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영수증'에 해당되는 글 679건

  1. 2024.03.19 파송송 계란탁
  2. 2024.03.18 이사
  3. 2024.03.17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4. 2024.03.15 잘 한 일
  5. 2024.03.15 방송인 홍진경 2
  6. 2024.03.13 장보기
  7. 2024.03.12 셰퍼트 5
  8. 2024.03.12 후원자
  9. 2024.03.11 하나님의 각본
  10. 2024.03.06 기도습관

가정에서 아내가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을 준비합니다.
파 송송 계란 탁,
식사 준비가 끝나고 아이들을 부릅니다.
“얘들아 밥 먹어라”
그런데 군것질을 많이 했는지 쭈뼛쭈뼛 오더니 인상을 찌푸린 채 말합니다.
“밥 안 먹을래요.”
말이 끝나자마자 한순간 정적이 흐릅니다.
일제히 공포가 감도는 초긴장의 상태가 찾아옵니다.
그 누구도 엄마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난 것입니다.
아내가 저음으로 말합니다.
“먹어”
그제야 세 남자는 군말 없이 식탁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먹기 시작합니다.
아내의 짧고 굵은 목소리는 흔치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세 남자들은 쥐 죽은 듯 가만히 먹습니다.
--
날이 갈수록 무료급식소를 찾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날씨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봄이 오니 외출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것도 아닌 게 날씨와 상관없이 인원이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아침일찍 출근해 식사를 준비합니다.
내 가족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쏟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어도 먹으러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 꾸며놓은 무료급식소라도 이용자가 없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
우리가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다 이용자 때문입니다.
이용자가 찾아와 맛있게 먹어주면 굉장히 기쁩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이용자들에게 틱틱거리며 퉁명스럽게 대하지 않으려 합니다.
겸손하고 따뜻하게 대하려 노력합니다.
우리의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군것질했다고, 아니면 반찬이 맛이 없다고 밥투정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
기도해주신 덕분에 좋은 장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현재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빈 상가가 있습니다.
월세가 만만치 않지만 맘에 쏙 듭니다.
다른 곳도 찾아봤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더 기도해보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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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카테고리 없음 2024. 3. 18. 17:46

