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카테고리 없음 2022. 11. 28. 15:45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현장실습”을 이수해야합니다.
저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인 “화성아름마을”에서 했습니다.
거주인과 친분도 쌓고,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경남 통영으로 가는 소풍도 따라갔습니다.
많은 선생님이 동행했습니다.
그중 시설장인 원장님의 두 아들도 함께했습니다.
고작해야 초등학교 4-5학년 같아보였습니다.
아이들답게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가는 내내 게임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게임이 신기해서인지 주위에 있던 장애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하고싶어”란 눈치였습니다.
저는 두 아들이 어떻게 행동하나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인상을 쓸까? 저리 가라고 눈총줄까? 인상쓰고 깔볼까? 업신여기진 않을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냥 서슴없이 게임기를 양보하는 게 아닙니까?
그냥 친구처럼, 어떤 격을 찾아볼 수 없이, 게임공략법도 알려주면서 참 재밌게 즐기더군요.
그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왔던 그들은 자연히 어떤 편견없이, 건강한 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꼭 일본사회 같았습니다.
일본에선 따가운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을 그냥 평범하게 바라봅니다.

저에겐 6세와 4세 두 아들이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들입니다.
결혼한 지 8년 만에 생긴 아이라 더 귀합니다.
근데 첫째 아들이 아빠가 설교할 때, 아빠의 모습을 따라하는 게 아닙니까.

저는 선천적으로 뇌성마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많이 좋아졌지만, 긴장하면 입과 몸이 삐뚤어집니다.
주로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도드라집니다.

근데 첫째 아들이 아빠의 입모양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닙니까.
"이걸 어떻게 할까? 설명을 할까? 하면 어떻게 하지? 그냥 혼낼까?"
어떻게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잠자리에 누워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주야, 아빠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 남들과 똑같지 않고 몸이 조금 이상해. 입도 이상해.”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솔직히 유주가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매일매일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사람으로 인식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빠 때문에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중장비를 좋아합니다.
유주, 루하 보여주려고 굴착기, 지게차, 로더 자격증을 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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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단어가 있습니다.
*“성실하다”란 단어입니다.
(성실 誠實 [형용사] 정성스럽고 참되다.)
누가 나한테 “김성민은 성실해”란 말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절대 옆구리 찌르는 건 아닙니다.

내 앞에 놓인 일을 최선을 다해 해치우는 게 삶의 희망사항입니다.
능력이 부족해 내일 일을 미리 하지도 못합니다.
능력이 부족해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도 못합니다.
미루면 내일 일이 합쳐져서 번아웃 돼 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냥 오늘에 충실할 뿐입니다.

서울 금호동에 살다가 수원 파장동으로 이사왔고, 다시 화성시로 이사왔습니다.
여기서도 더 깊숙이 들어가야 우리집이 나왔습니다.
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오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영화 “이끼” 같았습니다. 외딴 행성 같았습니다.
어른에게 인사해도 안 받아줬습니다. 어린나이에 상처가 됐습니다.
우리를 뜨내기로 여겼습니다.
한곳에 정착하여 살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얕잡아 봤습니다.
돈도 없었으니 당연했겠죠.
그러던지 말든지 인사했습니다.
부모님의 가르침 중에 “인사만 잘해도 밥 먹을 수 있고, 누워서도 떡이 나온다.”였습니다.
이렇게 1년, 5년, 10년, 30년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마을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알아줍니다.
마을잔치 때면 꼭 초대장을 보냅니다.
“아이고 성민아빠, 요즘 어때?
윗정도리에 한번 와야지.
우리집 물이 자꾸 새네. 와서 고쳐주고 가.
이번 주 토요일에 이장님 어머니 팔순잔치야. 꼭 와서 막걸리 한잔 하고 가.”
처음엔 “김씨, 김씨”로 통했는데 10년 쯤 사니까 “성민아빠, 성민아빠”로 존칭이 변했습니다.

무료급식을 꾸준히 하니 주위에서 도움의 손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사강감리교회 청장년회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청장년회장님께서는 “목사님께서 자리를 그대로 지켜주니 우리의 시선도 저절로 여기로 오게 됐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우리에게 힘이 돼 줘서 고맙습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여기 있겠습니다.
오늘처럼 내일도 여기 있겠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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