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소'에 해당되는 글 706건

  1. 2024.05.02 큰바위얼굴 2
  2. 2024.05.01 도전
  3. 2024.04.30 잠잠
  4. 2024.04.30 더열린교회 창립 13주년 및 무료급식 사역 12주년 기념감사예배
  5. 2024.04.27 유니버스 1
  6. 2024.04.23 러시아사람
  7. 2024.04.22 감사
  8. 2024.04.11 리더십
  9. 2024.04.05 얼음땡
  10. 2024.04.04 변태

목회를 하면 할수록 힘들고 재미없습니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 이 길을 갈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직하게 걸어가겠습니다.

나도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으면 정신적으로 데미지가 큽니다.
말 한 마디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경직과 이완을 반복할 때마다 힘듭니다.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인생 최대의 난제입니다. 여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습니다.
미묘한 밀당을 유지하느라 영혼이 피폐해져 갑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인드컨트롤 하며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대립과 싸움의 원인은 내가 양보 안 한 탓이 제일 큽니다.
내 안에 상처들 때문에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반성하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제 있는 성도를 변화시키려고 10년을 설교했는데 끝까지 안 변하더라.
10년 후, 당사자가 아닌 내가 변하더라.
성도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하는데,,, 자꾸 바꾸려고만 하니 문제가 커질 수밖에요.
알량한 고집과 아집 때문에 병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똥덜렁이 같이 살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막무가내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교회를 떠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교회는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철들고 나이를 먹으니까 어렴풋이 그때가 생각납니다.
옛날에 들었던 설교가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정작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말씀들이 살이 되고 피가 됐습니다.
“1. 마음이 평안할 때 ‘예방신앙’을 가져라. 위기를 대비해라.
2. 설교시간에 졸아도 교회와서 졸아라.
3. 콩에 물을 주면 전부 밑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지만 결국 콩나물로 자란다. 신앙도 이와 같다.”
흘려 들었던 말씀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습니다.

모(母)교회의 구조는 1층 목양실에서 2층 본당으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이 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목사님은 그 계단을 이용하여 강대상에 올랐습니다.
26년 전 들었던 설교가 생각납니다.
“담임목사인 나는 나무계단을 오르기 전, 꼭 하는 루틴(Routine,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이 있다.
혼잣말로 ‘성령님 먼저 이 계단을 오르시죠. 저는 뒤따라 가겠습니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은혜충만한 예배가 되고 만다.”
26년이 지난 지금 더열린교회를 섬기는 내게도 똑같은 루틴이 생겼습니다.
“성령님 앞장 서십시오. 뒤따라가겠나이다.”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꼬불꼬불 골목들이 어지럽게 엉켜있습니다.
대로(大路)가 있었지만 신호 받기가 귀찮아서, 아니면 조금 빨리 가려고 얌체처럼 샛길로 가는 모습이 종종 있었습니다.
덩달아 사고도 잦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예배시간에 중대발표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교회 성도들은 대로만 이용합시다.
사회에 모범이 돼야 합니다.
믿음의 양반답게, 느긋하게 운전합시다.”
이때부터 나도 대로만 이용하려 애씁니다.

컴퓨터를 잘 고칩니다.
교회 모든 컴퓨터는 전부 내 손을 거쳐갔습니다.
당연히 담임목사님의 컴퓨터도 정기적으로 점검했습니다.
사택과 목양실에 있는 컴퓨터를 손보러 가면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프린팅을 할 때마다 꼭 이면지를 사용하는 것,
절약정신을 배웠습니다.
이때부터 나도 이면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사람의 얼굴을 닮은 바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큰바위얼굴”이라 불렀습니다.
“어니스트”라는 소년은 그 바위를 보며 “나도 저렇게 인자하고 인품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라며 늘 보고 자랐습니다.
결국 배려 많고 품행이 단정한 어른으로 자라있었습니다.
내 주위에도 큰바위얼굴 같은 스승이 많습니다.
보고 배우며 닮아가고 싶은 스승님이 존재합니다.
나를 있게 한 스승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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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카테고리 없음 2024. 5. 1. 01:09

더 큰 도약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의지와는 달리 이전을 해야할 사정에 몰렸고 오늘 계약서를 썼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모아 새로 이전할 곳의 임대료를 지불했습니다.
가정집 이사도 만만치 않는데 무료급식소를 이전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주방시설 설비부터 인테리어, 간판까지 새로 몽땅 해야합니다.
많은 돈이 들어가겠지만 늘 그랬듯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모험을 걸어봅니다.
작은 교회, 작은 단체지만 우리 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함을 믿기에 담대하게 첫발을 내딛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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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

