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한자로 표현하면, 아름다울 미(美), 나라 국(國)을 씁니다.
얼마나 예쁘면 “아름다운 나라”일까? 매일 상상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을 동경했습니다.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내 나이 26세 때입니다.
미 서부지역을 혼자 정처 없이 다녔습니다.
현지 관광업체를 찾아가 패키지여행도 병행했습니다.
그랜드캐니언, 라스베이거스, LA할리우드사인,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씨월드 샌디에이고까지 가는 곳마다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왜 아름다운 나라인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요세비티 국립공원도 갔습니다.
제주도 면적의 1.7배가 넘는 울창한 산림지대,
수천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곳,
최소 몇 백 년 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대자연의 경관에 압도 당했습니다.
가이드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만약에 번개가 쳐서 대형산불로 번져도 소방차가 출동하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화재진압을 하지 않고 그냥 자연히 꺼지도록 놔둡니다. 수천 년 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 보존하는 게 환경보호입니다. 자연의 방법대로, 자연이 진화 하도록 인간은 그냥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진짜로 곳곳에 화재의 흔적이 있었고, 금세 복구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의 힘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그때그때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옮깁니다.
글 쓸 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도록 나만의 장소로 이동합니다.
골방에서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냅니다. 집중모드로 들어가죠.
가식이나 인위적으로 쓰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도 아니고,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근데 내 글을 읽고 주위에서 말을 많이 합니다.
“이번 글 이상했어요.
요거, 저거, 적절한 단어가 아닌 듯 해요.
목사님이잖아요. 그러면 목사님들이 쓰는 은혜스런 단어가 있을 텐데 이게 뭡니까?
너무 가볍지 않고, 장난끼 섞이지 않게, 진중하게 좀 쓰세요.
다시 수정하세요.”
이럴 때마다 기가 팍 죽습니다. 그때부터 글쓰기가 싫어집니다. 재미없어집니다.
전체 글에 대한 나의 의도는 배제한 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가지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 안 됩니다.
절대 창의적인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축돼서 점점 글이 이상해집니다.
우리에겐 후원자가 많습니다.
남자, 여자, 노인, 어린이, 대학생, 일반인, 주부, 회사원, 목회자, 성도, 사장님, 직원, 불신자, 불교신자, 카톨릭신자, 원불교신자, 전직 무당 등등 아주 많죠.
이들이 내 글에 호기심을 갖고, 때론 감동받으며, 후원까지 이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연스러움, Natural”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는, 내 모습 그대로의 글, 눈치보지 않는 글을 좋아해주기 때문입니다.
요세비티에서 화재가 나도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개입은 자연보존이나 글쓰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글쓰기도 사역(하나님의 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재능을 주셔서 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라 생각합니다.
단어 하나 때문에 시시콜콜 꼬투리 잡고, 훼방하고, 시비 걸면 성령의 방해자가 됩니다.
만약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할 때면 하나님이 직접 나서지 않을까요? 김성민을 치시든 몰아넣든 말입니다.
글쓰기를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내 글이 보기 싫으면 김성민을 차단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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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서류를 마쳤습니다.
이제 내 손을 떠난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도와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관변경이 완전히 통과될 때까지 기도해주십시오.
그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120% 발휘했습니다.
다 끝나니 그동안 붙잡고있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몸살이 찾아왔습니다. 이번엔 심했습니다.
오한과 고열, 편도염, 기관지염, 두통까지 4일간 일어나지 못한 채 침대에서 꼼짝 못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달려갑니다. 너무 과한 게 문제죠. 완벽주의 성향이 다분합니다.
빈틈이나 실수가 없이 하려고 애씁니다.
그때마다 허약한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지금도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억지로 사무실에 나와 밀린 일을 해치우고 있습니다.
다시 툴툴 털고 빨리 일어나겠습니다.
단체의 이사는 인감도장을 대표이사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정관변경이 끝날 때까지 내가 가지고 다닙니다.
도장을 수령하러 다녔습니다.
안산에서 간판가게를 운영중인 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무료급식소를 이끌어갈 줄 몰랐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3년쯤 하다가 때려칠 줄 알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묘했습니다.
칭찬 같으면서, 욕 같은 게 참 이상했습니다.
첫 사역지 안산명성교회 때인 2010년부터 현재까지 15년을 쭉 지켜봐왔습니다.
교회 개척할 때도, 급식소 시작할 때도 모든 간판을 여기서 무료로 해줬습니다.
이런 사장님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간판을 설치해주면서 속으로 생각했겠죠.
“이 목사님 조금 하다가 그만두겠지”
근데 이 분 말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김성민, 재 힘들면 때려칠거야.”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 어,,, 하네… 계속 하네. 뭐 자꾸 북적북적 움직이네,,, 성장하고, 발전하고, 크게 되잖아”
지금은 김성민을 달리 보고 있습니다.
