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후 소외계층을 위한 생필품전달사업 “사랑의상자배달”을 다녀왔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담임목사가 힘들까봐 자진해서 힘을 보탠 것입니다.
운전으로, 배달로, 각자 힘이 돼 주었습니다.
덕분에 쉽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고맙더군요.
저의 다리가 불편한 걸 알고, 차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습니다.”라며 사양했죠.
극진한 대우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우리교회 성도는 담임목사를 정말 사랑합니다.
말씀에 권위와 순종이 있으며, 헌신이 남다릅니다.
그러고 보면 참 좋은 성도와, 참 좋은 교회에서 즐겁게 사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로서 이것도 “복”입니다. 이렇지 못한 목회자가 많거든요.

우리교회는 장로님이 두 분 있습니다.
두 분 다 교회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분입니다.
한 번도 담임목사와 교회일에 반기를 든 적이 없습니다.
“목사님 뜻대로 하세요. 저희는 순종만 하겠습니다. 목회 맘껏 펼쳐보세요.”라고 말씀하는 분들입니다.
아들뻘 되는 담임목사에게 이렇게 대하기 어려울 텐데 말입니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장로님들이 훌륭해서 그렇습니다.
믿음과 인품이 정말 훌륭합니다.

저는 설교할 때, 한번도 누구의 눈치를 본 적 없습니다.
계시적이고 직관적으로 설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강해대로, 강대상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내려옵니다.
정치얘기, 예화 안 듭니다.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성경본문에서 끝냅니다.
말씀이 예리하고 정곡을 찌릅니다.
“말씀에 은혜받았다”라는 말은 “내가 듣고 싶은 얘기, 듣기 좋은 얘기를 들어서 마음이 편하고 좋다.”란 뜻이 아니라 “마음에 찔림이 있어 ‘회개’가 나와야” 그게 진짜 "은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열린교회에서는 예배 때마다 이렇습니다.
말씀이 거침없습니다.
성도의 마음을 파고들고, 쑤시고, 들춰내는데도 성도들이 떠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성도가 오는 상황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를 갈망하는 성도가 하나 둘씩 늘고 있습니다.
연초부터 부흥의 조짐이 보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만약 “목사님, 그만 좀 일 벌이십시오. 회개설교, 지옥설교, 그런 설교 하지마세요.”라며
담임자의 팔과 다리를 자르는 장로나 성도가 존재했다면 지금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강도권(講道權)"은 그 누구도 터치해선 안 됩니다.
강도권은 기름부음을 받은 "주의 사자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이고, 하나님의 입의 대언(代言)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나 예언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말할 때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분명 인간인 선지자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인데, 그 입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회자의 입을 통해 성도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김성민 목사의 입을 사용해 더열린교회 성도들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확히 아는 성도는 “아멘”하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복받습니다.

그러나 강도권에 대해 터치하는 순간 그 설교는 죽은 설교가 됩니다.
최종적으로 그 설교를 듣는 교회와 성도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되돌아오고 맙니다.
가장 슬픈 일입니다.
담임자의 강도권에 월권하면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직무이기에 담임자도 날마다 새롭게 갱신해야 합니다.
강대상에 올라갈 때, 준비 없이 올라가면 큰일납니다.

Posted by 만나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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