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자 아랫배가 불룩 나옵니다.
기존의 옷이 안 맞습니다.
큰 옷이 필요했습니다.
옷을 살 땐, 주로 NC 이벤트홀을 이용합니다.
9,900원짜리 득템 할 때가 있습니다.
마네킹에 코디 된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점원에게 “이대로 사고싶다” 말합니다.
다음 날 새로 산 옷을 입고 출근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이상하게 좋게 보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보는 듯합니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습니다.
“옷이 안 어울린다.”란 소릴 듣습니다.
내가 “봤을 땐” 괜찮았는데 막상 “입으니” 진짜로 안 어울렸습니다.
나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습니다.
의지한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얼굴이 찌푸지고 몸도 꼬일 때가 있습니다.
장애를 의식하지 않을 땐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긴장하면 몸은 더 꼬이기 시작합니다.
겉잡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땐 물잔 하나도 못 듭니다. 바닥에 몽땅 흘립니다.
또 새로운 변화에 대해 남들보다 적응이 더딥니다.
아마 새 옷을 입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적응이 덜 됐고 나도 모르게 긴장했나 봅니다.
그래서 몸이 뒤틀렸고, 이를 본 타인이 이상하게 봤으며, 그럴수록 장애가 평소보다 더 드러났던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이 전에는 낙심 됐지만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훌훌 털어버립니다. “근데, 뭐, 어쩌라구” 이런 식입니다. 뻔뻔해졌습니다.
내 장애에 대해 안면몰수 해버립니다. 혼자 어둠속에서 끙끙 앓지 않습니다.
차 앞유리에 장애인등록증이 붙어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주차장 이용이 가능합니다.
누가 쳐다보더라도 그냥 주차합니다.
자녀가 타고 있어도 이곳을 이용합니다.
이제는 6세 아들이 먼저 말합니다.
“아빠, 저기 장애인주차장이야. 저기로 가자”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내가 보는 눈은 정상인과 똑같습니다.
마네킹에 피팅 된 걸 보면 “멋있다”라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사고하고, 계산하는 것이 정상인과 똑같습니다.
나는,,, 사실… 돈 계산 잘합니다.
몇 천만원이 내 손을 거쳐서 왔다갔다 합니다.
1년이면 억 단위를 쥐락펴락 합니다.
작은 액수라도 금전사고가 없어야 하기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확인하고 또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정상인 아내도 꼼꼼함은 날 못 따라옵니다.
청사진을 세우고, 계획하고, 시간을 쪼개서 세분화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성실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아주 탁월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준 은사입니다.
글 쓸 때도 기승전결로 쓸 줄 압니다.
주장하고 싶은 핵심포인트를 놓치지 않습니다.
주제에 따라 글쓰기와 설교문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데 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렇게 자랑하고나면 밍구스러움을 깨닫는 감정도 소유했습니다.
미안함, 배려, 양보, 긍휼, 자비, 사랑 이런 덕목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누가봐도 장애인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한 인간의 사투도 함께 봐주는 사람들이 그립네요.
세상과 싸워 이기려는 의지의 한국인을 봐주십시오.
이런 건강한 정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나는 건강한 정신의 옷을 입고 있는 셈입니다.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것이며,
내가 들고있는 잔은 항상 넘치는 잔입니다.
김성민의 그릇은 깨진 그릇, 비정상적인 그릇이 아니라, 하나님이 즐겨 사용하는 질그릇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 1절 - 6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