카테고리 없음 2024. 4. 30. 14:08

기독교는 성탄절, 불교는 석가탄신일이 있습니다.
모두 특별한 날입니다. 맛있는 것을 잔뜩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 무료급식소도 특별한 날이 있습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입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특별식을 대접했습니다.
떡도, 선물도 푸짐하게 드렸고, 가슴에 카네이션도 달아드렸죠.
아주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이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후원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조용합니다.
지독한 불경기 때문에 후원이 뚝 끊겼습니다.
기업, 단체, 교회, 개인후원까지 모두 잠잠합니다.
지금까지 이랬던 적이 없습니다.
참 생소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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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함께해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열린교회 창립 13주년 및 무료급식 사역 12주년 기념감사예배-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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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스

카테고리 없음 2024. 4. 27. 15:53

신뢰(信賴, 굳게 믿고 의지함)는 갑자기,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특히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는 더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는 오랜시간 지켜봐야 알 수 있습니다.
급식소를 운영하려면 제일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료급식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다년간 후원관계를 이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연말이면 후원자 리스트가 순차적으로 정렬됩니다.
이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연말정산에 신경씁니다.
정기후원자에게만큼은 기부금영수증을 우리가 알아서 처리해줍니다. 이들도 그러려니 합니다.
“알아서 올려주겠지” 생각합니다.
깨질 수 없는 신뢰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 단체와 후원자와의 작은 유니버스(Universe, 세계관)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 유니버스를 움직이는 힘은 신뢰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아주 강력한 힘을 지녔습니다.
신뢰해주는 만큼 실망시키지 않도록 부단히 움직이겠습니다.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성실과 겸손과 정직과 긍휼과 온유의 마음을 가지고 달려가겠습니다.

결혼한 지 8년 만에 아기가 생겼습니다.
불가능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임신하기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부부에게 아기를 주세요.
인공수정과 시험관시술 다 실패했습니다.
이제 돈도 없어요. 하나님, 어떡해요?
인간의 의지 다 포기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세요.
우리에게 예쁜 아기를 주세요.”
기도를 하자마자 거짓말 같이 아기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출산까지 했습니다.
산후조리도 안 됐는데 아내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둘째도 낳을까?”
그렇게 안 됐던 임신이 쉽게 됐습니다.
또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셋째도 만듭시다.”
아내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나봅니다.
자녀가 없었을 땐, 한 명만이라도 간절히 원했는데 자꾸 욕심이 생겼습니다.
김성민도 욕심 많은 인간이었습니다. 너무 간사했습니다.
둘째를 낳고 바로 적출수술을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조직검사 결과 더 있었으면 암이 커져 위험했을 겁니다.”
욕심 때문에 아내를 잃을 뻔 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더니 과거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안 됩니다.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늘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절제의 미를 배웠습니다.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면 전부 사회에 내 놓고,
조금 들어오면 허리띠 바싹 매며 정직하게 운영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유니버스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신뢰라는 유니버스에 들어와 주십시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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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아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경기라 일거리가 없습니다.
돈이 없어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웁니다.
내 손을 꼭 잡고 어눌한 말투로 말합니다.
“목사님, 나 일 잘해요. 벽돌도 잘 나르고 힘도 쌔요.
목사님, 나 일거리 좀 줘요.
우리 와이프,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밥 굶어요.”
이런 현실이 너무 슬픕니다.

우리 급식소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한번 식판에 나간 음식은 절대 싸갈 수 없다.”
급식소 안에서 다 먹고 가야합니다.
집에 싸 가서 두고두고 먹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우리 책임이기 때문이죠.
간혹 반찬이 남아 싸가려는 사람이 있는데 원천봉쇄하고 맙니다.
근데 러시아 사람이 남은 반찬을 가져가는 게 아닙니까?
눈치를 보며 살며시 휴지로 감쌉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도시락이 남았을 때마다 저녁식사 하라며 손에 쥐어줍니다.
얼른 일이 생기길 바랍니다.
--
몇 년 동안 안 보였던 어르신이 완전 백발로 급식소를 찾았습니다.
코로나 전이었으니 3년만입니다.
그동안 많이 여위어졌고 쇄약해졌습니다.
거동도 아들의 부축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가 됐습니다.
치매가 걸린 것입니다.
근데 급식소 앞 횡단보도에서부터 나를 보더니 세상 환하게 웃는 게 아닙니까?
반갑다며 손도 흔들어댔습니다.
치매인데도 무료급식소 목사를 알아봐주는 게 신기했습니다.
어느 누구한테 이렇게 방끗 웃는 경우가 없었다며 아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묻고 또 묻고, 인사하고 또 인사하는 어르신이 참 반가웠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좋아해주는지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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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카테고리 없음 2024. 4. 22. 17:14

