역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신선합니다. 그리고 바쁩니다.
주일 낮, 주일 오후, 수요예배 등 설교준비가 사역의 대부분 시간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열린밥차가 있는 날이면 그 전날부터 준비를 하고
당일 아침에 밥과 국, 김치를 준비하는 등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아침은 아내와 함께 전쟁을치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일주일 계획표를 작성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날 그날 계획한 것을 꼭 해야 되기에 내 자신과의 싸움이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무리 없이 잘 이겨냈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온다는 것을 깨닫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평소같이 열린밥차를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우리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순간 1년 전, 약속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시설에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목사님께서 주관해 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습니다.”
그땐 별 생각 없이 “네~” 라고 대답했었습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장례를 주관해서 인도해 본적이 없었지만 먼 후의 이야기이고 그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깐 가벼운 맘으로 수락을 한 것인데, 그 약속한 날이 오늘 일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일단 준비하던 열린밥차는 정상대로 끝내야 했기에 부랴부랴 끝내고
연락할 수 있는 성도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 사이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교회로 와 감리교신학대학교 박해정 교수님께 배운 대로 예문집을 빨리 훑어보고는 짧은 설교문을 타이핑해 프린팅하고 교회를 나셨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과 화성에서 인천사랑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와 무거운 분위기가 섞인 장례식장을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첫 조문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아내와 다른 성도들은 타고 왔던 차로 다시 교회로 가고
저와 또 다른 성도 한사람은 그곳에 남아 있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이것저것 함께 일을 도왔습니다.
얼마 전, 저의 이모부께서 돌아가셨을 때, 눈여겨봤던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9시경 우리교회 2진팀이 왔습니다.
두 번째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 마치고 집에 오니깐 새벽 12시 반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녁때도, 우리교회 거의 모든 성도들이 또다시 가서 함께 찬양과 기도와 예배와 통성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위로를 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고 긴장된 시간이 가니 몸이 이상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몸살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간신히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만 그런 것 같았는데 알고보니 우리교회 성도 모두가 무리를 해서 몸살이 났던 것입니다.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은 전교인 대심방이었고, 주일 오후예배 후, 무료이발 사역이 있었는데
모두 다음으로 미뤄졌습니다.

작은 목회도 머리가 깨질 정도로 바쁘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