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카테고리 없음 2024. 4. 22. 17:14

교회를 개척한지 13년이 됐고, 무료급식을 시작한지 12년이 됐습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모진 세월을 지나왔다는 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불가능했던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끊임없이 고뇌하고 싸우며 견뎌 냈습니다.
기쁨과 슬픔, 통쾌와 고통, 만족과 실패 모두 맛 봤습니다.
여러 상황과 거센 풍파를 맞으며 더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성숙하고 보니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나 혼자는 할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나 혼자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고, 우리교회 성도, 봉사자, 후원자,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상당하며, 기업과 단체와 교회들의 관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역에서도 우리를 면밀히 살폈습니다.
물론 무료급식 이용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테죠.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지만 만나무료급식소를 이용해주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아 항상 고마움을 간직합니다.
또 대한민국 정부와 화성시도 고마운 대상입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정무에도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찾아줬습니다.
이처럼 돕는 사람이 항상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불가능한 일, 기적 같은 일들이 매일 펼쳐졌습니다.
이러한 신비한 체험과 경험 때문에 덩달아 신나게 사역할 수 있었고요.
만약, 가진 게 많아서 내 것을 가지고 사역했다면 이런 간증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매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며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후원자, 당신 덕분입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도, 뽐낼 것도 없습니다.
김성민이 잘한 건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물심양면으로 힘껏 돕는 후원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도록 협력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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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카테고리 없음 2024. 4. 11. 10:25

2008년, 청년부에서 선교를 갔습니다.
C국 신장 우.루.무/치를 갔습니다.
낯선 곳을 비전트립 했습니다.
구역을 나눠 현지인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조별로 전_도했습니다.
한참을 다니다 보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조만 낙오됐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나섰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십이 강했던 청년이 앞장섰습니다.
빠른 판단과 결정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해병대를 전역한 기호진 청년 덕분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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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8세와 6세인데 정확히는 17개월 차이입니다.
비슷한 연령이라 엄청 싸워댑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서로 양보를 안 합니다.
특히 동생이 형한테 들이댑니다. 꼭 염소 같습니다.
어느 날 첫째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나중에 엄마 아빠 죽으면 철없는 동생 내가 보살펴야 되지요?
아휴, 그래도 잘 보살펴줄게요.”
첫째는 첫째로서 자연스럽게 동생을 챙겨야 함을 알아갑니다.
신기하게 장남의 리더십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동생은 세월이 흘러도 형을 의지하는 것 같고요.
우애가 돈독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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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장남, 장녀입니다.
자연스레 장손이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친동생은 없어도 사촌동생은 여러 명입니다.
“형, 오빠”하며 잘 따랐습니다.
초등학생 때 이모네 집을 갔습니다.
버스를 잘못 타 엉뚱한 곳에 내렸습니다.
혼자 터미널에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결국 날이 저물었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길 잃어버린 건 안중에 없고 동생들에게 줄 과자를 한아름 샀습니다.
크라운 산도, 초코파이, 카라멜, 사탕 등을 샀습니다.
길 잃은 것보다 동생에게 줄 선물에 정신이 팔린 것입니다.
나이가 44세인데 아직도 오빠를 잘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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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짜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만 쫓으며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였습니다.
지금도 똑같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돈보다 무료급식과 교회사역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랬더니 먹여주고 살려주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기 싫어서 더욱 경각심을 갖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할지 분별하며 삽니다.
무료급식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게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가 주었고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의 김성민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한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통솔하고 인솔하고 계획하고 설득하고 설교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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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이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었을 때 SKY 학부와 석사까지 마친 분, 오랜 기간 목회했던 분, 시인으로 등단까지 했던 분, 의대생까지,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했던 사람을 만납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꼬리가 내려갑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내가 뭐라도 된 것인 냥 으스대지 않겠습니다.
어울리지 아니하게 우쭐거리며 뽐내지 않겠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것이지 스스로 한 게 아님을 명심하겠습니다.
머리에 잘 심어놓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알량한 자존심까지 내려놓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리더십과 책임감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지만, 이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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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땡

카테고리 없음 2024. 4. 5. 15:06

유권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권리행사를 하고 왔습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한 표가 이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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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10번씩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식사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반찬 더 달라고 하세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끊임없이, 계속, 말하고 또 말합니다.
나뿐 아니라 모든 봉사자가 돌아가며 묻고 또 묻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이용자는 똑같은 말을 30번 이상 듣는 셈입니다.
일반식당에서 이러면 “굉장히 친절한 식당이네”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료급식을 대접하는 게 봉사자에겐 당연한 의무이고,
이용자에겐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나무료급식소에서는 그냥 자연스런 일상입니다.  
서로 부담주는 일도, 받는 일도 없습니다.

퇴근하면 아이들과 놀아줍니다.
거실에서 간지럼을 피며 뒹굽니다.
그러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웃어댑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립니다.
모르는 전화번호 혹은 후원자의 전화번호가 뜹니다.
그러면 일순간 집안이 조용해집니다. 정적이 흐릅니다.
아빠가 통화를 마칠 때까지 쥐 죽은 듯이 있습니다.
마치 전통놀이 “술래잡기, 얼음땡”처럼 몸이 굳어버립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 않았습니다.
많은 훈련과 경험(폭력)을 통해 터득한 것입니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벨이 울리면
주방에서 대파를 썰던 엄마가 아이들이 있는 거실쪽으로 몸을 던집니다.
야구선수 전준호 선수처럼 아슬아슬하게 슬라이딩 세이프를 시도합니다.
아이들 등짝에 스매싱을 후려갈깁니다.
볼기짝에 나이스캐치를 합니다.
드디어 도루에 성공한 것입니다.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봤던 조인성의 주먹울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집니다.
아이들은 웃음과 고통이 공존하는 감정 속에서 입을 틀어막느라 고생합니다.
아직 6세와 8세가 감당하기엔 벅찬 줄 알지만 뭐 어떡하겠어요?
아빠가 후원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내재화된 상태입니다.
아이들 머릿속에 칩셋이 심겨졌습니다.
“후원자, 이용자, 봉사자, 교회성도, 이웃 어른”
이런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규격화를 마친 가족입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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