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무료급식소는 처음부터 지금의 급식소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노상(길바닥)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급식소가 된 것이다.
요즘 급식소를 찾는 분은 “우와, 대단하다. 훌륭하다.” 말하겠지만 우리의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
처음부터 우리를 지켜봐왔던 분들은 우리의 과정을 낱낱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며 찌질했는지를,
처음은 미약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될 수 있도록 견인해준 분이 참 많다.
회원 또는 정기후원으로,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으로,
많은 기도후원으로,
우리를 격려해 준 고마운 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걸 고백하고 싶다.
이 자리를 빌어 참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도해주시고,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를 전해주시고,
응원과 관심, 그리고 너무나 과분한 사랑을 쏟아부어주시는 고마운 분들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받은 은혜 절대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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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목회자 나이 40~50대에 규모있는 교회로 청빙이 된다. 이 나이를 빗겨가면 청빙이 어렵다는 게 목회자들 사이에서의 정론이다.
나도 40대이다.
나도 청빙을?
그렇지만 지금 더열린교회와 만나무료급식소를 섬기고 있는 내 위치가 참 좋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으려한다. 무료급식해야지 어딜 가겠는가?
"지구"는 독수리5형제가 지키고 난 "화성"을 지키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40대에 큰 교회 부임한 목회자가 1도 부럽지 않다.
몇 명 되지않지만 우리교회 성도는 날 편하게 대해준다.,
“목사님 맘껏 목회하세요. 우리는 목사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성도가 있기에 세상 다 가진 느낌이 든다.
우리 아내에게 이 얘기를 해줬더니
수궁하는 눈치다.
큰 교회에, 많은 성도에게 상처받아 매일 눈물 흘릴 생각을 하니 지금이 천국이다. 무료급식하는 게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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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부터 일주일간 휴가기간이다.
그래서 급식소와 교회 모두 문을 닫는다.
휴가기간 때마다 우리에게 봉투를 주시는 분이 있다.
생활이 어려운 개척교회 목회자에게 휴가 가서 맛있는 식사라도 하라며 건네는 건데 받을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다.
우리가 뭔데 이런 대접을 받는단 말인가.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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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원영은교회에서 김치를 주셨다.
얼마 전에는 사강감리교회에서도 김치를 주었는데
김치가 떨어질 때쯤 되면 어떻게 알고 이리 연락을 주는지 참 신기하다.
김치, 우리에게 참 귀한 식품이다.
"우리 어르신들에게 정성껏 대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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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과천에서 우리교회로 출석한 성도가 있었다.
참 신실했고 봉사도 열심이었다.
그러데 어느 날 갑자기 주일낮예배 때 40만원을 헌금한 것이 아닌가. 당연히 예배시간 중에 있는 봉헌기도도 했었다.
교회입장에선 갑자기 큰돈이 들어왔기에 그 성도에게 물어봤다. “성도님, 어떤 헌금입니까?”
“그냥 감사해서 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두 달 남짓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성도로 인해 교회 내부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더니 나중엔 겉잡을수 없을 정도로 내분이 생기는 게 아닌가?
자신의 입으로 “나는 신천지에 몸담았다”는 얘기도 하고, 성도들과 감정싸움을 일으키더니 결국 교회를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담임자로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러시라 했다. 이랬더니 그분이 말하길
“목사님, 전에 교회에 준 40만원 돌려주세요.”
“성도님, 교회에 헌금한 건 제 개인에게 준 돈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친 돈입니다. 그리고 제가 축복기도도 해 드렸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목사님 그건 하나님께 드린 게 아니라 목사님께 잘 보이려고 그런 겁니다. 그러니 돌려주세요.”
“성도님, 이건 제 개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작은교회라도 성도라는 공동체 속에서 모든 성도의 허락을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있어서 돌려주기 싫었다. 영적인 견해에서도 축복기도까지 마쳤고,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졌던 것을 다시 돌려주는 게 상당히 거북했기 때문이다. 아니 교회가 돈이 없어서 못돌려주겠다








는 게 아니었다.
결국 임시당회를 열어 회의 끝에 돌려주기로 했다.
내가 목회하면서 가장 미음 쓰렸던 순간 중 하나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 이젠 말할 수 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