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무료급식소 2021. 10. 13. 15:04

어제는 개인적인 일 때문에 급식소를 비웠습니다.
봉사자에게 맡기고 다녀왔습니다.
그랬더니 어르신이
“꼭 있어야 할 사람이 안보이니 썰렁했어.
내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려야 하는데 안보이니 빈집 같았잖아.
집 나간 아들처럼 쓸쓸했단 말야.
다신 비우지 마. 알겠지.
어서 약속 혀.”

대부분 도시락을 타러 오지만
늘 그랬듯, 일상처럼 급식소를 찾는 분도 있습니다.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고, 말장난도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어르신하고 코드가 맞아갑니다.
이제 아무데도 못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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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무료급식 준비하느라 정신없습니다.
갑자기 설탕이 떨어진 게 아닙니까.
그래서 가까운 마트로 뛰어갔죠.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순간 착각해서 다른 카드를 내민 것입니다.
소외청소년을 위해 쓰이는 카드를 내민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다급히 취소시켰습니다.
고작 3,000원짜리 설탕을 사는데 카드가 바꿨다고 취소한 것입니다.
결손아동과 소외청소년을 위한 카드는
그 목록으로만 써야 한다는 철칙입니다.
그래서 누가 보든 안 보든,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나만의 철칙을 지키려 애씁니다.

단체를 운영하는데 가장 유념하는 건
“돈의 구분을 잘하자”입니다.
철저히 구분해서 써야 뒷탈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소외계층을 위한 생필품전달사업 “사랑의상자배달” 물건을 살 때도
개인적인 물건을 끼워서 구입하지 않습니다. 따로 계산합니다.

요즘은 정보화시대이고 인터넷시대라서 조금만 조사해도 금방 뽀록날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CCTV도 많고, 조사하면 다 나오는 무서운 시대잖아요.

만약 수입이 100만원이면 100만원 써버립니다.
200만원이면 200만원 써버리고요.
200만원 수입이 나왔다고 100만원만 쓰고 100만원은 숨겨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버해서 쓸 때는 많습니다. 부지기수입니다.
돈이 없는데 어떡합니까.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모 커뮤니티 운영진이 있습니다.
“목사님, 우리 커뮤니티 말고, 다른 곳에서도 무료급식소 연락처를 알려 달랬는데 못 알려드렸어요. 죄송해요.”
“무슨 말씀이세요. 아닙니다. 죄송이라니요. 지금도 충분히 도움받고 있는데 또 무슨 욕심을 냅니까? 잘 하셨어요.”
만약 그분이 말한 곳에서도 우리 소식이 전해졌다면 지금보다 후원이 더 들어올 게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운영진의 판단으로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1도 안 서운한 걸요. 오히려 고마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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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보고 연락하는 분이 있습니다.
“배고프다. 도와달라. 돈이 없다. 춥다.”
근데요.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죠.
자선사업을 10년쯤 하다보니 “척하면 척이 됐습니다.”
첫마디만 들어보면 “아~ 이 사람 가짜구나” 알 수 있죠.
그래도 한번은 만납니다. 그리고 판단하죠.
PC방에서 무작위로 “도와달라”란 글을 “복사-붙여넣기” 하는 분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