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소는 쉴 틈 없이 돌아갑니다.
하루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지어야합니다.
급식소만 붙잡고 있어도 바쁘고 정신없습니다.
이것 말고 또 다른 일도 병행해야 합니다.
중간에 짬짬이 시간이 생깁니다.
그때 다른 일을 해치웁니다.
짧은 시간에 빨리빨리 해결합니다.
자연히 집중력이 강화됐고 멀티플레이어가 됐습니다.
요즘같은 연말이면 최고로 바쁩니다.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지만 지금껏 잘 버텨왔습니다.
어제와 오늘,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옵니다.
눈이 떨리고 몸살기운도 있는데 타이레놀 두 알 먹고 잘 이겨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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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할 때마다 발음에 신경씁니다.
발음이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내 설교를 못 듣겠습니다.
그래서 설교 전 “오늘도 천천히 말하자”라고 다짐합니다.
흥분하면 더 꼬입니다.
여느 목사님처럼 목소리가 부드럽지 못합니다.
이게 나의 아킬레스건입니다.
발음도, 억양도, 볼륨도 다 안 좋습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쓰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입니다. 모든 게 은혜입니다.
나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내가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몸이 경직되고 있는데 뇌에서 “몸 꼬지 마. 편안하게 있어”라는 명령을 내리면 내릴수록 더 꼬입니다.
처음만난 사람 앞에서, 대중 앞에 서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수술 전 해야 하는 MRI나 심전도검사를 한번도 못했습니다.
“환자분 지금부터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꼼짝하지 마세요.”
이런 소릴 들으면 더 말을 안 듣습니다.
무료급식 어르신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오늘 춥습니다. 맛있게 식사하세요. 부족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밝고 상량하고 씩씩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랬답니다.
“저 급식소 목사 목소리 너무 크고 듣기 싫어. 바꿨으면 좋겠어.”
이 소문이 돌고돌아 내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갑자기 서글퍼졌습니다.
“이건 타고난 건데 어떻게 하라는 건가? 어떻게, 무엇을, 왜 바꾸지?”
개인적인 생각에 이것은 인격말살, 원색적 비난,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3일이 지났거든요.
3일만 지나면 모든 걸 잃어버리게 하는 신비로운 장치가 머릿속에 내장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그렇게 내 목소리가 거슬리면 오지 마시지... 나를 안 보면 되지요.
장애를 가졌지만 다행히 자존감이 충만합니다.
타인의 말에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끔쩍 안 합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포장하기도 싫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보면 됩니다.
인생을 수동적으로 살기 싫습니다.
능동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내 목소리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보다 낫습니다.
들리지 않는 개미 목소리보다 낫고요.
어른을 보며 인사 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는 납니다.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말에 휘둘리지 않겠습니다.
사람마다 한 마디씩 쉽게 내던지는 말들을
전부 신경써야 된다면 얼른 무료급식소 때려 쳐야 합니다.
그러면 일 못합니다. 세상 살기 힘듭니다.
그러나 충고는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르신들과 다정다감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오나봅니다.
말끝에 “요. 습니다.”란 단어를 빼먹을 때가 있습니다.
이게 거슬렸나봅니다. 누가 바꾸라고 말합니다.
바꾸겠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2023년 12월을 살고 있는 김성민의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