(중보)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덩달아 무료급식소도 많이 성장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비웃겠지만,
내 역량과 능력에 비례해 성장했다는 겁니다.
김성민 개인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형편없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갖춰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재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특히 관공서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애쓰고 있습니다.
관공서의 명령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습니다. 슈퍼갑 대(vs) 슈퍼을의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영리민간단체, 비영리사단법인, 공익법인(지정기부금단체), 집단급식소 지정 등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그때그때마다 요구하는 것들을 순차적으로 완수해왔습니다.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한번 붙어보자”란 일념으로 끝까지 싸워 이겼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신기한 사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었다는 것과 2.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모두 성취됐다는 사실입니다.
기적을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 인생이 곧 기적입니다. 나는 기적덩어리입니다.
성장률 그래프를 보면 대각선으로 무난히 성장한 게 아닙니다.
중간중간에 갑자기 몇 단계씩 점프했던 때가 있습니다.
지역에 연고를 둔 사회단체들이 관심을 주었을 때입니다.
지역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급성장했습니다.
남양로타리클럽,
송산로타리클럽,
난파라이온스클럽,
한국크리스토퍼 남양반도,
한국카네기 천사봉사단,
남양의용소방대,
남양읍사무소,
남양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송파맘(송파로그),
지역 교회들과 불교단체들,
지역에 연고를 둔 여러 봉사단체들,
지역에 연고를 둔 공기업 및 중소기업들,
이들 단체가 우리에게 관심을 주면서부터 날개를 펼 수 있었습니다.
회장들을 하나하나 나열할 수도 없습니다. 너무 많아서입니다.
고맙다는 말도 못하겠습니다. 부끄럽고 밍구스럽습니다. 염치가 없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이런 사랑을 받는 게 어색하기만 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봉사하러 온 분이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봉사로 유명한 분인데 오랜만에 온 것입니다.
연신 고맙다고 말씀드렸죠.
난파라이온스클럽 회장이었을 때 많이 도와줬던 정인용 회장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관공서에서 제시한 기준에 입각해 급식소가 이사를 가야할 상황입니다.
여기 이 장소에서 몇 년을 지냈습니다.
“만나무료급식소는 영원히 존재하는 거야”라고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후원자, 봉사자, 이용자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나 또한 이사를 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슬프기만 합니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자리에 있으면서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건물주도 우리의 형편을 알고 저렴하게 배려해줬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앞이 깜깜합니다.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좋은 장소를 물색 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지 않겠습니까?
식사하기 전, 잠들기 전,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이 예비해둔 장소로 급식소가 이사 갈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간판도, 환기구도, 인테리어도 다시 해야 하고,
주변 상가들과도 인맥과 친분과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하기에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돌파 할수밖에요.
김성민이 낙담하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이 위기에서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중보해주십시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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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연히 블로그를 봤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쭉 읽었습니다. 펑펑 울었습니다. 목사님의 글이 감동돼서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초심을 잃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왔던 것입니다. 나도 하남시 가정을 돕고 싶습니다. 방법 알려주세요.”
또 카네기 천사봉사단 회장님이 말합니다.
“목사님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오늘 거래처와 술자리가 있거든요. 전부터 물밑작업을 해놨으니 곧 결실을 맺을 겁니다.”
고마운 사람이 참 많습니다.
무료급식을 하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을 자꾸 만납니다.
만약 이 일을 안 했으면 만날 수나 있었을까요?
평생 대화의 기회조차 없었을 겁니다.
무료급식은 나에게 복이자, 삶의 원동력이며, SNS(사회관계망)가 됩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풍월”이란 단어를 검색해봤습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놂”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이런 천자문을 외우는 것도 모자라 시까지 자작(自作)할 수 있는 개가 있다는 말에 저절로 코웃음이 났습니다.
이 나이 먹도록 개가 한자(漢字)을 외우고, 시까지 읊을 수 있다는 소릴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옛날에는 부잣집 자제를 서당에 보내 성리학(性理學)을 가르쳤습니다.
귀한 양반집 도령을 혼자 보내지 않고 수하를 두어 따라다니게 했습니다.
종이나 노비를 딸려보내 수발을 들게 했습니다.
유생들이 서당에서 훈장님께 배우는 동안 종들은 마당에 풀썩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도련님이 끝날 때까지 하는 것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3년쯤 되니 유생을 따라다녔던 종의 입에서 흥얼흥얼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산은 산이오. 바람은 바람이로다.”
이런 식으로 시를 읊고 노는 게 아닙니까?
양반들은 노비를 개만도 못하게 여겼습니다.
소를 비롯한 가축은 재산으로 취급했지만 노비는 내가 죽여도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아주 하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개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자격도, 미래에 대한 가능성도 없었던 존재가 바로 김성민이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사람다워진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삶의 희망이 생겼고, 무료급식을 하게 됐으며,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시를 읊습니다.^^

교회 안에서 오랜 시간 사찰로 지냈습니다.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목사, 전도사는 아니었지만 사역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역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남몰래 설움도 많이 겪었고, 눈물도 많이 쏟았습니다.
자연히 눈치 백단이 됐고 아부도 떨 수 있습니다.
개과천선했습니다. 거침없어졌습니다.
과거의 경험들이 나에게 약이 됐습니다.
진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011년, 교회개척을 미련스럽게 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아는 부동산도 없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바보 같았습니다.
같은 시기 다른 목사님도 개척을 했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좋은 자리에 개척을 했습니다.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인생의 관록과 경륜과 연륜과 식견과 혜안이 느껴졌고,
나는 인생의 혈기나 객기, 무식함과 무모함으로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이가 되니 배운 게 있습니다.
무식했고 무모했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기 우직함 집념 투지 강한의지 열정 노력 승부수 성취욕 끝장 최선 꿈 희망 열망 근성 인내 역경 용기 정신력 배짱 자신감 자제력 투혼 투쟁심 전위 불굴 깡다구 강단 뚝심 오뚜기정신 칠전팔기정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의욕"을 가지니 못할 게 없더군요.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김성민이었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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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한 일

