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

카테고리 없음 2021. 10. 15. 15:45

어떤 회사원이 독거노인과 아이들에게 나눠주라며 간식을 보내왔습니다.
회사원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렇게 많은 후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쌀, 컵라면, 과자, 젤리 등 정말 다양하게 보냈습니다.
보내온 정성에 따라 저희도 잘 대접하겠습니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과자만 봐도 흐뭇하고 배부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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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기업이 50~100만원 단위의 후원을 합니다.
저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떤 개인은 1만원씩 후원합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순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에이 그까짓 만원.
음,,, 돈,,, 들어왔구만,,,
별거 아닌 돈”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미친 게 틀림없습니다. 이게 "돌아이"지 뭐가 "돌아이"겠습니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아닌데 이러고 있는 내가 죽이고 싶을만큼 밉습니다.

이럴 때마다 오른손으로 뺨을 내려칩니다.
“김성민, 정신 못차렸구나, 너좀 맞아야겠다”면서
실제로 내가 나를 자학합니다.
보통은 뺨 한 대,
심할 땐 양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깁니다.
1분쯤 이러고 나면 맨정신으로 돌아옵니다.
나만의 비밀인데 오늘에서야 발설하네요.

오늘도 급식소에 과자가 쌓여있는 걸 보고
“하나쯤 먹어볼까?
티도 안 날 텐데,
아니 맛만 보려는거지 누가 다 먹겠대?
봉사하는 내가 잘먹어야 봉사도 더 신나서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이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조금 전에도 엄청 맞았습니다.
김성민한테 2분정도 맞았어요.
따귀를 맞았더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제 제정신이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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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삶의 모토가 있었습니다.
“20대가 가기 전에 세계 50개국 가기”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해마다 두 번씩 해외를 나갔습니다.
나중엔 안되겠다싶어 한 번 나갈 때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루트를 짰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갈 때 홍콩 국적기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타고가서 돌아올 때 홍콩여행을 했고,
싱가포르 갈 땐 베트남 국적기를,
유럽갈 땐 우즈베키스탄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경비는 조경일을 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막노동을 하며 번 돈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넉넉한 돈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항상 쩐내나는 여행을 했는데 이것이 삶의 탈출구이자 원동력이 됐습니다.

누가 3천만원을 주며
“이 돈으로 그랜저 살래? 세계여행 갈래?” 물으면 무조건 세계여행 간다 했을 겁니다.

혼자하는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일본도 다섯 번 정도를 갔습니다.
부산에서 배타고도 가고, 비행기로도 갔습니다.
그곳에서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는데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 그렇게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공부한 다음 실제로 갔습니다.
그 안은 물가가 비싸다는 정보를 얻고, 아침에 편의점에서 도시락 2개와 물 2리터를 짊어지고 들어갔습니다. 무거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원래는 식품을 가져갈 수 없는데 꼭꼭 숨겨서 몰래 들어간 것입니다.
맘껏 즐기다보니 배가 고파졌습니다.
직원에게 들킬까봐 화장실 옆 구석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눈치보며 몰래 편의점 도시락을 까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참 초라했고, 비굴했으며, 없어보였습니다.
제가 이랬어요.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냥 사먹어도 됐을 텐데 참,,,, 100엔 갖고 벌벌 떨었습니다. 바보 같았습니다.

그런데요,,,
이랬던 기억을 잊고 싶지 않습니다.
궁색했고, 어눌했으며, *신 같았던 이때의 내 모습을 잊고 싶지 않습니다.
잊으면 큰일 날 것 같아요.
그냥 계속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순수했고, 작은 것에 크게 만족했던 그때의 김성민을 소환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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