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카테고리 없음 2023. 7. 29. 16:10

2005년,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편입시험을 치뤘습니다.
유명한 대학교 컴퓨터학과를 지망했습니다.
면접 때 질문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컴퓨터 분야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넵, 망할 것 같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얄짤없이 떨어졌습니다.
내가 감독관이라도 떨어뜨렸을 겁니다.

1997년, 신학대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관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클래식이 있습니까?”
앞 사람씩 차례로 대답했습니다.
“바로크시대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를 자주 듣습니다.”
또 다른 면접자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없습니다. 앞으로 자주 듣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습니다. 두근두근 심장이 마구 요동쳤습니다.
아무 생각이 안 났습니다. 그래도 용기내어 내뱉었습니다.
네 마디로 끝냈습니다.
“운명이요”
기독교에서 금기시 되는 단어를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이후 그 학교에선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예상대로 낙방한 것입니다.

1998년, 병무청 징병검사를 받았습니다.
사각팬티만 입고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장애가 있는 나에게 감독관이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
“넵, 군대 꼭 가고 싶습니다. 보내주십시오. 사나이로 태어났으니 꼭 가고 싶습니다.”
왁자지껄 요란했던 주위가 일순간 고요해졌습니다.
결코 박카스CF를 흉내 내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면제판정 받았습니다.

이렇듯 시험만 치면 떨어졌습니다.
밥 먹 듯 떨어졌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도 제대로 못했으니 당연했겠죠.
고등학교도 떨어졌고, 대학교도 열 번이나 떨어졌으며,
신학교도 다섯 번 만에 간신히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낙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납니다.
떨어져서 의기소침하고 있을 때마다 부모님이 힘이 돼 주었습니다.
“괜찮아, 그래도 엄마 눈엔 성민이가 가장 멋있었어. 아들,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되지”
나를 무한한 사랑으로 키워주었습니다.
전적으로 믿어주고 응원해주었습니다.
세상 누가 뭐라든 내 편이 돼 주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중학교도 못 나온 무식한 분입니다.
무식하지만 위대한 분입니다.
아들을 사람 살리는 목사로 만들었고,
불쌍한 사람들 먹이는 무료급식소 대표로 만들었으며
결손아이들에게 힘이 돼주는 키다리아저씨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박사로 만들었습니다.
박사 자신보다 그 부모가 더 대단한 것입니다.
나의 모든 영광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눈물의 기도와 사랑의 열매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하든 상관없이 내 부모님을 존경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아둔 것도, 가진 재산도 없이 바보같이 평생을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
한평생 돈도 못 만져보며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살 수 있느냐?
못 배웠으니 그렇게 고생하는거다.”
그러나
맨날 무시 당해왔던 우리 부모님을 저는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 웨슬리를 키웠던 수산나처럼,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지금도 기도하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동역하고 방패막이해주고 동행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무식해도 기도와 사랑으로 키우면 훌륭한 자녀가 나올 수 있습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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