카테고리 없음 2024. 3. 15. 18:41

더열린교회와 무료급식소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먹고 사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해주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나는 모든 게 느립니다.
남들보다 발육이 뒤처졌습니다.
걷는 것, 말하는 것은 5세부터 했고,
한글은 6학년 때 뗐습니다.
구구단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일도 느린데다 실수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실수하기 싫었습니다.
자연히 보고 또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살피고 또 살핍니다.
어디에 적어두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저절로 꼼꼼해졌습니다.
삶의 지혜가 아닌 생존을 위한 방법일 뿐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일이 덮치면 녹다운 됩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미리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스케줄링을 하고 그날그날 처리해야 나중에 번아웃이 안 됩니다.
결코 잘난 것도, 머리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데 나만의 스텝으로 걷고자 합니다.
사실 머리 좋은 사람들을 도저히 못 쫓아가겠습니다.
내 옆을 휙휙 앞질러 가는데 절대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이클이 너무 빠릅니다. 나랑 안 맞습니다.
반면 우리 아내는 두뇌회전이 굉장히 빠릅니다.
첫째 아이가 엄마를 닮았습니다. 잔머리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둘째는 둔합니다. 날 닮은 게 분명합니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속터져 죽으려합니다.
엑셀로 한번에 할 것을 계산기 두드리며 느릿느릿 하고 있으니 가슴을 치며 미쳐버릴 것 같다합니다.
남편 일하는 모습을 보고있는 아내의 얼굴은
연민에 찬 표정으로 지그시 내리깔봅니다.
한심하다는 거죠.
아내는 모든 면에서 똑부러집니다.
특히 계산이 칼 같습니다.
돈 계산은 오픈AI 챗GPT보다 빠를 겁니다.
그러나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이게 단점입니다.
일할 때 미리 하는 법이 없습니다.
코앞에 닥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일의 속도는 빠른데 언제나 간당간당하게 처리합니다.
나는 이걸 못 참겠습니다. 미리 하면 어디 덧납니까?
급하니까 실수도 하고, 덜렁댑니다.
느리지만 꼼꼼한 남편 vs 빠르지만 덜렁이는 아내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부인이 별세했습니다.
내조의 여왕이라 불렸을 정도로 남편을 잘 챙겼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내가 살면서 두 가지 잘한 게 있는데, 하나는 민주화를 실현했고,
또 하나는 영원한 정치적 동반자이자 버팀목인 아내 손명순을 만나 결혼한 사실이오.”

