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집안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청소년 시절을 매우 어렵게 보냈습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빈 땅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거주했습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몹시 추웠습니다.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 겨울이 오는 게 무서웠습니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면 죽기보다 싫습니다.
그렇게 1990년 말을 혹독하게 견뎠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이 “가장 어렵다, 어렵다” 말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선 그 당시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쌀이 없어 밥을 굶었을 정도였습니다.
학창시절은 늘 기가 죽어 살았습니다.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습니다.
자신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의지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있습니다.
평소엔 괜찮다가도 “돈, 가난, 장애, 자존심” 이런 것들과 결부되면 폭발하곤 합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믿음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우리 가족을 살린 것입니다.
산 속에서 매일 목소리 높여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옆에 이웃이 없었기에 고래고래 소리쳐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네요. 벌써 30년 전 일입니다.
돌이켜보면 두 번 다시 못 올 시절을 보냈습니다.
황금 같은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사람한테는 경험이란 게 중요한데 저의 청소년 시절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지금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교사 反面敎師 :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
청소년 시절에 잘 먹고 잘 살았다면 지금쯤 목회와 거리가 먼 직업을 가졌을 겁니다.
무료급식도 안했겠죠.
혹은 인생 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절한 실패와 패배를 경험해보지 않아서입니다.
인생의 쓴맛을 너무 일찍 경험했기에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소외계층에게 눈을 돌릴 수 있는 건, 과거에 다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저도 많이 아파봤습니다.
나의 과거가 아름답습니다. 가난해봤던 경험이 나에게 영양분이 됐고, 자양분이 됐습니다.
인생은 한방의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님을 깨달게 했습니다.
그래서 전 복권이나 로또, 경품권 추첨을 아에 하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게, 내 인생의 절대법칙입니다.
추신, 2주마다 헌혈을 하러가는데 간호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같이 헌혈자가 없는 건 처음이다."
실제로 헌혈의집에서 아무도 없고 저만 하고 왔습니다.
많이 동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