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때의 이야기입니다.
대학도 떨어지고, 몸이 약해 직장도 못 구하고 있었을 때, 다른 친구들은 이미 너나할 것 없이 각자의 인생의 목표대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던 반면 저는 인생을 허비하고만 있었습니다. 목표도, 방향도 잃었던 나날들... 그야말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심심하고 지겹고 따분하고 그랬었죠.
하도 심심했던 어느날 “교회 청소나 해보자”라는 마음에 교회를 찾아가 본당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1998년)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님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저를 여타의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시고 인자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시는 게 아닙니까.
“이름이 성민이라고 했나?
그래 요즘 뭐하고 지내니?
손가락 움직이는 건 할 수 있니?(뇌성마비 증상이 있던 저에게 제일 궁금하셨던 질문 같아 보였습니다.)
운전면허증은 있고?” 등등.
이런 질문들에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렸더니 대뜸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까?
“우리교회 방송실을 새로 꾸밀 건데 방송실에서 일해 보지 않을래?“
그날 이후로 18년 동안 사강교회 방송실장으로 일해 왔던 것입니다. 물론 사례비도 받고 일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만나서 대화했던 그날 이전과 이후가 제 인생에서 180도 급선회를 했던 결정적인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인지 20년 이상 흐른 사건임에도불구하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이 벌레처럼 살았던 저에게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사강감리교회 김길수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방송실에 있으면서 그 당시 새롭게 출시되는 방송장비는 전부 제 손을 거쳤야만 했고, 최신 컴퓨터, 최신 프린터, 최신 영상장비, 음향장비, 동영상 편집장비, 당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방송국용 ENG카메라, 소니 PD-150 등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고가의 장비를 제 손으로 만지작거릴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방송관련 교육도 시켜주셨습니다. 물론 사강교회에서 모든 부담은 내주셨죠.
지금도 “사강”이란 동네에 김성민이 뜨면 컴퓨터좀 고쳐달라고, 아니면 방송장비좀 봐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꽤 계십니다. (죄송합니다. 글을 쓰는데 제 자랑이 돼버린 것 같아 죄송하네요.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요.)
컴퓨터를 남들보다 조금 잘 다뤘습니다.
그래서 사강교회 컴퓨터는 제 손을 다 거쳐야지만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무려 30년 가까이 말입니다. 지금도 감사하게도 불러주셔서 고쳐드리긴 합니다. 제가 고친 컴퓨터는 유난히 고장이 안 난다네요.^^*
또 대학교를 못 갔었는데 사강교회 담임목사님과 성도들이 주신 귀한 장학금으로 전문대학교(컴퓨터전공), 대학교(컴퓨터전공), 대학원(컴퓨터전공), 대학원(신학석사) 등을 부담없이 졸업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발판이 되어 지금은 박사학위까지 수료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대학 다닐 때에는 인터넷방송국 제작국장도 해보고요. 컴퓨터 수리점 사장도 해보고, 이벤트 장사, 프로덕션 운영까지 정말 많은 경험들을 해봤습니다. 글쎄 대학교에서 교수까지 해보기도 하고, 제 이름으로 책도 출판했었구요.
미국, 유럽, 호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저 혼자서 구석구석 세계를 누벼봤을 정도로 배낭여행은 제 취미가 됐습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목숨만 유지하며 간신히 살고 있던 저에게,
피해의식과 낮은 자존감으로만 똘똘 뭉쳐있던 저에게,
뇌성마비라는 장애로 인해 눈치로만 살았던 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안목을 소유하셨던 사강감리교회 김길수 목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 하나 살려주신 셈이니깐요.
그때 저를 걷어주지 않았다면 결혼, 자녀, 무료급식, 목회, 이게 다 뭡니까?
제 친구가 하나 있는데요. 저랑 똑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입니다.
그런데요. 이 친구와 저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처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요. 너무나 멀리 벌어진 게 아닙니까? 그 친구를 보고 있으면 등골이 오싹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김길수 목사님이 1998년 그때 저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너 방송일 좀 해보지 않을래?”란 말만 하지 않으셨다면 저도 그 친구처럼 빈둥빈둥거리며 결혼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 아닙니까.
사실 우리 아내가 결혼 전 배우자를 위해 기도한 제목 중 첫째가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님(교수)과 결혼하게 해주세요.”였는데 당시 제가 대학에서 겸임교수를 하고 있었을 때였거든요. 완전 제가 팅기면서, 휘어잡으면서 연예했다는 게 아닙니까.^^*
이처럼 사람 하나 살리는 게 하나님나라의 큰 일꾼을 만든 셈이고 영혼구원으로써 천하보다 귀한 사명을 다하는 것이기에 저 또한 김길수 목사님처럼 사람을 살리려고 부단히 노력중에 있습니다. 특히 남들이 봤을 때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유심이 보면서 제2의 김성민을 만들어보는 게 인생 최대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오늘도 좋은 꿈 꾸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