“나 김성민도 우리 아내 장난영과 결혼한 게 가장 잘한 일 입니다.”
마지막 이 한 줄로 오늘 저녁이 무사하길 바라며,,,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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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교가 개학하는 계절이 오면 봉사자는 급감합니다.
요 며칠사이 극심한 봉사자난에 허덕였습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제시간에 겨우 해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급하면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어르신을 모시고와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면 흔쾌히 도와줍니다.
각자 식판도 각자 알아서 잔반처리 합니다.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감사하면서도 감동받습니다.
--
방송인 홍진경은 가난한 집에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동생을 먹여살려야 된다는 일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우연히 SBS슈퍼모델 선발대회에 출전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남들처럼 화려한 의상디자인을 연출 할 수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동네 미용실에 데려가 한껏 꾸며줬습니다.
누가 봐도 촌티났고 싼티가 물씬 풍겼습니다.  
당연히 1~3위 입상은 물건너 갔습니다.
심사위원이 보기에 독특했는지 “베스트포즈상”을 줬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입상에 오른 언니들은 방송스케줄로 바빴습니다.
홍진경은 언니들의 짐을 들어주며 따라다녔습니다.
틈나는 대로 방송에 출연해보려고 애썼는데 얼마나 열심이었으면 당시 톱스타였던 이영자 눈에 들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한편 어머니의 손맛은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김치맛은 온동네가 알아줬습니다.
김장을 하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습니다.
홍진경이 엄마한테 말합니다.
“엄마, 우리 김치장사 한번 해볼래요?”
“안돼, 동네에서만 칭찬받는 거지. 전국으로 팔았단 욕먹어.”
엄마의 솜씨만 믿고 김치장사를 시작합니다.
판로 개척이 관건이었습니다.
당시 홈쇼핑이 대세라 아는 홈쇼핑방송국을 전부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퇴짜 맞기 일쑤였습니다.
한 방송국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홍진경의 솔선수범한 모습을 보고 한 관계자가 황금시간대를 허락한 것입니다.
결국 전량 매진이라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제서야 타 홈쇼핑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홍진경은 모두 거절합니다.
의리를 지킨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 NGO단체에 홍보대사를 맞고 있고, 남몰래 선행도 많이 하며,
“최진실사단”이라 불릴 정도로 우정과 의리를 지닌 개념있는 연예인으로 손꼽힙니다.
악성고객의 민원에 타협이 아닌 전국 어디나 직접 찾아가 단판을 짓는 성격.
한 번의 타협은 쉽지만 그 대가는 크다는 일념으로 불의에 대해 단호했던 홍진경을 응원합니다.
스승목사님이 누차 하는 말이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마세요. 그러면 더 축복받을 것입니다.”
나도 홍진경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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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기

카테고리 없음 2024. 3. 13. 11:45

장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물가가 치솟았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만 일정시간이 흐르면 다시 물가는 안정화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문제가 큽니다.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전과 똑같이 식재료를 구입합니다.
그런데 양은 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용자가 반찬을 리필해달라면 예전엔 듬뿍듬뿍 수북이 줄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마저 못합니다.
야속하고 야박해도 할 수 없습니다. 다음 이용자를 위해 남겨둬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저소득층이나 빈민들이 느끼는 체감은 더 가혹합니다. 지금 서민층들은 말도 못하게 힘듭니다.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있습니다.
이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세계경제가 어두웠고, 전쟁이 났습니다. 환경오염으로 기후가 바뀌었습니다.
곡물값과 기름값이 치솟았습니다.
누구 하나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OECD회원국 중에 노인빈곤율이 최고라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모두 폐지를 줍고 다닙니다.
수원역 육교를 가보니 구걸하는 사람이 즐비했습니다.
설상가상 신생아출생율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보다 저조한 0.6%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미래가 어둡습니다.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굴레로 내몰렸습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말도 않겠습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주위에 진짜 불쌍한 사람들 많습니다.  
급식소 현장에 있으면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나에게 묻습니다.
“목사님, 만나무료급식소는 후원 많이 받죠?
인터넷을 보니 많이 받는 것 같던데요.”
이 질문을 받고 “많이 받는다”, 아니면 “조금 받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은
이 어려운 시국에 후원의 손길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겁니다.
해도해도 부족한 게 우리 단체 재정입니다.
들어오는대로 모두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이 후원해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후원하는 사람이 전부 일반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결손아동한테만 후원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어르신들에게 후원하고 싶어요.”
“나는 노력도 안 하는 사람한테 퍼주는 건 싫습니다. 진짜 불쌍한 사람을 알려주세요. 그러면 내가 돕겠습니다.”
정말 다양합니다.
그런 후원자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게 내가 하는 일입니다.
후원자의 성격과 특징을 빨리 파악해서 그것에 맞게 선행을 돕는 일을 합니다.
10년을 이렇게 일해왔습니다.
어느 분야나 10년을 일하면 전문가가 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전문가입니다.
후원자 여러분, 아무 염려말고 믿고 후원해주십시오.
만나무료급식소에 후원하면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럴 자신 있습니다.
난 후원자, 당신의 전문가이니까요.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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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트

