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주일예배를 마치면 곧바로 재정정리를 합니다.
그리고 늦은 점심을 먹죠.
그러면 오후 3시가 됩니다.
이제 사랑하는 자녀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외국인이 걱정되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부스스한 얼굴로 맞이하더군요.
지금 일어난 모양입니다.
어제 야간일을 해서 늦게까지 잠을 잤다는 겁니다.
배고플 것 같아 억지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식당에서 이 얘기, 저 얘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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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 이야기 아시죠?
배고파서 빵 한 조각을 훔쳤고, 경찰에 쫓기다 어느 성당에 들어가게 된 장발장.
호의를 베푼 신부님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던 그.
그러나 이런 은혜도 무색하게 은촛대를 다시 훔쳐 나온 장발장.
결국 경찰에 잡힌 장발장은 신부님과 대질신문을 했고,
신부님이 말하길
“내가 그에게 선물한 것이요.”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에서
신부님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이런 선행을 베풀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
떡잎부터 알아볼 수 있었던 나쁜 인간,
이런 사람에게 왜 자비를 베푼 것인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다 “내 마음” 같지 않을 것입니다.
때론 슬픈 척, 없는 척, 거짓 눈물도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행동 자체가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긍휼의 마음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한쪽 눈을 감고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중에 정말 정말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 나오거든요.
상대방이 은혜를 알아주던, 몰라주던 상관없이,
그냥 그냥 베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신부님 같이요.
그나저나 오늘도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증발해버렸습니다.
쉬는 날이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이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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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까지 한글을 못 깨쳤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유급반”이라고 아세요? 공부 못하는 아이들 모여놓은 반.
말하기 굉장히 창피한데 거기도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엄청 맞았습니다.
옛날엔 “인권”이란 게 없었죠.
한글을 몰라서 매일 맞았습니다.
창피도 많이 당했고요. 제가 이랬던 사람입니다.
근데 철이 들고 달라졌습니다.
오기가 생기더군요.
“어렸을 때 받은 수모를 깨부수리라.”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해”라며 이를 갈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공부만은 놓지 않겠다”며 뼈를 가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결심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겠죠.
아내가 “당신이 배우지 않았다면 결혼하지도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뒤늦게라도 공부를 붙잡은 게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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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냈고, 피타고라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알아냈습니다.
저도 법칙 하나 발표하겠습니다.
“청소년부흥”은 “시간”과 “물질”에 비례한다.
yr = t × m
이 방정식에 대입하면 우주를 망라하고 모든 양자학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온 힘을 다 쏟은 적이 있습니다.
매주 맛집을 데려가고, 같이 놀아주고, 공연도 데려갔습니다.
돈과 시간을 쏟아 부었죠.
담당전도사가 있는 것도,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뒤돌아서면 또 배고프다 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양 많이 주는 식당만 찾아다녔습니다.
얘네 먹이느라 엄청 Flex(플렉스)했습니다.
그야말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간과 체력이 안 됩니다.
그래서 교회학교가 사실상 해체된 상태이죠.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재미있었고, 열정 넘쳤으며, 하나님말씀을 잘 심어주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