교회를 개척한지 13년이 됐고, 무료급식을 시작한지 12년이 됐습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모진 세월을 지나왔다는 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불가능했던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끊임없이 고뇌하고 싸우며 견뎌 냈습니다.
기쁨과 슬픔, 통쾌와 고통, 만족과 실패 모두 맛 봤습니다.
여러 상황과 거센 풍파를 맞으며 더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성숙하고 보니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나 혼자는 할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나 혼자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고, 우리교회 성도, 봉사자, 후원자,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상당하며, 기업과 단체와 교회들의 관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역에서도 우리를 면밀히 살폈습니다.
물론 무료급식 이용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테죠.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지만 만나무료급식소를 이용해주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아 항상 고마움을 간직합니다.
또 대한민국 정부와 화성시도 고마운 대상입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정무에도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찾아줬습니다.
이처럼 돕는 사람이 항상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불가능한 일, 기적 같은 일들이 매일 펼쳐졌습니다.
이러한 신비한 체험과 경험 때문에 덩달아 신나게 사역할 수 있었고요.
만약, 가진 게 많아서 내 것을 가지고 사역했다면 이런 간증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매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며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후원자, 당신 덕분입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도, 뽐낼 것도 없습니다.
김성민이 잘한 건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물심양면으로 힘껏 돕는 후원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도록 협력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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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카테고리 없음 2024. 4. 11. 10:25

2008년, 청년부에서 선교를 갔습니다.
C국 신장 우.루.무/치를 갔습니다.
낯선 곳을 비전트립 했습니다.
구역을 나눠 현지인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조별로 전_도했습니다.
한참을 다니다 보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조만 낙오됐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나섰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십이 강했던 청년이 앞장섰습니다.
빠른 판단과 결정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해병대를 전역한 기호진 청년 덕분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8세와 6세인데 정확히는 17개월 차이입니다.
비슷한 연령이라 엄청 싸워댑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서로 양보를 안 합니다.
특히 동생이 형한테 들이댑니다. 꼭 염소 같습니다.
어느 날 첫째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나중에 엄마 아빠 죽으면 철없는 동생 내가 보살펴야 되지요?
아휴, 그래도 잘 보살펴줄게요.”
첫째는 첫째로서 자연스럽게 동생을 챙겨야 함을 알아갑니다.
신기하게 장남의 리더십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동생은 세월이 흘러도 형을 의지하는 것 같고요.
우애가 돈독하길 바랍니다.
--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장남, 장녀입니다.
자연스레 장손이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친동생은 없어도 사촌동생은 여러 명입니다.
“형, 오빠”하며 잘 따랐습니다.
초등학생 때 이모네 집을 갔습니다.
버스를 잘못 타 엉뚱한 곳에 내렸습니다.
혼자 터미널에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결국 날이 저물었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길 잃어버린 건 안중에 없고 동생들에게 줄 과자를 한아름 샀습니다.
크라운 산도, 초코파이, 카라멜, 사탕 등을 샀습니다.
길 잃은 것보다 동생에게 줄 선물에 정신이 팔린 것입니다.
나이가 44세인데 아직도 오빠를 잘 따릅니다.
--
전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짜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만 쫓으며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였습니다.
지금도 똑같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돈보다 무료급식과 교회사역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랬더니 먹여주고 살려주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기 싫어서 더욱 경각심을 갖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할지 분별하며 삽니다.
무료급식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게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가 주었고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의 김성민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한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통솔하고 인솔하고 계획하고 설득하고 설교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됩니다.
--
무료급식소 이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었을 때 SKY 학부와 석사까지 마친 분, 오랜 기간 목회했던 분, 시인으로 등단까지 했던 분, 의대생까지,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했던 사람을 만납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꼬리가 내려갑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내가 뭐라도 된 것인 냥 으스대지 않겠습니다.
어울리지 아니하게 우쭐거리며 뽐내지 않겠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것이지 스스로 한 게 아님을 명심하겠습니다.
머리에 잘 심어놓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알량한 자존심까지 내려놓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리더십과 책임감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지만, 이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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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땡

카테고리 없음 2024. 4. 5. 15:06

유권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권리행사를 하고 왔습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한 표가 이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하루에도 10번씩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식사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반찬 더 달라고 하세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끊임없이, 계속, 말하고 또 말합니다.
나뿐 아니라 모든 봉사자가 돌아가며 묻고 또 묻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이용자는 똑같은 말을 30번 이상 듣는 셈입니다.
일반식당에서 이러면 “굉장히 친절한 식당이네”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료급식을 대접하는 게 봉사자에겐 당연한 의무이고,
이용자에겐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나무료급식소에서는 그냥 자연스런 일상입니다.  
서로 부담주는 일도, 받는 일도 없습니다.