카테고리 없음 2024. 3. 12. 21:12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밥만 짓는 곳이 아닙니다.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절대 가볍게 생각해선 안됩니다.
시청과 도청, 유관시설을 밥 먹 듯 들락거려야 합니다.
행정서류가 한 개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전부 구비해있어야 합니다. 기준이 까다롭습니다.
요즘 같으면 차라리 속 편하게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곳이 낫겠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 사명과 비전 때문에 다시 일어납니다.
어떤 난관들이 도처에 깔려있어도, 막다른 길에 봉착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셰퍼트 같이 물고 절대 놓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까지 갈 겁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아내가 생명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수익자를 남편으로 하고 들었습니다.
또 작은 액수지만 첫째 아이를 위한 청약적금도 하나 들었습니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아동수당이 나왔습니다. 둘째아이가 이 혜택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다른데 쓰지 않고 고스란히 이자율 높은 새마을금고에 적금했더랬습니다.
정기적으로 저금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모아둡니다.
옛날 어른들이 지폐가 생길 때마다 장판 밑에다 정성스레 모아뒀던 것처럼 그렇게 모읍니다.
투자를 할 줄도, 주식이나 코인도 모릅니다.
그냥 검소하고 청빈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권력이나 재력을 뽐내면서 아주 호화롭게 거들먹거리며 살아간다면 후원자들 다 떨어져 나갈 겁니다.
떵떵거리게 살면 무료급식소 금방 망할 걸 알기에 더욱 조심합니다.
무소유을 외치며 살지 못하겠습니다. 처자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풀소유도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에 대해 깨끗하고 정정당당하자는 주의입니다.
돈의 구분만 잘해도 사회면 뉴스에 나올 일은 없습니다.
금융감독원 안에 있는 슈퍼컴퓨터가 내 계좌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고 있겠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우리의 후원자 중에 검사도 있고, 경찰, 공무원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단체로 만들어가겠습니다.

요즘 은행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적금, 저금, 보험 전부 해약했습니다.
아이들 것도, 아내의 생명보험도 다 깼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처가에서도 돈을 조금 보탰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전부 한 곳으로 모았습니다.
더열린교회 건축과 무료급식소 사무실 건축 때문입니다.
모아 봤자 건축비의 1/10도 안 되지만 그래도 힘 닿는 한 움직여봐야 할 것 같아서요.
옛날 건축과 요즘 건축은 다릅니다.
옛날 건축은 돈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통장에 돈이 얼만큼 있어야 시청에서 착공계를 내줍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한풀 꺾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담만 하고 있지 않겠습니다.
끈임없이 방법을 모색하겠습니다.
돈이 없는 관계로 “직영건축”으로 하려 합니다.
아버지께서 교회를 지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교회 증축도 맡아봤습니다.
비록 어깨너머 배운 것이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을 소유했습니다.
전에 아버지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하나 둘 모으는 중입니다.
건축계의 어벤져스를 모으는 중입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 목사님은 건축비만 준비하세요. 내가 죽기 전에 이것만은 꼭 짓고 하늘나라 갈테니.”
건축비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기적을 바라봅니다.

