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카테고리 없음 2022. 2. 8. 14:20

2,000년 전까지 세계 휴대폰시장은 미국의 “모토로라”와 핀란드의 “노키아”가 양분했습니다.
이후 내구성과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한국의 삼성전자가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후발주자였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노키아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피처(2G)폰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미국의 애플사에서 “아이폰”을 시장에 내놓은 것입니다.
전에 없던 “스마트폰”을 출시시켜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때부터 휴대폰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모토로라 휴대전화 사업부는 중국 “레노버”로 팔렸고, 150년 넘게 이어온 노키아는 공중분해 됐습니다.
삼성전자는 터치스크린 “옴니아”를 선보였지만 아이폰에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는 이때서야 방향을 틀고, 잘 나갔던 2G폰 “애니콜”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브랜드 “갤럭시” 개발에 착수합니다.
2007년, 그해는 전 세계가 아이폰의 열풍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때 참여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세계적으로 불티나게 팔리는 아이폰의 수입을 막는 정책을 취한 것입니다.
그렇게 2년 동안 국내에선 아이폰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습니다.
2009년이 돼서야, 그것도 KT를 통해서만 아이폰을 개통할 수 있었습니다.
극변하는 정세에 2년이란 시간을 벌었던 삼성전자는 갤럭시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고, 애국국민 덕분에 내수부터 차곡차곡 쌓았던 기술력을 가지고 수출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이폰이 출시되던 2007년에 내수시장을 바로 열어줬다면 기술이 부족했던 삼성전자는 지금쯤 싸구려 삼류 회사가 돼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2년이란 시간을 틀어막아준 정부와 그 시간에 발빠르게 개발했던 회사의 합작품이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고 있는 휴대폰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수출품목 중에 반도체와 휴대전화의 비중에 25%에 달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그때 얼마나 중요한 판단을 했는지 과히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2012년, 무료급식소는 형편없었습니다.
노상, 즉 길거리에서 시작했거든요.
그때를 생각하면 말도 못합니다.
식구들이 고생고생 했기 때문입니다. (구구절절 할 말이 많지만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에 작은 공간을 얻어 급식소간판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경기도청에 비영리민간단체를 신청했습니다.
관공서의 행정에 아무것도 몰랐지만 모(母)교회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어렵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몸도 불편했던 띨띨한 사람이 몇 십번을 들락거리니까 불쌍하고 귀찮아서 억지로 통과시켜준 것 같습니다.
행정사에 맡기면 쉬웠을 텐데, 돈이 없어 무식하게 발로만 뛰었거든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그때 통과시켜준 주무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2019년에 비영리사단법인과 지정기부금단체까지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 전국에서 20위 안에 드는 무료급식소가 되지 않았나 자부합니다.

그런데요.
지역에 큰 교회를 다니는 성도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목사님, 옛날에 우리교회도 무료급식소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근데 목사님이 이미 하고 있어서 포기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우리지역도 큰 교회가 많습니다.
맘만 먹으면 무료급식소 왜 못 차리겠습니까?
돈도, 사람도, 행정사도 다 있었을 텐데요. 식은 죽 먹기죠.
그냥 안 했던 것뿐입니다.
쪼매난 교회에서 먹고살아보겠다고 힘들게 무료급식하고 있는 모습을 불쌍히 봐주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없이 응원해준 주위 교회들과 담임목사님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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