인정하는 만큼 앞만보며 끝까지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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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 휴가기간이 있습니다.
사업계획서에도 명시된 것입니다.
그래서 떳떳하게 갈 수 있습니다. 일주일간 무료급식소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용자들을 생각하니 문을 못 닫겠더군요.
그래서 모든 봉사자가 휴가를 재조정했습니다.
우리만 바라보는 이용자가 존재합니다.
독거노인, 홀아비 어르신들이 존재합니다.
이를 생각했을 때 차마 문을 닫을 수 없었습니다.
휴가기간이라도 문을 닫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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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무료급식소 대표님인가요?
후원을 하고 싶은데 물품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현금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아,,, 네,,, 그건 선생님 마음대로 선택해주면 됩니다. 상관없으세요.”
상추, 노각, 고구마줄기, 쌀, 생리대 등을 후원하는 현물후원자,
금전으로 후원하는 정기후원자,
CMS자동이체 하는 CMS후원자,
결손아동이나 소외청소년에게 후원하고 싶어하는 지정후원자,
“특정 위기가정에 꼭 써주세요.”라고 말하는 특별후원자,
“무료급식소에 필요한 물품을 사세요.”라고 말하는 품목후원자와 일시후원자,
“목사님 가정에만 써주세요.”라는 개인후원자,
“교회에 헌금하는 겁니다.”라는 십일조, 감사헌금자,
정말 다양합니다.
이걸 내 임의로 해달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후원자가 내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나는 짠돌이입니다. 굉장한 짠돌이 맞습니다.
돈이 너무 아깝습니다.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 월세, 다 아깝습니다.
이사 와서 첫 관리비 고지서가 나왔는데 65만원이 나왔습니다.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럴수록 1만원의 정기후원자가 귀합니다.
금전으로 정기후원 하는 사람들 때문에 연체없이 공과금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무료급식 사역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소액의 정기후원자들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겐 현물후원자도, 특별후원자도, 정기후원자도, CMS후원자도 모두 다 필요합니다.
해충방지를 위해 세스코가 잘 관리해주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입시지망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실력이 안 됐던 것입니다.
당시엔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생에서 첫 실패를 맛본 것입니다.
13년 전, 상가건물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1층은 다방과 꽃집이 있었습니다.
지날 때마다 사장님들께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본체만체 안 받아주고, 곁눈으로 보는 게 아닙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꾸벅꾸벅 인사했습니다.
상대방이 미안해할 정도로 밝은 얼굴로 인사했습니다.
1년쯤 지나니 조금씩 변화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엔 부활절과 성탄절 때마다 화환을 보내는 사이가 됐습니다.
정말 각별한 사이가 됐습니다.
이전을 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사 온 건물 사장님들께 인사하고 다닙니다.
근처에 택시정류장이 있는데 기사님들께도 인사합니다.
그런데 잘 안 받아줍니다. 날 벌레 보듯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웃으며 인사합니다.
앞으로 11개월이 지나면 달라질 것을 믿습니다.
지난 날, 다 겪어본 일입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전부 경험해봤습니다.
세상풍파 겪어봐서 조금은 단단해진 김성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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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가 이전을 했습니다.
이전을 완벽하게 마치려면 회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정관변경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찍어줘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 과정이 굉장히 힘듭니다.
이것 때문에 이사는 두 번 다시 안 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70% 너머 80% 가까이 됐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사실 남에게 내 인감을 건넨다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도 안 해주는걸요.
불안한 세상에 나 같아도 안 해줄 것 같습니다.
잘 아는 목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모잘라? 우리 내외 것도 떼줄까?”
이 분은 남에게 절대 신용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한평생 목회철칙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김성민을 믿어준다는 것이기에 상당히 기뻤습니다.
이런 믿음, 아무나 못 갖습니다.
더욱 책임감으로 신뢰를 쌓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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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에 사는 소외계층 가정에 에어컨을 달았습니다.
비용은 후원자가 지불했고요.
기사가 방문하고 가정형편을 보더니 저렴하게 깎아주셨습니다.
깎아달라고도 않는데 깎아준 것입니다.
“기사님, 이거 후원자를 통해 설치하는 겁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러면 저도 싸게 해드릴게요..”
구제를 하면 이런 일을 많이 겪습니다.
손해 볼 정도로 싸게 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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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체 새로운 이사님이 세워졌습니다.
MG새마을금고(경기서부) 서승원 상무님께서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13년을 한결같이 정기후원 하는 분, 자녀들까지 정기후원자입니다.
서승원 집사님, 홍승란 전도사님,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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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리했는지 몸에서 이상한 신호가 감지됩니다.
안 아팠던 어금니가 아프네요.
바쁜 일 끝내고 푹 쉬면 좋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