우리 삼촌이 있습니다.
모(母)교회에서 차량운행을 하고 월급을 받았습니다.
교회소속으로 차량관리 실무담당자였습니다.
그러나 평일에는 교회부설 어린이집에서 아침저녁으로 차량운행을 했습니다.
교회 차량기사와 어린이집 차량기사, 두 가지 겸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만 월급을 받았고 어린이집에서는 월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걸 아는 사람들만 우리 삼촌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돈에 욕심없이 묵묵히 일해온 사실을 아는 사람만 삼촌을 달리봤습니다.
나는 더열린교회를 섬기면서 무료급식소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회 사례비를 받지 않습니다.
교회가 돈이 없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받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아내가 조리사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따라서 시청에서 조리사에게 주는 것과 경리비를 받습니다.
욕심을 버리니 넉넉하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가 땅을 사고 건축을 한다니 세상 사람들이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성도도 나가버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건축 절대 못해, 그러다 죽지 죽어, 내가 건축하다 죽은 목사들 많이 봤어.” 이렇게 말하고 가버렸습니다.
처음엔 이 말이 야속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니 전부 맞는 말입니다.
그들이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이었습니다.
조금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래요.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우리교회가 무슨 건축을 한단 말입니까?
맨날 돈이 없어 쩔쩔매면서 건축한다고 깝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은 게 있는데,
사람과 환경을 보면 부정적인 말이 맞습니다만,
하나님의 위대한 시선으로 봤을 땐 거뜬히 해낼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간과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 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무진장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겁니다.
잠잠하십시오.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습 1:7)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였더라(왕상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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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카테고리 없음 2024. 3. 12. 12:58

더열린교회는 독립교회연합회 소속입니다.
교단에 소속돼있지 않고 연합회에 소속돼있습니다.
교회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제공받기에 터를 이쪽으로 잡았습니다.
타 교단처럼 목회자나 교회끼리 모임활동은 드물지만 나름 만족하며 지냅니다.
무료급식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외로울 때도,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후원자들이 있어 힘을 받습니다. 나에게 힘을 줍니다. 격려해주고 위로해줍니다.
나에겐 후원자들이 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순간을 감사하며 지내겠습니다.

