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명절 때 급식소 대청소를 했습니다.
연휴가 길어서 청소하기 딱 이었습니다.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송산포도를 나눠주고 왔습니다.
해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와 기독교예배위원들이 함께하는 행사입니다.
이번에는 포도값이 비싸서 그런지 무료급식소에 포도후원이 하나도 안 들어왔네요.^^*
내년에는 경제와 물가가 나아지길 소망해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애들 엄마에겐 하루 온전히 휴가를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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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오는 글은 과거의 상황이었으며, 보편적(일반적)으로 인식하지 않길 소망합니다.)
내 나이 28세에 시간강사를 시작했습니다.
시간강사란 정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만 잘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순진했습니다.
그 세계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외줄타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했고,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 시즌이 돌아올 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파리목숨이었습니다.
또 정교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애교를 부려야했습니다.
회식을 하더라도 일반식당에서 안 했습니다. 고급 일식집에서 했습니다.
이때 강사들은 꼭 참석해야만 했습니다. 눈 밖에 나면 찍히기 때문입니다.
2차로 노래방을 가면 노래는 강사몫이 됐습니다. 신나게 불러댔습니다.
나는 그렇게 버텼고 겸임교수까지 올라섰습니다.
처세를 잘했다기보다는 모든 게 은혜였습니다.
이런 세계에 젖어 살다가 모든 걸 청산하고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일반음식점이 시시하게 보였습니다.
전부터 알고 지냈던 후원자가 있습니다.
종종 식사를 대접해줍니다.
이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아는 고급식당이 있는데 같이 갑시다.
저하고 목사님, 사모님 이렇게 셋만 가요. 아마 목사님은 한 번도 못 가본 곳일 걸요. 하하.”
“아... 저... 그게...”
“왜 얼른 대답을 안 하세요? 갑시다. 가자니까요.”
이제는 고급식당 가는 것도 내 양심에 비춰 멈칫해집니다.
그냥 가기 싫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후원자 앞에서도, 성도 앞에서도, 내 자신 앞에서도 께름칙합니다.
강남에 위치한 대형교회 목사님은 그 교회에 맞는 위치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도를 목양하는 입장에서 그 방법이 최선이면 상황과 여건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교회 목사님, 티코(Tico) 타고 다니는 모습을 못 보겠다. 성도들이 돈을 모아 제네시스 사드립시다.”라면 누가 말립니까? 안 받아도 시험듭니다.
그러나 내 입장은 다릅니다.
무료급식을 운영하는 입장인데다 개척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내 위치에서 과욕 부리지 않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재밌게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사실 맛있는 음식점도 가긴 갑니다. 그러나 공개된 장소(SNS)에 올리지 않습니다. 이걸로 상처받을 사람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생각 없이 살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관용과 배려와 양보와 양심으로 살아갈 것을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