퇴근하면 아이들과 놀아줍니다.
거실에서 간지럼을 피며 뒹굽니다.
그러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웃어댑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립니다.
모르는 전화번호 혹은 후원자의 전화번호가 뜹니다.
그러면 일순간 집안이 조용해집니다. 정적이 흐릅니다.
아빠가 통화를 마칠 때까지 쥐 죽은 듯이 있습니다.
마치 전통놀이 “술래잡기, 얼음땡”처럼 몸이 굳어버립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 않았습니다.
많은 훈련과 경험(폭력)을 통해 터득한 것입니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벨이 울리면
주방에서 대파를 썰던 엄마가 아이들이 있는 거실쪽으로 몸을 던집니다.
야구선수 전준호 선수처럼 아슬아슬하게 슬라이딩 세이프를 시도합니다.
아이들 등짝에 스매싱을 후려갈깁니다.
볼기짝에 나이스캐치를 합니다.
드디어 도루에 성공한 것입니다.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봤던 조인성의 주먹울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집니다.
아이들은 웃음과 고통이 공존하는 감정 속에서 입을 틀어막느라 고생합니다.
아직 6세와 8세가 감당하기엔 벅찬 줄 알지만 뭐 어떡하겠어요?
아빠가 후원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내재화된 상태입니다.
아이들 머릿속에 칩셋이 심겨졌습니다.
“후원자, 이용자, 봉사자, 교회성도, 이웃 어른”
이런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규격화를 마친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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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카테고리 없음 2024. 4. 4. 14:57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되고 야외활동이 제한됐을 때
이 사람 덕분에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구독자가 60만명일 때 구독했지만 지금은 더 유명해져서 213만명이나 됩니다.
요즘은 TV를 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초창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보다 덜 유명했고 소수의 팬들과 상호작용했습니다. 따라서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생소한 곳, 위험한 곳, 색다른 경험을 통해 구독자로 하여금 희열을 느끼게 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비박(biwak)하는 모습도,
사기꾼과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담력도 있었습니다. 그의 대범함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1년 전쯤, 남미를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남극을 거쳐 돌아오는 계획을 짰습니다.
한참을 여행하다 남극 땅을 밟기 직전에 심경의 변화가 왔습니다.
실시간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전에는 비행기를 타도 설렘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구독자가 점점 늘어나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화가 되니,
여행이 여행이 아닌 중압감이 됐고 고통으로 변해버렸다.
여기서 여행을 중단하고 재충전을 가져야겠다.”
실제로 이후로 많이 변했습니다. 더 의젓해졌고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생각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내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합니다.
내가 겪었던 이야기들, 현재 느끼고 있는 상념들을 써내려갑니다.
그런데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지켜보던 고향 사람들은 더 그렇게 느낄 겁니다.
김성민의 상반된 모습,
그땐 망나니 같았고,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거침없었고 굉장히 교만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나인 줄 착각했습니다.
못 봐줄 만큼 인간말종이었습니다.
덜 되먹은 사람이었습니다.  
굉장히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과거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인격, 다른 사람이 돼 있습니다.
특히 글을 접할 따마다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내가 알던 김성민 맞아?”
비도덕적이고 비인격적이었던 사람이 마치 인품 있는 것처럼 글쓰고 행동하고 무료급식을 하니 그럴 만도 할 테죠.
“그러면 지금은 나아졌냐?” 물으면 똑같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불쑥불쑥 나오는 옛 성격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못된 성격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나는 별 수 없는 인간인가 봅니다.
못된 성격을 바꾸기 위해 묘책을 고안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성격을 바꿔가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를 바꿔버렸습니다.
글쓰기가 내 행동을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면 정말 은혜 잊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고,
“겸손하겠습니다.”라고 쓰면 조금은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언행일치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습니다.
옛날 내 모습을 봐왔던 사람들에게 부탁합니다.
김성민, 더욱 갱신하고 더욱 변태하겠습니다.
앞으로 지켜봐주십시오.
더 의젓하고 더 겸손한 김성민으로 탈바꿈해나가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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