2008년, 아버지께서 종교부지에 교회건축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는 모(母)교회 방송실장을 맡고있었기에 방송시스템을 점검하러 건축에 참여했습니다.
업자들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동시다발로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교회 간판을 담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다함께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돌아가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판가게 사장님 차례가 됐습니다.
목사님은 다음과같이 소개했습니다.
“이 사장님은 내가 양평군 작은 시골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을 때 교회학교 어린이로 만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간판집 사장님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옛날 스승님을 다시 만났다는 감격에 교회에 필요한 모든 간판을 해주셨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았던 간판집 사장님을 나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나는 부교역자가 됐습니다.
부임한 교회에서 우연히 낯익은 사람을 보게 됐습니다.
간판집 사장님이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교회에서 날 먼저 알아봐주던 고마운 사장님.
이후로 내 일이라면, 또 무료급식소 일이라면 손발 벗고 적극 나서주는 사장님이 됐습니다.
가장 오래된 정기후원자이자 가장 많이 후원하는 사장님입니다.
더열린교회와 만나무료급식소 간판과 홍보물을 전부 무료로 해주는 사장님,
14년을 한결같이 후원하고있는 안산 기획원이 사장님,
이상규 권사님과 이경애 권사님 이야기였습니다.
--
“목사님은 발로 뛰어다니잖아요. 그래서 신발 보냅니다.”라며 비싼 운동화를 사준 분이 있습니다.
GS25편의점(원곡신천로점) 조경식 장지연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후원자들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뛰어다녔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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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에서 일하는 게 재밌습니다.
적성에 맞습니다.
여기가 내 자리인 듯합니다.
지루하거나 따분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스릴 넘칩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롭습니다.
교실은 선생님이 있어야 하고, 병원은 의사가 있어야 하듯 나는 급식소에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정치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법을 다루는 사람도 존재해야 합니다.
식당 사장님도 있어야 하고, 불쌍한 사람들에서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모두 제자리를 지켜야하듯 나는 이곳을 지킬 것입니다.
여기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항상 만족하며 내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
우리 가족은 한평생 눈치만 보며 살았습니다.
집이 가난했고 가방끈도 짧았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교회성도 중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이분과 부모님이 마찰이 생겼습니다.
사실 마찰도 아닌데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꼬리를 내린 적이 있었고,
또 다른 중직자는 내 차를 박아놓고 그냥 가버렸지만 그것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컴퓨터수리점을 운영했을 때 교회청지기(교회연락망 수첩)에 찜해놓은 좋은 광고자리를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이때마다 부모님은 나를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유식하잖아, 우리보다 많이 배웠잖아, 그러니 우리가 그냥 양보하자, 그게 속편해, 지는 게 이기는 거야. 무조건 우리가 참아야 돼.”
어렸을 때부터 이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때마다 화도 났고 짜증도 났습니다.
“사람낳고 돈낳지 돈낳고 사람낳냐”란 가삿말도 있잖습니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미친 듯이 공부만 했습니다.
자존감 낮은 소리가 듣기 싫어 공부만 파헤쳤습니다.
지금은 학문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Ph.D.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말 안 하겠지” 생각했건만 지금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변화기 시작합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 달라졌습니다.
우리 가족을 하나님이 바꿔주셨습니다.
이제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아갑니다.
내 삶을 내 스스로 윤택하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료급식이 좋은 치료제가 됐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컴퓨터를 전공하게 해서 다가오는 정보화시대, 인터넷시대를 준비시켰습니다.
자격증을 미리 취득하게 해서 돈이 궁했던 시절 방과후학교 교사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회에서 방송실 실장을 맡으면서 방송장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했고, 코로나 시국에 빠른 인터넷방송 전환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예배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귀담아 들어야 했기에 자연히 목사님의 목회철학과 성경지식이 쌓일 수 있었고,
학교에서 인터넷방송국 국장을 맡으면서 리더십도 생길 수 있었습니다.
모교에서 겸임교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결혼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이 미리 준비시켰기 때문입니다.
기죽지 않는 김성민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탄사뿐이 안 나옵니다.
“하나님이 짜놓은 각본이 있었구나. 거기에 내가 있었구나.
내 삶 전체를 준비시켰구나. 그 과정을 지나온 것이구나.”
알게 모르게 인생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양보와 배려와 겸손과 예의와 존중과 이해와 성품과 인성과 품위가 그때 그 당시 몸으로 배웠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해선 끄떡없습니다.
내 인생을 무너뜨릴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더열린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놨기 때문입니다.
포크레인 작업 중 가장 힘든 작업이 나라시(평탄화작업)입니다.
내 인생의 나라시를 끝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기사가 돼주셨습니다.
이제 곧 아름다운 건물이 올라갈 차례입니다.
--
한 곡의 노래나 한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산통의 과정을 겪습니다.
창작물이기 때문입니다.
고뇌 끝에 세상에 선보인 작품은 누구보다 창작자 본인이 가장 사랑할 겁니다.
작품의 평가는 대중에게 있지만 작곡가나 감독이 갖는 애착은 누구도 못 따라갈 겁니다.
글쓰기도 창작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또한, 내 창작물이기 때문에 김성민의 의중이 충분히 내포돼 있습니다.
표절이 아니기 때문에 내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녹아져있습니다.
따라서 글 전체를 읽고나면 내 삶이 보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지, 꼴통인지 아닌지? 다 알 겁니다.
그러니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어휘 한 가지만 가지고 꼬투리 잡지 말아주십시오.
글 전체를 놓고 이해해주십시오.
“어휘가 존경하는 말투가 아니다. 단어가 너무 세속적이다. 글 중에 한 부분이 이상한데 그거만 지우면 좋겠다.”등 여러가지 이유로 지적하는데,
그것은 마치 “내가 1차원적인 사고방식에 빠져있구나, 아직 미흡하고 편협한 사람이구나”라는 반증입니다.
흑백논리에 갇혀 있는 격입니다.
한국의 K문화가 세계를 호령하는 반면 중국의 문화가 선도하지 못하는 까닭은 창작자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냐 아니냐에 갈립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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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습관

