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기
10살 때부터 30세까지
한 동네에서 20년을 살았습니다.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니깐 여기가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고즈넉한 작은 시골마을인데 요즘도 자주 갑니다.
그곳을 가면 어른들에게 인사하기 바쁩니다.
저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거든요.
누구 아들인지?
집에 숟가락이 몇 갠지?
몇 년도에 뭔 짓을 했는지?
경기남부경찰서 서장님보다, 박지원 국정원장보다
더 면밀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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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냉동탑차를 타고 다닙니다.
“후원물품 받아가라”라는 연락이 오면
“5분대기조”로 적합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평일에는 주로 냉동탑차를 몰고 다닙니다.
이 차는 승용차와 달리 매우 둔합니다.
그래서 살살 몰고 다녀야합니다.
RPM도 1,500이상 놔 본적이 없습니다.
새차이니 더 아껴서 타는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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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이 차를 몰고 고향마을을 갔습니다.
마을중간에 있는 좁은도로를 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닙니까?
다시 유턴해야할 상황이 온 것입니다.
이면도로에서 천천히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굉장히 큰 경적소리가 빵~ 하고 울리는 게 아닙니까?
내 뒤를 쏜살같이 따라와서는
어물쩍대는 내 차에 보란듯 클랙슨을 울린 것입니다.
그리고는 앞범퍼를 닿을 듯 말 듯 하게 해서 쌩하고 지나치더군요.
무슨 사고나는 줄 알았습니다.
차종은 젊은이가 선호하는 기아 스팅어였고,
파란 색이었습니다.
운전자 얼굴도 낯이 익었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이제 면허를 갓딴 앳된 얼굴이었습니다.
젊은 혈기에 객기를 부렸던 거였죠.
그렇게하면 자기가 멋있어 보이는 줄 아나봅니다.
그런 식으로 운전하려면 도시에서나 할 것이지 좁은 동네에서, 자기 얼굴 다 아는데 이게 대체 뭐하는 겁니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내 모습’이었다는 사실을요.”
아이고, 저도 이랬네요.
누군지 다 아는 동네에서,
소문이 MBC속보, 5G급인 동네에서
저도 젊은 혈기로 객기를 부렸습니다.
그 당시 어른들이
얼마나 우리 부모님 욕을 했을지...
얼마나 ‘돌아이’라고 손가락질 했을지...
이제 마흔 중반이 되고서야 깨닫게 됩니다.
사강읍내 어른들께 잘못을 구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덜익었고, 설익었으며,
미성숙했고, 서툴렀으며,
어설펐고, 풋내 났던 20년 전 김성민이 몹시 부끄러워지는 저녁입니다.

