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일제강점기 때, 주기철목사님이 계셨습니다.
3.1운동에 동참했고, 신사참배를 거부했으며, 항일운동을 펼치다 1938년 일본순사에 검거되어 복역 중 옥사(순교)했습니다.
“3.1운동, 신사참배 거부, 항일운동” 이러니까 굉장히 과격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온순하였고, 차분하였으며, 지성인이었습니다. 대화로 저항하자는 비폭력주의자였습니다. 결코 강인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주기철목사님의 아들이 간증한 게 있습니다.
가족끼리 식사하고 있는 자리에서 순사가 목사님을 체포하러 밀어닥쳤고,
“그 순간 아버지는 떨고 있었다”라고 기억합니다.
“숟가락을 든 손이 바르르 떨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순순히 따라가셨고 이것이 생전에 아버지를 본 마지막이었다”라고 간증합니다.
강직한 모습인 줄만 알았는데 그 내면에는 인간의 나약함, 솔직함, 두려움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도 사람이었고, 공포에 떨고 있는, 나라 잃은 불쌍한 민초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더 은혜가 되고, 더 감동을 주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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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 교회의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과대평가 될 때가 있고, 과소평가 될 때가 있습니다.
“우와~ 목사님,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으세요?
보통 사람은 못하는 걸 하고 있잖아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럴 때마다 낯부끄러워서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내가 입은 옷이 대단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 옷은 여러분이 입혀준 것이고, 하나님이 입혀준 것입니다.
저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결코 위대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갈 뿐입니다.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하루를 더듬더듬 거리며 힘겹고 버겁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한편 저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졌습니다.
저를 보는 시선이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속으로 “아, 약간 몸이 불편하구나”라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겉으로 “언제부터 몸이 그러셨어요?”라는 사람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인상을 쓰고 혀를 차며 (귀에 들리게) “쯧쯧쯧 저런,,, 안 됐다 안 됐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수용합니다. 이제 이골이 났거든요. 철없는 10대가 아닙니다. 상처도 안 받습니다. 상처에 딱지가 생겼고, 굳은살도 배길대로 배겼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처럼 저도 나약한 존재라는 걸 고백하고 싶습니다.
겉으로 강하게 보이고 싶지도,
속으로 강하게 보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전 그냥 김성민이고, 인민이며 민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