카테고리 없음 2024. 3. 6. 23:45

초등학교 때부터 생긴 습관이 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기도 받고 등교하는 것입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어머니께서 기도해주셨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귀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귀지 소리였습니다.
자꾸 성가셔 고개를 기울여 콩콩 뛰었습니다.
안간힘을 다해 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엄마, 엄청 큰 귀지가 있었어, 이것 봐봐”
그랬더니 어머니한테 칭찬은 커녕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습니다.
어디 신성한 기도시간에 딴짓 할 수 있냐며 엄청 두들겨 맞았습니다.
얼마나 얻어터졌는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기억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아주 또렷하고 생생합니다.
이때부터 기도의 힘을 배웠습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기도의 습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학교 갈 때 꼭 기도해줍니다.
이제는 알아서 머리를 드밀며 기도해달라 합니다.
학교 가기 전에 안수기도를 안 받으면 안 되는 줄 압니다.
평생 기도로 다져졌으면 좋겠습니다.
--
친구를 사적으로 만나면 반말로 편하게 대합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끼리 김성민은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공개된 장소에선 달라집니다. 격식을 차려 나를 대합니다.
참 좋은 친구들입니다.

무료급식 이용자들은 나보다 연배가 높습니다.
대게 어르신들입니다.
그러나 급식소 안에서 만큼은 “목사님, 목사님”하며 극진히 대해줍니다.
내가 하는 말에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따라줍니다.
무료급식소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대표로만 보지 않습니다.
대표 이전에 성직자로 봐주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목사의 말이라면 혼신을 다해 따라줍니다.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하며 높여줍니다.

나는 이것을 기도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늘의 권세가 있습니다.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기도응답을 믿습니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저절로 높여줬습니다.
권능과 능력이 생겼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했습니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기적을 만드는 열쇠도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기도는 목사로서 꼭 갖춰야 할 기본소양입니다.
--
주위에 환우가 많습니다.
기도부탁이 많이 들어옵니다.
이들을 위해 항상 기도합니다.
당사자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기도는 계속 합니다.
이게 목사의 의무이자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남편이 암 말기에요. 혹시 위독한 상황이 생기면 목사님께 부탁드려도 될까요?”라며 눈시울에 눈물이 가득 맺힌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 남편이 설암이에요. 곧 수술 들어갑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기도부탁드려요.”

“목사님, 항암치료 중이에요.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얼마 후 답장이 왔습니다.
“의사선생님도 좋아졌데요. 기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자꾸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기도해주세요.”

“걷지 못했었는데 목사님이 기도해주셔서 지팡이를 안 짚고 다섯발자국이나 뗐어요. 감사합니다. 목사님과의 인연을 평생 이어가고 싶습니다.”

“목사님, 우리 딸이 약사가 되고 싶어해요.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안에 금전문제가 얽히고설켜 매우 어렵습니다. 저도 제대로된 신앙을 되찾고 싶어요. 기도해주세요.”

“우리 아이 사춘기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목사님, 우리가 하는 일은 세무회계 업무라서 협력업체가 잘 돼야 우리도 잘 되는 구조입니다. 협렵업체가 더 잘 되길, 그래서 미수금이 없도록 기도부탁 드립니다.”

“초등학생 아들이 있어요. 근데 학교 적응하는데 어려워해요. 친구 사귀는데도 힘들어하고요. 지금보다 더 단단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저도 갑상선에 문제가 있어요. 기도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 염려 말고 오직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가지십시오.
--
추신,
얼마 전, 반올림피자 사장님 이야기를 올렸는데요.
서울 사는 송파맘께서 반올림피자 남양점에 직접 전화해서 대량주문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함도 밝히지 않은 채 30만원어치 피자를 주문했다지요.
그리고 무료급식소에 배달해달라 부탁하셨다면서요.
그러면서 우리한테는 연락 한번을 안 준 분,
누군지 다 압니다. 후원하는 수법?이 전과 동일해서입니다.
만나무료급식소 정기후원 기업인 GS25편의점(원곡신천로점)을 통해 후원도 하고 매상을 올려주셨던 분이잖아요.
이분께 고맙습니다.
자녀를 위해 항상 중보하고 있어요.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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