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쌓여있는 스케줄 걱정에 아침일찍 출근했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일을 시작하려는데 CCTV에 어떤 사람이 급식소 앞을 어슬렁거리는 게 아닙니까.
뚝 떨어진 기온에 안 맞은 반팔옷차림으로 말입니다.
알고 보니 카자흐스탄 외국인이었습니다.
벌벌 떨고있는 외국인에게 가까이 가서 자초지종을 묻기도 전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굴이 만신창이가 돼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눈 부위가 많이 다쳐서 심한 충혈과 고름이 말도 못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얼굴 전체에 피범벅이 돼있었고요.
“아니 도대체 왜 이런거냐고? 괜찮냐고?” 물어도
“목사님, 괜찮아요. 목사님, 괜찮아요.”라고만 말하는 외국인.
안되겠다싶어 급히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이정도면 대학병원으로 가야합니다”라는 말에
얼른 차를 돌려 고대안산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CT촬영과 응급처치, 수술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환자분, 하마터면 실명될 뻔했어요. 큰일 날 뻔 했어요”라는 말에 괜히 화가 나더군요.
아니 다친 지 3일이 됐는데도 병원을 안 갔다는 겁니다.
“왜 그랬어요?” 물으니
“당장 돈이 없는데 그 비싼 병원비를 어떻게 내냐”는 겁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의료보험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치료비용도 100만원이 들었습니다.
저희도 고정지출이 있는 관계로 3개월 할부로 결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코 내가 의도하지도, 그렇다고 상대방이 의도하지도 않는데 자꾸 제 주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불쌍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청해옵니다.
그러면 외면할 수가 없어요.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 처럼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정의의 사도”인냥 정의감에 불타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비겁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바로 저 입니다.
근데 생각과는 달리 “행동”으로 움직여지고 있네요.
“행동”이 “생각”을 이끌고 갑니다.
다 끝나고 집에 오니 저녁 8시가 됐습니다.
한파경보의 날씨에 입고 있던 점퍼를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물 한모금도 못먹은 외국인에게 김밥천국에서 김밥이랑 갈비탕을 시켜주고 급하게 돌아왔습니다.
아침10시부터 저녁8시까지 10시간을 그 외국인과 함께 보냈습니다.
저도 물 한 모금도 못먹었네요. 지금 입에서 입냄새가 엄청 납니다.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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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설교준비를 토요일에 합니다.
평일에는 무료급식 하느라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목사님이 생각하기에 욕먹을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목사님의 설교준비는 일주일 내내 하기 때문에 누워서 침 뱉기임을 잘 압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집중을 하면 무섭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집중으로 설교준비하면 토요일 하루면 됩니다.
설교문을 통째로 다 외울 수 있습니다. 머리가 나쁜데 이건 매주 외우거든요.
그러나 집중하는 시간에 약간이라도 정신을 흩트리면 그 설교는 소위 죽쑤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때만은 휴대폰을 끕니다.
근데...
오늘 설교준비를 하나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할 수 없이 지난 주 설교를 똑같이 하는 수밖에 없겠더군요.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면 새로운 은혜가 임할 것이고, 아니면 저의 게으름이 탄로나겠죠.
한편으로 하나님의 위안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성민아, 오늘 수고했구나. 불쌍한 외국인에게 했던 너의 선행이 내 마음이었고, 내가 바로 그였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